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밭전위원회. 정부의 ‘4대강개발’로 경작권을 박탈당한 두물머리(양수리) 농민들과 농사를 함께 지으며 싸우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을 처음 본 이들 중 상당수가 무심코 ‘밭전’을 ‘발전’으로 읽습니다.‘개발’이나 ‘성장’, ‘발전’ 같은 말들이 오랜 세월 우리 눈에 씌여 있어서 일 겁니다. 뭔가 눈에 씌이면 바로 보고도 잘못 읽게 됩니다. 제 생각에 ‘두물머리밭전위원회’라는 이름 속 ‘밭전’이라는 말은 우리의 어떤 치명적인 오독을 지적하기 위해 그렇게 있는 것 같습니다.
이름 그대로, 한강을 이루는 두 물이 만나는 삼각형 모양의 땅에 생겨난 작은 밭들. 지난 주 <위클리수유너머> 편집진은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서 어느 젊은 농부로부터 그 밭들이 만들어진 역사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 근처에 팔당댐이 만들어지면서 당시 많은 토지들이 강제수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댐이 만들어지고나자 지금의 자리에 새로운 땅이 생겨난 겁니다. 물론 소유관계로만 따지면 하천에 생겨난 그 땅은 국유지가 분명합니다. 당시 강제수용으로 땅을 넘겼던 농부들은 새로 생겨난 땅에서 농사를 짓게해달라고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땅을 경작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답니다.
그 말을 들으니 그 땅과 거기서 다시 경작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주 다르게 들렸습니다. 댐으로 상징되는 개발이 덮친 자리, 거기서 또 다시 생겨난 농지, 국가를 상대로 한 경작권 싸움. 대지를 둘러싼 ‘발전’과 ‘밭전’의 어떤 싸움이 정부와 농부들 사이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정부는 이 땅은 ‘당신들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니 ‘나가라’고 말합니다. 농부들은 이 땅은 ‘내 것이 아니’지만, ‘국가의 것이니’, 다시 말해 ‘우리 모두의 것’이니 ‘함께 농사짓자’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네 것이 아닌데 누구 맘대로 농사짓냐’고말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에 어떻게 이 땅을 이용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해 좋은지를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거기에 운동기구를 갖다 놓고 자전거 도로를 내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수십년 간 이어오던 유기농 농사를 이어가고 오히려 생태농업의 중요성을 알리는 시설을 만드는 게 나은지.
2006년에 화성시에 갔을 때 ‘화성호’가 만들어지던 이야기를 어민들에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천과 마찬가지로 갯벌도 공유수면법상 국유지에 속합니다. 어민들은 거기서 어업을 할 수 있는 면허로서 ‘어업권’을 갖고 있을 뿐이지요. 정부가 어업권 갱신을 불허하고 어민들 모두를 쫓아내면서 내세운 원리와 방식도 이번 경우와 같았습니다. 그때 들었던 한 어민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공무원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지금까지 국가의 것에 빌붙어서 그만큼 먹고 살았으면 됐지, 뭘 더 해달라는 거냐”고. 마치 국가가 자기 바깥에 있는 제3자처럼 느껴졌답니다. 국민이 국가에 빌붙어 먹었다는 말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국유 내지 공유는 사적독점을 막고 공적인 이용을 위해 정부가 관리하는 자원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국유는 종종, 요즘에 특히, 행정부의 소유, 그것도 그것을 장악한 일파의 소유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들이 ‘민영화(사유화)’의 이름으로 많은 공공재산을 개인에게 팔어넘겨버립니다. 마치 국가가 사적 개인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잠시 이야기가 옆으로 벗어났습니다만, 두물머리 농민들은 단지 법을 어겨가며 공공재산을 사적 이득을 위해 탈취하고 있는 이들이 아닙니다.이들이 경작권을 승계해서 농사를 지으며 문제를 제기하는 건 오히려 이 땅의 공공성을 함께 생각해보자는 겁니다.