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한가위) 천주께 감사 명절 풍속도가 많이 바뀌었어도 그 의미는 여전하다. 기억과 감사가 그것이다. 돌아가신 부모와 조상 이름 석 자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하며 이렇게 살게 해주심에 감사한다. 이제 나의 기억은 부모와 전설 같은 조상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충실하게 살았던 성인과 순교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조상신들이 돌봐주셔서 수확할 수 있었다고 감사하지 않는다. 우리의 진정한 감사는 언제나 하느님을 향한다.
나를 낳고 한 사람이 되게 길러준 부모에게 감사하고 그에 못지않게 하느님을 알게 해주심에 더욱 감사한다. 나에게 생명을 준 분은 부모가 아니라 하느님이시다. 나는 내가 왜 태어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다. 단지 어떤 곳에서 어떤 길로 가게 될지 알지 못할 뿐이고 그 최종 목적지는 잘 알고 있다.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든 내 삶이 가고 있는 그 목적지를 잊지 않는다. 그래야 쓸데없는 욕심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사는 거 참 내 맘대로 안 된다. 그래서 인간은 계획하고 하느님은 섭리하신다고 말하는 걸 거다. 이는 실패에 대한 핑계가 아니라 참 좋으신 하느님이 천사들을 보내서 내 발길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이다. 내가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고 원한다고 여기서 영원히 살지 못한다. 시작과 끝은 분명히 내 맘대로 안 된다. 사는 동안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지만 그 또한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쯤 됐으면 하느님께 항복하고 그분 의지에 온전히 복종해야 할 텐데, 어리석게도 자꾸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나도 너도 다치게 한다.
맨 끝에 남는 건 내가 이룬 업적이 아니라 내가 걸은 십자가 길이다. 내가 걸은 십자가 길 길이를 천사가 다 재어놓고 있다. 그 길이와 함께 내가 행한 선하고 의로운 행위들만 남아 주님 대전에 올려진다.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묵시 14,13-14).” 이걸 몰랐다면 어떡할 뻔했나. 아! 천주께 감사.
예수님, 주님을 따라 하느님 아버지께 복종합니다. 주어진 시간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제가 주님 앞으로 들고 갈 것들을 더 많이 만들게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두렵고 떨리지만(필리 2,12) 어머니처럼 하느님 뜻에 순종할 수 있게 끝까지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