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산 정상에서 바라본 발왕산
屯雲蔽層顚 짙은 구름이 층층 봉우리를 뒤덮고
驚風振伏流 거센 바람이 땅속에 흐르는 물을 뒤흔드네
陰升潤墳澤 음기가 올라와 산천을 적시고
陽華塗林丘 햇빛이 숲을 칠하는구나
殘雪翳厓壑 남은 눈은 골짜기에 덮여 있는데
翠茁已盈疇 푸른 싹은 벌써 밭두둑에 가득하네
時景度逝矢 계절이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
生殺機未休 살리고 죽이기를 멈추지 않네
惆悵少年意 서글프다 젊은 시절의 마음이여
倏忽不可求 어느덧 찾을 수가 없구나
鼓槁焉能興 노를 두드리지만 어찌 흥이 나리오
飛揚神氣遊 마음만 멀리 날아가 노니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장유승 이승용 (공역) | 2016
―― 낙전당 신익성(樂全堂 申翊聖, 1588~1644), 「이른 봄에 아무렇게나 읊다(早春漫吟)」
▶ 산행일시 : 2020년 4월 18일(토), 오전에는 흐림, 오후에는 맑음, 추운 날씨
▶ 산행인원 : 10명(자연, 악수, 대간거사, 일보 한계령, 산정무한, 수담, 사계, 메아리,
신가이버, 동방)
▶ 산행시간 : 8시간 39분
▶ 산행거리 : 도상 10.6km(1부 3.4km, 2부 7.2km, 오룩스 맵에서는 13.7km)
▶ 교 통 편 : 두메 님 25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
06 : 28 - 동서울터미널 출발
07 : 48 -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
08 : 36 - 평창군 진부면 신기리 동면안 근처, 산행시작
09 : 20 - 730m고지, 첫 휴식
10 : 03 - 뒷덕산(△934.3m)
10 : 41 - 871.5m봉
11 : 26 ~ 11 : 58 - 신기계곡 새터, 1부 산행종료, 점심, 2부 산행시작
12 : 58 - 임도
14 : 34 - 두타산(頭陀山, △1,391.4m)
15 ; 28 - 절터봉(△1,243.3m)
15 : 50 - 1,160m봉
16 : 04 - 임도
16 : 37 - △825.2m봉 직전 안부
17 : 15 - 평창관광농원, 마평교, 산행종료
17 : 30 ~ 19 : 15 - 진부, 목욕, 저녁
19 : 55 -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
21 : 23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1.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1/25,000)
1-2. 산행 고도표
▶ 뒷덕산(△934.3m)
‘아침놀 저녁비’라고 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예봉산 너머 동틀 무렵의 노을이 퍽
고왔다. 오늘 낮 동안의 날씨는 어떨까? 이른 아침 제2영동고속도로 남한강을 지나도록 애써
수마를 견디며 추읍산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남한강 주변은 물안개에 더하여 연무가 자욱
하다. 들녘과 산릉을 지나자 안개는 걷혔다. 추읍산과 그 너머로 백운봉과 용문산이 여느 때
보다 더 또렷하다. 하여 오늘은 맑음이다.
그래도 고속도로는 시정(視程) 거리가 십 수 미터에 불과할 만큼 안개가 자욱하다. 여기를
지날 때마다 그렇듯 횡성휴게소에 들러 액자에 담긴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1956)과 그
의 소를 짧은 시간이나마 감상한다. 이상하게 이중섭의 그림 중 ‘길 떠나는 가족’을 보면 가
수 조영남의 그림 대작사건과 그의 화투를 가득 실은 달구지 그림이 생각난다.
이중섭의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 자신이 소를 몰고 소달구지에 아내와 두 아내를 태우고
가는 그림이다. 지독히도 신산스런 삶을 살았던 그가 가족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표현한
그림이다. 조영남은 이중섭의 그 그림에서 착상을 얻어 화투 실은 달구지를 그린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 든다. 조영남은 그림 대작사건이 떠들썩하게 세상이목을 끌자 이렇게 말
했다. 옛날 어른들이 화투짝 갖고 놀다가는 신세 조진다고 했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더라고.
