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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장 강해 2부 한 사람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요한복음 18장 12-18
요절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베트남 전쟁 출정을 불과 일주일 가량 앞둔 1965년 10월 4일 오전 10시, 맹호부대는 강원도 홍천의 훈련장에서 파병 전 최종 점검을 위한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재구 대위가 이끄는 중대원 160여 명이 전방에 모여 수류탄 투척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이등병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고 팔을 뒤로 젖히다 실수로 수류탄을 손에서 놓쳐버리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철제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은 3~4초 뒤면 폭발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습니다. 하필이면 그 수류탄이 수많은 중대원이 밀집해 있던 한가운데로 굴러떨어졌습니다. 수류탄을 밖으로 발로 차거나 집어던지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자칫 잘못 차면 오히려 병사들 쪽으로 날아가 더 큰 인명 피해를 낼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이때 훈련을 감독하고 있던 중대장 강재구 대위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엎드려! 소리치며 자신의 온몸을 수류탄 위로 날려 덮쳤습니다. "쾅!" 굉음과 함께 수류탄이 강재구 대위의 가슴 아래에서 폭발했습니다. 파편과 충격파가 강 대위의 몸에 박히면서, 주변에 있던 160여 명의 중대원 중 부상을 입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29세(만 28세)의 젊은 중대장은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고 그 자리에서 장렬하게 산화했습니다. 집에는 27세의 젊은 아내와 태어난 지 고작 14개월 된 어린 아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희생은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국군에서는 그를 강재구 소령으로 일계급 특진 시켰습니다. 강재구 소령은 자신 하나 죽어서 많은 부하를 살릴 수 있다면 자신 하나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 한 사람을 죽여서 온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다면 예수님 하나 죽이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님은 강재구 소령처럼 자신 하나가 죽어서 온 인류를 살릴 수 있다면 자신 하나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여 자원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찢겨져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가 살아났고 나중에는 예수님 자신도 살아나 온 인류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과연 무엇이 유익한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한 사람이 온 백성을 위해서 죽는 것이 유익합니다.
“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예수님은 천부장과 로마 군대와 유대의 성전 경비대에 의해 결박되어 안나스에게 끌려갔습니다.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으로 산헤드린 공회에서 실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인으로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재판하였습니다.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서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입니다.
가야바가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 한 사람을 죽이자고 말한 것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린 직후입니다. 예수님은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렸듯이 썩은 이스라엘을 살리실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나라가 망한지 600년이 지나서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은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에스겔의 예언처럼 예수님이 그런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사 강하고 큰 군대로 만드시고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독립시켜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세계를 다스리는 나라가 되게 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님을 통하여 에스겔의 예언이 이루질 것을 소망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하는 무리들을 보고 유대인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아 로마에 반역을 하면 로마 사람들이 유대인들을 말살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는 그 만한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과거 유대가 망하고 600년 전에 나라 잃은 슬픔을 겪었습니다. 여호아하스는 친 바벨론 정책을 하고 반애굽 정책을 하다 애굽에 의해서 망했습니다. 여호아하스를 이어 왕이 된 다른 형제인 여호야김이나 시드기야 왕은 친 애굽 정책을 하고 반바벨론 정책을 하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망했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을 반역했을 때 유대 인구의 3분의 2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남아있는 자는 바벨론 포로가 되고 세계에 흩어지는 디아스포라가 그때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의해서 민족이 말살된 고통을 당시까지 겪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아 로마에 반기를 들어 반로마 정책을 하면 그들은 다시 한번 유대인이 말살될 것이라고 걱정하였습니다. 차라리 그 전에 반역자 예수님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유대인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실제 ad 70년 경에 유대의 열혈당원들이 로마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네로의 아들 디도 장군이 유다를 침략하여 유대인 200만이 죽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유대인은 다시 한번 고통하고 세계에 흩어져 디아스포라가 이스라엘 인구의 삼분의 이나 되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이런 이스라엘의 비극을 예방하기 위해서 예수 한 사람을 그들이 먼저 죽이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제사장을 통하여 이 말을 하게 하여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예언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온 인류의 말살을 대신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이나 로마에 반역하였듯이 온 인류는 하나님께 반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반역한 온 인류를 말살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 인류를 말살시켜 지옥에 보내고 다시 인간의 역사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보시고 강재구 소령처럼 자신 하나가 반역자로 죽어서 온 인류를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서 스스로 자원하여 십자가에 몸을 던져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강재구 소령처럼 죽으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후에 부활하십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살리고 당신도 사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민을 구원하는 신의 한 수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 받아 나 하나 죽어 우리 가족이나 교회나 사회가 살 수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버리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가족과 교회와 사회도 살고 나도 사는 길입니다.
