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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창 29장 16절 ~ 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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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달에는 ‘약함(연약함)’에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있니다. 오늘은 창세기 29장의 이야기 중에 연약함을 가졌던 ‘레아’라는 여성을 통해서 우리 각자가 지닌 신체적인 연약함, 낮은 자존감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와 이른바 팥죽 사건과 축복 사건을 겪으면서 밧단아람으로 피신을 하여 외삼촘 라반의 집에 기거하게 됩니다. 라반은 야곱에게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29:14)라고 말하면서 반갑게 맞이하여 한달 동안 평안히 쉬게 합니다.
그후 라반은 야곱에게 “네가 나의 조카이긴 하다만, 나의 일을 거저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너에게 어떻게 보수를 주면 좋을지, 너의 말을 좀 들어 보자.”(29:15, 표준새번역) 라고 보수(품삯)에 대해 물어 봅니다. 야곱이 어떤 보수를 원했는지 대답하면서 이어지는 오늘 본문 16~20절을 읽어 드립니다.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아멘.
야곱은 일하는 보수로 얼마의 품삯을 원한 것이 아니라 라반의 둘째 딸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습니다. 라헬의 언니 레아가 있었지만 야곱은 언니가 아닌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기를 원했습니다.
왜 야곱은 레아 대신 라헬을 택하였을까요? 동생이 언니보다 예뻤기 때문입니다. 여성으로서 외모적으로 예쁜 것은 아마도 가장 자부심을 가질만한 자랑꺼리 일 겁니다. “예쁘면 끝이야, 예쁘면 다 용서 돼, 예쁘면 합격 시켜야지, 예쁘면 실수해도 괜찮아, 아무래도 예쁘면 더 좋지 않겠어” 이런 말들이 사람들의 평균적인 시각일 겁니다.
여성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예쁘지 않으면 차별아닌 차별을 받게 됩니다. “어디서 어이없게 예쁜척 해, 예쁘지 않으면 일이나 잘하든가, 그러게 예쁘기나 하지 그랬어, 예쁘지 않은 것은 죄야 죄” 뒤에서든 앞에서 대놓고든 예쁘지 않은 것에 대한 세상의 촌평과 시선이 이렇습니다.
실제로 외모를 중시하는 직종의 여성을 채용할 때는 아무리 블라인드 채용이니, 실력위주니 해도 외모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면접관들의 인식이라는 말은 정설처럼 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나운서나, 스튜어디스, 비서근무자 등을 보세요. 외모를 안보고 채용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미인들이 넘쳐 납니다. 수천년 전에도 미인을 보는 시선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의 눈에 보아도 라헬은 레아와 비교해서 곱고 아리따웠으며, 그는 당연한 듯이 아름다운 동생을 선택했습니다. 아마 누구라도 그러했을 겁니다.
이에 비해 레아는 라헬에 비해 외모가 출중하지도 못했을뿐더러 결정적인 신체적인 약점이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력이 안좋은 것이었습니다. 시력이 안좋은 것은 생활에 불편을 가져다 주는 것은 물론이고, 집안 인을 하거나, 양과 염소몰이를 하거나, 잔심부름등, 여러 면에서 매우 큰 장애였습니다.
레아는 외모적으로 비교되어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였으며 신체적인 취약함으로 인해 부모나 집안 사람들에게 항상 못난이 취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안그래도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레아는 야곱이 자기 동생을 아내로 맞이하겠다고 선택하자 정말 집을 뛰쳐 나가고 싶은 수치를 느꼈을 것이고, 심정적으로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만약에 손이 불편해서 물건을 잘 들지 못하는 허약함이 있는 사람 앞에서, “너는 저 물건 들지도 못할 것이니 다른 사람 시켜야 겠다”라고 대놓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분노와 수치와 모멸감으로 펑펑 울고 싶을 겁니다. 레아가 그런 상황을 맞이한 겁니다.
자기의 약점이 대놓고 평가 되고, 자기 동생과 비교되어 버림당하는 그 심정은 참으로 참담했을 겁니다. 더군다나 선택받은 동생 라헬과 야곱이 서로 기쁨이 가득하여 좋아지내는 것을 무려 7년 동안이나 지켜보아야 하는 입장은 참담함 그 자체였을 겁니다.
누구나 다 신체적, 외모적 약점이 있습니다. 이런 약점은 지극히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들보다 매우 형편없다고 느껴질 정도이면 정말 자존감이 떨어질 겁니다. 이 약점 때문에 일상이 불편하고 남들 눈치를 보게 되고 항상 기가 죽어 지내는 암울한 일상이 됩니다.
여러분은 신체적으로 간강적으로 어떤 약점이 있으십니까? 약점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는 어려서 잔병치레를 많이 해서 몸이 굉장히 허약했습니다. 체격도 왜소하고 체중도 극히 적게 나가는 말라깽이였습니다. 다른 약점도 많았지만 신체적으로 딱 봐도 약해 보이는 마른 외형 때문에 저는 늘 자존감이 바닥이었습니다.