어쩌면 많은 공공재산, 국가재산을 팔아치우고 사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는 것은 정부를 장악한 일군의 사람들과 그들과 결탁한 개발업자와 투기업자들입니다. KTX민영화나 인천공항 민영화와 같은 직접적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4대강개발처럼 여러 공적 자원들이 개발이나 투자에 대한 참여 형태로 민간 건설자본이나 부동산투기자본의 사적 이익을 위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두물머리 농민들의 농사짓기 투쟁은 우리에게 ‘공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발전’이 아니라 ‘밭전’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보입니다. 정부는 친환경농업육성법까지 재정해가며 한때 생태농업의 모범처럼 치켜세웠던 두물머리 유기농업단지를 한강오염의 원천이라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공공재산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두물머리의 밭들은 오염과 욕심의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밭들은 지난 수십년 간 이 나라를 지배해온 발전주의 세력(우리를 만난 농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나라가 농부들을 탄압하는 걸 보면 농업에 무슨 원한이 있는 사람들 같다”고)들의 눈에는 낙후 산업으로서 농업이 갖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두물머리 농부들에게 “관광농업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의 눈꺼풀에서 ‘발전’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가 강을 마구 파헤치면서도 ‘친환경녹색개발’, ‘친수’라는 말을 쓸 수 있는 것은 ‘밭전’을 ‘발전’이라고 읽는 우리의 체계적 ‘오독’ 때문일 겁니다.
두물머리에 운동기구를 갖다 놓고 자전거 길을 놓으면 ‘친환경’이고 거기서 농작물이 자라면 ‘반환경’이라는 그 무서운 오독에 반대하기 위해, 두물머리에서는 지금 네 농가가 필사적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외부세력이다. 올해로 벌써 3년이 되었다. 4대강사업의 일환으로 자전거도로를 놓기 위해 강변의 유기농단지를 철거할 계획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야 말로 이곳에 가서 자전거도로 반대 운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자전거를 좀 탄다는 친구들이 있어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나는 당시 자전거를 못 탔다. 출발과 정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빈 운동장에서 매우 긴장하며 한 바퀴 겨우 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짐작이 가시려나. 다행히 친구 중 하나가 2인용 자전거를 가지고 있어 나는 뒷자석에서, 몸자보와 깃발을 휘날리며 페달을 밟을 수가 있었다. 서울에서부터 두물머리까지 자전거 떼잔차질을 하며 가자 했더니 30여명의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모였고 무려 8시간의 개고생 라이딩 끝에 두물머리에 도착했다. 그렇게 딱 한 번만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그만 그것이 지난 3년간 내 활동의 시작이 되었다. 나는 두물머리 유기농지 싸움에 푹 빠져버려 어느새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첫 방문 이후 나는 마음을 앓기 시작했다. 그곳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하고 사람들은 평온한 미소를 띠었다. 연대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과잉 친절을 베풀지 않는 독특한(?) 문화도 있었다. 호기심이 솔솔 생기기 시작했다. 투쟁한다는 곳에 이 평화로운 분위기는 무엇이며, 채식을 한다거나 여자가 담배를 뻑뻑 피운다거나 하는 일에 ‘그러려니’의 태도로 일관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또?(나중에 알고보니 이분들도 한 때… ) 어쨌거나 나는 그후 주말마다 두물머리에 가게 되었다. 다행히 나와 같은 병에 걸린 자들이 주변에 몇몇 있어 외롭지 않았다.
