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할리우드에서는 낯선 얼굴, 생소한 캐릭터의 젊은 배우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역할의 크고 작음을 떠나 타고난 끼와 연기력으로 우리의 눈을 사로잡고, 범접할 수 없는 개성으로 자신의 고유한 성을 쌓고 있는 ‘반짝반짝 배우들’을 모았다. 엘렌 페이지, 시얼샤 로넌, 폴 다노, 조셉 고든 레빗, 블레이크 라이블리, 벤 포스터, 제이미 벨, 마이클 세라, 짐 스터게스, 잭 에프론. 이제 막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시작했지만 가능성만큼은 측정 불가능인 혈기 방장한 차세대 배우 10인에 주목한다.
똘망똘망 작은 별
엘렌 페이지 Ellen Page
1987년 생. 영화 <원더풀 윌비>(2004) <하드 캔디>(2005) <마우스 투 마우스>(2005)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 <아메리칸 크라임>(2007) <주노>(2007)
캐나다 출신의 이 아담한 소녀가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을 줄 누가 알았으랴? 2007년을 평정한 독립영화 <주노>에서 솔직하고 당당한 십대 임산부로 분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엘렌 페이지. 디아블로 코디의 영리한 각본에 탑승해 자신의 진가를 십분 증명한 페이지는 <주노>가 낳은 스타이며,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다.
그렇다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연기 신동은 아니다. 열 살 때부터 TV 드라마로 시작한 출연작 목록만 스무 편이 넘는다. 대부분 캐나다 작품인지라 한국에까지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것뿐. <주노> 이전 <엑스맨: 최후의 전쟁>이 개봉했지만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단역이었으며, 이 외에 미국에서 찍은 작품들 또한 저예산 영화가 대부분이라 <주노>가 있기 전 페이지의 존재감은 어느 나라나 다를 게 없었다. 2005년 사이코스릴러영화 <하드 캔디>에서 변태성욕자를 응징하는 소녀로 분해 가공할 연기력를 뽐낸 것 정도가 있을까.
귀여운 얼굴에 자그마한 키의 페이지는 캐나다든 미국이든 길거리를 지나다 몇 번은 마주칠 법한 평범한 외모를 하고 있다. 하지만 깊고 또랑또랑한 눈 속엔 많은 생각을 감추고 있는 듯 보이며, 활짝 웃기보다 한쪽 입술을 살짝 들어 올려 짓는 야무진 미소에선 호락호락하지 않은 강단이 느껴진다. 여러 인터뷰를 통해 탐색한 페이지는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 같은 여유로움과 신중한 말투를 지닌 배우다.
<주노>까지만 해도 이웃집 소녀 같았던 페이지는 스무 살을 넘기며 부쩍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만큼 필모그래피를 어떻게 채워갈지도 비상한 관심을 모을 터. 높아진 기대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겠지만,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고 돌파해 나갈 것이다. 4월 데니스 퀘이드, 사라 제시카 파커와 함께 출연한 <스마트 피플>의 미국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드류 배리모어의 연출작 <위프 잇!>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주노> 이후 시나리오가 밀려오고 있다. 물론 그 중엔 주노와 비슷한 캐릭터도 있다. 하지만 난 다양한 영화에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암, 똑 부러지게 잘 해내리라 믿는다. 한 가지 바라는 건, 그녀의 출연작을 한국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정미래 기자)
폭발적인 14살
시얼샤 로넌 Saoirse Ronan
1994년 생. 드라마 <더 클리닉>(2004) <프루프>(2005) 영화 <절대로 네 여자가 될 수 없을 거야>(2007) <조나단 투미의 크리스마스 기적>(2007) <어톤먼트>(2007) <데스 디파잉: 어느 마술사의 사랑>(2007)
시얼샤 로넌은 <어톤먼트>가 발견한 보석이다. 키이라 나이틀리(주인공 세실리아 역)의 화려한 드레스 자락에 가려져 주목을 덜 받았지만, 이언 맥큐언의 걸작 소설을 훌륭하게 영화화한 <어톤먼트>에서 가장 완벽하게 되살아난 캐릭터는 바로 브리오니이며, 그 공은 시얼샤 로넌에게 있다.