(2)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면 실패합니다.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요한이 재판 받으러 가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요한은 대제사장과 아는 사입니다. 그 어머니가 대제사장의 친척이고 요한의 아버지가 고기를 잡아 공회에 납품하였다고 합니다. 요한이 먼저 대제사장의 뜰에 들어갔습니다. 베드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요한이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공회가 열리는 대제사장의 뜰로 들어왔습니다. 문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너도 예수님의 제자 중에 하나가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화들짝 놀라서 ‘나는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이 다 예수님을 버려도 자신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그가 닭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맹세한 그가 계집종 앞에서 어이없이 예수님을 첫 번 부인하였습니다.
그때는 지금 계산해 보면 양력 3월 3일 경으로 밤 날씨가 추웠습니다. 종과 하랫사람들이 뜰에서 불을 피우고 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그곳에서 사람들과 섞여서 태연히 불을 쬐었습니다. 멀리서 예수님의 재판을 지켜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부인했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3)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ㄱ)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것은 목자이신 예수님을 치셨고 베드로가 목자이신 인간 예수를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목자 예수를 의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고 큰 소리칠 수 있었습니다. 칼로 종의 귀를 떨어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목자 예수님을 치고 예수님이 무력하게 체포되자 그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마치 못에 여러 옷을 걸어놓았는데 못이 빠지자 옷이 다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비로 예수님이라도 눈에 보이는 사람을 의지하면 사람들이 이렇게 약해집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무너진 것은 이사야의 예언을 생각나게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에는 단단한 곳에 박혔던 못이 삭으리니 그 못이 부러져 떨어지므로 그 위에 걸린 물건이 부서지리라 하셨다 하라" (사 22:25) 이 말씀은 본래 남유다 왕국의 고위 관리였던 '셉나'가 교만으로 인해 쫓겨나고, 그 대신 충실한 '엘리아김'이 세워질 것을 예언하면서 주신 비유입니다. 하나님은 부패한 셉나를 폐위시키고 신실한 엘리아김을 궁내대신(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장 겸 총리)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다윗 집의 열쇠'를 맡아 절대적인 권세를 가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닫으면 열 사람이 없고 그가 열면 닫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계시록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에게도 엘리야 김에게 주신 동일한 말씀이 나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요한계시록 3:7) 엘리야김이 총리가 되어 그리스도처럼 정치를 잘하였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엘리야김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이 엘리야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을 보이자 그의 친척, 후손, 먼 친척(작은 그릇부터 큰 항아리까지)과 수많은 유다 사람들이 엘리아김을 의지합니다.
아무리 단단하게 박힌 못이라도, 엘리야김은 결국 육신을 가진 사람이므로 결국 걸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삭아서 부러지게 된 것입니다. 육신을 입은 사람은 죽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아무리 좋은 지도자라도, 결국은 죽게 마련입니다.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그 지도자를 의지하면 그가 죽을 때 전체가 함께 파멸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인간 지도자라도 우리가 영원히 의지할 '못'이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하면 무너져 내립니다.
태백시 인구가 가장 많았을 때는 1987년(12만 208명)이며, 가장 적을 때는 현재(2026년 5월 말 기준 3만 6,853명)입니다. 태백시의 인구가 줄어든 이유는 태백시가 태백 탄광 하나에 모든 인구가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태백시 탄광이 못과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태백에 탄광이 폐쇄되자 4분의 3의 인구가 떠났습니다. 지방도시 중에 인구 소멸의 위기에 있는 도시는 대부분 한 가지에 도시의 인구가 다 매달려 있는 도시입니다. 그 하나가 떠나면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하나에 의지하는 도시는 다 소멸의 위기를 맞이합니다.
