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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는 하나님의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욥기 2:1-10
2012. 10. 7.
* 권호만 목사님의 <하나님의 자랑인 성도>를 보완했습니다.
추석 명절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화목하게 잘 지내시고, 이렇게 다시 만나서 함께 예배드리게 됨을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시간을 주시고, 좋은 명절을 지내게 하시고, 안전하게 잘 인도하여 주신 줄 믿고, 또한 감사드립니다.
저는 추석 당일에 평소와 같이 주일예배를 드리고, 조용히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하 목사님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하여 시내에 식당을 찾으러 다니다 보니, 곳곳에서 해마다 보게 되는 프랑 카드가 올해도 변함없이 걸려 있었습니다.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 합니다.’라는 환영현수막도 있었고요, 평곡초등학교 총 동문 체육대회 안내 현수막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에는 없었습니다만, 평소에 자주 보게 되는 ‘자랑성 현수막’이 있습니다.
‘누가 장성에 진급했다’, ‘누구 자녀가 어떤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누가 국가 고위직에 임명을 받았다’, ‘누가 어떤 선출직에 당선이 되었다’는 현수막이 여기 저기 걸려 있습니다.
저는 이런 현수막을 보면서, 사람은 누구나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자기가 안 되면 자녀들을 통하여서도 자랑하고 싶은 것이 우리 인간의 마음인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님에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천사들과 사탄이 도열하고 있는 하늘의 어전회의에서 사탄에게 욥의 신앙을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지켰느니라.”(3절)
하나님은 지금 천사들 앞에서 사탄에게 욥의 신앙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욥의 신앙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다’고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자랑도 보통 자랑이 아닌, 대단한 자랑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1장을 한 번 살펴보십시다.
1장에서도 보면, 하나님께서 욥의 신앙을 여기저기 두루 다녀온 사탄에게 자랑하십니다.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1:8)
이에 사탄은 즉시 하나님께 욥을 참소합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닙니까?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 하시면 정녕 주를 대면하여 욕하리다.”(1:9-11)
사탄은 하나님께 욥의 재물과 자녀들을 거두어가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천하의 욥이라도 반드시 주를 향하여 욕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어떻게 할 것을 이미 다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12 말씀에 보면, 사탄의 참소에 대해 “오직 욥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 금하시고, 부분적으로 허락을 하십니다.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너의 손에 붙이노라.”
사탄의 요청이 비록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졌음에도, 욥은 그 많던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잃고, 사랑하는 자녀들까지 다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시고, 기대하신 대로, 욥은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다.’는 말과 함께 이 모든 일에 범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 합니다.
욥의 이 모습을 다 보시고 계신 하나님이, 오늘 말씀 3절에서도 하늘의 만조백관들 앞에서 사탄에게 욥의 신앙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분명 하나님의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을 때, 그것을 자랑하고 싶어 하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신앙생활을 잘하는 성도를 대대로 자랑하고 싶어서, 그 사실을 현수막대신에,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랑이 되고 있는가?’
‘나는 정말 하나님이 자랑하고 싶은 자녀인가?’
우리는 많은 경우 자녀들이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분명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인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가버나움의 백부장을 향하여 “이 사람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귀한 믿음을 가진 자”라고 칭찬하시며, 많은 사람 앞에서 그의 믿음을 자랑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친히 자랑하였습니다.(살후1:4)
고후 1:14에서는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자랑도 되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랑이 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랑하시는 내용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자랑은 일반 세상 사람들의 자랑과는 그 내용과 질이 분명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를 쳐서 미국 빌보드 차트 2위까지 했다고 야단입니다. 이번 주에 1위를 기대하고 있는 모양인데, 싸이가 세계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면 그는 분명히 더 큰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성공을 자랑합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든지,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든지, 훌륭한 명예를 얻었다든지, 그러면 ‘자랑거리가 생겼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 성공이 크면 클수록, 성공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랑거리는 더 많아지고, 자랑의 강도는 더 강해지는 것이 세상의 자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랑은 이러한 세상의 자랑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성공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자랑합니다.
욥이 하나님의 자랑이 된 것은, 그가 많은 가축과 재물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뭐라고 묻습니까?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지켰느니라.”(3절)
하나님께서 욥을 자랑한 것은 재물과는 상관없이,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도인 우리에게서 진정 자랑하고 싶어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믿음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 것을 하나님의 자랑의 기준으로 삼지 않습니다.
성도가 얼마든지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성공하지 못하였어도,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하나님이 자랑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물론 ‘돈이 필요 없고, 성공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할 수 있다면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돈을 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랑의 척도가 되지 않고,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돈을 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공하셔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성도를 자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진정 바라시고 자랑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잘 살든 잘 못살든, 세상적인 성공을 했든 성공을 하지 못했든 상관없이 ‘얼마나 온전하고 정직하여, 악을 떠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에, 한 여자가 들어와 매우 값진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의 비싼 값에 팔 수 있는 값진 향유였습니다.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은 이 여인을 지혜롭지 못한 여인으로 비난하였습니다. ‘비싼 값에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더 좋았을 것을 땅에 쏟아버렸다’고 여인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베다니의 이름 없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을 보면, 별 볼일 없는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제자들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분명히 칭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책망과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을 대대로 후세의 모든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을 하지 못해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자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 살지 못하고 유명하지 안 해도 얼마든지 우리를 자랑하십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세상적인 기준을 가지고 볼 때 비록 변변치 못한 삶을 살아가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자랑이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지 모르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이름이 기억되는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늘푸른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자랑거리가 돼도 좋겠지만, 하나님께서 자랑하고 싶어 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요?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내용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욥이 당했던 이러한 어려움을 성도 대부분도 다 겪으며 살아갑니다.
