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여론독자부장 입력 2021.07.19 03:00 서울 출생 시인이자 평론가 임화(林和·1908~1953)는 6·25전쟁 직후인 1953년 8월 북에서 처형당했다. ‘미제 간첩’이란 혐의였다.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문학 운동 기치를 내건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서기장을 지내고 해방 후인 1947년 월북해 6·25 때 낙동강 전선 종군까지 했던 ‘골수 빨갱이’에게 덧씌운 죄목이 미국의 첩자라니 그는 죽으면서도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 정치적 단죄란 겉으로 내세운 죄목과 실제 이유가 다른 법이다. 임화가 사형당한 진짜 이유는 김일성 독재 체제 구축을 방해하는 남조선 출신 반대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희생자는 그만이 아니었다. 남로당 출신 부수상 겸 외상 박헌영(1900~1955)도 같은 죄목으로 처형당했다. 최근 북한 내부에서 '오빠'라는 호칭이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알려진 가운데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11일 국가표창을 수여받은 중요 예술단체 창작가, 예술인들을 만나서 축하 및 격려하며 함께 사진을 찍고있다. /조선중앙TV 북에서 여성이 남편이나 애인을 ‘오빠’라고 부르면 징역형에 처한다는 최근 뉴스를 보고 임화가 떠올랐다. 우리 문학사에서 아마도 ‘오빠’를 시어(詩語)로 쓴 첫 시인이 임화일 것이다. 그는 1929년 시 ‘우리 오빠와 화로’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임화가 살아있다면 이번엔 ‘오빠’를 유행시킨 원흉으로 단죄될지도 모르겠다. “오빠는 욕심쟁이, 오빠는 심술쟁이, 오빠는 깍쟁이야”라는 익살스러운 가사와 흥겨운 리듬의 1938년 노래 ‘오빠는 풍각쟁이’를 부른 가수 박향림도 처단 대상에 올랐을지 모른다. 임화나 박향림의 ‘오빠’는 친오빠를 지칭했다. 그러나 오빠의 친구 같은 손위 남자에게도 ‘오빠’라고 부르는 일은 우리말 활용에서 꽤 자연스러운 일이다. 친족 호칭을 남에게까지 확장해 사용하는 방식은 우리말 용법에서 흔히 있기 때문이다. 친형도 ‘형’이지만 형 친구도 형이고 동네·학교 선배도 형이다. 식당 여성 직원을 ‘이모’ ‘고모’ ‘언니’로 부르는 이도 적지 않다. ‘오빠’는 특히 남녀 간 친근한 느낌이 있어 우리 대중가요에서 자주 채용했다. 동생으로만 여겼던 여자아이가 ‘오빠, 나만 바라봐’(왁스 ‘오빠’)라고 요구하거나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어떡해’(아이유 ‘좋은 날’)라고 고백할 때 누가 호칭을 문제 삼아 죄를 물을 것인가. 그런데 30여 년 전 우리 대학에서도 이 호칭을 문제 삼았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오빠’는 금기어였다. 여자 후배도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 신성하고 위대한 혁명을 하는데 남녀를 구분하는 호칭을 쓰느냐는 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호칭을 ‘오빠’ 아닌 ‘형’으로 통일한 것은 여성성을 배제한 폭력이었다. 그 후 10여 년쯤 지나 여자 후배가 남자 선배를 오빠라고 부른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우리말 어법에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꽤 어색하게 느끼기도 했다. ‘오빠’란 말에 거부감을 갖는 이가 우리 사회에도 많이 있다. 관련 기사 댓글을 보니 “그래, 이것 하나는 옳다. 남편을 오빠라고 하니 세상에 이 무슨 망발이던가” 같은 반응이 있었다. 그 말도 틀리지 않는다. 다만 금실 좋은 부부 사이에서 그렇게 부른다 하여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나. 상식적 사회라면 그럴 수 없다는 것쯤이야 누구나 알 수 있다. 남편·애인을 ‘오빠’라고 부르면 죄를 묻는 까닭이 타락한 남조선 자본주의풍을 물리치고 아름다운 ‘조선말’ 지키려는 북 당국의 순수한 어문 정책 때문인가. 미풍양속 지키려는 절실한 노력인가. 내세운 죄목과 관계없이 실제 이유는 체제를 지키려는 정치적 단죄라는 것쯤이야 누구나 알 수 있다. ‘오빠’라는 말 하나로 북 체제의 취약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