醉客執羅衫(취객집나삼) 취객이 명주저고리를 잡아 끌어
羅衫隨手裂(나삼수수열) 그 손에 저고리 찢어 졌어라
不惜一羅衫(불석일나삼) 저고리한삼 하나도 아깝지 않으나
但恐恩情絶(단공은정절) 단지 받은 정까지 끊어질까 두렵구나
梅窓(매창) 李香今(이향금)
조선중기 1573년에 태어나서 1610년 38세의 짧은 생을 살다간 부안출신의 명기(名妓)이다
황진이,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 3대 여류시인으로 불린다.
타고난 시재(詩材)와 기예(技藝)와 인품(人品)으로 많은 시인과 묵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인조반정의 공신 연평부원군 이귀,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위항시인(委巷詩人) 촌은 유희경 등과
정감깊은 교류를 갖었었다
그러나 평생동안 몸과 마음을 주어 사랑했던 사람은 중인출신 촌은 유희경뿐이다.
매창(梅窓)은 죽음을 느꼈었는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등잔불 그무러갈 제 문풍지가 떨립니다
때 이르게 찾아온 가을 바람에 잎사귀 속절없이 떨어져요
소슬한 바람결이 뒤돌아 보는 제 생과 어쩌면 저리도 닮았을까요
아무래도 이승이 저를 오래 붙들어 두지 않으려나 봅니다
박정한 세월에 떠밀려 천길 낭애로 떨어지듯
수시로 몸의 고통이 엄습합니다
바짝여윈 손가락에 흘거워진 가락지가 안 맞아요
조석으로 이 몸뚱이 지탱하기도 버거워요
불혹(不惑)을 이태 앞둔 나이
남은 건 고작 병들고 늙은 몸뚱이밖에 없지만 내 규방의 안온함을
한 번이라도 부러워 한적 없답니다
칼날같은 아스라한 생을 나는 사랑하였더랍니다.
간혹 간직한 비파 홀로 뜯노라면 생각은 흘러흘러 끝이 없읍니다
거문고를 처음 제게 쥐어주시던 아비의 고의적삼자락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비는 한문과 시문을 익히게 하셨지요
아비는 시를 좋아하고 거문고를 잘 타는 숨은 풍류객이셨읍니다
어미는 저를 세상에 내 놓은지 석달만에 산욕열로 세상을 버리셨으니
아비는 저에게 둘도 없는 분이셨읍니다
아전의 옹색한 자리에 머무셨었지만 저에 대한 애정은 참으로 각별하였지요
핏덩이같은 딸을 애지중지 손수 기르셨고 세살적부터 몸소 거문고를 배워 주셨으며
다섯살때부터 글을 가르쳤읍니다
한 때 그자리마저 내어 놓았을 때 떠돌이훈장노릇을 했답니다.
가난하고 궁벽한 살림이었기에 한 때는 남장을 하고 아비를 따라 이곳저곳 서당을
떠돌기도 하였지요
남복을 하면서 구걸하듯 글을 읽었지만 자청하여 글 배우기를 마다하지 않았지요
아비는 왜 제게 거문고를 가르쳐 주셨을까요?
갈갈이 심장을 도려내는듯한 애끓는 심정을 저는 거문고의 가락에 싣곤 하였읍니다
창창한 날 소리는 덧없이 흐르는 세월이었고
가는 비 보슬보슬 내리는 해 저물어 갈즈음 소리는 가없는 그리움이었읍니다
시절 가며 느는 것은 상념뿐, 생각은 수풀처럼 무성합니다
바라보는 꽃에도 한숨 일고 제비소리에도 옛 시름 자아 낸답니다
매화나무 창가,... 계생,계랑,향금 제가 불리운 많은 이름이 있지만
저는 매창(梅窓)을 사랑하였답니다.스스로 매창이라 불렀어요
찬바람,눈발속에서 이른 봄 온갖 꽃들의 선두로 피어오르는 매화의 고결함과
품위를 사랑하였답니다
창(窓)이란 기다림과 다름없지요
또한 창에는 하늘이 있고 별이 있고 쓰쳐가는 바람이 있읍니다.
창은 어쩌면 제가 숨쉬며 살아가는 생명의 호흡일지도 몰라요
꽃다운 시절 기적(妓籍)에 이름을 올리고 교방에 들어가 동기(童妓)로서
수업을 시작했던 기억이 떠 올라요
근자(近者)엔 앞날을 꿈꾸기보단 걸어온 길을 되짚는 시간이 잦아졌답니다
노래와 춤,그림과 예악을 배웠지요
음율과 가무,시화는 제 몸의 일부였고 흐르는 피였답니다
청풍유수(淸風流水),유유자적(悠悠自適)의 삶을 동경했어요
그 시절 가슴은 설레고 하늘은 청청하기만 했지요
어릴 적부터 버선만지길 좋아했답니다.
추녀의 선처럼,소매의 둥근 곡선같은 완만한 선의 이어짐은 왠지 모를 정감을 느끼게 했어요
또한 미묘한 운치를 주곤 해서 저는 가늘고 부드러운 외씨버선을 자주 만지작거리곤 했어요
그 언젠가 나의 버선을 벗길 이를,고목같은 사랑을 주실 이를 상상하며
살짝 붉힐 때도 있었지요
적어도 우관(雨觀) 서진사(徐進士)를 만나 머리를 얹을 때까지는요
아~,첫날 밤은 내 어두운 기억의 그늘속에 아직도 잠겨 있답니다
그는 나를 범했을 뿐이었지요.권력과 완력의 하찮은 힘으로....
그는 마음을 넘어뜨리는 위대한 힘을 알지 못하는 자였읍니다.
제 머리를 얹히던 그 날,창호지에 새볔빛이 새어들기 시작할 무렵까지
저는 잠들지 못했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깨우쳐 버린 생의 서글픔
그럼에도 첫정에 이끌려 저는 서진사를 찾아 한양을 향하였답니다
냉정히 닫친 대문앞에서 제 아둔함의 끝을 본 뒤에야 저는 돌아설 수 있었답니다
아...무슨 회한이 이리도 굽이굽이 이어지는 것일까요
하 많은 세월중 어쩌면 맨 먼저 제 상념속을 찾아 오시는 분,
나는 푸르른 소매 걷고 붉은 치마 여미어 해 기울어 갈 무렵 대나무 울타리에 기대선 여인
삶의 슬픔을 이미 알아채버린 여인의 표정으로 정인(情人)을 기다리는
그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 합니다.
...................................
구구절절이 한 여인으로서의 생에 대한 한(恨)이 서려있고
그러나 너무도 그 표현에서 문학적 천재성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조선시대 기생의 삶의 단편을 보는 듯 뭉클함이 느껴져 옵니다.
첫댓글 조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명깊게 잘읽고 갑니다..
감사히 봅니다^^
좋은글귀 잘보고 갑니다...매창이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