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타자...이승엽...
이승엽 선수에 관해서 글을 쓸려면 끝이 없다.족히 얇은 책 한권은 쓸수
있다.최대한 줄이고 줄여서 사람들이 이승엽 선수에 관해서 잘 알수 있도
록 쓰도록하겠다.우리는 어떤분야에서 그사람이 웬만큼 잘해서는 국민이
라는 말을 붙여주지 않는다.국민 가수,국민 배우,국민타자...이렇게 불리
는 사람들은 먼가 사람들 기억속에 영원히간직될 업적을 이루던지 각연령
층으로부터 수많은 사랑을 받아야만 불리어질수 있는 것이다.이승엽이 국
민타자라고 불리어지게 되는 계기를 많들어 준 사건...99년도 54개의
홈런.이 54개의 홈런은 21년 프로야구사에 기리남을 사건이었고 지금껏
깨기 어려운 4대 마의 기록에 또하나를 추가함으로써 5대 마의 기록이 되
었다.
"진정한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이승엽이 입버릇처럼하는말이다.
야구 평론가들은 이승엽의 야구 감각이 천부적이라고 말한다.어릴적부터
친구들 보다 주먹하난 더컷던 이승엽은 유난히 강한어깨로 던지기에 자신
이 있었다. 그가 야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동덕 국민학교 4학년때 두류
공원에 던지기 대회에 참가해서 선배들을 제치고 3위에 입상하면서 부터
다.학년 구별없이 참가를 했다고하는걸 보니 도체전은 아니고 소년체전인
거 같다.아님 내가 모르는 또다른 대회가 있던지...내가 육상을 할때는
대회는 고작 그게 다였다.이승엽도 내또래니까 소년체전이 아니었나 싶
다. 이승엽이 3위로 입상할 그당시 중앙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이 그를 전
학시켜 마운드에 등판시켰다.6살때부터 TV에서 본 박철순 투수에게 반해
야구선수의 꿈을 남몰래 키워온 소년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프로야구
가 출범한 82년 22연승의 위업을 세우며 소속구단 OB를 한국시리즈 원년
챔프로 이끈 박철순은 그의 가슴깊이 새겨졌다. 당장 OB어린이 회원에
등록한 그는 그당시 받은 기념 유리잔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
다.
첨엔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특히 아버지 이춘광씨의 반대가...(나도 참
웃긴게 늠의 아버지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게 어이가 없다.ㅡ,.ㅡ;) 하지
만 이승엽은 꺽이지 않았다.보통의 야구 팬들은 이승엽이 중앙국민학교에
서 바로 야구를 시작한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렇치 않다.동덕 국민학교
시절 중앙국민학교로 스카웃제의를 받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바로 전학을
가지 못했다.그래서 이승엽은 동덕국민학교 수업이 마치면 중앙국민학교
로 가서 연습을하고 집에 가는 생활을 무려 한두달을 반복했다.어린 막내
아들의 야구에 대한 집념에 부모님들은 결국 야구를 허락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미래 홈런왕의 비상이 시작 되었다.
초등학교 첫 대회부터 서울장충단구장 담장을 넘기며 투타에서 투타에서
활약 함으로써 모교를 3위에 입상시킨다.경상중 시절 전국대회를 휩쓸면
서 협회장기 우수투수상을 받았고 이때도 늘 이승엽은 4번 타자였다.이승
엽이 학창시절 에이스 투수였단 사실을 아는사람은 알거고 모르는 사람
은 모를거다.95년 삼성에 입단 당시에도 이승엽은 투수로서 입단했었다.
경상중을 졸업하고 경북고로 진학을 하게된 그는 1학년때 황금사자기8강전에서 4회
에 구원등판 5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되었다.이때
부터 그는 전국대회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고 국보급 투수
로서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그리고 2학년인 93년도에는 청룡기에
서 12년만에 기적같은 우승을 모교에 안겨줬었다.그때 이승엽의 존재를
알게되었다.그당시 1승 2패로 지역예선 탈락의 직전까지 몰렸던 경북고등
학교...이승엽의 부상으로 내세울 투수는 없었고 상대는 전국의 강호 그
해 대통령배 우승팀 대구상고...위기의 경북고를 구해낸 사람은 이승엽
의 한다리 위의 선배...경북고 주장 강동우선수였다. 중학시절 잠깐 투수
를 해봤단 이유로 강동우가 대구상고전에 출전해 완투승을 거두면서 2승2
패 동률을 이루면서 재시합까지 경기를 끌고 갔다.그리고 재시합에서 강
동우가 역시 완투승을 하면서 경북고를 전국대회로 이끌어 나갔다.경북고
는 별 어려움없이 공주고 배재고 강릉고 광주일고를 연파하며 결승에 진
출했다. 군산상고와의 결승전은 이승엽의 스타탄생을 알리는 무대였다. 2
학년이던 이승엽은 당당히 결승전에서 선발로 등판, 3점(비자책점이다)만
을 내주며 완투승을 따냈다. 3-3이던 4회 터진 결승 1점홈런도 이승엽의
방망이에서 나왔다. 이승엽은 우수투수상을 받았고, 우승의 공동주역이었
던 강동우는 타격 3위(아마 4할대 타율이었을거다)에 오르며 도루상을 받
았다.고3 때는 청소년 대표로 뽑혀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
회에 참가, 결승전에서 미국을 11-10으로 꺽으면서 81년 선동열이 이끌었
