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우리 집
양산 도심형 전원주택단지 FUNFUN HOUSE
부산과 인접한 경남 양산의 도심형 전원주택단지. 멀리서도 눈에 띄는 박공지붕 집에서는 오늘도 네 식구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친구 사이인 건축주와 건축가의 모습. 폴리카보네이트 내부는 풍부한 빛의 공간이다.
“사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저 전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 건축을 전공했으니 내 집은 지어보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무의식중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아요.”
주택에 꼭 살아야겠다며 시작한 집짓기는 아니었다. 한창 뛰놀 나이의 아들 둘을 아파트에서 키우고 있었지만, 평소 늘 조심했던 탓에 이웃과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도 없었고 주택보단 아파트가 모든 면에서 더 편리하다 생각한 그였다. 그러던 어느 날, 빈 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 참 좋겠다. 단지 그 이유가 전부였다.
결혼 전 살았던 오래된 주택에서의 추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아내는 지금이라도 주택에서 다시 살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아내의 지지를 받아 땅을 계약했다. 이후 머릿속에만 있던 집의 모습을 수십 수백 번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건축사사무소에서의 경험을 살려 직접 설계를 해볼 참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어느 순간 한계를 느끼고 주택 설계 경험이 많은 친구,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이기철 소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로 벽부터 지붕까지 일체화시켰다.
단순한 박공의 형상으로 대지와 조우한다. 심플한 박공지붕은 경사지붕의 이웃집들 속에서 조화를 이루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마당 ©변종석
SECTION
그의 가장 큰 요구사항은 ‘마당 넓은 집’이었다. 하지만 여느 신도시의 단독주택 필지처럼 60평의 대지에 거실과 주방 및 안방 등을 1층에 채우고 나면 마당을 위한 공간은 협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1층과 2층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기로 했다. 이웃과 함께 쓸 수 있는 실내 공간인 주방만을 1층에 두고 나머지는 모두 마당으로 쓰기로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거실과 3개의 방을 2층에 배치해, 2층이 1층보다 훨씬 큰 구조가 되었다. 자연스레 2층으로 덮여 비를 피할 수 있는 1층 마당이 많아졌다. 그리고 마당에는 데크를 깔아 이웃과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들이 놀이공간으로 쓸 수 있게 했다.
외장재는 단단하면서 막힌 재료인 콘크리트와 불투명하지만 채광이 되는 폴리카보네이트, 그리고 벽을 비워내는 방식으로 사용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외부와 차단된 실내나 채광이 가능하지만 밖에서 보이지 않는 2층 발코니, 뚫려 있어 외부와 소통하는 마당 공간 등이 이러한 재료의 사용을 통해 완성될 수 있었다.
2층 거실 모습 ©변종석
건물의 형상이 그대로 내부 공간이 된다. 건축주가 직접 만든 벽장과 수납장은 거칠지만 아빠의 온기가 깃들어 있다. HOUSE PLAN
대지위치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 대지면적 ▶ 225.7㎡(68.27평) | 건물규모 ▶ 지상 2층+다락 | 건축면적 ▶ 126.27㎡(38.19평) | 연면적 ▶ 209.59㎡(63.40평) | 건폐율 ▶ 55.95%
용적률 ▶ 92.86% | 주차대수 ▶ 1대 | 최고높이 ▶ 8.65m
구조 ▶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철근콘크리트 줄기초 / 지상 – 철근콘크리트(벽, 지붕) | 단열재 ▶ ‘가’등급 압출법보온판 1호 30mm, 50mm, 80mm, 100mm | 외부마감재 ▶ 외벽 –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 위 발수제, 폴리카보네이트 / 지붕 – 송판무늬 노출콘크리트 위 발수제 | 창호재 ▶ 이건창호 165mm 알루미늄 창호(에너지등급 1등급) | 에너지원 ▶ 도시가스
전기·기계 ▶ 도시ENG | 구조설계 ▶ 명진구조 | 시공 ▶ 에스엠종합건설㈜ | 설계 ▶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이기철)
2층 거실 모습 ©변종석
물론 모든 과정이 순조롭진 않았다. 설계가 끝나고 몇몇 시공사를 통해 받은 견적이 생각보다 너무 높아 가진 예산에 맞추다 보니, 안정적이고 경험 많은 건설사가 아닌 주택시장에 막 뛰어든 열정적인 건설사와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예상 금액에 근접한 비용으로 계약하긴 했으나 의욕만으로 집을 짓기에는 시행착오가 많았고, 1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어렵게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기철 소장은 “이 집은 건축가로서 건축주와 다양한 갈등과 이해를 반복하며 완성한 하나의 관계의 산물이기도 해요. 같이 건축과를 나와 설계사무실에서 일한 경험도 가진 친구가 의뢰한 경우라 주위 건축가들이 ‘작업도 잃고 친구도 잃으니’ 하지 말라고 조언했죠(웃음). 다른 건축주와는 겪지 못했던 의견 충돌도 분명 있었지만,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친구를 통해 집 짓는 이의 마음을 한 단계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어요.”라며 소회를 풀었다.
자녀방의 외부 테라스와 1층, 2층 모두 뚫린 보이드 공간으로 나무가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변종석
가변 공간은 다용도로 변화하는 공간이다. 수납을 위한 다락 또한 변화의 폭을 넓힌다.