‘8당은 에코토피아’라는 희안한 이름의 생태캠프를 벌였고, 빈 밭에 배추를 3천포기를 심어 ‘4대강포기배추’라 하여 판매를 했다. 사람들은 무엇에 홀린 듯 꾸준히 주말마다 두물머리에 왔다. 이곳에 오면 가슴이 탁 트이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4대강 사업 등 이 정권이 우리에게 주는 각종 스트레스에 분한 마음이 좀 풀리는 듯도 했다. 그러던 12월 어느 날, 두물머리 농부들 11농가 중 7농가가 협상에 임하여 4농가만 남아 싸움을 지속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2011년, 우리는 일찍이 비어있던 땅을 우리 자체의 밭으로 삼고, 주말마다 번개모임처럼 작물들을 심고 가꾸었다. 두물머리가 조용해지는 것이 싫었고, 뭐든 해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농민분들과 에코토피아 친구들이 보고 싶어졌다. 우리들의 접촉면은 우둘투둘하게, 서로 맞고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은 억지로 시키지 않으면서 다같이 마음이 모아지는 일들을 찾아나갔다. 작년 가을에 있었던 ‘두물머리 강변가요제’는 그야말로 외부세력들이 자립적으로 뭔가 해보겠다고 벌인 기념비적 사건 중에 하나였다. 그때까지 별로 교류가 없던, 그러나 두물머리에서 지속적으로 만나던 ‘록빠’라는 팀과 함께 일을 벌이게 되었다. 그 전에는 에코토피아가 무슨 행사를 하나 하고, 록빠도 무슨 행사를 하고 각자 자신들의 텃밭을 일구며 오가며 인사 나누는 정도의 사이였는데 일종의 우드스탁 같은 큰 행사를 같이 하게 된 것이다. 몇 백만원을 들여 야외 스테이지를 꾸미고 조명과 엠프를 설치하고, 3개의 무대에 수십개의 밴드와 수많은 뮤지션들을 초대하여 호화로운 잔치를 열심히 준비하였다. 홍보를 하고 표를 팔고 온갖 것들을 준비하였는데 대망의 행사 당일, 날씨가 안 좋았다. 아침부터 서서히 바람이 불었고 비와 돌풍이 예고되어 야외에 마련한 그 몇 백 만원짜리 스테이지는 바람에 날아갈지로 모를 일이었다. 비싼 음향 기기를 실은 차량이 두물머리에 도착함으로써 결국 강행을 하기로 했다. 공연 시작과 함께 내리던 비는 공연의 클라이막스와 함께 폭우를 몰고 왔고, 급기야 천둥 번개를 동반한 돌풍이 불어 닥쳤다. 이런, 이건 진짜 우드스탁과 똑같았다. 얼마 안되는 관객과 스텝과 뮤지션들이 진흙탕 속에서 미친 듯 놀았다. 한편 그날 주차된 차들이 모두 진창에 빠져 농부들이 차를 빼느라 고생하고 공연은 보지도 못했다. 나는 한동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는데, 농부들은 그렇게 고생하시고도 괜찮다 하셨다. 다행히도 다녀갔던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참여했던 몇몇 사람들이 우리처럼 주말마다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후부터는 농부들이나 팔당공대위나. 그냥 두손 두발 다 들고 ‘니네들 마음 대로 해라!’하는 심정이셨던 것 같다.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겨우 내 열었는데, 역시 매번 다같이 고생하고 즐거워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고 올해엔 외부세력들이 스스로 ‘두물머리 밭전위원회’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작년까지만 해도 작물들이 빼곡하게 자라던 하우스는 이제 벌판이 되었고 간간이 큰 흙무덤과 쓰레기들이 쌓여갔다. 작년 12월 시공사의 공사시도를 겨우 막아낸 것 말고도 올초에는 지역발전협의회의 ‘4대강 사업 적극 찬성’ 플래카드가 마을 입구에 잔뜩 붙어 분위기가 안 좋았다. 농부들은 이들과 대화를 위해 밤낮없이 긴급회의를 했다. 이런 일들에는 외부세력들이 별 수를 쓰지 못했다. 2년 넘게 주말마다 함께 일하고 놀고 사고를 치며 보내왔는데도 이런 문제에는 별다른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그간 외부세력들이 해왔던 판들을 다시 열어보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많은 분들의 우려 속에 잘 시도되지 못했다. 