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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은혜로 충성을 다하는 구주의 청지기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3:11).(9T 245) 청지기직을 충실히 이행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는 주님의 도우심에 부응하여 충성된 청지기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진리를 세상의 모든 지역으로 전파해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의 많은 이가 하나님으로부터 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선포하신 그대로 그들에게 집행하실 것이다.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풍성한 축복을,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내리실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 진리의 기별을 가진 모든 이는 경고와 교육과 견책을 통해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을 향한 도적질로서 범법자에게 저주를 의미한다.(ChL 71.1) 세상은 세상의 것들, 곧 사업, 세속적인 명예, 과시, 이기적인 만족을 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그분으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이 마력(魔力:욕심과 미혹의 죄악)을 깨뜨리기 위해 노력하신다.
그분께서는 사단이 자기의 그림자로 가리어 버리고자 노력해 온, 미래의 세계로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시고자 애쓰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세상을 인간의 시계(視界:가시권) 안으로 가져 오셔서 저들 앞에 그 아름다움을 보여 주신다. 그리고 그분께서 저들을 위하여 거할 곳을 준비하면 다시 와서 저들을 당신께로 영접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육욕적인 것에 대한 무절제한 사랑이 마음을 채워서 하나님의 사랑과 하늘에 대한 소망이 마음에서 쫓겨나게 하는 것이 사단의 계략이다.... (FW 92.1)
집 주인이 청지기들에게 맡긴 달란트를 확인하기 위하여 돌아와 그들을 부른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신다!
박수갈채와 함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25:23)라는 음성으로 환영 받는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자신의 능력과 재산을 개발시킴으로 잘 해낼 것이다. 누가 주님을 도울 자로 나아갈 것인가? 누가 강한 세력에 대항하여 주님의 도우미로 설 것인가? (BLJ 80.4)
모든 충성된 청지기는 자기의 헌금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대신, 주의 창고에 드리는 헌금의 분량을 증가시키는 일에, 얼마나 더 많은 열성을 나타낼 것인가? 그는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그는 누구를 위하여 헌금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것은 그가 누리고 있는 모든 좋은 것을, 공급해 주시는 분을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있는 우리 중에, 한 사람도 천사들이 우리를 부끄러워하고, 예수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게 될 근거를 만들지 말게 하라.(CS 200.1)
이러한 빛과 진리의 말씀을 앞에 놓고서,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그같이 명백한 의무를, 등한히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주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은 현세의 사물과, 영적사물의 축복을 뜻하고 불순종은 저주를 뜻하는 때에,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는 말인가?
사단은 파괴자이다. 하나님은 충성된 청지기 노릇하기를 거절하는 이들을, 축복하실 수가 없으시다. 사단으로 그 파괴하는 일을 이루도록 허용하는 것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전부이다.
우리는 그 정도가 다른 여러 형태의 재난들이, 땅에 임하는 것을 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주님의 제어하시는 능력이, 역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같이 살아간다. ‘노아’의 때의 주민들처럼 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조차 거절한다. 악이 놀라울 정도로 팽배하고 땅[이 세상]은 추수[심판의 형벌초래]를 위해서 무르익고 있다.(3TT 39.2)
구주께서는 반복해서 말씀하신다.“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 (마19:30).
