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버스에서 물건 파는 사람의 말에 속아 항상 뭔가를 손에 들고 들어오신다. 당연히 엄마의 따발총 소리가 건넛방까지 들려온다. 귀가 따가울 정도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고장 난 레코드판 돌아가듯이 똑같은 소리를 우린 듣게 된다. 참으로 이상했다. 아버지가 벌써 가는 귀를 먹으셨나 의심이 들 정도다. 나 같으면 잔소리 듣기 싫어서도 안 하지 싶은데 아버지는 초지일관이신 분이었다.
은행직원이 펀드 하나 들어보라고 꼬드긴다. 얼굴은 별로 이쁘지는 않지만, 은행 볼일을 볼 때마다 챙겨주는 것이 많아 호감이 갔고 한마디 한마디가 전혀 손해 볼 것 같지 않아 들어주었다. 중국 펀드 바람이 불 때라 돈 불어나는 소리가 막 들렸다. 그녀가 천사처럼 보였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때려 넣었다. 그땐 몰랐다. 중국 펀드 막차라는 것을.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내 돈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 버렸다. 그녀를 찾았을 땐 인사발령으로 안동으로 갔단다. 천사는 개뿔.
홈쇼핑 광고를 보면 이상하게 댕긴다. 빨리 주문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것 같아 얼른 주문해 버린다. 고기란 고기는 다 맛있어 보이고 약이란 약은 다 괜찮아 보인다. 먹기만 하면 천년만년 살 것 같다. 쇼호스트가 하는 말은 전부 다 감언이설이라는 집사람 말은 귓전으로 들린다. 있는 비데를 주문했다가 집에 못 들어갈 뻔도 했다. 퇴근길에 집 앞을 보면 가관이다. 홈쇼핑에서 산 물건이 쌓여 있다. 이젠 내가 아니다. 원흉은 두 딸이다. 피는 물보다 진했다. 집사람은 이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다. 이런 걸 사자성어로 자포자기라고 하든가.
팔랑귀,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것은 집안 내력이 모양이다. 아버지는 땅이나 건물같이 돈 되는 것은 하나도 안 물려 주시고 이상한 것만 물려주셨다. 그렇게 줏대가 없는 것도 아닌데 남의 말엔 쉽게 혹해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평생 인감도장을 직접 들고 다니신 적이 없다. 혹 보증이라도 설까 싶어서다. 난 인감 바꿔서 찍어 주는 바람에 전 재산 다 날렸다. 사내는 ‘의리’를 먹고 산다고 배웠고 그렇게 컸다. 그 의리 때문에 개 피를 보았고 의리 덕을 제대로 본 인간은 동남아로 날랐다.
주식 해서 반찬값을 벌고 있다는 지인 말에 따라서 한번 해 보았다. 반찬값 이상이 나왔다. 어떤 때는 술값도 나왔고 비싼 고깃값도 나왔다. 은행 이자는 견줄 잽이 되지 않았다. 여태 내가 이런 것을 몰랐다 싶어 내 대가리를 원망했다. 조형기가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식 투자 잘하려면 팔랑귀만 아니면 된다.'라고 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나는 한 개 두 개 물리기 시작하더니 영끌하는 젊은 애들이 선호하는 종목을 샀다가 완전히 물려버렸다. 이게 아니다 싶을 땐 이미 도를 넘어섰고 빼도 박도 못하는 지경이 되어버려 알거지가 되었다.
상대방 말을 존중해 주고 믿어주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속이려고 들면 누구나 속게 마련이고 난 그 증상이 좀 심할 뿐이다. 집안 내력 즉 가풍인데 어쩌랴. 요즘 집사람이 말을 걸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내가 생각해도 참 할 말이 없다. 해줄 말이 없다. 그래서 말을 안 했다. 새벽에 자주 깨고 하니깐 몸에 이상이 있나 싶어 한약까지 갖다 바치는데, 갈수록 태산이다. 설날에 아버지 산소에 갔다. 좋아하시는 술 한 병을 다 부어 드리면서 뭔 뾰족한 대책이 없으시냐고 물었다. 아버지도 기가 막혔든지 말이 없으시다.
“대구 전세기가 2월에 마지막이래. 라오스가 그렇게 물 좋고 경치 좋다는구먼.”
난 벌써 여권을 주고 말았다.
첫댓글 ㅎㅎㅎ~~우야다가 그카십니까?
겉보기엔 저~~북쪽에 있는 백두산 만큼이나 든든하고 든든해 보이는데요. 심덕이 좋아서 상대방 도와 주려다 그리 되신기지요? 유쾌하게 참 잘 읽었습니다.
역시 선생님 글은 재미가 있어 몇번씩 읽게 합니다.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이라 믿습니다. 혹 압니까. 팔랑귀 덕에 올해 대박날지. 기대합니다.
대구 전세기가 2월에 마지막이래. 라오스가 그렇게 물 좋고 경치 좋다는구먼~~
와~~진짜인가요?
ㅎㅎ저도 우째 시도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