오늘 당초 산행계획은 마평리 장재터에서 점심 도시락을 지고 두타산을 먼저 오르려고 했는
데, 신가이버 님이 허리가 아파 아예 산을 오를 수가 없다 하여 점심 도시락을 버스에 두고
뒷덕산부터 오르기로 한다. 뒷덕산 들머리는 아람치골이나 동면안 마을로 잡는 것이 한결 걸
음이 수월하지만 섣불리 마을로 들어갔다가 산불감시원이나 주민들과 혹시 모를 마찰을 빚
을지도 몰라 그들의 의표를 찌른다.
대로에서 곧바로 산기슭을 치고 오르는 것. 가드레일 넘고 약간 내렸다가 절개지 잡목 잡고
올라 얕은 배수로 건너고 덤불숲 헤치며 가파른 생사면에 달라붙는다. 잠깐 개활지 풀숲의
너와집 지나고 잰걸음하여 소나무 숲에 든다. 금세 쌀쌀한 아침기온을 거친 숨으로 녹인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이런 보기 좋은 소나무 숲에서는 아무리 가파르고 바위 섞인 험로라
고 해도 힘 드는지 모른다.
660m봉. 지도에는 외딴 첨봉이다. 북동쪽으로 방향 크게 틀며 엷은 능선 붙든다. 한 차례 떨
어졌다가 한적한 인적 쫓아 사면 비스듬히 돌아내리면 마을 가까이 임도가 지나는 안부다.
이제 뒷덕산까지 줄곧 곧추선 오르막이다. 큰 숨 한 번 들이쉬고 덤빈다. 호흡에 맞춰 스텝
밟는다. 아무쪼록 내 걸음으로 갈 일이다. 시간이 산을 간다.
가파름이 잠깐 멈칫하여 망자가 쉬고 있는 730m고지에서 우리도 휴식한다. 배낭 무게를 줄
이려고도 내 얼른 탁주를 꺼낸다. 오늘은 상고대 님 닭강정이 없어 입산주 탁주 맛이 쓰디쓰
다. 이곳에는 방금 전에 비가 내렸나 보다. 대기는 상쾌하고 등로 낙엽은 촉촉하여 먼지가 일
지 않고 걷기에 좋다. 카메라 묵직하게 목에 걸고 눈과 발은 온 사면을 더듬지만 노루귀나 얼
레지 등 야생화는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발걸음이 더욱 팍팍할 수밖에.
2. 제2영동고속도로(광주원주고속도로) 남한강 지나며 바라본 추읍산
3. 추읍산, 맨 왼쪽은 백운봉, 추읍산 뒤쪽은 용문산
4. 추읍산
5. 산행 시작하자마자 오르는 660m봉
6. 뒷덕산 가는 길
7. 뒷덕산 정상에서
8. 새잎 나는 낙엽송
하늘 가린 소나무 숲의 연속이다. 기세 좋던 가파름이 마침내 누그러지고 넙데데한 고원 뒷
덕산이다. 사방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아무런 조망이 없다. 풀숲 들추고 부토 쓸어 판독한 삼
각점은 ‘도암 441, 2005 재설’이다. 우리 오지산행에서는 이 볼품없는 뒷덕산을 오늘로 세
번이나 오른다. 7년 전인 2013년 5월 금홍횡단 때는 용산과 매산을 넘어 왔고,
13년 전인 2007년 3월에는 무박산행으로 두루봉과 두타산(그때는 ‘박지산’이었다), 매산을
넘어 왔다. 그때는 비바람치고 무척 추웠다. 오늘 온 일행 중 그때 함께 왔던 이는 대간거사,
사계, 산정무한, 메아리, 신가이버 님이다. 그때 신가이버 님은 내게 산행기 제목으로 ‘봄 마
중 갔다가 개 떨 듯한 산행’을 주문했었다.