이언 맥큐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무섭다. 얼마 전 출간된 단편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을 보면, 순진함과 영악함의 경계에 놓인 아이들의 미성숙이 빚은 가공할 행동으로 어안이 벙벙하다. <어톤먼트>의 브리오니는 짝사랑하던 오빠가 자신의 언니 세실리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질투에 사로잡혀 되돌릴 수 없는 거짓말을 내뱉는다. 살짝만 건드려도 금 갈 것 같은 새하얀 도자기처럼 결벽증과 자만심으로 견고한 자기 세계를 형성한 소녀의 복잡 미묘한 심리가 예리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장중한 문체로 세밀하게 묘사된 소설 속 브리오니를 소름끼치도록 똑같이 스크린에 환생시킨 시얼샤 로넌은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제2의 다코타 패닝’이라 불렸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시얼샤 로넌은 <데블스 오운> <베로니카 게린>의 배우 폴 로넌의 딸이기도 하다. ‘고작’ 14살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비로운 눈빛을 가졌으며, 고전적이지만 단아함과는 거리가 먼 외모에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출연작은 대부분 시대극과 판타지다. 3월 27일 국내 개봉하는 <데스 디파잉: 어느 마술사의 사랑>에선 1920년대 심령술사 메리 맥가비의 딸로 출연하며, 올가을 개봉할 길 키넌 감독의 판타지 모험극 <시티 오브 엠버>에서 주인공을 맡았다. 공전의 기대작인 피터 잭슨의 <러브리 본즈>에선 강간범에게 살해당한 후 하늘에서 자신의 가족과 살해범을 내려다보는 소녀 수지 사이먼으로 분해 예사롭지 않은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정미래 기자)
오싹한 변신의 모험가
폴 다노 Paul Dano
1984년생. 영화 (2001) <내겐 너무 아찔한 그녀>(2004) <발라드 오브 잭 앤 로즈>(2005) <더 킹>(2005) <미스 리틀 선샤인>(2006) <웨폰스>(2006)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폴 다노는 최근 2년 사이 존재감이 각별해졌다. <리틀 미스 선샤인>(2006)의 키 큰 말라깽이 소년 드웨인으로만 그를 기억했다면, <데어 윌 비 블러드>(2007)는 오싹한 충격일 것이다.
변신의 간극은 엄청났다. <리틀 미스 선샤인>에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날까지 묵언수행을 한다며 노트에 가족을 혐오하는 글귀를 써대던 시니컬한 소년은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폭포수 같은 대사를 쏟아낸다. 변질된 신앙심과 질투로 점철된 사이비 교주 엘라이로 분한 그는 가히 ‘미친 놈’의 어떤 경지를 보여준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폴 다노의 스펙트럼이 결코 청춘 연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될 것이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라는 거대한 산 앞에서 그는 “어린 소녀처럼 소리 지르며 우는 부끄러운” 광경을 연기하면서도 강한 호소력을 뿜어낸다. 불과 스물셋의 젊은 배우가 이토록 감정의 파고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 알다니, 그의 창창한 앞날을 점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미남과도 훈남과도 아닌 소탈하고 평범한 외모의 폴 다노지만 집에 틀어박히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꽤 여러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경력만 봐도 그렇다. 퀴어영화 (2001)에서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게이로 등장해 각종 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배우상을 휩쓸었던 시절 그는 고교 밴드 Cherry Revision을 결성했고, 얼마 전 록밴드 Mook의 리드 기타 겸 보컬로 배를 옮겨 탔다.