그런 것들은 아직 한계가 명확한 일들이었던 것일까. 아직 이 문제는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 무렵 외부세력들은 답답한 마음을 한 켠에 가지고 일요일마다 늦은 오후나 밤에 모여들어 밥을 먹고 얘기를 풀어갔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갈 것인가. 봄에 우리가 이곳에 연대하는 길은 농사가 첫째인데 이에 대해 올해는 적극적인 고발조치가 이뤄질 게 예고되고 있었다. 우리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 농부들이 고발될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실제로 지금 그렇게 되었다). 농부들도 외부세력들도 긴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술도 마시고 노래도 하고. 난로에 불을 피워놓고 떡이나 김 등을 구워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도모되었다. 우리가 두물머리에서 무엇을 하든, 이제는 민폐인가 아닌가는 더 이상 따질 상황이 못 되었다. 봄은 왔고 ‘두물머리 밭전위원회’라는 거창한 이름을 걸고 사람들을 모으기로 했다. 처음에 팔당공대위에서 이런 형태의 농사를 ‘명랑텃밭’이라 하여 진행했었고, 그 다음해는 ‘시민텃밭’이라 하여 진행했었는데 이번엔 주체가 바뀌었다. 먼저 들어온 외부세력들이 나중에 올 외부세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여기서, 우리 불법이라고 고발당하더라도 그냥 농사 지을 사람, 모이시오.’하고 몇몇 외부세력들은 이미 포트에 씨앗을 넣어 기르고 있었고 제작년부터 농사를 지어온 에코토피아도 늦지 않게 씨를 넣으려 애쓰고 있었다. 소식이 퍼지자 천주교농부학교가 아예 두물머리의 한 땅 한 귀퉁이를 자신들의 농토로 삼아버렸다. 녹색당은 작년에 농사짓던 곳에 뿌려둔 것들이 있어 새로운 곳으로 밭을 이전하는 문제를 고심하다가 그곳과 새로운 곳에 동시에 밭을 갈았다. 그러는 와중에 소식을 들은 여러 그룹들과 지역의 후원세력들이 이 땅을 차곡 차곡 점거하기 시작했다. 4월과 5월, 그렇게 조금씩 땅들이 채워지고 모내기를 앞둔 지금은 넓고 황량했던 빈 들이 작물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정부가 경작을 불법화한 그 땅은 아무리 공무원들이 들어와 말뚝을 박고 띠를 둘러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 그룹들의 밭이 되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두물머리가 밭으로 지속되는 것을 바랄 뿐이다. 제발 더 이상 ‘국가가 하는 사업이니까’, 또는 이미 다른 4대강 사업 구역들이 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형평성’ 때문에, 라는 말로 두물머리에 억지스럽게 자전거 도로를 놓으려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
3년간의 좌충우돌 민폐작렬 연대 속에서 외부세력들은 점점 더 뭉쳐지고 다양한 색깔을 뿜어내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기 보다는 일을 저지르고 그걸 헤쳐나가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작년에 두물머리를 대안연구단에서 생태습지, 자전거도로와 함께 유기농교육이 가능한 농장, 치유농장 등을 포함하는 모델을 제시한 바 있는데 지금 우리는 어쩌면 이미 각자의 방식대로 두물머리 마을을 가꾸고 있는지 모른다. 복잡한 갈등과 정부와의 신경전으로 피곤이 쌓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최대한 무시하기로 한다. 외부세력들은 지금 치유와 휴식과 즐거움을 최대한 누릴 방도를 매주 모여 궁리하고 있다.
