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 고가연구(古歌硏究)
고가연구(古歌硏究)는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이 향가를 해독한 책이다.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향가는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보현십원가 11수를 합하여 모두 25수가 전한다. 양주동은 이 향가 25수를 모두 해독하여 1942년에 이 대저를 출간하였다. 처음 출판했을 당시의 서명은 “조선고가연구”였는데 실제 본문 서두에는 ‘사뇌가전주(詞腦歌箋注)’라 되어 있다. 사뇌가란 향가의 다른 이름이다.
이 향가를 처음으로 주석한 사람은 일본 사람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다. 오구라는 경성 제국 대학 교수를 지냈는데 향가를 연구하여 1929년에 “향가 및 이두의 연구”를 펴냈다. 그는 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구라는 언어학자로서 한국어에 관심이 많아 “증정 조선어학사”, “조선어 방언의 연구” 라는 저서도 냈다. 천 년 동안 해독하지 못한 향가의 수수께끼가, 오구라 신페이에 의해 풀린 것이다. 오구라 신페이는 향가가 한자를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문학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오구라의 향가 해독이, 우리 국문학 분야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다.
도남(陶南) 조윤제(趙潤濟)는 “향가 문학이 성립함으로써 국문학은 비로소 형성되었다”라고 지적한 바 있듯이 향가는 우리 문학의 시원이자 뿌리이기 때문이다.
오구라의 ‘향가와 이두의 연구’를 읽고 그 안에 많은 오류가 있음을 발견하고 지은 대저가 양주동의 “조선 고가연구”다.
양주동은 어느 날 교수로 재직하던 숭실전문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책을 살펴본 그는 충격과 경악에 휩싸였다.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 신라 향가 25수를 최초로 해석한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양주동을 충격에 빠뜨린 책은, 오구라 신페이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였다. 양주동은 오구라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이렇게 회고로 남긴 바 있다.
“나로 하여금 국문학 고전 연구에 발심(發心)을 지어준 것은 일본인 조선어학자 오구라 신페이 씨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란 저서가 그것이었다. ‘문예공론’을 폐간하고 심심하던 차 우연히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 들렀더니, 새로 간행된 <경성제국대학 기요(紀要) 제1권>이란 어마어마한 부제가 붙은 방대한 책이 와 있다. 빌려다가 처음은 호기심으로, 차차 경이와 감탄의 눈으로써 하룻밤 사이에 그것을 통독하고 나서, 나는 참으로 글자 그대로 경탄하였고, 한편으로 비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천 년 동안 아무도 해독하지 못한 향가를, 일본인이 처음으로 풀었다는 점에 양주동은 비분강개를 느꼈다. 국문학자도 아닌 그는, 왜 오구라 책을 읽고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을까? 양주동은 ‘문주반생기’에 그 사정을 자세히 남겼다.
“첫째, 우리 문학의 가장 오랜 유산, 더구나 우리 문화 내지 사상의 현존 최고(最古) 원류가 되는 이 귀중한 향가의 해독을 근 천년래 아무도 우리의 손으로 시험치 못하고 외인의 손을 빌었다는 그 민족적 부끄러움, 둘째, 나는 이 사실을 통하여 한 민족이 다만 총, 칼에 의해서만 망하는 것이 아님을 문득 느끼는 동시에 우리의 문화가 언어와 학문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저들에게 빼앗겨 있다는 사실을 통절히 깨달아, 내가 혁명가가 못 되어, 총, 칼을 들고 저들에게 대들지는 못하나마 어려서부터 학문과 문자에는 약간의 천분(天分)이 있고 맘속 깊이 원(願)도 열(熱)도 있는 터이니 그것을 무기로 하여 그 빼앗긴 문화유산을 학문적으로나마 결사적으로 전취, 탈환해야 하겠다는 내 딴에 사뭇 비장한 발원과 결의를 했다."
그때부터 양주동은 향가 연구에 착수했다. 연구 과정에서 양주동은, 향가 25수를 안방부터 화장실까지 집안 곳곳에 붙여 놓고 해석에 골몰했다고 한다. 연구에 몰두한 끝에 양주동은, 1937년 ‘향가 해독, 특히 원앙생가에 취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어 1942년 양주동은 조선인 최초로 향가 25수를 해독한 “조선고가연구”를 출간했다. “조선고가연구”는 고려가요를 풀이한 “여요전주(麗謠箋注)”와 함께, 양주동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이라 일컬은 책이다.
그는 원래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이 오구라의 향가 연구를 보고 분개하여 국어국문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을 저술하기 위하여 먼저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였다. “고가연구”의 참고문헌란에는 279종의 인용 문헌이 기록되어 있다. 실로 방대한 양이다. 이렇게 많은 관련 문헌을 섭렵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무리를 하여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기도 하였다. 그는 이때의 심정을 “고가연구”의 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극심한 폐렴에 걸려 발열이 며칠 동안 40도를 넘어 아주 인사불성, 사람들이 모두 죽는 줄로 알았었다. 아내가 흐느끼고 찾아온 학생들이 모두 우는데, 내가 혼미한 중 문득 후닥닥 일어나 부르짖었다. “하늘이 이 나라 문학을 망치지 않으려는 한, 모(某)는 죽지 않는다.” 이만한 혈원이요 자부심이었다. 천행으로 병이 나았다.
