참 좋은 저녁이야/김남호
유서를 쓰기 딱 좋은 저녁이야
밤새워 쓴 유서를 조잘조잘 읽다가
꼬깃꼬깃 구겨서
탱자나무 울타리에 픽 픽 던져버리고
또 하루를 그을리는 굴뚝새처럼
제가 쓴 유서를 이해할 수가 없어서
종일 들여다보고 있는 왜가리처럼
길고도 지루한 유서를
담장 위로 높이 걸어놓고 갸웃거리는 기린처럼
평생유서만 쓰다 죽는 자벌레처럼
백일장에서 아이들이 쓴 유서를 심사하고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
상을 주고 돌아오는 저녁이야
<시 읽기> 참 좋은 저녁이야/김남호
시 쓰기는 유서 쓰기이다. 말해놓고 보니 제법 비장하고 그럴 듯 하다. 유서를 쓰는자, 그가 곧 시인이다. 그럴 법하다. 그러니 이 시 속의 굴뚝새 왜가리 기린 자벌레도 영락없는 시인이다.
시의 화자는 비감해 마땅할 “유서” 곁에 “좋은 저녁” “참 잘 썼어요” 같은 말을 세우고, 연식 정구공이나 오재미를 던지고 받듯 유쾌한 리듬으로 함께 논다. 짐짓 말장난처럼, 맹랑한 방식, 명랑한 어조로 “유서”란 말을 ‘픽 픽’ 던진다. 본질탐구가 아니라 그 말들과 ‘더불어 놀기’의 자취로써 죽음에 관한 시 쓰기를 삼는다.
“좋은 저녁”인 것도 “유서를 쓰기 딱 좋은” 때문이다. 굴뚝새, 기린 자벌레뿐 아니라 학생들의 백일장도 그렇다면 유서 쓰기 시합니다, 상이라는 것도 결국 “참 잘 썼어요, 당장 죽어도 좋겠어요”이지 뭐람, 이렇게 이 시는 ‘조잘조잘, 꼬깃꼬깃’ 맹랑한 주장을 하고 있다. 경박한가. 한데 어쩌면 모든 것들 앞뒤에 “유서”를 쓴다거나 읽는다고 말을 붙이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울까.
멀리서 가까이서 죽음의 소식들은 쉼 없이 들려온다. 그 소식들 앞에서의 무력감과 허망감 곁에 이 시를 놓아본다. 정색의 비장과 진지함, 또는 익숙한 탈속의 포즈와 선미禪味가 아니라, 위악과 자조가 섞일망정 비애와 허무를 쉬 내색하지 않으려는 이런 장난기 쪽에 차라리 희망이 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김사인, 『시를 어루만지다』, 도서출판b,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