예수께서는 그분의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보상을 열망하거나 그들이 행한 모든 것에 대하여, 보수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말기를 원하신다. 주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기를 원하신다. 이는 주께서는 사람이 보는 것과 달리 보시기 때문이다. 그는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그 마음의 신실성[진실성]으로 사람을 평가하신다.(CS 339.1)
주께서는 그분의 일꾼들의 완전한 명세서를 갖고 계시며, 성경역사에서 그는 소수의 믿음의 명장들의 이름을 우리에게 소개하신다. 충성된 청지기들 가운데는 ‘아브라함,’ ‘요셉’, ‘모세’, ‘엘리야’, ‘다니엘’, ‘느헤미야’, ‘요한’과 ‘바울’이 있다.... 주의 포도원에서 일꾼들은 모든 세대의 선한 모본으로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천사들의 봉사와, 예수님의 동정과 그들의 기쁨의 면류관에 별들로서, 영원히 빛나게 할 고귀한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소망을 갖도록 격려해야 한다.(SD 279.4)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는, 우리를 교훈하시기 위한 것임을 나는 또한 보았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눅16:9).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재물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하늘에 우리의 보물을 쌓는 자가 되며, 지상의 소유가 모두 사라질 때 충성된 청지기는, 예수님과 천사들을 그의 친구로 삼을 수 있을 것이요, 그들은 그를 영원한 처소로 영접할 것이다. (1TT 69.1)
건강생활의 원칙을 가르침— 복음 사역자들은 또한 건강생활의 원칙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도처[여러 곳]에 질병이 만연하고 있는데, 그 증거의 대부분의 질병은 건강법칙에 유의했을 것 같으면, 예방될 수 있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이생과 내세를 위하여 저희 행복에 미치는, 건강원칙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저들은 창조주께서 당시의 거처로 만드신, 인체에 대한 책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저들이 저들의 몸에 대하여, 충성된 청지기가 되기를 바라신다.(Ev 525.3)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라는 말 속에는, 많은 의미가 숨어 있다. 그것은 은사와 예물을 계속적으로,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설비를 갖추어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께서 위탁하신 자금을 맡은 충성된 청지기가, 만사에 흡족하게 공급을 받아, 모든 선한 일에 넘쳐날 수 있게 하신다.(TM 424.1)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는 조건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을 위한 사람이 되어, 충성된 그리스도의 은혜의 청지기로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일하기로, 주님께 굳게 서약하였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전(贖錢:죄의 값)을 지불하신 주님을 위해 마음과 영혼과 몸의, 모든 힘을 바치기로 약속하였다. 우리는 군사가 되어 적극적으로 봉사하며, 시련과 치욕과 수치를 견디고, 우리의 구원의 대장되시는 분을 따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로 한 사람들이다.(Ev 618.2)
청지기직을 충실히 이행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는 주님의 도우심에 부응하여, 충성된 청지기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진리를 세상의 모든 지역으로 전파해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의 많은 이가 하나님으로부터 십일조와, 헌물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선포하신 그대로 그들에게 집행하실 것이다.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풍성한 축복을,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내리실 것이다. 우리교회에서 진리의 기별을 가진 모든 이는, 경고와 교육과 견책을 통해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의무를 게을리 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을 향한 도적질로서, 범법자에게 저주를 의미한다.(ChL 71.1) 모두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요구들이, 다른 모든 요구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풍성하게 주시며, 그분께서 인간과 맺은 계약은, 소유의 십 분지 일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청지기들에게, 그분의 보물을 은혜로 맡기셨다.
그러나 그 십 분지 일에 관하여 그분은 말씀하신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맡기신 소유물에 비례해서, 사람은 그의 모든 소유의 충성된 십일조를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이 분명한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만드셨다.(6T 384.2)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눅16:5). 그것은 말할 수가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소유물에 손을 얹으시고 말씀하신다. “나는 온 우주의 정당한 소유주이다. 이것들은 나의 소유물이다. 십일조와 헌물을 내게 바치라. 그대들이 이 구별된 소유물을 나의 주권에 대한 충성과 순종의 표로 가지고 올 때 나의 축복이 그대들의 물질을 증가시켜 줄 것이고, 그대들은 풍성하게 소유하게 될 것이다.”(9T 245.2)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믿노라고 주장하는, 모든 영혼을 시험하고 계신다. 모든 사람에게는 달란트가 주어져 있다. 주께서는 사람들에게 장사하도록, 그분의 재산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그분의 청지기로 삼으시고, 그들의 소유로 돈과 집과 토지를 주셨다.
이 모든 것들은 주님의 소유물로 간주되고,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주님의 소유물을 가지고 장사하면서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위탁물을 우리의 영광을 위해서나 이기적인 충동에 탐닉되도록 사용하지 않기 위해, 그분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맡겨진 양은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작은 선물을 받은 자들은, 그들의 달란트나 재물이 적다는 이유로 ,그것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9T 245.3)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재산을 맡은 청지기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우리는 극히 작은 분량도 하나님께 도적질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9T 246.1)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대표자이다.
그는 거룩한 은혜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는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하나님의 진리의 살아있는 편지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들이라고 결정지을 수 있는,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법칙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20)이다.... (RC 379.4)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죄인들의 각성과 회개를 위하여, 크게 역사하고자 하신다. 그러나 그분의 거룩한 계획에 의거하여, 그 사업은 그분의 교회의 기구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교인들이 그분에게서 너무 멀리 떠나버렸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그분의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분께서는 수단을 통하여 일을 하기로 택하신다. 그러므로 사용되는 수단은, 그분의 품성과 조화되는 것이어야 한다.(5T 189.3)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성령의 선물 중에는, 하늘의 풍성한 능력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사람에게로 흘러내리지 않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제한하시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받고자 하면 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저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귀한 은혜와, 그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이 세상에 나누어질 수 있는, 산 통로가 될 특권을 가졌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그분의 영[성령]과, 품성을 대표할 자들을 가장 크게 원하신다.