또 어릴 적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전력을 살려 지난해엔 에단 호크의 오프브로드웨이 데뷔작 에 출연하기도 했다. “뭐든지 쉽게 질려 같은 종류의 역할을 반복한다면 정말 지루할 거”라고 말하는 청년. 신세계를 개척할 잠재력을 품은 배우 폴 다노다. (유지영 기자)
보폭을 넓히고 대담하게
조셉 고든 레빗 Joseph Gordon-Levitt
1981년생. TV 시트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1996~2001), 영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 <매닉>(2001) <미스테리어스 스킨>(2004) <브릭>(2006) <룩아웃>(2007) <킬샷>(2008) <스탑 로스>(2008)
소년은 언젠가 청년이 된다. 하지만 조셉 고든 레빗이라면 예외일 것 같다. TV 시트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1996~2001)을 시청했던 이라면 더욱 그런 생각일 테다. 그의 열다섯 부터 스물까지를 고스란히 볼 수 있었던 이 TV 쇼에서 그는 영락없는 막내 동생 이미지였다. 자그마한 체구가 그랬고, 한껏 처진 선한 눈매와 천진난만한 미소가 그랬다. 언제까지나 동안의 세계를 지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소년은 정말 청년이 됐다. ‘포스트모던 누아르’이자 하이틴 버전의 추리물 <브릭>(2006)은 우리에게 이를 일깨워준다. 살해당한 여자친구의 배후를 파헤치는 고교생 탐정 브랜든으로 분한 조셉은 <말타의 매>의 험프리 보가트 같은 면모를 풍긴다. 열여덟에 고교생으로 나왔던 하이틴 로맨스물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999)를 떠올린다면, 동일인물이라는 걸 믿기 힘들다. 언뜻 가냘파 보이지만 여자친구의 시체 앞에서도 동요 따윈 없는 대담함. 조셉은 훌쩍 커서 어느덧 선 깊은 어른이 됐다. <브릭>의 라이언 존슨 감독의 말처럼 “상당히 유별난 문어체 대사들을 효율적인 리듬으로 정확하게 짚어내며” 할리우드의 차세대 기대주임을 증명한다.
하긴 조셉이 7살 때 TV 시리즈 로 출발한 베테랑임을 상기한다면, 이건 어쩌면 너무 천천히 찾아온 배우 인생 2라운드일지 모른다.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 이후 2001년 인디영화 <매닉>을 시작으로 조셉은 셀레브레티로 이름을 날리고픈 또래 배우들과는 완연히 다른 길 위에 섰다. 콜롬비아 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부터 독립영화계에 투신, <미스테리어스 스킨>(2004)에서 어떤 남자라도 반하게 만드는 ‘게이 남창’ 연기로 시애틀국제영화제에서 최고배우상을 받았다.
조셉은 인디영화계가 사랑하는 총아로만 남진 않을 작정이다. 개봉을 앞둔 킴벌리 피어스의 <스톱로스>(2008), 존 매든의 <킬샷>(2008)과 스티븐 소머즈의 <지 아이 조>(2009) 등 조셉은 메이저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내가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는 조셉 고든 레빗은 분명 뻔질나게 입에 담게 될 이름 중 하나다. (유지영 기자)
배우의 꿈을 이룬 록커
짐 스터지스 Jim Sturgess
1981년생. 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2007) <천일의 스캔들>(2008) <21>(2008)
짐 스터지스는 뮤지컬영화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낳은 최고의 행운아다. 영국 런던 출신의 이 무명배우가 단숨에 할리우드의 루키로 떠올랐으니 말이다. 제이크 질렌할 혹은 이완 맥그리거처럼 커다랗고 선량한 눈망울에 서글서글한 외모를 지닌 짐 스터지스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할리우드에 입성하게 됐다.
여기엔 노래하고 춤을 춰야 하는 뮤지컬영화의 특성에 걸맞은 그의 록커 경력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12살처럼 보였던 15살 때” 펍에서 공연했던 경험을 시작으로 그가 유명세를 타기 전 몸담았던 밴드 ‘Dilated Spies’까지 그는 “지역에선 꽤 알아주는 아이돌 급의 록커였다.”
