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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제 핵심 내용?》
설 인사를 엊그제에 한 것 같은데 벌써 새로운 설을 맞게 됩니다.🤗
2018년 8월쯤 시작으로 제 경우는 단 하루도 안 거르고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써서 매주 월요일에 글을 보내드리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공부는 자동으로 하게 되고 알아차림 수행도 자동으로 하게 되더라고요?.
이것이 모두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아무쪼록 다들 이번 설도 잘 보내시고 항상 건강관리 잘하시고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번 글을 통해 불성 증득이든 성령 영접이든 꼭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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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도성제(道聖諦) 내용입니다.
도성제 내용은 한국불교에서 가장 잘 모르고 가르치고 있는 내용 중에 하나라고 앞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도성제는 도(道)의 길로 들어선다는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도성제 내용들은 본성 자리를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팔정도를 기준으로 중생들을 제도하는 한편 자신도 더욱 완벽하게 갈고닦으라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음..
그리고 깨닫고 증득하는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는데요.
한 종류는 사성제 알아차림 수행을 통해 점진적으로 도성제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고요.
또 한 종류는 밑창이 빠져서 단번에 도성제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부끄럽지만 제 경우는 후자에 속하는 경우이고요.
아무튼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뀐답니다.(진실)
그리고 점진적이든 단번이든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도성제 내용처럼 팔정도는 순식간에 들게 된답니다.
그래서 팔정도를 기준으로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비추어보거나 나 자신을 비추어보면 현재 수준을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제 자신도 저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 도반들에게 부탁하고 있는 말이 있는데요?
"만약에 여러분이 저를 보았을 때 팔정도 내용 중 단 하나라도 제가 어긋난 짓을 하면 저에게 야단을 쳐주셔야 하고 비난을 해 주셔야 한답니다."
라고 부탁을 하고 있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더 높은 수준의 도성제를 닦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도 또한 지금 어른들을 향해 쓴소리를 하는 이유도 팔정도를 기준으로 그들을 비추어 보았을 때 0점이기 때문이랍니다.
왜냐하면 지금 어른들이 팔정도에 해당하는 바르게 볼 줄 알고, 바르게 사유할 줄 알고, 바르게 행동할 줄을 아는 스님들이라면 지금처럼 그런 짓들은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 수행자들은 먼저 고성제와 집성제와 멸성제 알아차림이 확립(숙달) 되어있지 않은 분들은 도저히 도성제 내용들을 제대로 해내기가 힘들다 하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지금 최고 큰 스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제대로 못하는 팔정도를 어떻게 일반 사람들에게 하라고 할 수가 있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팔정도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부터 상대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도(道)라는 의미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아시나요?
자주 말씀드리는 내용이지만 한문을 해석할 때에는 우리 입소리로 막 해석하시면 절대로 안 된답니다.
우리에게는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전해지는 모든 경전 속 내용들이 거의가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기 때문에 반듯이 중국식 한문으로 뜻을 해석하셔야 한답니다.
제가 왜 불행하다는 표현을 썼느냐 하면 인도도 우리처럼 입소리 문화라고 들었는데 같은 입소리가 아니라 불행하게도 중국을 거쳐서 뜻 소리로 불법이 전해지다 보니까 뜻 소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많은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경전들 대부분은 당나라 때 쓰인 한문이기 때문에 그 당시 문화로 해석을 하지 않으면 삼천포로 빠지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도 이 글을 보고 있지만 당나라 때 글자들은 중국 사람들에게도 고대 문자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도 이해하기가 힘든 문구들이 수두룩하답니다.
더군다나 불교 글자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마음 이야기가 주류라 표현 방법에 있어서 비유들이 많기 때문에 당나라 때 당시의 생활문화나 배경 문화 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해석이 불가능한 글자들도 많고요.
그런데 한국에서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들은 쉽게 우리 입소리로 막 때려 맞추고 있는 해석들이 많다는 것이고요.
지금 우리가 같이 보고 있는 [선문염송]에도 그런 문구들이 많았고요.
중국 글은 특히 당나라 때 불교 글들은 아무리 사소한 글자라 하더라도 쉽게 해석하고 판단하시면 안 된답니다.
도성제 내용 또한 마찬가지랍니다.
도성제에서 말하는 도(道)란 이 법을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이제는 도의 길로 들어섰다는 뜻이랍니다.
