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해설] 거대한 손 / 강인한
거대한 손
강인한
덜거덕거리며 이동주택이 뒤집혀 날아간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트럭이며 승용차들 지상을 달리던 열차도 떼 지어 총알처럼 우주로 튕겨나간다. 새들이 놀라 쳐다보고 있는 동안 저쪽에서 수만 톤의 모래알과 자갈이 날아오르고 기다란 강물이 찢어진 채 허공에서 너덜거린다. 물살을 헤치고 나온 대형선박이 컨테이너박스랑 풍선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떠오른다. 길을 가다 허방을 딛는 당신 얼굴에 죽은 고양이와 쓰레기더미가 스친다. 할머니 손 잡고 막 어린이집을 나선 아이들이며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이들 키스를 나누던 공원의 애인들도 떠오른다. 거품을 물고 펄떡거리는 물고기, 일요일, 부서진 책상, 도마뱀, 모자, 유리병, 뻔뻔한 신문과, 검은 비닐봉지, 포클레인, 부자들의 왼손을 눈감아주고 다니는 하느님, 새로이 제정되는 입맛대로의 법령과, 스티로폼, 버려진 세탁기, 썩은 나뭇잎에 섞여 아무데도 발 디딜 곳 없이 뿌리 없는 것들은 모조리 뒤죽박죽으로 아악, 소리 지르며, 허우적거리며, 날아오른다.
우리들 등 뒤에서 누군가 지구의 중력 스위치를 슬쩍 내린 그 순간! —시집 『강변북로』 2012 ......................................................................................................................................................................
고등학교 시절이던가, 아니 중학교 시절인가. 지렛대를 응용하면 아주 먼 거리에서도 물체를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원리를 배운 것이. 그 이야기에서 “백발의 알키메데스 翁이/ 머언 명왕성의 지렛대로/ 오늘 새벽,/ 지구를 들어 올렸다 놓은” 순간에 “모든 시계의 바늘이 한 번 부르르” 떨었고 “모든 성좌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한 번 기울었다가 우뚝 서”고, 임신 중의 “모든 여인의 성염색체가 돌연 뒤바뀌”었으며 “은빛 군번의 메달이 지도에 없는 하늘에서/ 땅에 떨어”졌다고 상상하는 시를 썼다. 첫 시집 『이상기후』(1966.8)에 실은 「오늘 새벽」이란 시이다. 이것을 개작한 시가 「1961 어느 새벽의 장난」인데 5.16 군사반란으로 모든 게 비정상으로 바뀌고 말았다는 국가적 명운을 쓴 시다. 격월간 《시사사》 2019년 5-6월호에 발표한 시. 그와 마찬가지로 우주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어떤 존재자가 ‘있어서’ 지구 중력을 좌우하는 스위치를 한 순간에 내려버려서 중력을 무력화시킨다면… 갑자기 땅 위의 모든 존재는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날아갈 것이다. 설악산 흔들바위가 마침내 하늘로 날아가고, 동남아로 팔려나갈 트럭 위의 XX일보 폐지뭉치, 산책 중의 반려견이며, 고양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선 당신도 우주를 향하여 날아갈 것이 아니겠는가. _강인한
[평설]
위 시에 나타난 상승지향의 상상력은 가히 폭발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다. 일어날 수 없는 상황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읽는 이에게 허허로운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만물은 단순히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만이 아니라 무언가 부족하거나 부정적이거나 안타까운 심정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풍자적 요소가 곁들여 있다고 보이는 위 시는 블랙 유머를 함유한다. 시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현대의 문명은 이기이면서 동시에 부도덕한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하는 인류의 부산물이다. 시 중반에 등장하는 인물들, 즉 ‘허방을 딛는 당신’, ‘할머니와 아이들’, ‘버스를 기다리는 이들’, ‘애인들’은 모두 바쁜 현대를 악착스럽게 살아가는 생활인들을 상징한다. 나머지 부분에 등장하는 수다한 요소 중에서 불편부당한 ‘하느님’이나 ‘법령’은 쓰레기와 뒤섞여 쓸모없는 것들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강인한 시인이 풍자적으로 묘사한 이 ‘부유하는 존재들’은 모두 우주로 추방되어야 할 것들인 것이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끌어안고 있는 힘인 ‘중력’이 갑자기 사라진다면”이라는 상상으로 펼쳐진 위 시의 풍경은 사뭇 초현실적이다. 그러면서 내심 그러한 상상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는 독자들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공감할 만한 풍경이다. 사실 위 시의 풍자성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하늘로, 우주로 날아오르는 것들은 모두 ‘뿌리 없는 것들’이라는 데 있다. 산, 나무, 바위 등등이 아니면 지상의 모든 존재는 뿌리가 없다. 그러니까 뿌리 없는 존재들은 지구의 무한한 자비로 인하여 지구에 머물 수 있는 것이다. 뿌리가 없다면 언제든 우주로 날아가 버릴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그것은 지구에 발 딛고 살아가는 존재의 숙명이다. 강인한 시인의 시안은 존재론에 닿아 있다.
윤의섭(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