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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불리한 처지에 비용 전가하는 AI·원전 폭주 멈춰야"
지난 6월 27일 낮 12시 30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신규핵발전소 저지 거리미사'가 60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미사는 문규현 신부(전주교구)가 주례하고, 김정대 신부(예수회)와 양기석 신부(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총무, 수원교구)가 공동 집전했다. 뙤약볕 아래 모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은 최근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전력 수급을 근거로 발표한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의 철회를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지난 17일 한국수력원자력 신규원전 부지선정평가위원회는 신규 원자력 발전소 2기 후보지로 경북 영덕군을, 소형모듈원자로(SMR) 실증로 후보지로 부산 기장군을 선정 발표했다. 신규 원전 부지가 선정된 건 2011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 6월 27일 낮 종로 보신각 앞에서 신규 핵발전소 저지 거리미사가 열린 가운데 문규현 신부(주례)와 김정대 신부(사진 왼쪽, 예수회), 양기석 신부(사진 오른쪽,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총무) 가 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 경동현 기자
"AI와 데이터센터 핑계 댄 핵발전소 폭주, 생태사도로서 막아내야"
이날 미사 강론에서 양기석 신부는 정부의 모순적인 에너지 정책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6월 17일 경북 영덕에 1.4GW급 신규 대형 핵발전소 2기와 부산 기장에 170MW 4개로 이루어진 700MW급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 건설을 확정했다.
미사 강론을 통해 가톨릭 생태 활동가들은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무탄소 전원이라는 명분과 반도체 산업단지,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 수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그러나 핵발전소는 엄청난 온배수를 배출해 해수 온도를 상승시키는 등 오히려 지구온난화에 악영향을 준다고 꼬집었다. 특히 "대규모 송전선로는 경과지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심각한 재산권 침해를 일으키며, 고준위 핵폐기물의 영구 처분장이 없는 상황에서 신규 건설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경고했다. 더불어 핵발전이 경제성이 뛰어나다는 정부의 홍보와 달리, 초기 투자와 유지·폐로 비용을 모두 합친 균등화발전비용(LCOE)을 따져보면 태양광과 풍력에 이어 최하위 수준이라는 점도 명확히 짚었다. 양 신부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 저지를 통한 탈핵 사회로의 전환은 신앙인들과 선한 시민들이 지녀야 할 책임 있는 응답"이라며 모두가 '생태사도'가 되어 줄 것을 호소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총무 양기석 신부가 강론하고 있다. ⓒ 경동현 기자
미사에 앞서 양기석 신부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부지 선정 발표의 이면을 짚었다. 양 신부는 "당초 6월 말에 부지 선정을 발표하려던 계획을 정부가 2주 가까이 당겨 기습적으로 발표했다"며, "정부는 AI 데이터센터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과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문제였다고 인식하며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받았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던 것인데, 탈원전을 시도했던 것 자체가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이번 부지선정 발표의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양 신부는 또한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함에도 실용이라는 명분 아래 뒷전으로 밀리는 답답한 국면을 지적하며, "이제는 발표를 막는 것을 넘어 탈핵 단체들과 함께 실제로 핵발전소를 막아내는 활동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는 레오 14세 교종이 최근 반포한 사회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의 핵심 메시지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교종은 회칙에서 기술의 발전이 공동선이 아닌 이윤과 효율성만을 좇을 때 발생하는 '새로운 식민주의'와 '지역 희생'의 문제를 강력히 경고한 바 있다.
"발전은 만약 그것이 일부를 위해 소비를 늘리는 반면 타인에 비용과 부담을 전가하거나, 전체 지역을 하위 역할로 강등시켜 그들이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을 방해한다면 진정으로 인간 중심적이지 않습니다. (…) 생태계를 퇴화시키거나,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인 공동체에 비용을 전가하거나, 우리를 뒤따를 이들의 생활 조건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일부의 복지만 증대시키는 것은 진정한 진전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고귀한 인류』 83~84항)
결국 AI 인프라 확장을 위해 비수도권 지역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의 위험을 강요하는 작금의 현실은, 교종이 규탄한 '진정성 없는 퇴행적 발전'의 전형인 셈이다.
지난 6월 27일 낮 종로 보신각 앞에서 신규 핵발전소 저지 거리미사가 열린 가운데 뙤약볕 아래에서 사제, 수도자, 신자 60여 명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 경동현 기자
"동해안은 핵산업의 실험장 아냐"… 신규핵발전소저지 전국비상행동 주최 결의대회 열려
미사에 이어 오후 2시부터는 동일한 장소에서 '신규핵발전소저지 전국비상행동' 주최로 '6·27 신규핵발전소 저지 전국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영덕과 기장 주민을 비롯해 전국에서 모인 환경, 종교, 노동, 여성, 기후단체 활동가 등 시민 200여 명이 참석해 정부의 밀실 행정을 강도 높게 규탄했다.
노진철 공동대표는 기조발언에서 "기후위기라는 '느린 재난'을 대량 방사능 유출이라는 '빠른 재난'으로 극복하려는 역설이 은폐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최정연 영덕핵시설저지30km연대 공동대표는 정부가 내세운 '주민 수용성' 주장을 정면 반박하며 "반대하는 주민 의견은 배제한 채 입맛에 맞는 결과만으로 주민이 찬성하는 것처럼 포장한 것은 민주주의 훼손이자 주민 기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증되지 않은 SMR이 들어설 부산 기장 지역의 반발도 거셌다. 박상현 탈핵부산시민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40년 동안 핵발전소와 살아온 기장을 또다시 핵산업계의 실험실로 만들 수는 없다"**며, 방관하는 김성환 환경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현숙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공동대표 역시 "동해안 주민들은 핵산업의 실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지역 주민의 생명보다 산업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책을 강하게 질타했다.
미사 후 같은 장소에서 200여 명의 시민과 활동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 주최로 전국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 장영식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그만 짓자 핵발전소", "부지 선정 철회하라"는 피켓을 들고 보신각에서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 사랑채까지 도심 행진을 이어갔다. 행렬 앞에는 저승의 뱃사공 카론과 머리가 셋 달린 삼두매 대형 탈이 등장해 핵발전과 핵폐기물이 불러올 죽음의 그림자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핵발전 확대 정책 철회와 주민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적 에너지 전환을 강력히 촉구하며, 부지 지정·고시를 막기 위한 장기적인 투쟁을 선언했다.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 활동가와 시민들이 27일 오후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 철회와 정부의 핵발전소 확대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장영식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 활동가와 시민들이 27일 오후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 철회와 정부의 핵발전소 확대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네거리를 지나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 장영식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 활동가와 시민들이 27일 오후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 철회와 정부의 핵발전소 확대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 장영식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 활동가와 시민들이 27일 오후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 철회와 정부의 핵발전소 확대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 장영식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 활동가와 시민들이 27일 오후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 철회와 정부의 핵발전소 확대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광화문 앞을 행진하고 있다. ⓒ 장영식
'신규 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 활동가와 시민들이 27일 오후 신규 핵발전소 부지 선정 철회와 정부의 핵발전소 확대 정책 폐기를 요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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