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영업 그만두고 체험농장 운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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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른 땅에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 이씨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해 해외영업 지원 업무를 시작으로 사회적기업과 무역회사를 거치며 해외영업 분야에 경력을 쌓았다. 그러나 마음속 어딘가가 채워지지 않았다.
“계속 회사에 다니면 앞으로 과장, 차장으로 승진하겠지만 그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다른 비전을 원했죠.” 이씨는 제 손으로 일구고 결실을 얻는 무언가를 갈구했다.
“이유도 모를 열이 한 달 동안 났어요. 계속 가슴속이 답답했고요. 비좁은 지하철을 타고 사람에 치여 길을 걷다 보면 나를 위한 공간이 절실했어요. 생활하는 곳이 그러니 생각하는 것조차 갇히는 듯했죠.” 이씨는 온실을 나서 블루베리 농장으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6600㎡의 너른 땅에 초록으로 물든 블루베리밭을 보고 있으니 그의 ?이 수긍이 된다. “부모님이 일궈두신 게 많으니 조금 쉽게 용기 낼 수 있었어요. 농장 일을 하다 보면 색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죠.” 부모님의 농장을 물려받는다고 해서 소극적으로 임할 생각은 없었다. 이씨는 먼저 SNS 홍보에 나섰다. 사진 찍기가 취미던 그는 체험농장의 모습을 꾸준히 SNS에 올렸다. 반응이 괜찮아 멀리서도 블루베리 수확 체험을 하러 찾아왔다. 덕분에 블루베리 농장의 블루베리들은 따로 수확·판매하지 않고 전량 체험농장을 통해 팔고 있다. “수확 철 주말에는 하루에 200명도 넘는 손님이 와요. 직? 고르고, 포장하니 만족도가 높죠. 반품 들어올 일이 없어요. 직접 따는 재미도 있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많이 오세요.” 손님을 치르느라 정신없긴 하지만 정성 들여 가꾼 블루베리를 제값 받을 수 있고, 손님에겐 수확의 기쁨을 전할 수 있으니 힘들어도 만족스럽단다. 또 택배로 판매하려면 들어갈 포장비, 배송비 등을 줄일 수 있어 더욱 좋다고 덧붙인다. 올해는 이씨의 주도로 체험을 하나 더 늘렸다. 바로 꽃 수확이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그들이 일상적으로 꽃을 사고 꽂아두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도 향기로운 꽃을 직? 수확하고 또 예쁘게 담아 갈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이씨는 직접 여러 꽃을 심고 가꾸었다. 꽃에 대해 공부하고 조경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그렇게 준비해 올해 처음으로 달리아 수확 체험을 시작했다. 체험은 단순히 꽃을 꺾는 데 그치지 않고 농장 주변에 피어난 다양한 야생 풀을 함께 매치해보는 꽃꽂이 수업으로 이어진다. 꽃꽂이 수업은 최민경 플로리스트(35)가 진행한다. 최씨는 조경을 전공하고 런던 플라워 스쿨에서 공부하고 현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전문 플로리스트다. 유학파 플로리스트가 어떻게 이 시골에 있을까 했더니 곧 결혼을 앞둔 이씨의 약혼자란다. 둘은 청년농들이 진행하는 플리마켓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어 인연을 맺게 되었단다. 농업의 길에 들어선 두 청년은 여러 의미로 결실을 맺었다.
[체험농장, 행복 수확하는 곳] 꽃 수확 체험은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참가자들의 반응은 꽤나 좋단다. 체험에 참가한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온 이씨는 “블루베리 체험도 그렇지만 달리아 체험수업에 온 사람들은 정말 행복한 표정을 짓더라”고 설명한다. 잘 만들어진 꽃다발을 살 수도 있지만, 농장에서 싱싱한 꽃을 꺾어 개성을 담아 꾸며보는 것은 더욱 풍성한 경험을 선사한다.
체험농장 외에도 블루베리와 꽃들을 가꾸느라 연중 분주한 이씨는 청년농업인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청년농업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청년농업인연합회’를 시작부터 같이해 2년째 참여하고 있다. 청년농업인연합회는 플리마켓을 진행해 그들이 손수 생산한 농산물 가공품을 도시민에게 판매하곤 한다. 그 역시 서울 DDP와 광교 플리마켓에 참가해 블루베리 가공품과 도마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 함안 지역 청년농 여섯 명과 의기투합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밥차도 운영하고 있다. 지역축제에 참가했더니 인기가 높았단다. 얼마 전에는 이씨처럼 화훼 농업에 관심 있는 청년농들을 모아 함께 영국의 화훼 농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부모님께서 일궈온 것을 최대한 지키면서도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비전을 찾는 그의 어깨가 듬직하다. 온실과 블루베리밭, 꽃밭과 집 앞의 넓은 잔디밭을 지나 집 뒤로 자리한 사슴농장과 목공방까지 구경하고 나니 다소 지쳐 처음의 온실로 되돌아온다. 이씨는 솜씨 좋게 블루베리청과 레드커런트, 밭에서 키운 허브 등을 더해 시원한 음료를 뚝딱 만들어 들고 온다. 레드커런트의 붉은 빛깔이 고와 눈도 즐겁다. 이씨는 내년쯤 이곳에 카페를 열 계획이다. 그때는 누구나 이곳 넓은 잔디밭과 꽃밭에서 한가로이 쉬다 갈 수 있을 거라니 그 모습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