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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모심과살림연구소 연구기획위원회
<주제가 있는 이야기 마당>
- 주제: "농업, 먹거리 체계에 대한 자본의 지배 양식“
- 발제: 윤병선(연구기획위원장, 건대)
Ⅰ. 식물과 공장의 이상한 동거1)
대학에 입학해서 몇 학기가 지난 후 접한 농업경제학 수업은 ‘자본’과의 싸움이었다. 농업
경제학 첫 수업부터 농업이라는 말 만큼이나 자본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농업경제학은
자본의 농업지배로 인해서 나타나는 다양한 농업문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농
업문제뿐만 아니라 농민·농촌문제의 해결전망을 제시하는 학문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학부
생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2013년의 절반을 보낸 지금, 지난 6개월 동안 한국
농업현장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실상들은 30여 년 전 농업경제학 수업에서 선생님이 힘 줘
말씀하셨던 ‘자본의 농업지배’가 이제는 형식적인 단계를 이미 넘어서서, 실질적인 포섭이
완성된 단계에 들어섰다는 구체적 증표를 보여주고 있다.
계속되는 자본의 습격
지난 반년동안 우리 농업의 해체와 궤멸을 재촉하는 자본의 음습한 행진은 이러하다. 초
봄이 오기도 전에 대기업의 농업생산 진출시도가 있었다. 그동안 종자를 비롯한 농자재의
생산이나 농산물의 가공·유통에나 진출해 있던 자본들이 직접 농업생산에 뛰어들었고, 이에
농민단체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수출용으로 생산하는 것이기에 국내가격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궁색한 변명이 업체에서 나왔다. 이는 농민단체들의 항의를 단순한 돈의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인격모독에 가까운 변명이었다.
그 후 농산물 유통개혁 이야기가 나왔고, 직
거래가 논의되었고, 대형유통업체의 로컬푸드판매가 언론을 탔다. 농업의 회생과 지역공동체
의 복원을 꾀하기 위해 로컬푸드운동을 전개해 온 농민조직이 대형유통조직들과 한바탕 싸
움을 벌어야 할 상황을 걱정해야 했다. 그리고 5월말에는 바다 건너 미국에서 승인받지 않
은 유전자조작(GM)밀이 자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재배가
금지되어 있는 GM농산물이 여러 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농민들의 손
을 떠난 종자가 이제는 거대종자업체에 의해 유전자가 조작되어 땅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GM종자와 GM농산물에 대한 생산농민과 소비자의 우려와는 전혀 딴판으로 정부조차 GM홍
보에 힘을 보태고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농민단체들이 소비자단체와 연대하여 토종씨앗을
발굴하고 보급·확산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다.
분절을 ‘창조’하는 식물공장
그런데 여기에 식물공장까지 가세하고 있다. 사실 농업과 공장은 전혀 어울리지 않고, 식
1) 한국농어민신문, 2013년 7월 2일자.
물과 공장은 더 그렇다. 농업경제학과 농촌사회학에 ‘공장식 농업(factory farming)’이라는 개
념이 등장하지만, 이 개념은 공장식 축산으로 대표되는 순환의 체계를 무시한 영농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반영한 것이다. 공장식 농업은 한마디로 ‘화학비료와 제초제의 농업’이
고, ‘광우병의 축산’이고, ‘살모넬라균의 축산’이다. 공장식 농업은 규모화를 통한 화폐적 효
율성 제고가 가져온 농생태의 파괴와 단절을 상징하는 개념이다. 생태적 순환의 단절은 단
적으로 먹이사슬의 분리와 괴리로도 나타난다.
식물공장은 먹이사슬 피라미드가 분절된 현
대의 농식품체계에서 피라미드의 가장 밑에 있는 식물마저도 인위적으로 순환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틈을 자본이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영역으로 좀 더 확대하고
자 하는 욕심의 표현에 불과하다.
식물은 건강한 토양에 비와 햇빛만 주어진다면 스스로가 싹을 틔울 수 있고, 자라면서는
뭇 생명들이 필요로 하는 산소를 공급해 주고, 그리고 다 자라서는 스스로를 다른 생명들에
게 남김없이 주는 고마운 생명체다. 이런 식물을 건물 안에서 햇빛 대신 LED로 대신해서 키
우겠다는 발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본의 품속으로 가져가는 가겠다는 욕망에
불과하다. 이 땅 기름진 한반도가 두바이와 같은 사막지대라면 식물공장을 고민할 수도 있
겠다.
