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국민의 절반이 세입자인 상황에서 ‘전·월세 상한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전세금 급등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이 제도에 반대하던 한나라당이 최근 부분 도입으로 자세를 바꿨기 때문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상한제를 들고 나오면서 입법화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하지만 당장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론 시장을 왜곡해 더 큰 문제를 가져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 ‘급등지역 정조준’ vs ‘전국 포괄 지정’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산하 서민주거안정 태스크포스(TF)는 가격 급등지역에 한해 ‘전·월세 상한제’를 부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16일 밝혔다. 이러한 방안을 넣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해 다음 달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의 방안은 먼저 전·월세 가격 상승이 극심한 지역을 ‘전·월세 거래 관리지역’으로 묶어 임대료 상한선을 고시한다. 이를 위반하면 과징금 부과 같은 제재를 하게 된다.
관리지역만큼은 아니더라도 상승세가 가파른 곳은 지방자치단체장이 ‘거래 신고지역’으로 지정한다. 신고지역에서 임대인이 시장가격을 넘게 가격을 올리면 세입자가 신고해 조정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지역별로 적정 임대료를 나타내는 ‘공정시장임대료’를 산정한 뒤 주기적으로 발표해 전·월세 가격의 기준으로 제시하도록 했다.
이는 전·월세 상한제를 줄곧 주장해온 민주당의 안을 일부 받아들인 것이다. 민주당은 △계약 갱신 때 전·월세 보증금 인상폭을 연간 5% 이내로 제한하고 △기존 계약자가 계약을 2년 더 갱신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을 당론으로 주장하고 있다.
TF 실무를 총괄하는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민주당이 요구하는 전면적 전·월세 상한제는 지역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획일적인 데다 영구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자 재산권 침해가 될 수 있다”며 부분 도입 취지의 배경을 설명했다. ○ 시장 왜곡으로 오히려 전세난 심화될 것
한나라당까지 전·월세 상한제에 동참하자 전문가들은 ‘표만 의식한 성급한 정책’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전면 도입을 주장하는 민주당 안보다는 덜하지만 가격통제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지적이다. 주택공급 물량 부족과 매매 침체라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손쉽게 가격만 잡으려다 전세난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 이면계약 등 각종 편법과 탈법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료 규제의 폐해는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의견 일치를 이루는 부분”이라며 “임대료 규제가 도입되면 전세를 놓으려는 사람이 줄어 임대주택 공급이 위축되고 임대주택의 질도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피해는 세입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영진 닥터아파트 이사는 “전세금이 상한제에 묶이면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는 사례가 빈번해져 전세제도가 궤멸되고 전세금도 일시에 급등할 것”이라며 “지나친 시장 개입에 따른 후유증과 이로 인한 피해가 결국 세입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 급등 지역과 상한선을 어떻게 결정할지 등 세부적인 계획 없이 섣불리 추진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현재 월세는 계약신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례가 많다”며 “먼저 정확한 통계부터 마련하고 환산이율 규제 같은 세부적인 문제부터 천천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