광고 한 마디. 이번 주 일요일, 27일에는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인 모내기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주에는 이때 내갈 국수를 위해 들판에 심은 열무를 뽑아 200인분의 열무김치를 담궈 놨다. 오전10시부터 저녁 때까지 모내기 하고 놀고 먹고 노래하고 놀 것이니 도시락을 싸들고 오시길. 두물머리와 외부세력들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http://cafe.daum.net/6-2nong 에 들어와서 둘러보시고, 에코토피아가 궁금하다면 http://8dang.jinbo.net 에 들어가 보시라. 두물머리 밭전위원회의 소식을 꾸준히 받아보고 싶다면 http://riverun.org/farm 에서 밭전위원 등록을 하면 된다. 그럼, 언제고 두물머리에 한 번 방문하여 함께 씨 뿌릴 날이 있기를 기도하며.
두물머리 방문기
5월 15일 화요일 위클리 편집위원들이 두물머리에 방문했습니다. 두물머리에는 아직도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두물머리를 관통하는 자전거도로를 반대하며 불복종 텃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기나긴 싸움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싸움에 지쳐 떠나가고 두물머리에는 이제 4명의 농부가 남았습니다. 4명의 농부들께서 시간을 내어주셔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었습니다.
터무니없는 보상규모
몇 년이 지난 기나긴 싸움기간 동안 많은 농민들이 보상을 받고 두물머리를 떠나갔습니다. 유기농가 11농가 중 7농가는 보상을 받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보상규모가 터무니 없습니다.
경기도가 농어촌발전기금을 통해 3년 거치 17년 상환, 금리 1.5%의 조건으로 농지구입자금을 융자해 주기로 하고 나갔습니다. 그저 마련해 준 것도 아니고, 빚을 지운 거죠. 2천평 구입한다고 하면 5억 정도 드는데, 한해 이자만 1천만원 돈입니다. 원금까지 갚으려면 답이 안 나옵니다. 물론, 여기만한 옥토는 구할 수도 없고.
지금 두물머리는 양평군에서 제기한 경작금지와 공사업체에서 제기한 4대강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중재시켜 보려는 법원 판사가 보상금 500만원에 합의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아저씨는 5억이면 생각해 보겠다며 코웃음을 칩니다.
자전거 도로? 두물머리 대안이 더욱더 공익적인 것 아닌가?
정부에서는 사업상 이유근거로 공익적 공원조성을 주장하다 보니, 농부 아저씨들도 이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나 봅니다. 그들이 말하는 공원은 농업공원입니다. 한강공원 같은 곳 이곳에 또 만들면 뭐하냐고 반문합니다.
동네 주민들과 함께 마련한 ‘두물머리 대안’은 자전거 도로와 생태적인 공원정비, 그리고 기존의 유기농업이 공존하는 농업공원 형태입니다. 그런데 국토부와 경기도는 ‘농업’의 ‘농’자도 꺼내지 말랍니다.
자전거 도로를 반길 것 같은 자전거 동호회가 오히려 두물머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자전거 도로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위해 두물머리에 방문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농업공원 새로운 대안모델로 각광받아
농업공원 이야기를 하다 보니, 농사를 즐겨 짓는 편집위원이 한마디 거듭니다. 그저 구경하는 공원이 아니라, 참여형 공원이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여형 공원에는 농사를 짓도록 하는 것이 썩 괜찮은 모델로 제시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최근에 서울시에서 개장한 노들섬 텃밭도 그런 형태의 공원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도 그곳에 한자리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노들섬에서 이루어지는 농사도 환경파괴 때문에 유기농으로 지어야 한답니다. 그러자 농부 아저씨께서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다며 무릎을 탁 칩니다. 노들섬도 작은 섬인데 유기농이 환경을 파괴시킨다면 그것도 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유기농이 환경파괴라 말하는 정부기관의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말합니다. 그는 법정 투쟁 중에 환경영향 평가가 있었다며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유기농업이 강을 오염시킨다는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데, 전문가에 따르면 그 오염 수치는 너무나 미약해서 수치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오히려 팔당대교 상박에서 강으로 유출되는 중금속이나 기름성분이 더 문제죠. 농사에 대한 증오가 노골적입니다. 조상중에 농사꾼한테 맞아 죽은 사람이 있나 생각할 정도로.
