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기계' 고삐 잡을 수 있는 두 가지 길
민주당 배신으로 정치연대는 물 건너가고
남은 건 반전평화운동인데, 시위·집회 위주
이제는 미래의 큰 그림 그리며 말해야 할 때
김평호 저술가·전 단국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전쟁 밖엔 난 몰라”
미국은 늘 전쟁을 기다리거나 일으키는 국가다. 지난 달 7일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미국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지난 50년 이래 최대 규모의 함대를 지중해 일대로 몰아넣었다. 또 국제적 여론조성을 포함해, 이스라엘에 거액의 돈과 대량 살상무기까지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사실상 하마스와 교전 당사국이다. 한편,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미군은 지금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와 산발적이지만 자칫 중동 전체로—심지어 3차 세계대전까지도—확대될 수 있는 전투를 벌이는 중이다. 이에 더해 지중해로 집결한 함대 중 일부는 최근 수에즈 운하를 거쳐 이란 인근 해역으로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 사이 우크라이나를 내세워 미국이 벌이는 대 러시아 전쟁은 벌써 1년 9개월째다. 바이든이 러시아-우크라이나 협상을 무산시키지 않았다면 작년 4월에 끝났을 전쟁이다. 한편 미국은 지구적 범위의 대재앙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대만을 이용해 중국과 전쟁을 벌이는 시나리오를 오랫동안 연습해오고 있다. 이 와중에 미 국방장관은 ‘제2의 한국전쟁 대비’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난 주 서울에서 6·25 참전국 국방장관 회의를 열고 유엔사령부를 전쟁기구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종합하면 미국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의 칼을 휘두르거나 벼리는 중이다. 익숙한 전쟁국가 미국의 모습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무수히 많은 국제분쟁에 거의 예외 없이 군사적 방식으로 개입해왔다. 외교는 군사개입을 위한 명분 쌓기인 경우가 더 많았다. 또 15년 정도를 제외하고 건국이후 지금까지 250여 년 내내 한시도 쉬지 않고 크고 작은 전쟁을 해온 나라가 미국이라는 것, 그리고 그 전쟁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잔인한 살육으로 점철되었다는 것 역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 나라의 역사다.
전쟁에 중독된 나라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전쟁으로 질주하는 싸움꾼의 정체
지난 2011년 4월, S. 월트 하버드 국제관계학(international relations) 교수는 ‘전쟁에 중독된 미국? Is America Addicted to War?’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글을 <포린 폴리시>에 발표했다. 깊이 있는 분석이라기보다는 화두를 던지는 차원의 칼럼이다. 비교적 균형 잡힌 현실주의 정치학자인 그가 진단한 다섯 가지 원인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1. Because We Can(우리가 힘이 세거든) 2. The U.S. Has No Serious Enemies(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쟎아) 3. The All-Volunteer Force(우린 싸우려고 군대온 사람들이야) 4. It’s the Establishment, Stupid(군산정언학 복합체, 몰라?) 5. Congress Has Checked Out(의회는 이제 신경 끊었어)”
경제와 군사 두 측면에서 미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강이다. 미국이 품고 있는 패권적 사고방식은, 누구든 우리를 따라야 하고,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태도로 이어진다. 뜻대로 하는데 거리낌이 없으니, 전략적 판단, 지정학적 계산, 외교적 역풍 같은 것을 부차적 요소로 취급한다. 특히 막강한 군사력은 마치 ‘망치를 쥐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인다’는 속담처럼 분쟁이 벌어질 때, 상대를 과녁으로 보게끔 만든다. 둘째, 지원병제 국가 미국에서 정부의 군대운용은 징병제보다 수월하다. 전쟁 선포권 같은 무력동원의 권한도 의회가 사실상 손을 떼면서 대통령의 전결사항처럼 다룬다. 행정부에 대한 견제장치라고는 전쟁에 대한 일반여론 정도뿐이다. 한편, 안보나 국방 분야는 전문영역으로 보수성향 엘리트들이 정책과 여론지형을 주도하고 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사회복지 예산은 까다롭게 다루면서, ‘펜타곤 자본주의(Pentagon capitalism)’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전쟁에 쏟아 붓는 예산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전쟁이라는 엄중한 정책이 폐쇄적인 군산정언학 복합체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요약하면, 첫째, 미국이 최강 패권국가라는 인식, 둘째, 폐쇄적인 군사 및 대외정책 결정구조, 즉 군산정언학 복합체, 두 가지로 정리된다.
왼쪽의 책은 전쟁국가 미국의 행보를 세계 곳곳에 세워진 미군기지를 중심으로 살펴본 것. 오른쪽은 건국부터 이라크 전쟁까지, 전쟁으로 점철된 미국역사를 알기 쉽게, 만화형식으로 정리한 것. ‘전쟁중독’이라는 제목의 우리말 번역서도 있다.