엘리야김의 못이 떨어지는 것은 신약에 예수님의 죽음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많은 표적과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오시자 사람들은 육신을 가진 예수님 한 사람을 모두 의지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더욱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정도 버리고 직장도 버렸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육신을 가진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루고 자신도 한 자리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육신을 입은 예수님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니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시고 목자를 치리니 양이 흩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엘리야 김과는 유사한 면도 있지만 다른 면도 있습니다. 엘리아김은 부러져서 그에게 걸린 것들이 함께 파멸했지만, 인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부러지심으로써 오히려 그분에게 매달려 있던 우리죄인들의 모든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아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그 허물을 감당하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십니다. 그들이 육신의 모습을 가진 예수님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으로 오셔서 영으로 계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엘리야 김과 달리 부활하여 결코 부러지지 않고 우리를 영원히 붙들어 주실 단단하고 새로운 못이 되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온 인류가 의지해도 빠지지 않는 못과 같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의지하면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을 의지하면 우리는 자립적이 되고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인간 예수님을 의지할 때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때 그는 강해졌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죽인 공회 앞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이 채찍질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하였을 때 오히려 매를 맞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더욱 예수님의 이름을 담대히 증거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지금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돈이나 자신을 의지하면 그것이 무너질 때 한없이 나약해집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고 사람을 의지하면 그 사람에게 상처를 받습니다. 피플앤스토리 이재국 사장은 사람을 잘 믿는 성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을 믿고 많이 투자하였다고 많은 물질적인 손해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돈도 사람도 나도 눈에 보이는 것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고 도와줄 대상입니다. 오직 영으로 계신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면 강한 자로 독립하고 자립할 수입니다. 본래 독립이라는 Independence는 '의존하지 않는 상태', 즉 '독립'을 뜻합니다. 라틴어 어원 '의존하다‘ dependere에'~ 아닌(in-)'이 결합하여 탄생했습니다. in은 ‘아닌', '부정'을 뜻하는 라틴어 접두사입니다. depend는 de-: 아래로, 밑으로이고 pendere: '매달려 있다', '걸려 있다'라는 뜻의 라틴어가 결합된 것입니다. 즉 못에 매달리 것이 바로 디펜던스 의존입니다. 독립은 눈에 보이는 못에 '매달려 있지 않은, 즉 남에게 예속되거나 기대지 않는 상태인 independence 독립이 되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독립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상태로 쓰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만 매달려 있는 상태입니다. 미국의 독립 선언은 사실 하나님에 대한 의존 선언입니다. 1776년 미국의 국부들이 영국 왕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할 때, 그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 설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독립 선언서의 마지막 문장에는 “with a firm reliance on divine providence"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굳건히 의지하며’ 라는 뜻입니다. 미국의 독립 선언은 인간 권력에 대한 독립 선언인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의존 선언입니다.
달러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말이 쓰여져 있습니다. ‘In God We Trust’ 달러 지폐 뒷면 상단에 크게 적혀 있는 미국의 공식 국가 모토입니다. 우리는 돈보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1956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시절, 무신론을 주장하던 공산주의 진영인 소련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미국의 기독교적 청교도 정신을 법정 국가 모토로 지정하면서 화폐에 의무적으로 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이나 물질,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영적인 독립심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의 독립은 하나님을 향한 의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립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이 되면 나 자신이 복이 됩니다. 나는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으니 부족함이 없고 은혜가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됩니다. 나로 인하여 가족이 직장이 성도들이 복을 받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서 하나님만 의지하였을 때 그는 복이 되어 세계에 복을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결론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강재구 소령은 160명의 중대원을 위해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천억의 온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목숨을 버렸습니다. 강재구는 위대하지만 예수님은 더 위대하십니다. 강재구는 죽고 사라졌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여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떤 삶을 살도록 죽으셨을까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돈을 의지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영으로 계신 살아게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우리는 복이 되어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의자하여 독립적이고 자립적이고 복을 나누어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김동호 목사가 숭의여전에서 예배를 드리자 많은 사람이 큰 물주를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목사는 내가 물주를 잡은 것은 큰 물주를 잡은 것이 아니라 조물주를 잡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목회를 하니 많은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나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천안에 무일푼으로 왔을 때 인천에서 매 달 후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원을 받으면 나의 꿈인 평신도 목자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거절하면서 나에게는 고난의 시작이었지만 그 것이 축복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물질적인 복을 많이 주시고 복을 나누어주게 하셨습니다. 내가 전임사역자가 될 때 우리 교회 재정부는 우리 가정을 지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직장을 떠나 전임 사역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물질을 넘치게 축복하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의지하는 것을 떠나서 하나님만 의지할 때 복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18장 강해 2부 한 사람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요한복음 18장 12-18
요절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요한복음 18장 강해 이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