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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사 산수유 꽃!
산 속 개울가엔 아직도 춘빙이 겨울을 떠나기가 아쉬운 듯 응달진 돌짝 밑에 숨어있는데
차가운 한풍에 움추렸던 나목의 가지들은 침울했던 겨우살이에서 살아있었음을 노래하며 봄을 기별하는 손짓들이 분주합니다.
지상에서의 복음사역엔 겨울같은 날들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새 생명을 노래할 그날이 있기에 ......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의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반구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 2:10-13
봄은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새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입니다.
삶과 죽음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진리의 계절입니다.
혹독한 겨우살이에서 살아남은 가지는 환희와 축복의 노래를 부르는 계절이요
겨울나기를 이기지 못하고 죽은 가지는 오히려 썩음과 소멸이 촉급해지는 계절입니다.
또한 계절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멧세지가 풍성한 계절입니다.
이 복되고 아름다운 계절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HCFK 모든 동역 자님들에게 넘치시기를 바라며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 편지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병원선교동역자 여러분께
그간 주안에서 평안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지난번 편지에는 한국병원선교회의 지난역사에 대해 제가 알고, 보고, 동참했던 한계내에서 사실대로 진술을 했습니다
앞서 드린 글에 약속한 대로 오늘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선교회의 지난 역사 속에 아름답게 동역했던 분들을 소개하고 황찬규 목사 귀국과 지금까지의 사역에 대해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고 앞으로의 전망과 글로벌 시 대를 위한 대안 제시를 해 보겠습니다.
아름다운 동역자들
역사는 사람들이 남긴 지나온 발자국들이라 할 수 있다.
한국병원선교회의 역사도 수많은 동역자들이 함께 걸어온 발자국이다. 제가 알기로는 초창기부터 함께 아름다운 동역을 하신 분들이 많다.
오래 동안 이사로 동참해 주셨던 고 방순원 장로(대법관), 김정재 장로(경희대 한방대 학장), 신자현 장로(노량진), 노량진 이 외과 원장(성함?)등. 이분들은 훌륭하신 우리의 후견인으로 여러 면에 오랫동안 수고해주셨다.
또한 직접 함께 사역에 동참하면서 사역자로 뛰었던 홍기득 장로(초창기-심한 갈등관계로 이탈), 이준규 간사, 강영기 간사(현 진토리교회 담임)김 효곤 간사(목사 개인전도훈련원), 김가일 간사, 김영출 목사 등 이분들은 무너지기 전 황찬규 목사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병원선교회 기초를 다진 분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중 김효곤, 김가일, 강영기, 이준규 네 분은 1976년도 회관 건축공사가 시작되기 얼마 전 또는 직전까지 함께 섬겼던 분들이다.
그 밖에도 의료인으로 오상백 박사, 정사영 박사, 김명호 박사, 이춘애 간호과장(서울시립정신병원), 김영숙 간호과장(부산대 병원), 정병석 간호사(서기관-부산시청), 이정숙 간호과장(서울시립아동병원)....등.
병원원목으로 원호병원 원목(이름?), 김용순목사(경희의료원), 유덕용 목사(소록도), 안국선 목사(마산결핵병원), 홍명신 전도사(국립의료원), 이기옥전도사(갈등관계로 마침), 엄희섭 전도사(경찰병원), 김정순 전도사(경희의료원).... 등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몸으로 물질로 최선의 헌신을 했던 어린 간호학생, 간호사 회원들과 당시 정부시책에 따라 독일로 간 재독 간호사 회원들.....
재독간호사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서독지부(지부장 김근철-현 목사)와 영국지부 (최봉근 박사)......등 해외에서의 동역 활동도 눈물겨운 헌신과 불같은 사명감으로 사역이 활발했다. (회관건축재정의 약 60% 헌금) 김종양 선교사가 이 시기 고달픈 해외생활(광산노무)에서 우리 간호사 회원에 이끌려 주님을 영접하고 오늘의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다.