재미있는 건 짐 스터지스가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배우로 지원하기 전까지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비틀즈를 편곡한 노래만으로 채워진 뮤지컬영화라니 끔찍하다”고 생각했을 정도. 허나 영국 TV 드라마와 영화에 단역으로 간간이 출연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던 그가 뉴욕으로 건너왔을 무렵, 뮤지컬영화는 어쩌면 운명 같은 선택이었다. 결과는 물론 긍정적이다. 반전 시위가 퍼레이드처럼 출렁이던 1960년대 ‘블루컬러’ 청춘의 모습을 재현한 그의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안정적이다. 덤으로 쓸쓸한 기운이 묻어나는 영국식 악센트로 출중한 노래 실력까지 뽐낸 그는 여러 할리우드 감독들의 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짐 스터지스의 바쁜 행보는 벌써부터 이어지고 있다. 영국 왕 헨리 8세와 볼린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천일의 스캔들>(2008), MIT 학생들이 카지노에서 거액의 돈을 따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21>(2008)이 개봉을 코앞에 뒀고,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의 줄리 테이머 감독이 만들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파이더 맨>에 주인공으로 등장할 예정. 그가 영국이 낳은 할리우드의 기대주 제임스 맥어보이의 뒤를 이을 스타가 될 수 있을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볼 일이다. (유지영 기자)
충만한 ‘똘기’에 영광 있으라
벤 포스터 Ben Foster
1980년생. TV 드라마 <라라미 프로젝트>(2002) <뱅, 뱅, 넌 죽었다>(2002), 영화 <겟 오버 잇>(2001) (2003) <호스티지>(2005) <알파독>(2006) <엑스맨: 최후의 전쟁>(2006)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2007) <3:10 투 유마>(2007)
<3:10 투 유마>에서 빛났던 건 러셀 크로와 크리스천 베일만이 아니었다. 주황색 카우보이 바지를 입고 인상적인 ‘사이코’ 연기를 선보였던 벤 포스터의 포스. 두 주연 배우의 카리스마에 주눅이 들기는커녕, 그들을 잡아먹을 기세였다. <3:10 투 유마>에서 벤 포스터가 연기한 무법자 찰리는 악역으로 족적을 남긴 선배들, 가령 게리 올드먼이나 앤서니 홉킨스를 연상시킨다. 겉으로만 잔혹한 악당인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슬픔과 연민까지 느끼게 한 재능이 아니었더라면 찰리라는 캐릭터는 한층 심심했을 것이다. 초점이 나간 듯하다가도 매섭게 상대를 제압하는 눈매, 특유의 무표정과 저음의 빈정거리는 말투는 그렇게 잊히지 않는 순간들을 스크린에 새겼다.
벤 포스터는 하루아침에 뜬 샛별은 아니다. 1996년 <카운터피트>로 데뷔한 이래, <리버티 하이츠>(1999) <겟 오버 잇>(2001) 같은 가벼운 10대 청춘물에서 앳되고 순수한 소년으로 얼굴을 알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풋풋한 동안의 신인 정도로 기억됐지만, TV 드라마 <뱅, 뱅, 넌 죽었다>(2002)에서 폭발적인 젊음의 고통을 표현해내면서 보다 단단한 배우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 벤 포스터의 행보를 보면 ‘똘기’ 어린 미치광이 캐릭터를 정복하기 위해 높다란 능선을 그리고 있음이 명확해진다. 좀비영화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에선 좀비에 경도된 이방인으로 나와 자아가 해체된 듯한 모습을 보였고, 액션 스릴러 <호스티지>에선 연쇄살인마 연기로 호평받았다. 그는 주로 비중 있는 조역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센’ 캐릭터 덕에 이름은 몰라도 얼굴만은 또렷이 각인된다. 체제와 도덕에 순응하지 않는 일련의 캐릭터들은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히피족”이었던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DNA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극적인 상황이 좋다. 나쁘고 잔인한 역할이라도 진정함과 순결함이 있다면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라 믿는다”는 이 개성만점 배우는 확고한 자신의 캐릭터를 굳혀가고 있는 중이다. (유지영 기자)
예쁜 건 죄가 아니야
블레이크 라이블리 Blake Lively
1987년생. 영화 <청바지 돌려입기>(2005) <억셉티드>(2006) <사이먼 세즈>(2006) <엘비스와 아나벨레>(2006), 드라마 <가십 걸>(2007)
뉴욕 상류층 고등학생들의 럭셔리한 삶을 그린 미국 드라마 <가십 걸>로 차세대 ‘잇걸’이 된 블레이크 라이블리. 178센티미터의 훤칠한 키와 길게 늘어트린 금발로 고급스러운 섹시함을 풍기는 라이블리는 <가십 걸>의 ‘맨해튼 퀸카’ 세레나가 되어 수많은 미드 팬으로부터 눈도장을 받았다.
배우에게 빼어난 외모는 장점이자 독이다. 얼굴 예쁘고 몸매만 좋은 여배우로 비춰지기 십상이지만,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미모만 앞세워 인기를 탐하는 족속들과는 거리가 멀다. <가십 걸>로 많이 알려졌지만, 라이블리의 진가는 죽마고우 여고생 4명의 우정과 성장을 다뤄 호평받은 영화 <청바지 돌려입기>에서부터였다. 알렉시스 브레델(<길모어 걸스> <씬 시티>), 아메리카 페레라(<어글리 베티>) 등 걸출한 소녀들을 배출해낸 <청바지 돌려입기>에서 라이블리는 단연 돋보였다.
