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아니? 오늘 은율씨 나오는 날 아닌데..?"
죽을 죄를 졌다고 용서해 달라고 절하고 난리났는데
다 이해한다는 둥 벌써 잊었다 는 둥 대꾸하던 점장 아저씨가 마침내는 이렇게 말해서
벙...찌고야 말았다.
"은율씨는 주말에만 나오기로 한거자나? 우리 광고 그렇게 냈는데,
주말이 바빠서 파트타임으로 뽑은 거.."
앙..?
오면서 잔뜩 들었던 긴장이 풀려 다시 또 쓰러질것만 같다.
"아직 학생인데 어떻게 매일 일해? 주중 월화수목 하고 주말 금토일
하고 이렇게 두 팀으로 나눠놨는데... 은율씨는 금토일만 나오면 돼."
네에..
대꾸하는 내게 '그럼 지금 저기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멋있는 은결님은 주중에만 나오는 거
군요...' 하는 깨달음이 찾아와 다시 눈물이 글썽해진다.
그럼, 마치 해와 달처럼 은결님이 뜨면 내가 지고,
내가 떠오르면 은결님 땅아래로 져버리고..
아니 이렇게 전설처럼 애틋하고 아름다운 운명일 수가 있나...
멋대로 해석하느라 가슴이 찡해오는 와중에 점장이 눈짓을 보낸다.
"그런데 저 아저씨는 은율씨 아는 사람인가?"
네?
하고 뒤돌아 보자 이 엉뚱한 매니저 아저씨 언제 시켰는지 한상 떡부러지게 차려놓고 정신
없는중...
"은율씨 이름으로 달았는데? 저렇게 많이 시켜도 돼?"
아저씨!!!
아직 일도 안해서 받을 봉급도 없는데 이 아저씨가 남의 집 망하는 꼴을 보려고...!
꽥 소리를 지르려는데 문득 남궁 은결 뒤돌아본다.
내가 비비적 웃으면서 다시 자리에 앉는다.
맛있게 드시라구요..
안 벌어지는 입을 벌려 웃으면서 맛있게 드시라는 손짓을 보낸다.
은결이 고개를 돌리는 걸 확인하자 아... 저절로 고개가 아래로 떨어진다.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흑흑..
눈물조차 말라 나오지 않는데 꼬로로록...
이놈의 뱃속의 거지는 굶겨죽여버리자...
이상한 '오나죽' 팬클럽 회장이자 환 엔터테인먼트의 신입 로드 매니저인 아저씨를 돌려보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길었다.
하루종일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 많았다.
내가 영화에 출연하게 되다니 이게 가문의 영광인가...
그게 대본조차 못 보게하는 엄청난 추녀인 모양인데 하긴 추녀면 어떻고 미녀면 어떠랴?
평범한 고삐리인 내 주제에 평생 엑스트라라도 영화에 출연하게 되는 게 어디 쉬운일인가?
일단 못생긴 걸로 떠서 돈벌면 눈코입을 확 다 뜯어 고쳐버리고 얼짱으로 다시 태어나자.
어쨌던 지금은 엄마 아빠 감사합니다. 아멘.. 이토록 못생기게 낳아주셔서..
깜박깜박...
아파트 입구로 접어 드는데 눈앞에 불이 번쩍 번쩍한다.
어.. 뭐지?
정면으로 헤드라이트를 켜대는 차 유리 안쪽을 들여다보니 그게 변태자식이다.
"뭐, 뭐...야?"
"계집애가 왜 이리 늦게다녀?"
"무, 무슨 상관이야? 니까짓게?"
"두시간도 더 지났잖아. 내가 데려다준게?"
이 자식이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니가 우리 아빠라도 되는줄 아는 거냐?
"타!"
녀석이 차문을 벌컥 열고는 말한다.
"..뭐?"
"타라구... 차에."
"왜, 왜? 집에 다 왔는데?"
"하여간 잔말말고 타라면 타."
녀석이 다시 팔을 잡아 끌어 차에 처넣을 기세이길래 마지못하게 올라탄다.
부르릉. 녀석이 시동을 건다.
"저녁 먹었냐?"
"..."
"하긴, 음식점에다 내려줬는데 안 먹었을리가 없지.."
안 먹었는데... 씨..
"거기서 뭐 했어?"
뭐?
"버거왕에서 누구랑 만나서 뭐 했냐고?"
이거 바보 아냐? 가게에 유니폼입구 가서 손님 만나서 데이트 하냐?
"너... 남궁은결하고 만나냐?"