오구라 신페이의 연구를 뛰어넘은 양주동의 향가 연구서는 이렇게 탄생했다. 육당 최남선은 양주동의 연구에 대해 “해방 전후에 출간된 학적(學的) 저서로 후세에 전할 만한 것은, 오직 양모(梁某)의 “조선고가연구”가 있을 뿐.”이란 찬사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 국보라 자처하면서, “우리나라 재주를 통틀어 10섬이라고 하면 6섬은 이광수가 가졌고, 1섬은 내가 갖고 있으며, 나머지 3섬은 삼천만 국민이 나눠 가졌다.”고 하였다. 그가 인간 국보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으나, 양주동이 천재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고가연구” 한 페이지만 읽으면 양주동이 천재인 줄 안다고.
내가 고가연구를 처음 대한 것은 대학 2학년 때인데, 고대어 강좌의 교재로 쓰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첫머리를 읽으면서부터 그 혜안에 깜짝깜짝 놀랬었다.
‘하ᄂᆞᆯ[天]’은 ‘한ᄇᆞᆰ[大光明]’에서 나왔는데, ‘한’은 ‘크다’는 뜻이고 ‘ᄇᆞᆰ’은 ‘밝다’는 뜻이다. 우리 음운 변화의 법칙인 ㅂ>ㅸ>ㅇ 에 의하여 한ᄇᆞᆰ>한ᄫᆞᆯ>한ᄋᆞᆯ>하ᄂᆞᆯ(하늘)로 변천하였고, 태백산(太白山)은 ‘한ᄇᆞᆰ뫼’를 표기한 것이며, 함박꽃의 함박은 ‘한ᄇᆞᆰ’에서 왔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日]’의 고음은 ‘ᅘᆡ[白]’이며 이는 크다는 뜻인 ‘ᅘᅡᆫ[大]’에서 나왔으며, 해부루(解夫婁), 해모수(解慕漱)의 ‘해’가 그것이다. ‘ᄀᆞᆷ’은 ‘ᄀᆡᆷ, 검, 곰, 금’ 등으로 호전되는 ‘신(神)’의 고어로 ‘개마(蓋馬), 금마(金馬), 검(儉) 흑(黑) 웅(熊)’ 등으로 표기된다. 이 ‘검’이 변하여 ‘엄’이 되니 이 ‘엄’이 ‘어머니’의 어원이라는 것을 읽고 참으로 놀랐다. 개마고원의 개마[ᄀᆡᆷ], 금마산의 금마[금], 니사금(닛금)의 ‘금’, 단군왕검의 ‘검’ 단군신화의 ‘곰’이 모두 신이란 뜻임을 알았다.
향가 25수의 어휘를 모두 이와 같이 해박한 고증을 통하여 풀이하였다. 이 책의 체제도 아주 뛰어나다. 한 어휘에 대한 풀이에 ‘일(一)’부터 시작하여 ‘一·一·1’, ‘一·一·2’와 같이 순차적으로 번호를 책 여백에 붙여 찾아보기 쉽도록 하였고, 색인에도 사뇌가 용자례, 어휘, 이두, 음운, 어법, 인명, 관명, 지명, 건명 등 다양한 내용을 붙여 무엇이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와 같은 대저가 나오자 오구라는 다시 연구하여 양주동의 설을 뒤엎겠다는 의견을 발표하였지만 끝내 하지 못했다. 순간순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책이 “고가연구”다. 아마 오구라도 깜짝 놀랐을 것이다.
내가 공부한 책은 1954년 판이다. 70년이 지난 지금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책이 헤어지고 책장인 갱지가 낡아 푸석푸석 떨어지고 있다. 그 후 1965년에 증보판이 나오고, 1997년에 출간된 뒤에는 절판되어 지금은 서점에서 살 수가 없다. 퍽 안타까운 일이다. 27년 간이나 이 책의 맥이 끊어졌다는 것은 국학이 그만큼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증좌다.
나의 손자와 외손자가 이 할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겠다고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지금 수학하고 있다. 참으로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래서 이들에게 “고가연구”를 선물하고 싶었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근자에 서울 어느 고서점에서 마침 두 권을 구해 손자들에게 수여하였다. 책을 받은 손자들이 훌륭한 국문학도가 되겠다고 다짐하여 나는 사랑스럽고 흐뭇함을 금할 수 없었다.
아무쪼록 이 명저가 다시 출간되어 국문학도는 물론 관심 있는 지식인들도 함께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