건축이 완공된 후 김원기 간사, 최은종 간사(현제 미국)등은 회관에서 제자훈련 등 열심히 섬기며 독일로 가게 될 간호사 사역자들을 양육했다. (현제 미국거주)
기억력의 한계로 다 기록 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기억된 동역자 외에도 배후에서 물질과 관심깊은 기도와 봉사활동 등으로 함께 섬겼던 분들은 간호계 회원만도 2백명이 훨씬 넘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동역자들은 황찬규 목사의 미국이주 후 어떤 분은 제길 찾아 떠나고, 무너지고, 동역자 관계까지 깨어지기도 하면서 풍비박산 되었고 한국병원선교회의 역사는 한국교회와 원목협회로부터 온갖 의심과 오명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사망의 세월 10년, 재건의 싹을 틔우고 성장하기 10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황찬규 목사의 귀국과 현재의 사역
재건 후 사역이 정상궤도에 들어서고 정기행사(신년기도회, 하기수양회 등)와 원칙과 규정있는 사역(이사회, 정기총회)이 진행되면서 미국에 있는 황 목사를 몇 차례 강사로 초빙하여 말씀과 교제를 다시 이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사회에서는 황목사를 다시 Comeback 시키자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문제에 대해 이사회에서 첫 거론을 제가 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저의 생각은 지역교회의 담임목사 청빙절차처럼 정식청빙 형식을 갖춰 과거 우리사역을 협력하고 동역했던 한국교회 원로들과 원목협회회원들을 모시고 공식 위임예배를 드리고 그 자리에서 과거의 잘못을 진솔히 회개하고 용서와 새로운 협력을 부탁하는 기회를 가지므로 과거의 오점을 씻고 새롭게 회복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 후 두어 차례 그 문제에 대해 거론이 있었으나 적극적 논의가 이루어지지는 못했고 미결사항으로 있는 중 어느 날 갑자기 황 목사가 나타나셨는데 미국의 교회사역을 접고 울산지부를 섬기기 위해 완전귀국 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울산지부는 부산경남지부의 울산캠프로 사역 중(95.2.1~97.11.3) 울산교회 박 두욱 목사의 교회은퇴와 동시에 저의 권유을 받아드려 부산경남지부 울산캠프동역으로 이어졌다가 얼마 후 지부로 독립(97.11.3 )하여 박 목사가 지부장으로(총무 박상경 목사, 간사 손한나 전도사) 섬기다가 2년후(?)소천하셨다.
그의 뒤를 이어 울산교회 후임으로 오신 정근두 목사가 지부장으로 승계하여 섬기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울산지부 간사로 섬기던 손한나 전도사가 박목사와 일할 때보다 큰 교회를 막 부임해 온 정 목사와의 동역에서 여러부분(시간, 관심 등) 부족과 불편을 느끼며 갈등을 겪고 있어 제가 여러차례 갈등 해소를 위해 손전도사와 정목사 사이를 오가며 상의하고 조율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손 전도사는 해외이주를 희망하게 되었고 그 문제를 미국에 있는 황 목사께 상의했고 한국 본부에서 정식 파송해 줄 것을 제게 타진해 왔으나 한국본부가 그럴 형편이나 처지가 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손 전도사가 제게 미국의 황목사를 울산 지부장으로 모시자는 제안을 해 와서 갑작스런 제안에 의아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미 황.손 두 사람 간에 개인적인 대화가 진전된 결과 도리어 황 목사가 울산 지부를 섬기려고 귀국 한 것임을 조금 뒤에 알게 되었다.
공식적인 논의나 절차도 무시하고 책임있는 어떤 맴버에게 사전 상의도 없이 어처구니없는 일처리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게다가 본회에서 공식 지부장 취임예배까지 드린 지부장이 현임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언반구 상의도 없이 그 자리를 논하는 것은 사역윤리의 모양새도 ........ 그래서 저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어 적극 반대하였고 본인에게도 선명하게 경우도 예의도 아님을 천명했었다. 그 과정에서 상심된 손 전도사는 정상사역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하여 여러문제를 유발하다가 결국 퇴임하게 되었고 적잖은 아픔들이 있었다.
안타깝지만 그 문제로 황 목사 본인도 상당한 고민과 심리적 변화로 인해 소화기 장애로 고생하기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쨋던 그 후에 명예회장으로 현제까지 머물러 있으면서 신상철 회장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상태이다.
세계대회 유치와 사람을 감복시키는 여러 부분 황목사의 특별한 달란트와 열정은 귀한 것이다. 그러나 복음사역에 은혜와 말씀이 중요하지만 하나의 신앙공동체로서 세상에 존재함에는 조직적 질서와 일의 체계도 반드시 필요하고 그것 없이는 건전한 공동체는 절대 불가하다. 황목사와 한국병원선교회는 그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고 지금도 그 여파가 이렇게 잔존해 있다.
