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가리골... 구룡덕봉, 가칠봉 등 해발 1,200~1,400m의 고봉에 첩첩산중 둘러싸인 깊은 골짜기.
조선시대의 예언서 <정감록>에서 말한, 난을 피하고 화를 면할 수 있는 ‘삼둔 오가리’ 가운데 한 곳이다. 삼둔은 홍천군 내면의
살둔, 월둔, 달둔이고 오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의 연가리, 명지가리, 아침가리, 명가리, 적가리다. 예로부터 전해지기를, 난과 포악한 군주를 피해
숨어 들었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침가리골은 오가리 가운데서도 가장 깊었다. 찾는 사람도, 찾고자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 심산유곡이 5~6년 전부터 슬슬 붐볐다. 오지 여행가가 하나 둘씩 들어왔고 알파인 스틱을 잡은 트레커가 계곡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는 ‘꼭꼭 숨은’ 오지가 아니라 ‘몸 튼실하고 마음 가벼이’ 떠난 트레커라면 누구라도 받아주는 트레킹 명소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아침가리골에는 휴지 조각 하나 없다. 찾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보존 상태는 그대로다. 원시의 모습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
번잡한 도시의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 아침가리골 트레킹. 출발점은 방동리 갈터마을이다.
목적지인 방동초등학교 조경동분교까지 직선 거리는 약 3km. 하지만 만만하게 볼 거리가 아니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약 7km, 길을 잃고
헤매는 것까지 합치면 10km는 된다.아침가리계곡으로 들어서는 길은 찾기가 힘들다. 계곡은 보이는데 내려가는 길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하나.
잠시 두리번거리는 동안 매점 아주머니가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은 행색을 보았나 보다. “아침가리 가시려고?” 하더니만 손가락으로 계곡 쪽을
가리킨다. “저기, 저어기가 아침가리요. 그냥 들어가면 돼.”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계곡으로 내려선다. 첨벙첨벙 걷는다. 계류 속을 걷는 발이
시리다. 5분쯤 가자 발등이 시리다 못해 저리기까지 하다. 5월하고도 중순, 도시의 빌딩 숲은 벌써부터 무더운 열기를 내뿜건만 아침가리의 청명한
숲과 얼음장처럼 차가운 계류는 정신을 번쩍 들게 할 만큼 명징하다. 길이 점점 사라진다. 잡목이 무성해지더니 어느 샌가 길이 희미해지며
결국 없어진다. 할 수 없이 계곡으로 내려선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고른다. 물빛을 바라본다. 구름 사이로 해가 잠깐 비친다. 사금파리를
뿌려놓은 듯 물이 반짝인다. 지상의 색깔이 아니다. 눈이 부시다. 꺽지가 ‘쉬익’ 하며 꼬리를 치며 돌 사이로 재빨리 숨는다. 돌피리가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헤엄친다. 돌피리를 따라가는 눈길에 신통하게도 징검다리가 보인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징검다리를 건넌다. 물이
무릎까지 차오른다. 이끼 낀 돌이 미끄럽다. 건너편으로 가니 다시 길이 어렴풋이 나타난다. 길 끝에는 울창한 낙엽송 숲이 기다리고 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낙엽송 숲. 휘파람을 불며 숲길을 걷는다. 바위 지대가 계속 이어지더니 넓은 너럭바위 지대가 펼쳐진다. 바위에 누워본다.
바람에 꽃 냄새, 풀 향기, 싱그러운 물비린내가 실려온다. 몸이 생생히 깨어나는 느낌이다. 한숨 자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이제 길은 없다.
물을 헤치고 가야 한다. 아침가리에서는 신발과 바지가 젖을 것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발을 적시지 않고 계곡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허리까지 물이 찬다. 발바닥의 감촉만으로 계곡을 건너간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물 속의 길이 느껴진다. 길이 순하지 않다.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길의 질감은 거칠다. 문득 길이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폭포와 크고 작은 소가 연이어
나타난다. 암반의 색은 검었다가 다시 희어진다. 굽이를 돌 때마다 흰 모래톱이 펼쳐진다. 모래톱에 자주 주저앉는다. 지쳐서가 아니다. 길과
자연이 보여주는 풍경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