등로는 그때에 비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북동진한다. 완만하고 펑퍼짐한 능선이다. 능선
은 뒷덕산의 (산으로서의) 체면을 살리려는 듯 약간 내려주었다가 오른다. 오른쪽 사면 푸르
스름한 낙엽송 숲으로 봄을 느낀다. 871.5m봉 넘고 긴 오르막인 1,004.8m봉 품에 들기 직전
에 오른쪽 지능선을 잡는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언뜻 수렴에 가린 신기계곡 건너편 두타산 연릉을 바라본다. 반공을 채운 거대한 장벽이다.
저기를 올라야 하는가? 때 이르게 주눅 든다. 거리 0.55km를 표고 300m로 쏟아 내리니 제
동하느라 진땀난다. 산자락이 가까워서는 모르고 날선 엄나무 움켜쥘라 인계인수하며 내린
다. 오대천 지천인 신기계곡도 대천이다. 도로 벗어나 새터 물가 농로에 들어 1부 산행을 마
친다.
▶ 두타산(頭陀山, 박지산 薄芝山, △1,391.4m), 절터봉(△1,243.3m)
2부 산행. 점심 먹은 자리에서 시작한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은 두타산까지 2.3km, 2시간을
견적한다(도중 세 번의 휴식을 제외하면 정확했다). 계류 건너고 자갈지대 지나 산비탈의 이
랑 높은 밭을 올라 덩굴 숲 뚫는다. 영락없는 1부 산행 시작의 재판이다. 수직사면이다. 인적
은 물론 수적조차 없다. 발밑에는 자갈이 와글거리고 여러 차례 발길질에도 제자리걸음하기
일쑤다. 여느 때는 전혀 손 안 탄 사면이다 싶어 일부러라도 찾았는데 여기는 아니다. 사막이다.
게걸음하여 지능선에 올라서고 가파름은 여전하다. 더구나 잡목 숲 헤치자니 팔심까지 부친
다.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남인수 시대로 올라가 한 옥타브 높인 ‘추억의 소야곡’은 괴력이 아
닐 수 없다. 나는 소리내기는커녕 숨 쉬기조차 힘든데. 준족들의 조언, 이런 데는 보폭은 짧
게 하고 꾸준히 가시라. 나는 호흡과 박자 맞추는 스텝을 더한다. 오를 발판을 만들 때는 제
자리걸음이라도 한다.
1시간 걸려 잡석더미 오르고 임도다. 휴식한다. 지난주 운악산 산행 때는 물 부족을 겪었기
에 오늘은 맛있게 마시려고 1주일 내내 얼린 물 2L를 가져왔는데 날이 추워서 그런지 비지
땀을 흘렸는데도 한 모금이 먹히지 않는다. 임도 절개지 옆 잡목 사이로 인적이 보인다. 다시
엎드려 긴다. 오후 산행도 잡석 깔린 등로다. 너덜지대가 나온다. 너덜이 헛발질이 없어 오르
기가 훨씬 낫다.
9. 2부 산행 두타산 가는 길
10. 신갈나무 연리지(連理枝)
11. 멀리 가운데는 황병산, 그 왼쪽은 노인봉
12. 멀리 맨 왼쪽은 동대산, 그 오른쪽은 노인봉(1,338m), 그 오른쪽은 황병산
13. 두타산 가는 길에 뒤돌아본 발왕산
14. 오른쪽은 노인봉(1,057m)
15. 발왕산
16. 멀리 오른쪽이 가리왕산 상봉, 맨 왼쪽은 하봉
17. 두타산 정상에서
등로 비켜 잡목 헤치고 절벽 위에 다가가 백두대간 황병산과 노인봉, 동대산을 들여다본다.
가쁜 숨 진정하고 카메라 초점 맞춰 셔터 누르자니 시간이 적잖이 든다. 금방 후미로 처진다.
북사면은 잔설이 만년설이다. 굴아우 쪽에서 산행표지기와 함께 오는 탄탄한 등로와 만나고
가파름은 수그러든다. 따스한 봄볕 가득한 공터가 나와 둘러앉아 휴식한다.