사람을 통하여 구주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보다 더 절실한 요구는 없다. 온 하늘은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과 축복이 될, 거룩한 기름을 부어 줄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할,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RC 134.2)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피를, 값으로 치르고 우리를 사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돈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보배를 붙들기만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로 우리의 것이 된다.(9T 245.1)
복음사업의 지원- 성경에 의하여 주께 속한 것으로 구별해 놓은 것은, 복음의 재원(財源:거룩한 선교사업 근본재물)을 이루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이 세속적인 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하나님의 금고에서 취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바로 신성모독(神聖冒瀆: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그분의 제단에서, 전환시키므로 실수를 범해 왔다. 모든 사람은 이 문제를 올바른 빛 가운데서 존중해야 한다. 어떤 사람도 곤궁한 처지에 빠질 때, 종교적인 목적으로 바쳐진 돈을 자신의 편리를 위해 사용하면서, 미래의 어느 때엔가 돌려 줄 것이라는 말로 ,자기의 양심을 진정시켜서는 안 된다.
주님의 돈을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수입에 맞게 지출을 줄이고, 필요를 제한하고, 자금의 범위 안에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좋다.(9T 246.5) 십일조의 용도-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의 용도에 대하여 특별한 지시를 하셨다. 그분께서는 자금의 부족 때문에, 그분의 사업이 약해지도록 계획하지 않으신다.
아무렇게나 사업을 하지 않고, 또한 실수하는 일도 없도록 그분께서는, 이 점들에 관해서 우리의 의무를 매우 분명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위하여 남겨두신 부분은, 그분께서 명백하게 지정해 주신 것 외의, 다른 목적으로 전환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십일조를 자신의 판단에 따라서, 사용하고자 보류해 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사업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경우에도 그들은, 그것을 어떤 비상사태에 스스로를 위해 사용해서도 안 되고, 그들이 합당하다고 여기는 대로 유용해서도 안 된다.(9T 247.1)
십일조의 특수한 제도는 하나님의 율법과 같이, 계속될 원칙 위에 세워졌다. 이 십일조 제도는 유대인에게 축복이 되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제도를 그들에게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세상 끝 날까지 그 제도를, 실천하는 자들에게도 역시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조직적인 자선의 계획을, 자신을 부요케 하시려고 세우신 것이 아니요, 인간에게 큰 축복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세우신 것이다. 그는 이 자선의 제도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아셨다.(CS 67.3)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청지기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일에 정확하기를 바라신다. 그들은 인간 대리자인 자신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시간이나, 방법대로 어떤 자선 행위를 하거나 어떤 선물이나 어떤 헌물을 함으로써, 주님의 계획을 상쇄(相殺:서로 반대된 영향으로 해치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계획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이런 저런 경우에 따라 그들의 선한 동기를, 평균치보다 올려서 하나님의 요구에 반대되게 그것들을, 상쇄하는 미봉책을 고안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가련한 책략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 자신의 계획에, 그들의 영향을 발휘하도록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계획을 알려 주셨다. 그러므로 그분과 협력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은, 그것을 개선하고자 모험하는 대신에 이 계획을 실천해야 한다.(9T 248.1)
우리 백성들을 위하여 매우 분명하고, 명백한 기별이 내게 주어졌다. 나는 그들이 비록 그들 스스로에게는 선한 일이지만, 주께서 십일조가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목적이 아닌 여러 가지 목적에, 십일조를 사용하므로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말해 주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렇게 십일조를 사용하는 자들은 주님의 계획에서 떠나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이다.(9T 248.3)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학교의 사업에,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다. 또 어떤 사람들은 권서원(勸書員:종교서적 판매인)들과 문서전도자들이, 십일조에서 부양을 받아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러나 십일조가 사용되어야 할 목적, 곧 목사들을 부양하는 목적에서 일탈될 때,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오늘날 한 사람밖에 없는 일터에 자격을 잘 갖춘 일꾼이 일백 명 있어야 한다.(9T 248.4)
엄숙한 책임- 십일조는 하나님에 의하여, 그분 자신을 위해 거룩하게 간수된다. 그것은 그분의 금고에 들어가서 사업에 임하고 있는 복음의 일꾼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십일조가 하나님께 속한 부분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주께서는 오랫동안 도적질을 당해 오셨다.(9T 249.1) 어떤 사람들은 불만을 품어오던 중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십일조를 바치지 않을 것이다. 사업의 중심부에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신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의 처리가 옳지 않다는 이유로, 그대들이 하나님께 도적질을 하겠는가? 그대들의 불평을 솔직하고 공공연하게, 올바른 정신으로 당사자들에게 말하라. 일을 바로잡고 질서 있게 해 달라는 간청을 하라. 그러나 하나님의 사업에서 물러서지는 말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바르게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대들의 불성실이 입증되지 않게 하라.(9T 249.2)
‘말라기서’ 3장을 주의 깊이 읽고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아보라.