도성제란 이렇게 도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 팔정도를 기준으로 미흡한 알아차림 수행 공부를 더 하라는 뜻도 있고 팔정도를 기준으로 중생들을 가르치라는 뜻도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도성제는 도를 이룬 사람들이 팔정도를 기준으로 중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자신도 부족한 부분들을 더 갈고닦으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면 고성제와 집성제 그리고 멸성제까지는 아주 거친 숫돌로 거친 칼날(마음)을 갈아내는 과정이라면
도성제는 이미 잘 갈려진 칼날(마음)을 아주 고운 숫돌로 더욱 잘 드는 칼날로 갈고닦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도성제 내용들은 다시 한번 팔정도라는 기준으로 전체적으로 잘 정립을 해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도(道) 자라는 글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십니까?
도(道)라는 글자는 고대 중국에서는 [길]이라는 뜻 외에도 길을 안내하는 [우두머리] 즉 [지도자] 또는 [인도자]라는 의미가 더 깊다는 사실입니다.
당나라 시대에는 단순히 [길]이라는 뜻보다는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더 깊다는 것입니다.
당나라 때에는 그냥 단순히 [길]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안내하는 [우두머리] [지도자] [인도자]라는 뜻이 훨씬 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頁)를 뜻하는 글자와 가다(辶)라는 글자를 합해서 만들어진 글자가 바로 도(道) 자라는 것이고요.
쉽게 말해 [길을 안내하는 우두머리]라는 뜻이 바로 도(道) 자라는 것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도(佛道)를 깨닫고 증득을 한 사람들이 가는 길(道)이라는 뜻입니다.
불도(佛道)를 깨닫고 증득을 한 사람들이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가는 길(道)을 인도하는 뜻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고 증득 한 사람들을 도인(道人)이라 하는 것이고 도사(道士)라 하는 것이랍니다.
도인이나 도사라는 뜻은 수리수리 마하 수리하면서 막 도술을 부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불도를 깨달은 사람들이 팔정도를 기반으로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뜻도 있고 자신도 아직 부족한 것들을 더 닦으라는 뜻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처럼 멸제를 통해 깨닫고 증득을 하긴 했지만 아직은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성제를 뒀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표현으로 하면
"사리불아 내가 방편으로 네게 삼승법(三乘法)을 설한 것은 일불승(一佛乘)을 이루게 함이었느니라, 사리불아 이승도 없는데 어찌 삼승이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성문][연각][보살]은 모두가 일불승 즉 완전한 부처가 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일불승 즉 부처 입장에서 보면 [성문]은 물론 [연각]도 [보살]도 별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비록 깨닫고 증득을 하긴 했지만 지금 이런 내용들은 저에게도 엄청난 가르침이기 때문에 저도 남은 인생을 모두 이쪽으로 몰빵을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제가 제 자신이 지금 어느 단계에 와있다는 것을 제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뭔가가 2%가 부족하다는 것을 제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 카톤 머리글자에도 現中百尺竿頭進一步(精進)라는 문구를 써두고 제 자신도 기를 쓰고 노력(정진)을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팔정도]나 [육바라밀] 또는 [육신통]등으로 현재 제 자신을 비교해 봤을 때 저도 아직 부족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저도 도성제를 통해서 이 법을 남들에게 알려주고는 있지만 제 자신도 아직은 부족한 것들이 몇 가지가 있기 때문에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이 도성제 내용들을 스스로 할 수가 있다니요?
물론 흉내는 낼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죽을 때까지 유지를 할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자신들부터가 못하는 것을 제자들 보고하라고 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이겁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 불교는 사성제를 거꾸로 가르치고 있다 하는 것이고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분들(스승)에게 자신은 도성제 내용들을 완벽하게 소화를 하고 있느냐고 먼저 묻는 거랍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도성제를 통해 깨닫고 증득을 하는 거라면서요?
그러면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본인들은 도성제를 통해 깨달았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사리불에게 삼승법을 설하셨던 것이고요.
그래서 저도 또한 한편으로는 도성제 내용들을 기준으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도성제 내용들을 기준으로 제 자신도 반복적으로 여러 가지 관법들을 통해 알아차림을 하면서 갈고닦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전에도 도성제 내용에서 그렇게 설명을 드렸던 것이랍니다.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1) 앞전에 보내드렸던 도성제 내용,
https://m.cafe.daum.net/119sh/XASd/345?
