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오피니언
[사설]“카카오 시세조종” “영풍제지 주가조작”… ‘K-증시’ 아직 멀었다
입력 2023-10-21 00:00업데이트 2023-10-21 02:06
주가 시세조종 관여 의혹이 제기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18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남부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2023.10.18 뉴스1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운 혐의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그제 구속됐다. 올해 들어 9배 가까이 폭등한 주가가 최근 폭락한 영풍제지 사태와 관련해 주가조작 세력으로 의심되는 4명이 어제 구속됐다. 나라 안팎의 악재가 몰린 증시에 시장 신뢰성 하락이란 리스크가 추가됐다.
구속된 배 대표는 카카오그룹의 인수합병(M&A)을 주도해 온 인사다. 올해 2월 SM엔터 경영권을 놓고 경쟁하던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약 2400억 원을 투입해 주가를 높인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SM엔터 주식을 공개매수하던 하이브는 카카오 측이 끌어올린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을 넘는 바람에 목표 지분 확보에 실패하고 인수를 중단해 결국 카카오가 SM엔터 최대 주주가 됐다.
금융감독원은 카카오 측이 이 과정에서 시세를 조종하고, 상장주식을 5% 넘게 보유하면 공시해야 하는 의무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카카오 창업주인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이 이런 사안을 알고 있었는지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영풍제지는 이차전지 테마주로 지목돼 올해 초 5800원 정도였던 주가가 지난달 5만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달 18일 갑자기 하한가를 쳤고, 이 회사 지분 45%를 가진 대양금속 주식도 30% 가까이 폭락하면서 거래가 중단됐다. 서울남부지검은 주가 폭락 전날 주가조작 혐의로 윤모 씨 등을 체포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어제 발부됐다. 올해 4월 라덕연 H투자컨설팅 대표가 주도했던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와 비슷하다.
미국 긴축 장기화로 인한 ‘킹 달러’ 현상,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 확대 등으로 한국 증시에선 요즘 글로벌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런 때 간판급 정보기술(IT) 기업의 최대주주가 주가 조작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는 건 그 자체로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극소수 세력이 중견기업 주가를 쥐락펴락하는 일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좋은 성과를 낸 기업까지 제값을 못 받는 한국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한 번이라도 주가를 조작해 질서를 혼탁하게 만든 이들을 시장에서 격리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