두타산 가는 길이 모처럼 평탄하다. 발왕산과 노인봉을 바라볼 수 있게 사면 오르내리며 발
로 수렴을 걷다보니 두타산 정상이다. 커다란 돌탑과 깨져서 거기에 기댄 정상 표지석이 있
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도암 27, 2005 재설. 조망 좋다. 오는 중에 발왕산을 들여다보
려고 그 애를 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또한 가리왕산, 중왕산, 백석산, 잠두산의 연릉이 하늘
금이다.
당분간 길 좋다. 등고선이 느슨하여 완만한 사면을 기웃거리며 간다. 줄달음하여 길게 내렸
다가 그 반동을 살려 1,194.2m봉을 사뿐하게 넘고 한 차례 비지땀 쏟아 △1,243.3m봉이다.
이정표에 ‘현위치 절터봉’이다. 잠시 서성이다 내린다. Y자 능선 분기점. 왼쪽은 잘난 길 데리
고 두타산자연휴양림 가고 우리는 오른쪽 길 없는 우리 길로 간다.
급전직하. 느긋하던 발걸음이 일변하여 급박하게 쏟아지다가 한숨 돌리니 주위가 조용하다
못해 소연하다. 임도 절개지 절벽이 가까워서다. 오른쪽 사면을 내린다. 더러 낙엽 밑은 빙판
이라 잡목 붙들고도 쭉쭉 미끄러진다. 임도에 내려서고 산모퉁이 돌아 능선 마루금을 잡는
다. 소나무 섞인 험로가 나온다. 절벽 위에 다가가면 왼쪽으로 가리왕산에서 잠두산에 이르
는 장릉이 트이고, 오른쪽은 계방산이 멀리 우뚝하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릿지이거나 나이프 릿지 닮은 바윗길을 내린다. 동방 님은 특히
내릴 때 무릎이 아프다며 뒤처진다. 으레 겪게 마련인 오지산행 성장통이다. 동방 님은 동네
방네라는 이름이 길어서 줄였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의 품평이 이어졌다. 동방불패, 동방신
기, 동방명주, 동방예의지국, 동네방위(‘똥방’이라고 한다) 등등.
△825.2m봉 오르기 직전 안부. 왼쪽 생사면 지쳐 내리면 산기슭 평창관광농원까지 0.7km이
고 △825.2m봉을 넘는다면 도로까지 1.7km나 된다. 농원 쪽이 짧은 반면 여기는 사유지인
데 왜 함부로 들어왔느냐는 농원의 시비에 걸릴 수 있다. 어찌할까? △825.2m봉의 삼각점을
못 보는 아쉬움이 크지만 파장이라 농원 쪽 하산이 만장일치다.
농원 쪽 하산이 쉽지만은 않다. 내내 잡목이 사납고 잡석이 깔린 가파른 내리막이다. 막판에
는 벌목하고 잣나무 묘목을 식재한 능선으로 갈아타서 내리는 것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밭
두렁 지나고 오대천 옆 평창관광농원 구내를 잠깐 들어 만발한 가로수 벚꽃 구경하다 마평교
를 건넌다. 입산 시비를 염려했던 농원은 고로나 19로 휴업중인지 아무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부기) 진부로 간다. 우리의 지정 음식점인 다래식당에는 산중에서 진작 연락했다. 전에 저
녁 도착시간에 임박하여 연락했다가 여러 반찬을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며 핀잔을 들었다. 고
사리나물, 엄나무 어린 순무침, 달래무침, 김치, 감자, 꼬막 등 밑반찬들이 하나같이 정갈하
기도 하거니와 딱 우리의 입맛 맞춤이다. 허기진 터라 밑반찬으로 배를 반이나 채워 삼겹살
은 다 먹지도 못했다.
18. 두타산 정상 주변, 모처럼 부드러운 길이다.
19. 가리왕산
20. 산행 파장이 가까웠다
21. 계방산(?)
22. 멀리 왼쪽은 백석산, 그 오른쪽은 잠두산
23. 멀리 오른쪽은 백적산
24. 멀리 가운데는 백석산
25. 하산 막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