언제부턴가 경기도는 지속적으로 유기농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홍보를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홍보하는 환경 파괴 요소는 두물머리에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 자체에 딴지를 거는 것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니 농부들이라 그런지 농업정책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부에서는 귀농을 적극 권장 홍보하며 지원하고 있는데, 농사 잘 지어지는 두물머리에서는 농사지으면 왜 안 되냐고 묻습니다. 그들이 지적하는 것은 귀농도 결국 농사를 사유화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두물머리는 생협과 연계하여 계획생산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대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혼자서 짓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두물머리 유기농업은 젊어요. 40대 초반 젊은이들이 유기농업을 하려고 들어오고 있어요. 유기농업을 금지하고 기업에 팔아치우려는 건 한국 농업의 미래를 팔아치우려는 거에요.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니깐요. 저치들 지방 땅값 올릴라고 저러는거 아냐?
사유화하는 국가 공익을 주장하는 개인
두물머리 부지는 국가의 땅입니다. 농부들은 국가에 점용권을 부여받아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 점용권의 갱신은 매번 관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점용권 갱신 절차가 요식행위에 가까워서 최근에 이루어진 점용권 부여 기간은 무려 5년이었다고 합니다. 2007년에 이루어진 점용권 갱신 이후 만료기간은 올해입니다. 그래서 두물머리는 지금 한 고비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공무원도 관습적으로 갱신되는걸 아는 거지요. 매년 하는게 귀찮으니까 최근에는 5년이나 해줬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편집위원은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어민들의 어업권도 이 같은 방식으로 사유화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 누구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점용권 부여로 통제하고 있던 것을 거대기업의 손에 넘기는 것이지요.
우리는 애초부터 우리에게 없었던 사적 소유권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공유지의 공적인 사용, 즉 유기농업의 미래를 요구하는 것이다.
결국 국토부가 원하는 건 우리를 쫓아내고 친수구역특별법을 적용해서 두물머리를 기업에 팔아 치우려는 거에요.
점용권이 다음 세대로 넘겨지는 과정도 공공적입니다. 농사짓기를 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이가 들거나 병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 힘들게 된 사람이 함께 가면 공무원에게 가서 점용권을 넘겨지는 식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싸움에서 이긴다면 두물머리는 어떻게 될까?
싸움의 과정에서 이미 두물머리는 공공화 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곳에서는 불복종 텃밭이라 불리는 여러 텃밭이 일궈지고 있습니다. 그 면적이 굉장히 넓습니다. 공무원들은 4명의 농부아저씨들을 대상으로 불법경작명목으로 고소장을 날리지만, 그들만으로 넓은 텃밭이 일궈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 넓은걸 우리 네명 이서 어떻게 다 한단 말이요? 함께 불복종 텃밭 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는 가족단위도 많아요. 이미 주말농장으로 공공적으로 이용되는 부분도 있어요. 사람들이 4명의 농사꾼만 싸우는 것 같이 보는데, 사실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기도 해요. 이미 두물머리는 4명의 것이 아니거든요.
그들이 싸움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두물머리가 사유화될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2년 넘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생명평화 미사를 드리는 천주교 신부, 수녀, 신도님들과 이번에 ‘밭전위원회’로 조직화된 젊은 친구들이 있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미사를 드린다는게 엄청난 힘이 있더라구요. 젊은 친구들은 활력도 주고 실무적인 일들을 거의 다 도맡아 주고 있어요. 그들의 문화가 새롭고 신나고 힘을 줘요. 이 싸움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이곳과 단절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싸움의 과정에서 이미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묶였습니다. 그들은 유기농사와 건강한 문화가 공존하는 두물머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두물머리 유기농지에 대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 희망와 평화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