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이나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면서 사랑을 택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잘 아는 이야기, 지난 세기 영국 황실에서 일어난 연애와 결혼 사건은 온 세상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식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요? 바로 여기서 걸립니다. 자식 때문에 사랑을 포기합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 자리가 싫고 남편이 싫지만 아이들을 안 보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떠나왔던 그 집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아이들을 맞습니다. 엄마, 하고 달려드는 아이들, 잠시라도 얼마나 보고 싶었습니까? 글쎄, 아이들이 써놓은 편지 뭉텅이를 펴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안 볼 수가 있겠습니까?
그 때는 그랬습니다. 결혼이 사랑의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가 맞지만 일종의 거래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기야 지금이라고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사랑이 없어도, 좀 심한 경우에는 상대방도 모르는 가운데 결정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에게는 여성은 가문을 이어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자식을 생산해주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들이어야 합니다. 자식을 많이 낳아도 아들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니 아내가 된 여성의 심적 부담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전 시대 우리도 그랬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들 문제는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 조지아나’가 마음에 두고 좋아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의 처녀에게 혼사가 생깁니다. 상대는 나이 차는 좀 있어도 당대 권세와 부를 가지고 있는 귀족입니다. 어쩌면 누구나 꿈도 꾸기 힘든 선망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엄마가 수완이 좋아서인지 딸 조지아나를 그 공작에게 추천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 본 적은 있어도 잘 알지는 못합니다. 엄마는 자기 가문을 이야기하며 아들 낳는 것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다짐합니다. 더구나 딸 조지아나는 인물이나 교양이나 학식에도 어디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당하게 공작부인으로 추천합니다. 성사가 된다면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지요.
좋아하는 남자와 깊은 관계는 아닙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단계로 넘어가겠지요. 그런데 혼사가 진행됩니다. 엄마가 딸의 생각을 물어봅니다. 결혼하겠니? 죽자 사자 사랑의 단계가 아닌데 그 남자를 기다리겠습니까? ‘공작부인’ 아무나 된답니까? 대영제국 권력의 서열에 드는 자리입니다. 많은 사람의 섬김과 존경을 받으며 호화로운 환경 속에서 속된 말로 으스대며 살 수 있는 자리이지요. 그래서 그다지 망설임 없이 결정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합니다.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으리으리한 대저택으로 공작부인이 되어 입성합니다. 처음 경험하는 환대입니다.
임신과 출산, 그런데 딸입니다. 조지아나에게는 아들이든 딸이든 무슨 상관있겠습니까? 사랑스런 자식인 걸요. 그러나 남편의 실망은 큽니다. ‘데본셔’ 공작에게는 오로지 자신의 후계자로 아들이 필요합니다. 그 후 남편의 외도를 목격합니다. 그것도 바로 집안에서. 얼마 후에는 낯선 여자 아이를 데려다 함께 키우라고 반 강제합니다. 엄마가 죽어서 양육해주어야 한답니다. 누구 아이겠습니까? 그러나 일단 받아줍니다. 딸처럼 자신의 딸과 함께 키웁니다. 그런 가운데 둘째도 딸을 낳습니다. 공작의 실망은 더욱 커집니다. 눈이 자꾸 다른 곳으로 갑니다. 조지아나는 알면서도 지나갑니다. 서로 대화도 별로 없습니다. 하기야 처음부터 그랬지만.
어느 날 파티에서 만난 여성에게 남편의 눈이 자꾸 향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챕니다. 조지아나가 먼저 다가가 서로 이야기 나눕니다. 마음이 통합니다. 가정폭력으로 아이들을 포기하고 나온 여성입니다. ‘베스’라는 이 여인과 서로의 상처를 도닥이며 친해지고 자기 집으로 거처를 정해줍니다. 공작이 동거를 허락합니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어느 날 공작이 베스와 동침하는 것을 압니다. 친구처럼 받아주었더니 남편을 범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베스를 쫓아내지 못하게 막습니다. 공작부인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그 마음을 베스가 잘 압니다. 그래서 옛 애인과의 연애를 중개해줍니다. 섹스는 아이 낳으라고만 있는 게 아녜요.
조지아나가 애인 ‘그레이’와 살기로 하고 집을 나갑니다. 문제는 자식들입니다. 이제는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습니다. 남편의 마음도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아내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지키는 것이 본인의 명예를 위해서도 낫습니다. 조지아나는 이런 남자와 사느니 좋아하는 사람과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자식들을 만날 수 없다니. 베스도 자기 아이들을 데려다준다는 조건으로 공작과 동침했답니다. 이러저러한 경우 특히 여성에게는 자식이 본인의 인생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그레이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그 쪽 가문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공작은 조지아나와 베스와 그 모두의 아이들과 함께 삽니다. 조지아나와 베스는 계속 좋은 친구로 함께 삽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대견스럽습니다. 영화 ‘공작부인 - 세기의 스캔들’(The Duchess)을 보았습니다. 2008년 작품이네요.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좋은 주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