(2)
(중국 자료)
道
https://mr.baidu.com/r/1RlELAnxgFG?f=cp&rs=247194574&ruk=zNqEvNeX3cpVFJFo6Owrxw&u=785e9ede5a033240
(해석)
[ ] 도(道)는 5번째로 흔히 사용되는 표준 한자입니다. 이 한자는 서주 시대의 청동 명문이나 상나라 시대의 갑골문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대 도의 형태는 행(行, 길)과 수(首, 머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도의 본래 의미는 길이지만, 인도하거나 지시하는 의미도 포함합니다. 길이라는 의미에서 모든 길을 뜻하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으며, 또한 방법, 기술, 법, 교리, 도덕과 같은 추상적인 의미, 더 나아가 서술이라는 의미로도 확장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인도하고 깨우치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이러한 의미는 도의 변형인 도(导)로 표기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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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을 아시고 도성제(道聖諦)를 보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사람들처럼 삼천포로 빠진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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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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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아무쪼록 모두들 건강관리 잘 하시고 가정에 늘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드립니다.🤗🪷🙏🏻
♡
※ 이 글은 주로 수행(수도)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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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 부처님의 명상법 대념처경 17 법념처 E 4성제 4도성제 -
https://youtube.com/watch?v=opwdzYkS-FA&si=UcrLb1jp_SJkG9We
도성제의 주요 내용들은 아래와 같은데요.
늘 말씀드립니다만 도성제는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자신은 물론 일반 사람들을 바른 소멸로 이끌 수 있도록 하는 [지침서][기준점]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그 주된 내용이 팔정도(八正道)랍니다.
그리고 <해설>은 <~> 안에 넣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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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고귀한 진리 도성제(道聖諦) 인가?
그것은 바로 고귀한 여덟 가지 길 팔정도(八正道)이다.
즉
①정견(正見) = 바른 이해
②정사유(正思惟) = 바른 생각
③정어(正語) = 바른 말
④정행(正行) = 바른 행동
⑤정명(正命) = 바른 생계
⑥정정진(正精進) = 바른 노력
⑦정념(正念) = 바른 알아차림
⑧정정(正定) = 바른 선정
이다.
<해설: 이런 내용 자체가 깨닫고 증득하지 못한 사람들은 할 수가 없답니다. 어떻게 아직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이 지혜에 해당하는 정견을 할 수가 있고 정사유나 정행 등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도성제는 깨닫고 증득한 사람이 하는 거랍니다. 일반 사람들은 고~멸제까지 하고 도제를 하셔야 그나마 잘 적응을 할 수가 있는 것이고요.>
★
[그러면 비구들이여, 무엇이 바른 이해(견해)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①괴로움에 대한 참다운 앎<고성제>, ②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참다운 앎<집성제>, ③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참다운 앎<멸성제>, ④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참다운 앎<도성제>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이해이다.]
<해설: 쉽게 말해 이 말은 사성제를 바로 보고 아는 것이 정견(正見)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성제 전체 과정들을 잘 이해하고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들을 대중들에게 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수행자들은 바르게 보는 정견을 한 사람이 없다 보니까 사성제를 거꾸로 알고 있고 거꾸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각인가?
출리(出離)에 대한 생각, 혐오(악의)로부터 자유로운 생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생각,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생각이다.]
<해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고성제와 집성제와 멸성제를 거쳐서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출리(出離) 즉 이미 세속과 세속적 욕망(미혹)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을 유지하도록 더욱 힘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혐오(악의)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지는데 힘을 써야 하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유를 하는데 힘을 써야 하고 이러한 방법들을 대중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정사유(正思惟 )라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어떻게 지금 가르치는 위치에 계시는 분들은 세속적 욕망(미혹)에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혐오(악의)로부터 자유로워 지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아직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 정사유를 하라고 가르칠 수가 있겠습니까? 아직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들 보고 말입니다? 그래서 거꾸로 가르치고 있다 하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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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말인가?
거짓말을 삼가고, 중상과 이간질을 삼가며, 거친 말을 삼가고, 잡담을 삼가는 것,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말이다.]
<해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바른 언어와 바른 말은 기본이랍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여러 보살 종류들 중에 하나인 야차(夜叉)처럼 방편으로 일부러 험악해지는 표정과 말을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이지 실제로 화가 나서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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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동인가?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잘못된 음행을 삼가는 것,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행동이다.]
<해설: 이 내용 또한 어린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어른들도 머리로만 알고 있지 제대로 못하고 있는 내용들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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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계인가?
여기에 비구들이여, 어떤 고귀한 제자가 잘못된 방법의 생계를 포기하고 바른 수단으로 그의 생계를 유지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생계이다.]
<해설: 이 내용도 마찬가지랍니다.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도저히 지금 어른들처럼 그런 생계로 그런 더러운 돈으로 절을 유지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 깨닫지 못한 전혀 본성 자리를 모르는 중생들이다 보니까 천도재나 제사 등으로 지금처럼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자신들도 제대로 못하는 정명 등을 일반 사람들 보고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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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직 깨닫지 못한 비구 비구니들에게 이렇게 가르치면서 깨달은 자신도 이렇게 더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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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노력(정진)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아직 일어나지 않는 불순한 번뇌들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의지를 낸다.