<청바지 돌려입기>의 브리짓은 섹시한 외모의 부잣집 여고생에겐 어울리지 않게 축구를 한다. 게다가 아주 ‘잘’ 한다. 여름방학 동안 멕시코에서 열리는 축구 캠프에 참여한 브리짓은 팔등신 몸매와 풍성한 금발을 휘날리며 잔디를 질주한다. 그리고 잘생긴 대학생 코치를 찍어 마구 유혹한다. 라이블리는 자칫 ‘잘난 척하는 날라리’로 비춰질 수 있는 캐릭터를 청춘의 혈기가 담긴 사랑스러운 인물로 만들었다. 알렉시스 브레델의 청초한 아름다움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보다는 라이블리의 건강미가 활력을 불어넣었다. <가십 걸>에서도 누구나 부러워하는 집안과 외모의 소유자지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인물 세레나로 분해 스타일리시한 패션과 더불어 고독한 내면 연기를 펼치고 있다.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출연작은 여섯 편 정도이며, 아직까지 내세울 만한 주연작도 없는 블레이크 라이블리는 섣부르지 않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고 있다. 현재 <가십 걸> 시즌 2가 미국에서 한창 방영 중이며, 오는 8월엔 영화 <청바지 돌려입기 2>를 통해 다시 브리짓으로 돌아온다. (정미래 기자)
나의 아름다운 얼뜨기
마이클 세라 Michael Cera
1988년 생. 영화 <프리퀀시>(2000) <컨페션>(2002) <수퍼배드>(2007) <주노>(2007) <익스트림 무비>(2008), 드라마 <베로니카 마스>(2006)
마마보이, 찌질남, 얼뜨기. 마이클 세라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주노>에서 블리커는 주노의 첫 남자이자 애 아빠지만, 제 한 몸 건사하지 못할 만큼 연악하고 어수룩한 소년이다. 애초에 ‘첫 경험’부터도 주노에게 일방적으로 당한 게 아니었던가. 결국 멍한 반응으로 일관해 뱃속 아이를 혼자 ‘해결’하도록 만든 블리커. 그런데 몹시 무책임해 보이는 이 소년이 이상하게 밉지 않다.
블리커는 하룻밤 불장난으로 생긴 아기에 대처하는 평범한 소년들의 가장 평균적인 모습일 것이다. 이기적이기보다는 무지한 것이며, 무책임하기보다는 겁이 많다고 해야 옳다. 마이클 세라는 그러한 블리커를 100%의 순진함으로 표현해냈다. 우스꽝스런 헤어밴드와 운동복조차 순수함의 표상으로 만들어버린 마이클 세라는 주노를 연기한 엘렌 페이지의 포스에도 밀리지 않고 꿋꿋하게 본분을 다했다.
세라의 진가는 <주노> 바로 전에 찍은 <수퍼배드>에서 더 많이 발휘된다. <수퍼배드>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총각 딱지 떼기에 돌입한 세 친구의 모험을 그린 코미디. <40살까지 못해본 남자>의 제작진이 뭉친 이 영화는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미국 개봉 시 호평을 받았다(한국에선 DVD로만 출시됐다). <수퍼배드>에서 그는 여자친구 한번 못 사귀어본 소년 에반으로 출연, 얼뜨기 순진남의 극치를 보여준다.
스무 살의 마이클 세라는 아역배우로 시작해 30여 편의 TV 어린이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거치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다소 촌스러운 외모에 카리스마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한 눈매는 강렬하게 잡아끄는 매력은 덜하나 편안하고 친근하다. “나는 명작을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격한 캐릭터와 신들린 연기로 극찬받기보다 꾸준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영역을 확보한 청년. <익스트림 무비> <더 이어 원> 등 4편의 영화와 드라마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로 예약이 꽉 차 있는 그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바쁜 젊은이다. (정미래 기자)
제이미 벨을 여전히 ‘유망주’ 범주에 묶는다는 건 실례일지 모르겠다.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빌리 엘리어트>(2000)의 발레리노 소년을 대체할 정도의 대표작이 아직까지 그에게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나이 이제 고작 스물 둘. 여전히 젊고 또 어리다. 영국 출신의 제이미 벨이 가장 가능성 충만한 배우인 것은, 스스로도 “빌리 엘리어트가 만든 꼬리표를 전부 떼내고 싶어” 혼신을 기울였던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대변해준다.
