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천초등학교 총동창회를 마치고
강미숙
포도알이 당도높게 익어가는 팔월 십사일 밤이 올해 또 찾아오고
우리 친구들,
총동창회 현수막이 펄럭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향해 서둘러 길을 나섰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천막들 사이에서
제 42회 동창회란 글씨를 찾으며
어서 친구들을 만나고파 마음이 급해짐과 동시에
무거웠던 일상들을 폭죽처럼 흩날려보내고
"근우야~"
" 숙인아~"
서로 얼싸안는 순간 아이들로 변신했지.
얼기설기 묶인 청색 천막아래서
송편, 보리떡, 술떡, 수박, 옥수수와
맥주, 막걸리, 소주에 우정을 되새기며
"마이 묵어라~"
"오냐, 반갑데이"
챙겨주는말과 정감어린 인삿말을 건네는 사이
밤은 점점 깊어만 가고
유랑극단이고 남진이고 뒤로 한채
사십구세 연륜에 딱 맞는
숯가마 찜질방으로 장소를 옮겼지.
식당 안 형광등 불빛아래서
노릇노릇 구워진 삼겹살 도톰하게 올린 상추쌈을
볼살 터지게 밀어 넣으면서
옆눈으로 힐끔힐끔 훔쳐보던 시선이
괜히 머썩해진 까닭은
작년보다 더 나이들어 보이는 친구얼굴이
가까우면서도 어색해서였던 것이 아닐까?
술잔이 돌고돌며
잠시동안 서로간의 탐색놀이가 거품처럼 사라지고
소년소녀처럼 까르르 웃으며
우리들의 이야기가 뭉글뭉글 익어갔지.
회장과 총무의 인삿말이
전교애국조례시간 주번일지 낭독처럼 펼쳐지고
드디어 노래방 기기에 전기가 들어오자
서울에서 제일 잘나가는 가수 정옥이가 열창을하고
우린 몸에 달린 것이라곤 남김없이 흔들어 대다
황금같은밤 그리그리 시간을 또 흘려보내고
체력이 바닥난 친구들 하나 둘 ... ...
핫바지 방구처럼 몰래 잠수타고
육년개근상을 받았을 법한
근우, 숙인이,경숙이,옥순이,정애,진건이,용우,
그 외 몇명의 친구들< 일일이 호명하지 않아도 삐지지 말것>
밤마실 나가서 냇물에 목욕을 했다지.
용우 등을 어떤 가시내가 밀어주었다는 여담이 풍문으로 들리더라.
십오일 아침이 밝아오고
의리면 의리 미모면 한 미모하는 깡미가<나>
노랑색 봉고차로 숯가마찜질방으로 가보니
낯빛이 창백한 아주머니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다름 아닌 총무 숙인이였지.
살짝 도망쳐 나온 죄책감에 가슴이 찡하더라.
그래서 얼른 이것저것 회장 근우차로 막 들다 옮겼지.
나름 숙인이는 숙인이대로 음식준비에 신경썼을테고
함께 마음 쓰이던 난 나대로 친구들에게 골고루 음식 먹이고싶은 마음에 신경쓰다보니
제대로 뭘 먹지 못했던건지 배꼽시계가 요동을 치는바람에
원래 아홉시에 아침식사를 하도록 되어있었는데
서둘러 식당 탁자에 앉았지.
경남이 친정어머니께서 고디국을 끓여 주셨는데
탱탱하게 살오른 고디와 호박잎 빽빽하게 넣은 국에 밥 말아 먹는 맛이
너무나 얼큰했고
정구지에 풋고추 숭숭 썰어 넣은 부침개 맛이 짱이었어.
의리로 뭉친 일박이일 동지들 모두
썰물처럼 찜질방에서 빠져 나와
다시 학교 운동장으로 갔었지.
각 기수별로 난리법석을 피우던 천막들이
빈둥지처럼 늘어진 교정의 아침풍경이 조금도 썰렁하지 않고
참으로 따스하고 정겹게 느껴지더라.
나무의자에 둘러앉아 졸음겨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서로 눈치채지 않게 하품을 하는 사이
밤사이 방구가 되었던 친구들 모습이 나타나자
우린 다시 반가움에 힘찬 악수를 하며
간이라도 빼 줄듯한 웃음으로 서로를 반겼고
할머니 뱃가죽처럼 납작해져 가는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고
반쪽짜리 수박이며 김 빠진 콜라들을 꺼내먹으며 새록새록 우정을 나누었지.
총무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짐을 한 냥
숙인이가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어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 봄직한 유머어들을 읽어주었고
처음엔 의무적으로 웃어주던 친구들이 편한 속내를 꺼내놓으며
예쁜 야유를 던져주었고 슬쩍 속이 상했던 숙인이가 슬며서 수첩을 가방속으로 은폐시키는 순간
깡미가 얼른 꺼낸 토끼 이행시, 들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겠지.
내용은 아직 비밀~
절대 누설해선 안될것임.
사유인즉 사회적 무리수가 따를법한 음담패설!
급식소에서 맛있게 비빔밥을 먹게 되면
늘상 그랬듯이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는 징조!
옆동네인 선 후배들이 설설 짐을 챙기는 모습을 보며
우리들도 각자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
서울애들이 떠나고
부산애들이 떠나고... ...
거창친구들 모두 휑해진 가슴을 끌어안고 마지막 정리를 했지.
아! 끝났다.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웠을 회장과 총무의 마음을 감히 깡미가 대변하면
시원섭섭? 팔십프로
나머지 이십프로는 아마도 설레임일거야.
다시 찾아올 2012년 총동창회를 향한~
지금쯤 늘어질대로 늘어져 곤한 잠에 취해있을 참석자들의 마음도 아마 그럴거야.
그치? 사랑하는 친구들아! 맞제?
모두들 잘자고
이 밤에도 익고 있을 포도알처럼
싱그럽게 살길 바란다.
사랑해!!!!!!!!!!!!!!!!
= 깡미가=
첫댓글 사진을 보는 것 같이 상세하게 기술하셔서 현장감 있는 글이라 감동을 줍니다. 행사 수고 많으셨군요.
감사합니다.
어린추억을 아련히 떠올리게 하는 동창회가 정겹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