던 청소년 대표 이후 13년만에 한국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으면서 세계대
회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이때도 아마 이승엽이 우수투수상을 받았을 거
다.내기억이 맞다면...이처럼 고교시절 이승엽은 145Km의 강속구를 뿌리
는 좌완투수였다.좌투수가 145를 던진다면...그것도 고교생이...엄청난거
다.그것도 우완이 아닌 좌완이...그러니까 삼성이 고교생인 이승엽에게
목을메지... 좌완이 던지는 공이 우완이 던지는거 보다 타석에선 훨씬 빠
르게 느껴진다.좌투수가 145를 던진다면 타석에서 느끼는 속도감은 우완
투수 150대랑 비슷하다
삼성이 이승엽에게 엄청난 러브콜을 보낸탓에 그당시 야구계를 떠들썩하
게 했던 이승엽 수능탈락 사건이 일어난것이다.이 이야기에 대해선 조금
있다가 다시 설명하겠다. 화려한 고교시절을 보낸 이승엽도 고교시절은 2
인자였다. 이승엽을 2인자로 몰아낸 인물은 바로 경남상고의 김건덕선수
이다. 투타에 걸쳐 초고교 선수로 평가받은 김건덕은 연고팀 롯데의 스카
우트 제의를 거절한 뒤 이승엽과 함께 한양대에 지원했고 무사히 수능을
통과해 대학생이 됐다. 하지만 그는 입학하자 마자 어깨부상을 입는 불운
을 겪어야 했다. 대학 재정상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해 투수로서 능력을
상실한 김건덕은 2학년 때부터 타자로 변신했으나 어느새 그의 재능은 사
그라든 상태. 졸업하던 지난 겨울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지명조
차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김건덕은 작년초 이승엽이 활약하고 있
는 삼성의 연습생 테스트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 마저 탈락해 야구인생
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만약 김건덕이 대학 대신 프로구단을 택해 적절
한 치료와 체계적인 훈련을 쌓았다면 인생이 달라 졌을 지도 모른다.고교
시절 이인자에 머물렀던 이승엽은 대학을 떨어진 탓에 프로야구 최고타자
가 됐지만 최고선수였던 김건덕은 수능을 통과하는 바람에 프로진출이 좌
절됐으니 인생이란 참으로 얄궂다.
이승엽은 자신의 공을 항상 남에게 돌린다.그만큼 겸손하단 말이다 적어
도 언론에선...하지만 이승엽의 말이 맞다.밤하늘의 별은 혼자서 빛나지
않는다. 유난히 빛나는 별은 그 별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별들에 의해 더
욱 빛난다. 이승엽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화려한 빛으로 빛나기까지 그
의 주위에서는 수많은 스승들이 그를 둘러싸고 빛이 나도록 힘이 돼 주었
다.중앙국민학교 박부근감독...박감독은 이승엽에게 ‘야구를 재미있게
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때부터 그는 신바람을 냈고 천부적인 재질을
승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선배들이 하는 것을 그냥 따라 했고 TV
에서 본 프로야구를 흉내내기도 했지만 누가 매달려 가르쳐준 것보다 더
잘했다. 고교 때까지 이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야구를 잘했기 때문에 매
사에 적극적이었고 남들 앞에 나서기도 좋아했다. 선배들보다 야구를 잘
한답시고 가끔 까불기도 했고 우쭐대기도 했다고 이승엽은 말한다.이런
이승엽을 바꾸게 한 계기가 있으니 그건 고1때 허리 부상이다.3개월 동
안 꼼짝도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그는
나 혼자가 전부 라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 남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 세상에는 나 혼자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과 남들과
힘을 합해 이룰 수 있는 것이 있으며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는 것도 깨달았다. 인간적으로 한층 성숙해진 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전 OB코치 김용희...그는 병상에서 나약했던 이승엽의 정신력을 한단계
끌어 올려주고 헝그리 정신을 그에게 전수했다.그럼으로서 이승엽의 정신
력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고 허리부상이 낳으면서 전국대회와 세계대회
를 휩쓸지 않았나 싶다.난 여기서 말하는 야구에서의 헝그리정신이 무엇
을 말하는건지 자세히는 모르겠다.저번에 이승엽이 김용희코치에게서 정
신적으로 헝그리정신을 배운적이 있다고 말한걸 본적이 있어서 쓰긴했는
데 야구에서 헝그리 정신은 먼지 정확히는 모르겠다.아마 내생각에는 치
고 받고 달리고...그런게 아닌가 싶다.이승엽의 학창시절 은사들은 이정
도다.오늘은 힘들어서 이승엽에 관한글을 다 못쓰고 학창시절만 쓰고 1부
를 마치겠다.다음에 2부에서 이승엽의 프로생활 앞으로의 진로에 관한 내
생각을 적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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