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대전에서 프랑스를 구한 드골 대통령.
그는 유언에서
‘가족장(家族葬)으로 할 것’ 과 함께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참례(參禮) 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라”고 하면서
그러나
“2次 大戰 戰爭터를 누비며 프랑스 解放을 위하여 함께 싸웠던
전우(戰友)들의 참례는 하도록 하라”고 허용(許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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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 유언(遺言)을 존중하여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영결식을 가졌으나
대통령과 장관들은 영결식장에 가지 않고
각자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묵념을 올리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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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 전 대통령은
자신이 사랑했던 장애자였던
“딸의 무덤 옆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뿐 아니라
“내가 죽은 후 묘비를 간단하게 하라.
이름과 출생 사망 년도만 쓰라”고 했다.
그래서 드골 전 대통령의 묘비에는 이렇게만 적혀 있다.
"Charles de Gaulle, 1890-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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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드골은
대통령 퇴임 후 정부가 지급하는 퇴임 대통령 年金과
그 가족들에게 지급하는 연금(年金)도 받지 않았다.
드골은
“그 돈은 불쌍한 국민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고 했다.
그에 따라 정부는
드골 퇴임 후 본인은 물론 서거 후 미망인, 가족들에게 나가는 연금도
무의탁 노인들과 고아원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신탁기금에 보내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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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 대통령의 가족들은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드골 대통령이 출생하고 은퇴 후 살던 생가(生家)를
관리할 능력이 없어 그 저택을 팔았다.
그 저택은 어느 재벌이 구입, 정부에 헌납하여
지방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해 드골 기념관으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