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현수막인데 아직 걸려 있다.
2년 전 현수막이다. 큰아들이 문구를 만들었는데, 아직 거실 벽에 걸려 있다. 온통 아빠를 격려하는 글귀다. 나는 한점 부끄럼 없이 살아온 적이 없다. 하루가 아니라, 한 나절에도 만 점 부끄럼으로 살아간다. 아들은 내가 앉는 의자며, 가방이며, 옷이며 사와서, 앉히고 입히고, 기억날 때마다 아빠를 치장하려고 애쓴다. 아들이 사준 가방이 다 헐었는데, 아들이 고마워 새로 사지 못한다. 막내는 나만 보면 운동을 시킨다. 온갖 운동으로 늙음을 정지시키려 애쓴다.
현수막에서 "홀로 앓음"이라는 표현에서 멈칫 한다. 앓음이 아니라, 나는 고통을 모르고 자랐다. 일찍 학교에 들어가 평생 친구들이 한두 살 나이가 많았고, 국민학교에 입학해서도 2학년 1학기까지 글자를 못 읽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하는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무통증 바보였다.
"홀로 앓음"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증 증상이 있다. 무슨 질병 같은 이름인데 잊었다. 어릴 때 아파서 병원에 가면, 아이가 골병 들었는데 이제야 데려오냐, 어머니에게 야단치는 의사를 자주 봤다. 나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중학교 때엔 깡패가 무릎으로 내 갈비뼈를 분질러 놓았는데, 순간 옆구리가 다리미로 지지듯 뜨거웠지만, 이내 무통증으로 지냈다. 한달 후 옆구리가 불거져 나와 아빠와 병원에 갔더니 부러진 갈빗대 네 대가 제멋대로 붙어 버렸다는 것이다.
"홀로 앎음"이 아니라 무통증 증세다. 육칠 년 전인가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어릴 때 그 의사들처럼 난리였다.
"지금 당장 입원해야 하는데 정말 아프지 않아요? 서 있기 어려울텐데."
웃으면서 농담하시냐고 했더니, 의사는 무지 화를 냈다.
"지금 시체와 다름 없어요. 기분 나빠요. 농담 아녀요. 썩 나가세요."
웃은 걸 사과했더니, 의사는 차분하게 말했다. 고혈압에다 당뇨가 한꺼번에 와서 약이 없다고, 이 약 먹으면 저쪽이 나빠지고, 저 약 먹으면 이쪽이 나빠진다고. 십 킬로 정도 살 빼는 방법밖에 살 길이 없다고. 그때 세월호 참사가 생겨 절로 곡기가 끊겨 두달만에 8킬로 정도 빠졌다. 그 의사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그 의사는 백킬로 정도로 보이는 거구였다.
"합 게둘트(Hab’ Geduld)!"라는 독일어를 좋아한다
"참아라!"
" ich bin nicht faul. ich hab geduld! "
나는 게으르지 않고 참는다 곧 게으른 게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하는 사람이라고 독일어 번역자 유동수 선생님이 해석하시는데, 썩 맘에 드는 문구다.
누가 나를 바보로 만들어도 그냥 지내왔다. 그 자리에서는 모르고 몇 년이 지나면 염병처럼 트라우마처럼 송곳처럼 치솟곤 했다. 감옥에서 쓰레빠로 맞아 코뼈가 부서져도 그냥 지내다가, 한참 웃었다. 이상하게도 많이 아플 때 웃음이 나온다. 이유를 모르겠다. 허허, 웃을 때 나는 아프다.
가족들이 저 현수막을 2년째 치우지 않고 있다. 거실 책꽂이에 책을 가려주기에 딱 안성맞춤이거니와 떼지 않고 아빠의 생일 기억해주는 가족이 고맙다. 오늘 아침 새벽기도에 가서 4.10 총선을 위해 기도했지만, 나는 영락없는 가족이기주의자다.
** 오늘 카톡으로 종일 생일 축하 메시지가 왔습니다. 핸드폰 업데이트 하면서 생일 날짜가 노출된 모양입니다. 많은 분들께 신경 쓰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생일 날짜를 비공개로 다시 가렸습니다. 댓글에 답하면, 이 글이 자꾸 위로 올라가기에 이 글로 댓글 인사를 대신하니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성실하게 살아가겠다고 인사 올립니다.
첫댓글 참아라!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하는 사람~
웃을 때 나는 아프다...
이 글이 참 아프네요...
아버지도 아들도 참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