경영하던 사업이 망할 수도 있고, 어려워질 수도 있고, 가족들에게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이 올 수도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육신의 병 때문에 많은 아픔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성도들을 유혹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그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이러한 시험을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성도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신앙적 삶의 자세가 성도로 사탄을 이기게 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하며, 하나님의 자랑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욥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욥을 시험하면서 ‘욥의 좋은 환경을 나쁜 환경으로 바꾸고, 욥이 받은 축복을 저주로 바꾸면,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을 욕하고 떠날 것이라’고 계속 주장합니다.
그러나 욥은 이러한 사탄의 주장을 보기 좋게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신앙과 삶은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욥은 변함이 없었고, 하나님은 그런 욥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욥은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하고, 어떤 형편 속에서도 정직하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어떤 혼란 속에서도 악에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이 신앙적 삶이 욥의 위대함이며, 하나님이 욥을 그렇게 자랑하는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욥이 당한 이 고난의 시험은 결코 우리 인간이 감내하기가 쉽지 않은 시험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믿음과 오늘 본문이 주는 중요한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을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님이 자랑하는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이 자랑하는 성도가 되려면,
먼저는, ‘이러한 시험은 절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 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신다.”(약1:13) 말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이 하나님을 잘 믿는 나를 이렇게 시험하느냐, 하나님을 잘 믿는 가족들을 시험하느냐?’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는 책임을 하나님께 돌려서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시험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과 마귀들이 하는 유혹이요, 미혹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사탄이 우리를 시험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을 떠나는 것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미혹당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떠나면 결코 문제의 해결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문제의 해결책이 있고, 문제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자랑하는 성도가 되려면, 둘째 ‘하나님에게서 복도 받았으니 화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욥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9절)는 아내의 말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 하겠느냐?”(10절)
‘예수 믿으면, 복만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복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신앙생활을 해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아야 시험에 넘어가지 않고 믿음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것이 잘되고, 모든 일이 다 형통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화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그 화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랑하는 성도가 되려면,
셋째, 이러한 시험 속에서 우리를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만조백관 앞에서 욥을 자랑하고 있을 때, 지상에 있는 욥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쫄닥 망해서 하루아침에 동방의 부자에서 거지신세가 되었습니다.
베풀던 자가 구걸해야 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복한 가정은 다 깨어져 버렸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10명의 자녀들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욥은 슬픔으로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욥은 사탄의 시험으로 그런 비참한 고통을 겪고 있는데, 하늘에서는 하나님이 욥을 그 사탄에게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질이 괴팍하신 건가요?
우리를 이렇게 비참하게 파괴시켜 놓고, 그 모습을 즐기는 하나님이시어서 그런가요?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가고 있는 욥의 모습을 정말 바라셨는데, 욥이 그 하나님의 기대대로 순전하여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쁨으로 욥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셨던 기대가 무너지지 않았음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기쁨을 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정말 ‘우리 처지가 부끄럽다’ 느끼게 될 수 있고, ‘내 형편이 한심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내 삶이 비참하다’ 여겨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요, 인간의 충동적 행동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이겨나가고 믿음으로 인내하는 성도의 모습을 정말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성도들이 그런 환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변함없는 신앙으로 온전하게, 정직하게 악에서 떠나 살아가는 모습을, 하나님은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피부에 와 닿는 아픔만을 생각하지 마시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우리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토록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마지막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의탁하고, 끝내는 생명의 부활로 승리하시고, 지금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직고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주님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 승리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자랑하는 성도가 되려면,
넷째, 오직 도우시는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마냥 보고 계시기만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감당할 힘을 더하여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계속 말씀하여 주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굳센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피터 와그너가 쓴 「선교현장과 영적 전쟁」이라는 책에는 1985년 인도네시아 중부 섬에서 있었던 신비로운 실화를 소개합니다.
선교사가 선교하러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그 지역에서 유명한 무당이 복음전도를 저지해 왔습니다.
무당은 약 3미터 높이에 걸려있는 달력을 가리키면서 ‘내가 저 달력을 떨어트릴 테니, 너도 능력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3미터 높이의 달력이 갈기갈기 찢어져 땅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등골이 오싹해진 선교사는 충격을 받았지만, 오늘도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조용히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그 무당과 주위의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악령들은 언제나 물건들을 떨어지게 하여 부서뜨린다. 하지만 선하신 하나님은 그것들을 바로잡고, 회복시키시고, 우리를 도우신다.”
그 말과 함께 선교사가 손가락으로 그 찢어진 달력을 가리키자 즉시로 그 달력이 원상태로 회복되어 다시 걸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자랑하는 성도가 되려면, 다섯째, 이 시험이 축복의 통로가 됨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고난이 내게 유익이라” 말씀합니다.
또 믿음의 선진들은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다’라고 간증합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이 시험을 잘 통과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처음보다 갑절로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의 시험을 허락하시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시험이 우리에게 유익하고 축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시험은 절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복도 받았으니 화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시험 속에서도 우리를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끝까지 도우시는 하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성도는 이 시험과 고난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받는 통로가 됨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늘푸른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자랑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배나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최우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