외관에서 불러일으키는 궁금증은 내부로까지 이어진다. 현관을 통해 긴 복도를 지나면 2층으로 오르는 계단실과 주방을 마주하게 된다. 1층에 주방만 있다 보니 계단을 오르내릴 일이 많아 처음엔 힘들기도 했지만, 이젠 그마저도 운동이라 생각하고 즐기는 중이라는 가족이다.
“지금은 추워서 휴업 상태인데, 한동안 주방 앞 마당에서 가족, 지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지난여름엔 넓은 안쪽 마당에 만든 간이 수영장이 우리 가족만의 피서지가 되기도 했고요. 언젠가 들어설 앞집, 뒷집, 옆집 사람들과도 이 마당을 통해 편하게 왕래하며 정을 쌓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책장이 길게 놓인 계단실 위로 채광 좋은 거실이 위치한다. 외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박공지붕 천장은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1층 주방의 싱크대를 포함해 책장, 선반, 테이블 등 집 안 곳곳에 놓인 대부분의 가구는 목공이 취미인 건축주가 직접 만든 것으로, 덕분에 그만큼 집에 대한 애착이 생겼고, 볼 때마다 흐뭇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다.
“분명 돈이 많아서 이렇게 집을 짓고 산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절대 그런 건 아닙니다. 집에 대한 욕심이 있었을 뿐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은 하되, 아낄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아껴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2층에 존재하는 네 개의 테라스 중 거실 앞 테라스는 아빠를 위한 1인 테라스이다.
공간이 변하는 집
건축가는 30대 후반이라는 건축주의 나이에 주목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려 부모와 함께 공간을 쓰길 원하지만, 성장할수록 개인 공간이 필요하고 자녀들의 출가의 시기가 오면 그 방은 창고가 되기 일쑤다. 이처럼 젊은 부부들이 여러 번 이사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정된 건축이 이러한 변화에 지속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30대 후반부터 60세에 이르기까지 자녀들이 성장하며 바뀔 가족의 라이프 사이클을 고려하여 ‘공간이 변하는 집’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네 단계의 시기 ‘육아’, ‘성장’, ‘독립’, ‘여가’로 나누어진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평면을 구성했고, 이 콘셉트의 핵심이 바로 가변공간과 회유동선이다. 이것은 건축주가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회유동선을 구성하는 연속된 슬라이딩 도어의 복도 공간이 자유롭게 구획된다. INTERIOR SOURCE
내부마감재 ▶ 벽 – 노루페인트 순&수 도장 / 바닥 – 동화자연마루 강마루 | 욕실 및 주방 타일 ▶ 벽 – 화이트 자기질 타일 / 욕실 바닥 – 그레이 자기질 타일 | 수전 등 욕실기기 ▶ 이누스, 대림바스 | 주방 가구 ▶건축주 제작 | 조명 ▶ 개별 구입 | 계단재, 난간 ▶ 라왕집성목 | 현관문, 방문 ▶ 현장 제작 | 붙박이장 ▶ 건축주 제작 | 데크재 ▶ 방킬라이 19mm
PLAN ①주방 ②야외데크 ③공유정원 ④현관 ⑤창고 ⑥부모방 ⑦가변공간 ⑧거실 ⑨드레스룸 ⑩세탁실 ⑪도서관 ⑫테라스
마당 넓은 집에선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은 이들 부부가 단독주택을 짓는 이유 중 하나였다.
주방 앞 야외데크는 이웃집으로 열려져 부부의 티타임이나 이웃과의 파티에도 넉넉하다.
주택에서 살게 된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할 일 많은 주택생활이다 보니 일단 부지런해졌고, 가족끼리 함께 앉아 대화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아이들이 더 밝고 활발해진 것 또한 부모에겐 기쁨이다.
“아쉬운 부분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다시 짓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예요. 이 집보다 우리 가족에게 잘 맞는 집이 또 있을까 싶어요.”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는 집이 되기까지 여전히 손길 닿아야 하는 부분들이 많지만, 하나씩 완성되는 모습을 보는 매일 매일이 그저 행복할 뿐이다. 집에 대한 애정이 계속 커져가고 있기에 한 달 뒤, 일 년 뒤 이 집의 모습과 본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건축주는 가구를 손수 제작해 하나둘 집을 채워가는 중이다. 집을 짓기 전 진솔하게 털어 놓았던 많은 기대와 바람이 그가 만든 가구처럼 하나둘 완성되어 앞으로 펀펀하우스에 가득하길 바라본다.
DETAIL
건축가_ 이기철[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
유씨버클리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뉴욕의 프레데릭 슈왈츠 아키텍츠와 한국의 공간건축에서 다년간 실무를 쌓았다. 2012년 아키텍케이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공간과 재료에 대한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7 신진건축사대상 최우수상, 제17회 한국농촌 건축대전 대상, 2017 김해 건축대상제 대상, 2016 토론토 디자인 페스티벌 심사위원상, 2016 캐나다 건축 엑스포 아이덱스 캐나다 우드샵 부문 위너, 2015 부산다운 건축상 등을 수상하였다. 젊은 건축가들의 사회참여 활동인 건축생활실험실 라라(LALA)의 멤버이다. 070-8837-3237|www.architect-k.com
취재_ 김연정 | 사진_ 윤준환, 변종석
출처 월간 전원속의 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