그래서 황목사와 우리 모두는 공동체적으로 그 경험을 깊이깊이 새기고, “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자”고 애걸하는 작은 한 동역자의 권유에 귀 좀 기우려 하나님으로부터 막중한 사명으로 받은 병원선교사역과 공동체의 먼 장래를 생각하고 거친 태풍과 비바람에도 끄떡없이 제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뿌리 깊은 나무로 한국병원선교회를 세워가기를 소원하고 당부한다.
황목사 귀국 후 전국에서 겨우 한곳 지부로 개척한 공주지부의 경우 그 요란했던 발족 때와 오늘, 이름도 없어진지 오래고 이제는 관계도 관심도 없어졌다. 전남.북지부, 울산지부, 서부경남지부 등 여타 지부들도 더 축소되거나 나약해졌다.
세계대회 유치 후 서울지부가 발족되어 다행이긴 하나 수년이 지났지만 사역활성화는 미흡한 상태같고 그나마도 본회의 뿌리에서 난 약한 순에 불과하지 않는가 싶다.
사역자 역시 본회임원, 이사를 빼면 정규 또는 전담사역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사역형태 역시 체계적인 상근사역을 이루지는 못한 상태에서 지역교회 회원들의 보조사역과 함께 파트사역이 아닌가 싶다. (잘못 과소평가라면 용서를 빈다)
본회로서도 회지발간상황, 사역자 간 사역과 기도의 네트웍 상태, 재정운용의 공개성과 선명성.......등등 우리 선교회가 50세가 넘은 연륜에는 아직도 너무 어린 모습이 역역하다.
한때 활발한 추진을 하는 듯 했던 일본, 북한에 대해서도 요즘 뜸해지는 느낌이다.
2년전 부산에서 열린 한국원목협회에 황목사가 잠시 들러 회중 앞에 인사말을 할 때 북한에 병원설립계획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혹시 그곳에 원목사역희망자가 있으면 지금 지원신청을 하라는 광고를 하시고 훌쩍 떠나셨다. 그 뒤 저는 몇몇 원목회원의 질문공세에 영문도 모르는 일이라 난처했던 일이 있었다.
지난해 필립핀 대회!!! 한국병원선교회 활동이 대단했다. 인정하고 감사한다. 그러나 국제본부의 뿌리깊은 역사적 흐름, 진지하고 일관된 운영과 사역에 비교해 본다면 결코 우리스스로 자긍하기엔 이르다.
저는 1년의 국제본부 전담사역자 연수과정에서 그림회장 부부는 물론 보드맴버들, 각나라 지도자들로부터 사역에 대한 진지함과 일관성, 공동체에 대한 신앙적 먼 안목, 사전 계획성
등을 강의와 그들의 모임(회의 등)들을 통해 유심히 보고 들으며 배웠다.
우리 내면의 모습, 사역의 내면들을 하나님 앞에 진지하고 진솔하게 벌거벗은 양 살펴보면 좋겠다. 무대위의 연기자도 중요하지만 연출자는 더욱 중요하다. 진정한 복음선교의 연출자를 키우고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내 자리를 지키는 강한 주인의식이 투철한 헌신자들을 세워가기에 심혈을 기울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가지가 담을 넘으려면 뿌리와 줄기가 얼마간 든든히 자라야 하듯 용두사미의 (전시성) 사역이 되지 않도록 기초와 내실을 먼저 좀 다지는 작업이 우리공동체 지도자 그룹에서 진지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지난 70년대 후반 우리가 무너진 요인과 문제점은 두 가지였다고 저는 확신한다.
첫째는 원칙과 체계를 갖춘 조직과 행정시스템 없이 무계획적인 사역형태
둘째는 지나친 1인 주도적 사역운영으로 인한 철저한 주인의식을 가진 사역자(헌신자)가 양 성되지 못한 점
어울려 함께 일했으나 진정한 동역자가 없었고 세우지도 못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동역자들 중에는 자기욕심에 끌려 문제를 일으킨 분도 몇몇 있었지만 영원한 동역자로 함께 섬길만한 참으로 훌륭하고 사명에 뜨거운 분들도 적지 않았다. 지금의 그분들 사역이 증거한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사역이 활발하고 영성이 강화되었던가, 병원을 순회하며 예배와 성경공부, 사흘이 멀다하게 기도원 철야기도, 금식기도, 회관에서의 그룹별 성경공부, 병원들 특별행사, 의료봉사 등등.