신작 <점퍼>는 그가 2000: 1의 경쟁률을 뚫고 ‘빌리 엘리어트’가 된 후 가장 반대편의 얼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함께 연기한 배우 헤이든 크리스텐슨의 말을 빌리면 “제이미 벨이 연기한 그리핀이 진정 호감이 가는 껄렁한 날라리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창조적인 그의 재능 덕”이다. 공간 이동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 그리핀은 지독히 까칠한 외골수처럼 굴다가도 금세 사랑스런 개구쟁이로 변하곤 한다. 광적인 에너지와 코믹함을 적절히 안배한 제이미 벨의 연기는 그가 얼마나 다재다능한 배우인가를 일깨워준다. 조화와 절제의 묘를 확실히 꿰뚫고 있는 명민함!
무엇보다 제이미 벨의 필모그래피에서 눈에 띄는 건 파격적인 인디영화의 타이틀 롤과 블록버스터의 조연 역할, 피터 잭슨(<킹콩>)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아버지의 깃발>)에서 토머스 빈터버그(<디어 웬디>) 혹은 데이빗 맥킨지(<할람 포>) 같은 능력 있는 인디계 작가들까지 두루 섭렵했다는 사실이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소란스러운 할리우드에 있지만, 난 그저 전형적인 영국 남자애로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그의 지론처럼, 치우침 없이 촘촘하게 쌓아온 그의 이력이 밝은 앞날을 점치는 이유다. (유지영 기자 )
꽃다운 뮤지컬 황태자
잭 에프론 Zac Efron
1987년생. 영화 <더비 스탤리언>(2005) <헤어스프레이>(2007), 드라마 <파이어플라이>(2002) <썸머랜드>(2004) <하이 스쿨 뮤지컬>(2006) <하이스트>(2006) <하이 스쿨 뮤지컬 2>(2007)
2006년, 전설적인 TV 영화가 하나 탄생했다. 미국 디즈니채널에서 5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한 <하이 스쿨 뮤지컬>은 첫 방영부터 700만 명 이상이 시청했고, 이후 10회가 넘는 재방송을 통해 무려 3,400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들이며 메가톤급 히트를 쳤다. <하이 스쿨 뮤지컬>은 현재 세 번째 속편이 제작 중일 정도로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TV 시리즈에서 조연으로 경력을 쌓아오던 잭 에프론은 <하이 스쿨 뮤지컬>의 주인공 트로이에 발탁되어 순식간에 완소남으로 등극했다.
농구부 주장과 과학 천재 소녀가 노래를 통해 사랑을 키워간다는 내용으로, 일반적인 청춘영화의 공식이 그대로 적용된 <하이 스쿨 뮤지컬>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이유는 바로 흥겨운 노래와 춤 때문이었다. 발랄한 틴 팝에 힙합, 재즈, 살사 등 다양한 장르를 버무린 음악과 역동적인 안무는 시청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잭 에프론은 ‘폼 잡는 킹카’가 아니라, 노래와 춤으로 소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바람직한 꽃미남’으로서 확실한 입지를 굳혔다. 여세를 몰아 에프론은 아담 쉥크먼 감독의 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에서 코니 콜린스 쇼의 인기스타 링크로 변신, <그리스>의 주인공 대니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합쳐놓은 듯한 캐릭터로 스크린을 공략했다. 오는 10월엔 <하이 스쿨 뮤지컬 3>로 컴백, 또 다시 브라운관을 들썩이게 할 예정이다.
이제까지 영화보다 TV에서의 활약이 돋보였던 잭 에프론에게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신작 <미 앤 오손 웰스>는 분기점이 될 듯하다. 1937년을 배경으로 한 성장영화 <미 앤 오손 웰스>에서 에프론은 오손 웰스 감독의 연극에 캐스팅되어 브로드웨이 스타를 꿈꾸는 주인공으로 분해 여자에게 인기 없고 열등감에 사로잡힌 복잡한 심리를 연기한다. 달콤하기만 한 기존 이미지를 벗은 한 단계 도약을 기대해본다. (정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