만일 우리의 교회들이 주님의 말씀 위에 서서, 십일조를 그분의 금고에 드리는 데 성실할 것 같으면, 더 많은 일꾼들이 목회사업에 임하도록, 격려를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고갈된 금고에 대해서 듣지 않았을 것 같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목회사업에 헌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이기적인 마음들과 손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억제해 두지 않았거나 십일조를 다른 분야의 사업을 돕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을 것 같으면 주님의 금고에는, 풍성한 공급이 있었을 것이고, 사실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9T 249.3)
하나님의 보유된 자원은 그와 같이, 아무렇게나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참견하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의 하늘보화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십일조가 주께서 가야 할 것으로 말씀하신 한 길 외에, 다른 여러 길로 전환되므로 사업이 더 이상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다른 분야의 사업을 위한, 준비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들이 지원을 받아야 하되, 십일조로부터 받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셨다. 십일조는 여전히 목회자의 부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새 지역의 개척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상의 목회적인 효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금고에는 자금이 있어야 한다. (9T 249.4)
목사로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이상하게도 등한히 여겨지고 있는, 하나의 엄숙한 책임이 지워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하기는 좋아하지만, 교회들에 대해 개인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대한 책임과 의무에 관한 교훈, 특별히 정직하게 십일조를 내는 일에 관한 교훈이 크게 필요하다.
우리의 목사들이 그들의 활동에 대한 보수를, 즉시 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곳간에 일꾼들을, 유지할 양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인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성실하도록 백성들을 교육시키는 전반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금고에는 주님의 사업을 추진시키기 위한, 자금이 고갈될 것이다.(9T 250.1)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감독은 자신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이 일이 그에게 달갑지 않다는 이유로 그것을, 다른 어떤 사람이 하도록 맡기겠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그는 충성된 교역자가 아니다. 그는 ‘말라기서’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 일을 하나님께 대한, 도적질이라고 백성을 책망하는 주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3:9)고 말하신다.
말씀과 교훈으로 봉사하는 자가, 백성들에게 이 저주가 초래되는 길을 그들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들에게 교훈하고 경고하는 의무를, 등한히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교인은 정직한 십일조를 내는 데, 성실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9T 250.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9T 251.1)
나는 나의 형제들이 셋째천사의 기별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과 참 안식일의 준수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섬기지 않는 자들을 구별하는 표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 잠들어서 무관심하게 되어 있는 자들을 깨우도록 하자.
우리는 거룩하게 되라는 부름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두드러진 특성들을 간직하든지 않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과거에 취해 온 것보다 한층 더, 진리와 의를 위해 결정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귀중한 책임이 지워져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지키지 않는 자들을 구분하는 선은, 틀림없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축복, 참으로 혹독하게 시험을 받아야 하는 한 백성에게, 그처럼 필수적인 축복을 받기 위하여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과의 언약 관계에서 간직하고 있는, 모든 자원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종교가 우리의 생애에서 지배적인 힘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 크게 욕을 돌리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되는, 그분의 계명에서 돌아서게 되고, 그분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9T 251.2)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내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신7:9, 10).(9T 251.3)
이 성경에서 말한 천재(天災:하늘의 재난위기)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어디에 있게 될 것인가? 우리의 운명은 영원을 위해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본향에, 합당하다는 선고를 받거나, 영원한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진실하고 성실했던 자들, 갈바리를 기억하고, 진리 편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언제나 노력해 온 자들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25:23)라는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반신반의(半信半疑:반만 믿는 두 마음)의 봉사만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들의 생애를 세상의 방식과 습관에 일치되게 허용해 온 자들은, “내게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눅13:27)는 슬픈 말을 듣게 될 것이다.(9T 2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