이것들이 빛을 보지 못한 원인이 바로 위의 두 가지이다 (물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뜻에 돌린다면 할 말은 없다.)
이 점은 제가 황목사 가족의 완전 미국이주 얼마 후 무너진 소식을 부산에서 듣고 너무 허탈한 마음 때문에 두 번 만나 뵈었던 고 방 순원 장로님(대법관)으로부터 간사로 일했다는 이유로 강한 질책을 받았던 문제이기도하다.
어떤 법적근거가 될 만한 회의록 한 장도 없고 제가 심혈을 기울려 복식장부로 관리했던 재정장부나 건축에 관한 문서등 사임할 때 넘겨준 것들까지 깡그리 없어졌던 것이다.
이런 문제는 누가 어떤 나쁜 의도를 가지고 했다기 보다 평소에 습관화 된 즉흥적이고 무책임적인 사역스타일의 결과라고 본다.
한국병원선교회가 그렇게 무너진 후 그림회장과 크리스탠리가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기 위해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하여 김명호 박사와 함께 방순원 장로를 만났다. 그때 그들은 황목사가 대적들에게 쫒겨 난 것으로 알고 대화를 하는 중 방순원 장로가 크리스에게 크게 노하여 호통을 쳤다고 들었다.
저도 1년의 화란 연수과정에서 그들로부터 황목사를 대적한 자들에 대한 좋지 못한 언급을
몇 차례 듣곤 했다.
지금도 국제본부와 해외 동역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도 놀란다고 했던가. 저는 참으로 염려되는 것이 또 다시 한국병원선교회가 무주공산 상태가 올까 염려다.(믿음 없는 소치인가???)
이제는 과거 형태의 치명적 과오는 되풀이 할 확률이 적어졌다고 보지만 현제 리더그룹의 나이로(노년층)인한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후대사역이 견고한 터 위에 정상적인 궤도를 달려가도록 위해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앞장서서 현장을 뛰기보다 든든히 뒤를 받쳐주는 작업을 할 때라고 생각된다.
현제의 주도적 맴버들은 노년에 들어선지가 오래다. “겨울날씨와 노인기력은 못 믿는다” 는
말이 있다.
정말 우리가 병원선교의 소명과 사명을 가졌다면 한번 깊히 한 마음으로 상고해 보기를 원하여 우리의 후대 사역과 글로벌 시대를 위한 실제적인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우리의 든든한 후대사역과 글로벌 시대을 위한 제안
(이 제안들에 대한 논의를 위해 우선적으로 회장단, 이사회, 지부장단이 함께 진지한 모임을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에 소집하기를 제안한다)
1) 과거의 오점을 말끔히 씻어내어 내적갈등을 해소하고 외적 질시와 의혹들로부터 신뢰와 공신력을 회복하자.
2) 회의(총회, 이사회 등등)를 다시 정상으로 회복하여 모든 공동체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 고 공유하도록 하자.
3) 후대의 사역계승을 위해 인재발굴과 양성, 체계적인 사역시스템구축(행정, 재정, 조직 등)을 적극 추진하여 정말 뿌리가 튼튼한 하나님의 선교기관으로 세워가자.
4) 사역자 교육, 훈련에 관한 규정을 정하고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행하도록 하자.
(일반회원과 사역자를 구분하여)
5) 역사(연혁)을 정리하여 사역의 흐름과 내용들을 문서로 남겨가자.
6) 중요 임원(이사, 회장단)의 선임 규정을 만들고 지역 안배를 균등히 하자.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장황한 글을 두 차례에 걸쳐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역자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가 황목사님과의 만남과 동역자로 섬겨오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그로부터 받은 물심양면의 도움과 사랑은 헤아릴 수도, 잊을 수도 없습니다.
만일 문제제기가 단순한 개인적 인간관계나 감정적 대립으로 생각한다면 배은망덕한 자입니다.
그러나 그런 오해와 부득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양심과 신앙으로 단언 하지만 지금까지 제가 문제를 제기하고 권유와 제안을 드리는 것은 한국병원선교회라는 하나님사역의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주께로부터 위탁받은 사역을 위한 공적사안에 대한 입장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지난 역사 속에서 실제적이고 경험적으로 당한 사건과 교훈을 가진 저로서는 하지 않으면 안 될 숙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동안 문제제기에 있어 저의 인격적 부득으로 적절치 못한 표현이나 내용전달의 잘못으로 인해 개인적인 상처와 공동체적 우를 끼친 부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용서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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