고장 난 브레이크-취약한 평화운동
미국을 전쟁으로 이끄는 패권국가라는 인식과 군산정언학 복합체, 이 문제를 관통하는 요체는 전쟁을 견제하는 사회적 장치, 즉 반전평화 운동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다. 정리하면 반전평화 운동의 취약성과 패권국 군산정언학 복합체의 힘이 문제의 핵심이다. 패권국가 미국, 그리고 군산정언학 복합체의 힘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이고, 여기서는 미국 평화운동의 취약성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베트남 전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전평화 운동은 미국 내 진보적 사회운동 중 큰 부분을 차지한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면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지와 연대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부시정부의 이라크 전쟁 시절에는 제2의 베트남 반전시위라고 할 만큼, 십여만이 넘는 대규모의 시위가 미국 주요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졌었다. 60년대 베트남 반전운동에 비하면 규모의 차이는 크지만 반전평화 운동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11월 4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와 연대 시위.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영구전쟁 국가’, ‘전쟁기계’, ‘전쟁경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사회는 전쟁에 중독돼 가는데 반전평화 운동은 사후적이고 산발적이며, 실제 정책을 바꾸기에는 힘이 모자란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군과 안보 관련 언론통제의 강화, 반전평화 운동의 대응역량 미흡, 반전평화 정치세력의 부재, 이데올로기 지형의 변화 등을 주요인으로 꼽고 있다. 말할 나위 없이 전쟁여론 조작 문제나 신자유주의 시대 진보운동 전반의 침체 같은 것은 운동의 확산에 부정적인 외부요인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 중독의 요인, 즉 패권국가라는 인식과 군산정언학 복합체에 대한 운동의 대응 역량, 실질적 정책변화를 이뤄내기 위한 정치와의 연대방안, 두 가지로 좁혀진다. 달리 말하면 패권 논리에 맞서는 대안 제시, 복합체에 맞서는 반전평화 정치세력의 활동이다.
이라크 반전운동은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다. 당시 운동진영이 제시한 논리는, 이라크 전쟁이 거대한 사기로 시작됐다는 것, 이슬람을 테러집단 정도로 바라보는 고질적 편견, 막대한 민간인 피해라는 비인도적 재난 등이었다. 그러나 대안과 관련하여 보다 본질적인 질문은 ‘미국이 중동(예: 이라크)에서 물러나고 기존의 이슬람 세력(예: 사담 후세인)이 권력을 유지토록 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베트남 반전 운동진영은 미국이 패배하더라도 결과는 (북)베트남으로의 통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승리라는 대안을 당당하게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라크 반전운동의 경우, 대안의 제시라는 어려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좀 더 부연하면, 반전평화 운동의 문제는 전쟁보다 나은 대안을 대중에게 잘 전달치 못한다는 것이다. 다시 이라크의 예를 들면, 후세인 독재타도라는 부시의 전쟁 명분에 맞서, 이라크의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이라크의 변화를 왜 미국이 이끌어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은 일단 차치하고—다른 방법을 제시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부시 정부의 방안과 반전평화 진영의 방안을 상호 명료하게 대비시켜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토록 의제를 설정했어야 했다. 그런데 운동은 전쟁 아니면 평화라는 이분법적 메시지 전달에 치중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의구심을 자아냈다는 것이다. 실천방안이 부족한 조직으로 보일 때 운동이 진전할 수 없음은 불문가지이다.
배신의 정치 또는 반전 정치세력 부재의 문제
이라크 반전운동이 당면했던 또 다른 문제는 미국 사회 진보세력의 현실적 중추(?)인 민주당의 배신, 그리고 반전평화 세력이 당내에 사실상 없다는 것이었다. 반전여론에 힘입어 민주당은 2006년 다수당이 되었다. 2008년 선거에서는 전쟁종식을 내건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의회에서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운동조직은 환호성을 올렸다. 그런데 정작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아프간 전쟁은 오히려 격화됐으며 심지어 리비아 공습까지 이어졌다. 이젠 민주당이 오히려 반전평화 운동의 걸림돌이 되었다. 그러자 운동은 오바마-민주당 지지와 반대의 딜레마에 빠졌다. 딜레마가 일깨우는 환멸과 배신의 분노 속에서 운동은 길을 잃고 약해졌다. 반전평화 운동은 공화당 반대를 위한 선거전술에 지나지 않았다는 냉소적 비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나 의회가 반전평화 운동을 대하는 행태는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다르지 않다. 선거 국면에서의 전술적 고려 정도를 제외하면, 역대 대통령이나 의원들은 반전평화 시위나 집회의 영향력을 거의 믿지 않았고 그리 큰 관심도 두지 않았다. 반전여론 때문에 존슨은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정작 전쟁 지속파인 H. 험프리가 그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베트남 반전 시위대에 대해 닉슨은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고 응수했고, 부시는 이라크 반전운동에 맞서 ‘지도자는 시위 규모로 정책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전쟁종식 공약을 어겼다는 비판에 대해 ‘현지 상황이 악화되었다’라는 설명으로 답을 회피했다. 지금 미국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스라엘 지원 중단, 가자 지구 정전요구 여론을 바이든은—이 글을 쓰는 11월 22일 현재 시점까지—보란 듯이 외면하고 있다.
전쟁에 중독된 미국 현실정치의 오래고 굳건한 실상이다. 이는 반전평화를 기치로 내걸고 실천하는 체제 내의 정치세력이 미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아가 인민의 뜻과 유리된 채 작동하는 미국 정치의 모습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반전평화 운동은 대중적 지지와 여론형성을 제일 목표로 두고, 시위나 집회와 같은 거리의 정치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새겨야 할 것은, 반전평화 운동이 본질적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획이라는 점이다. 전쟁을 피하지 못해온 인류의 역사를 짚어보면 그 의미는 자못 심중하다. 그런 뜻에서 전쟁에 중독된 미국에서 반전평화 운동이 짊어진 과제는 막중하다. 특히 하강국면의 전쟁국가는 위험한 존재이다. 바이든 정부 내의 관리들조차 그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지금은 반전평화 운동이 미국은 물론 세계의 미래에 대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말해야 할 시점이다.
출처 : 전쟁에 중독된 미국과 힘 잃은 반전평화 운동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