한편, 장래에 투입대비 산출의 화폐적 효율이 높아지면 경제적인 사업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서 경제적인 사업이라는 개념에는 오직 화폐만이 존재할 뿐 ‘농’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들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주 초보적 수준의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대한 사고조차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다른 한쪽에서는 식물공장이 여러
과학기술을 융합적으로 활용한 농업의 6차산업화라고 선전한다. 20여 년 전 이마무라(今村
奈良臣)교수는 6차산업화를 제안하면서 그 중심은 ‘농’이라고 이야기 했지만, 식물공장이라
는 6차산업에는 토목건축업과 LED광산업이 그 중심이고 ‘농’은 없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정부가 식물공장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무농약농산물로 인정받도록 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친환경농업육성의 관리·지원을 규정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서 진행되고 있
다. 이는 땅과 농촌과 먹거리를 지키는 친환경농업을 장려하던 시대는 끝나고, 자본이 농업
과 먹거리와 생명의 질서까지 ‘창조’하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식물공장은 자본에
의한 또 다른 지배를 예고하고 있다.
Ⅱ. 질 나쁜 불량식품, 유전자조작농산물2)
지난 30일 미 농무부는 오리건 주의 한 농장에서 제초제 내성을 갖고 있는 인가받지 않
은 유전자조작(GM)밀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했다. 미 농무부의 발표가 있자마자 일본은 오리
건 주에서 재배된 사료용 밀 12만 톤과 과자용 밀 2만 5천 톤의 입찰을 중지하고, 미국으로
부터 수송중인 사료용 밀 11만 톤, 과자용 밀 17만 톤의 매도를 중지하는 조치를 취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미 농무부는 GM밀이 유통되었다는 보고도 없고, 보건복지부의 심
사에서 식품안전상의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와 관계없이 미국의 시민사회단체
들은 GM농산물 전반에 대한 보다 확실한 표시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버몬트, 코네티컷, 뉴욕 등)에서는 몬산토를 비롯한 GM종자를 생산하는 업체들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저항을 반영하여 GM표시제도를 도입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2) 한국농어민신문, 2013년 6월 4일자.
식용 GM곡물의 상업화 음모
과거에 녹색혁명을 주도했던 종자업체 등 거대 농식품복합체들은 GM작물의 개발을 통해
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녹색혁명이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곡물을 놓고 사람과 가축이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 냈고 농생태계의 파괴를 가속화시켰음
에도 불구하고, 이들 거대 농식품복합체들은 이에 대한 반성 없이 또 다른 새로운 거대프로
젝트인 GM작물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GM작
물은 옥수수, 콩, 면화, 유채 등이 대부분이고, 사람들이 직접 식용으로 이용되는 곡물의 상
용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GM작물과 관련한 대부분의 특허를 소
유하고 있는 몬산토를 비롯한 종자업체들은 지난 2007/08년의 지구적 식량위기가 엄습하자
앞으로 10년은 식용곡물의 상업화가 전개될 것으로 호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번의 GM
밀의 유출이 GM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시키고, 이를 계기로 GM밀의 상업화로 연결
하려는 계획 하에 이루어진 의도적 유출이 아닌가하는 의심도 받고 있다.
미국 농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문제의 GM밀의 시험재배는 몬산토가 1998년부터 2005년
까지 오리건 주 이외에도 워싱톤 주, 중서부의 주산지인 캔자스 주와 네브래스카 주 등 모두
16개주에서 실시하였다고 한다. 몬산토가 당시 GM밀의 시험재배를 중단했던 것은 소비자들
과 농민들의 저항이 거셌기 때문이었다. 특히 몬산토의 시험재배 중단은 GM밀의 사회적, 경
제적, 환경적 영향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청원이 주효했다.
그러나
식용 GM밀의 개발에서 한발 물러나는 것처럼 행동했던 몬산토는 지난 2011년에 또 다른 종
류의 GM소맥을 하와이와 노쓰다코다 주에서 시험할 수 있는 새로운 허가를 요청했다. 식용
GM곡물종자 개발계획을 접지 않았고, 접을 의사도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GM종자에 무장해제 당한 한국 농정
이번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미국의 정치인들조차 밀 수확기에 접어들기 전에 신속하게 가
이드라인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몬산토와 같은 종자업체들은 매
년 약 1,000회 이상의 시험재배를 실시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관리 감독은 제대로 이루어지
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회계감사국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6건의 GM작물과 관련한 위법적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 미 의회에서는 이번 사
건의 배경을 조사하고, 확실한 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미 정부가 GM작물에 대한 시험재배
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또한, 몬산토의 GM작물이 농민이 경작하는 작
물을 오염시킬 경우에는 몬산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의 제정이 힘
을 얻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응은 이러한 세계적 움직임과는 완전히 딴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몬산
토는 이번 사태가 일어나자 GM종자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그동안 전개
해 왔던 로비를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국에서는 GMO반대운동가에서 GMO홍보
가로 변신한 영국의 한 환경운동가가 연설하는 세미나에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후원한다고 한고, 수천억 원을 들여서 추진하는 골든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를 통
하여 GM작물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 당장 정부가 해야 할 일은 GM작물로 인
한 일반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있는 구체적인 대응이다. 허술한 정부의 GM 표
시제도에 기대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는 ‘불량식품’이야말로 청산해야 할 ‘4대악’ 중 하
나이다.