즉
강한 노력을 하고, 정진을 하고, 그것에 마음을 적용시키며 힘쓴다.
<해설: 바로 이 내용이 엄청나게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깨달았든 아니든 어느 관법으로 알아차림 수행을 하든 모든 수행자들은 마음을 중심에 두고 적용을 시키면서 하셔야 저처럼 내 것이 된답니다. 지금처럼 하시면 알음알이만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 → 계속해서 마음에 적용을 시키라는 내용임)
이미 일어난 불순한 번뇌들을 없애기 위해, 그는 의지를 내고 강한 노력을 하며, 정진을 하며 그것에 마음을 적용시키고 열심히 애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한 법을 계발시키기 위해 그는 의지를 내고 강한 노력을 하며, 정진을 하며 그것에 마음을 적용시키고 열심히 애쓴다.
이미 일어난 선한 법들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들이 약해지지 않도록 하고, 증장시키며, 완전한 성숙과 완전한 개발을 위해 그는 의지를 내고 강한 노력을 하며, 정진을 하며 그것에 마음을 적용시키고 열심히 애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노력이다.]
<해설: 이 내용은 더 이상 설명을 안 드려도 잘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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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알아차림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해설: 참으로 이 내용이 모든 수행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내용이 조견오온(照見五蘊)에 관계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수행자들에게 중요한 내용은 바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제가 누차 말씀드렸듯이 내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곧 무상한(곧 변한다) 것이라는 사실을 지족적이고 철저하게 이해를 하고 알아차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관법으로 하시든 화두관이든 위파사나든 지금 이 내용을 절대로 빠뜨려서는 안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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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해설: 이 내용도 오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곧 무상한(곧 변한다) 것이라는 사실을 지족적이고 철저하게 이해를 하고 알아차리고 제거하면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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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해설: 이 내용은 조사선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은 곧 무상한(곧 변한다) 것이라는 사실을 지족적이고 철저하게 이해를 하고 알아차리고 제거하면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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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욕망이나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해설: 그리고 이 내용은 일체 만법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기 때문에 곧 무상한(곧 변한다) 것이라는 사실을 지족적이고 철저하게 이해를 하고 알아차리고 제거하면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괜히 밖으로 끌려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알아차림이다.
★ 지금 이 내용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만이 알 수가 있고 느낄 수가 있는 그런 내용인데요.
참고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선정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감각적인 욕망으로부터 초연하고, 불순한 번뇌들로부터 초연해져서, 대상에 대한 마음의 적용(尋)과 대상에 지속되는 주의력(伺)이 있고, 초연함으로부터 생겨난 마음의 희열(喜)과 몸의 행복감(樂)으로 채워진 첫 번째 선정(初禪)에 들어가 거기서 머문다.
대상에 대한 마음의 적용과 지속되는 주의력이 가라앉아, 내적인 고요와 마음의 통일을 얻으며, 대상에 대한 마음의 적용과 지속되는 주의력이 사라지고, 삼매에서 생겨난 희열과 행복감으로 채워진 두 번째 선정(二禪)에 들어가 거기서 머문다.
희열이 사라지고 그는 감각의 완전한 알아차림과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처절한 앎을 지닌 평정심에 주하며,
성인들이 말하는 "평정심과 알아차림을 지닌 사람이 경험하는 행복감" 과 같은 즐거움을 몸으로 경험하는 세 번째 선정(三禪)에 들어가 거기서 머문다.
육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도 사라지고, 정신적인 기쁨과 슬픔도 이전에 사라졌기에, 그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넘어 평정심과 알아차림으로 완전히 청정해진 네 번째 선정(四禪)에 들어가서 거기서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바른 선정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고귀한 길의 진리 도성제(道聖諦)이다
이와 같이 그는 안으로 법(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고,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낸다.
그는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고,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내며, 또한 법에서 동시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지낸다.
"이것이 법(法)이다" 라는 알아차림은 그에게 확립된다.
이렇게 그는 그의 알아차림을 오로지 지혜와 바른 알아차림만이 있는 단계까지 개발한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초연하게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비구가 사성제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지내는 방법이다.
<해설: 지금 이 내용은 100% 사실이랍니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과정들을 단계별로 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밑창이 빠지고 확철대오를 한 사람들은 단 한 번에 최고 수준까지 이를 수가 있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굳이 선정에 들지 않더라도 생활하는 그 자체가 바로 선정이랍니다.(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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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다들 열심히 하셔서 꼭 성불이든 성령 영접이든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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