철렁... 하는 가슴은 왜 내려앉는 건지.. 씽. 이 자식이 불난집에 부채질하나.
"그렇게 됬으면 얼마나 좋겠냐!!"
하고 소리를 빽 지른후 아뿔사 ... 하고 녀석의 빙글거리는 얼굴과 마주한다.
"그것도 아니면 거기는 왜 간 거야?"
아니, 이 녀석이 점점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해서..
"왜긴 왜야? 돈벌러 가지?"
"돈? 그걸 해서 얼마나 번다고?"
이 자식이 아마도 귀국한지 얼마 안되는 귀한 몸이시라
한국 토종 브랜드인 버거왕 의 제복을 본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너는 학원에서 대체 무슨 짓이냐?"
녀석이 힐끗 나를 다시 바라본다.
"거기선 많이 줘."
"얼마나?"
"넌 시간당 얼만데?"
"... 이, 이천 삼백원.."
"난 거기의 삼십배 받아."
"...
잘... 잘났다!"
할말이 없어진 내가 쏘아붙이자 녀석이 다시 피식 웃는다.
약이오른 내가 이겨보겠다고 기를 쓴다.
"그렇게 비싼 몸이 왜 이런짓을 하냐?"
"이런 짓?"
"광... 광대짓 아냐 ..그.. 그렇게 공부 잘하고 똑똑하다면 왜 판사나 검사 안하고..."
이거 겉으로만 번지르르해서 연예인이지 뒤로는 다 줄 잘 설려고 아양 떨고
몸두 팔구 그런다면서!!"
어쩌다 내가 심한 말을 해버렸다.
"이건 돈, 더 줘."
녀석이 조용하게 대꾸했다.
...
"시, 시간당 얼만데...?"
"..."
녀석이 룸미러로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너.. 바보 아니냐?"
녀석의 멘트에 나는 갑자기 기분이 더 나빠진다.
"우.. 운전안해? 앞을 보라구!"
내가 꽥 소리를 지르자 녀석이 확 핸들을 꺽는다.
끼이이익! 차가 급정거를 하고
엄마야! 하고 앞으로 쓰러지는 내 몸을 녀석이 팔로 막는다.
어?
"너... 뭘 알고 싶은데..?"
팔을 그대로 내 몸에 두른 녀석이 내게로 몸을 돌린다.
녀석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온다.
잠깐만, 잠깐만... 점점 당황하는 나는 이 자식이 대체 어쩌자구..
"뭐하는데 시간당 얼마인 걸 알고 싶어..?
만지는데..? 껴안는데...? 아니면 키스 하는데...?"
녀석의 조용하고 분명한 목소리에 더럭 나는 겁이 난다.
저... 아니..
"키스만 빼면 다 합쳐 얼마냐구..?"
저, 저...
닐니리야! 닐니리야!!
그 순간 마침 핸펀이 울린다.
폴더를 열지 않고 잠깐 바라다본 녀석이..
"시간이 살린 줄 알어."
하고 중얼거리더니 다시 철커덕 기어를 넣는다.
... 흐유...
몰래 가슴을 쓸어내리는 내게 녀석이 말을 던진다.
"집에 데려다 줄테니 가서 쉬어. 밥 먹었다니 걱정할 필요도 없었네.."
녀석의 말에 감격할 내가 아니지만 어쩐지 약간의 진심이 엿보여서...
녀석이 아파트 입구에서 차를 세워서 나는 다시 내린다.
"넌.. 안 내리냐?"
"난 다시 가봐야돼."
"어딜?"
"돈 벌러간다."
"너 밤일 나가냐?"
하고 물은다음에 어이구 이 놈의 방정맞은 입
그럴 마음도 없었는데 지 맘대로 나불대고 있다.
"말같지도 않은 소리는 그만하고 너 오빠한테 자꾸 너라구 할래?"
"오빠 좋아하시네."
녀석이 창문을 지이잉 올리고 실내등을 끈다. 올라가라.
흥! 하고 콧방귀를 뀐 내가 아파트 입구로 뛰어들어간다.
바로 출발할 것 같던 녀석은 웬일로 내가 4층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몰래 베란다 창문으로 내다볼때까지 그대로 있다.
안 가고 뭐하는 거야? 바쁘다면서...
생각하던 내가 거실의 불을 탁 켜자 그제야 부르릉 다시 시동을 걸고
온길을 되짚어 아파트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시계를 보니 열두시 반이 훨씬 넘어 있다...
에잇! 신경을 끄자.
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키스만 빼고 다 한다 16
글쟁이 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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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1.25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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