Ⅲ. 경제민주화와 로컬푸드3)
지난 대선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단어는 단연 ‘경제민주화’였다. 대선주자들 사이에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거대자본이 시장지배력을 계속 강
화하면서 중소자본을 압박하는 승자독식의 행태는 바로 잡아야 한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
이 없었다.
그 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의 당선되었고, 대선 당시 내세웠던 경제민주화 관
련 주요 대선 공약들이 차근차근 정책으로 시행되기를 많은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
나 현재 그 속도는 매우 지지부진하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부터 발목이 잡혔
고, 대형유통업체로부터 골목상권과 영세상인을 보호하겠다는 법안마저도 쉽게 처리되지 못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형유통업체들이 로컬푸드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하
고 있어서 우려되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우려되는 대자본의 로컬푸드 사업
“첨단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해서 직거래를 늘린다면 복잡한 유통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생각이고, 이에 화답하듯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민부터 소매상까지
6~7단계에 달하는 유통단계를 2~3단계로 대폭 줄이겠다는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방안을 내
놓았다. 여기에 소비자물가도 잡고 농업소득도 올리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농산물직거래가
요즘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 정부가 직거래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방향이 나오자마자 대형
유통업체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로컬푸드’ 도입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실 대형유통업체가 로컬푸드를 전략으로 삼고 시장을 확대하려고 시도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현재처럼 전 방위적으로 추진한 경우는 없었다. 일본에서 ‘지산지소(地産地
消)’가 유통업체의 새로운 유통기법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대형유통업
체의 로컬푸드 도입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운동으로써 로컬푸드운동을 전개해 온 일본과 우리의 상황은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
위기
의 농업과 먹거리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등장했던 유기농업이 대안으로서
의 역할보다는 관행농업화의 길로 들어선 전철을 로컬푸드도 답습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
문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로컬푸드의 취지나 지향점, 가치 등에 대한 고민 없이 단순하게
물리적 거리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훼손되는 로컬푸드의 가치
로컬푸드는 단순히 소비지로부터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먹거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농업과 먹거리를 거대자본이 지배하면서 농업과 농촌, 농민이 망가져버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로컬푸드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 국경을 초월해서
활동하는 자본에 의해서 우리의 식탁은 정체불명의 글로벌푸드에 점령되어 우리의 농업과
식탁이 온전하게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성찰로부터 나온 것이 로컬푸드이다.
생산자(農)와
소비자(食) 사이의 간극을 넓히고, 또 그 넓어진 간극과 괴리된 관계를 이용하여 농업과 먹
거리를 단순히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자본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고자 하는 대안에
서 출발한 것이 로컬푸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아무리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먹거리라 하
더라도, 그것이 이윤을 목적으로 운동하는 거대자본과 거대유통조직에 의해서 주도된다면
3) 한국농어민신문, 2013년 5월 3일자.
그것은 로컬푸드가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경제민주화다. 관행화된 유통체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영세농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내고자 시작한 것이 로컬푸드다. 그리고 이 희망
을 더 확대시켜서 보다 많은 농민들과 소비자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을 깊게 만들어
가는 것이 로컬푸드다.
이런 로컬푸드가 한국 사회에서 뿌리를 내리도 전에 거대유통업체의
사냥터로 만드는 것은 옳지 못하다. 로컬푸드를 매개로 전국의 여러 지역에서 진지한 고민
과 학습을 통해서 농촌의 공동체가 새롭게 태어나고 희망의 밥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에
서 로컬푸드를 또 하나의 블루오션 정도로 인식하는 천박함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경제민주화의 길은 요원하다.
꾸러미사업을 통해서, 그리고 농민시장을 통해서 소비자들
을 각성시켜 온 농민들의 터전이 또 다시 거대자본과 대규모 유통조직의 전유물로 되어 버
린다면 경제민주화 구호는 다음 대선에서도 똑같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첫댓글 농촌의 인구가 줄어들면 마을과 학교가 사라지고, 정부는 대농과 농기업, 대기업 농업진출 등의 농업정책을 말하기 쉬워집니다.
귀농, 귀촌인이 늘어나고 소농, 가족농이 살아야 농촌공동체가 유지되고 도농이 상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귀농,귀촌,귀향인들이 희망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윤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자본이 농업에 눈을 돌렸다니... -_-;;
농자는 천하지 대본인디.....
지놈들이 농사를 지어 봤는가 ???
하는 짓거리가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