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통영] 수줍게 속살 연 ‘동양의 나폴리’
제주 성산포에서 뭍으로 떠나는 배는 설렘 그 자체였다.
13년전 목포에서 제주항으로, 제주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던 K에게는 성산포는 제주도의 부속섬 우도로 향하는 포구 정도로 여겨졌다. 성산포에서 통영으로 가는 뱃길이 처음 열린 것은 그만큼 K에게 낯설었다.
오전부터 성산포 앞바다에는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배가 출발할 쯤에는 폭우로 변해 있었다. 남해에서 일몰을 보겠다는 욕심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배 뒷켠에서 성산 일출봉은 흐리게 몸을 숨겼다. 우도의 우도봉 역시 겨울비에 축축히 젖어 들었다. 선내 방송에서는 “비바람이 거세니 바깥출입을 삼가 달라”는 선장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승객들은 아랑곳 없이 투박한 사투리를 늘어놓거나 화투장을 두들겼다. 선실 앞머리에는 신작 비디오가 상영중이었다.
‘쌔액 쌔액’ 하는 제트기 소리에 문득 정신이 든 것은 배가 출발한지 30분 뒤였다. 먼바다의 파도는 뭍으로 떠나는 배의 옆구리를 할퀴며 새로운 뱃길에 생채기를 냈다. 파고의 높이는 4m. 3000t급 여객선에게도 큰 파도는 무서운 것이었다. 거칠게 흔들렸고 항로까지 수정됐다. Y는 남은 것 없이 토악질을 해댔다.
지난 2일 첫 출항한 카페리호에는 여러 사연들이 어깨를 기댔다. 누군가는 큼지막한 사진기를 들고 분주하게 셔터를 눌러냈고 긴턱수염에 시인이라는 또 누군가는 노트에 펜을 쉼없이 긁적거렸다.
바람이 거셀수록 남해의 밤바다를 가르는 것은 신비로웠다. 전등을 줄줄이 매단 고깃배가 뿜어내는 불빛에 바다는 검푸른 빛을 띠었다. 백도,거문도를 지나자 회백색의 섬들로 이뤄진 한려수도가 속살을 드러내며 음흉한 형체로 뱃전을 스쳐지났다. 4시간을 꼬박 채운 뒤 배는 통영에 접어들었다.
“통영이 좋다.” K는 통영만의 정갈한 불빛을 바라보며 한 마디했다. 빈 배들이 쉬고 있는 여객선 터미널의 초록빛 전구들은 작은 항구 도시의 멋스런 야경을 만들어냈다. 통영운하를 가로지르는 통영대교는 196개의 럭비공같은 전구를 바다에 수놓았고 남망산 국제조각공원과 어우러진 강구안 포구는 아늑했다.
동양의 나폴리. 누군가 통영을 그렇게 불렀다. 겨울 바람은 기억의 편린이 되어 얼굴을 스쳐지났다. 바람 부는 통영의 밤은 추억을 되새기며 담배 한 모금 삼키기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폴리’의 새벽은 달랐다. 다도해가 둘러 보이는 미륵도. 그 앞바다에는 숱한 배들이 지나며 새벽 흔적을 남겼다.
일행은 운좋게 보트를 빌렸다. 밤새 비가 흩뿌렸지만 한산섬과 비진도로 향하는 뱃길까지 막힌 것은 아니었다. “충무공 이순신이 본영을 설치했던 한산섬에는 제승당 충무사 수루 등이 남아 있다.” “비진도의 개미허리 같은 해안은 안쪽은 모래사장 바깥쪽은 자갈로 돼 있다.” 통영의 섬들은 듣던 대로의 모습을 지녔다. 일행을 넉넉하게 했던 건. 배위에서 먹었던 충무 김밥(3,000원), 비진도 고깃배위 즉석 뽈낙 회 한 접시(3만원)와 소주 한 잔.
섬과 바다, 야경이 어우러진 통영. 제주 성산포에서 그 통영을 오가는 뱃길은 시원한 바람과 볼거리,잔잔한 얘기들이 담겨 있어 좋다. 임오년의 끝무렵, 떠남이 아름다운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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