체력검사를 하면 남녀노소 과체중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할 때 저는 너무 저체중이어서 그것이 노출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도망가고 싶고 숨고 싶었습니다. 몸이 이렇게 왜소하니 어떤 옷을 입어도 폼이 안 낫습니다.
특히 청바지를 못 입었습니다. 청바지는 몸의 굴곡이 두드러지게 드러나기 때문에 말라깽이 몸으로는 도저히 입을 수 없는 옷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그렇게 편하고 간편한 청바지 복장이 제게는 악몽과 같은 옷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이가 들어서 지금은 아주 정상 체중이 되었습니다. 1~2년 전에는 오히려 살짝 과체중이 된 적도 있습니다. 남들은 쌀찌는 것이 스트레스일 때 저는 제발 조금이라도 살이 쪘으면, 한 번반이라도 청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다녀 봤으면 하는 소소한 바램이 있었다는 것을 저만 아는 비밀일 겁니다. 저만의 이러한 약점은 늘 저를 괴롭히며 자존감을 떨어지게 하였습니다.
저의 경우처럼 너무 마르거나, 혹은 나무 살이 찌거나 하는 외형적인 신체의 약점 뿐만 아니라 눈이 크네 작네, 눈썹이 있네 없네, 머리 숱이 많네 적네, 코가 높네 낮네, 귀가 퍼졌네 눌렸네, 입술이 얇네 두툼하네, 다리가 기네 짧네, 손가락이 곧네 휘었네, 허리선이 있네 없네, 등 헤아릴 수 없는 외모 평가를 하면서 자신이 가진 약점들 때문에 자존감을 잃어버립니다.
보이지 않는 신체 내면에는 또 갖가지 질병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불치병, 난치병, 선천적 징별, 성장 질병, 사고 질병, 성인 질병, 노인 질병.. 헤아릴 수 없는 몸의 기관의 질병들로 인해서도 역시 자존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에다가 장애, 사고 등으로 인해 약점을 가진 분들 까지 더하면 약점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나보다 더한 약점,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약점을 가진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기 보다 당장 내가 지닌 약점 하나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 각자의 연약함입니다.
레아 역시 그녀가 외모적으로, 시력으로 연약함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보다 더한 약점이 있는 누군가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자신이 당하고 있는 수치와 모멸감 때문에 몸서리치기도 서러울 지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를 꼭 기억해야 합니다. 레아와 마찬가지로 저나 여러분이나 숨기고, 가리고 싶은 크고 작은 신체적인 약점과 연약함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은 강한자들과 함께 하시기 보다 연약하고 고통 받는 자들을 먼저 살피시는 분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하여도 우리 하나님은 약점과 연약함, 특히 신체적, 정신적, 건강적으로 연약한 자들을 다 알고 계시고, 계속 지켜 보고 계십니다. 그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부르짖는 소리를 다 듣고 계시고,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하고 계십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하나님은 선택받지 못한 레아의 곁에 계셨습니다. 그와 항상 함께 하시고 그의 약함과 연약함을 감싸 주셨습니다. 7년 동안 일을 한 야곱은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결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스토리이지만 21~30절을 읽어 드립니다.
“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아멘.
라반은 라헬이 아닌 레아를 야곱의 아내로 먼저 주었고, 야곱은 크게 반발하였지만 라헬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둘 다 아내로 삼았고, 라헬을 위해서 7년을 더 봉사합니다. 야곱은 결혼을 위해서 무려 14년을 노동을 하였으며, 한 여자를 위해 이렇게 오랜 시간 참고 일한 것을 보면 야곱이 라헬을 위한 마음은 진심이었음은 분명합니다.
레아가 야곱의 첫번째 아내가 된 이런 모든 과정과 결말은 라반이 주도했지만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 즉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깊이 개입이 되어 있었습니다. 레아의 약함과 슬픔을 위로 하시려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작동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레아가 선택받지 못하고 칠년 동안 고통 받고 있었던 상황을 다 지켜 보셨고, 그가 가진 신체적인 약점 때문에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슬픔의 심정도 다 알고 계셨고, 동생과 비교하여 자기는 결혼도 하지 못하는 못난이 밖에 안 된다는 상실감도 다 감찰하고 계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라반을 사용하셔서 레아가 야곱의 첫 아내가 되게 하신 겁니다.
궁금한 것은 동생을 대신하여 몰래 첫날밤에 야곱과 함께 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들었을 때 레아가 거부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명령이라고 해도 뜬금없이 당장 오늘 밤에 남자와 첫날밤을 보내라는 것은 쉽게 허락되는 일이 아닙니다.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도저히 거부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었을까요?
또 하나 궁금한 것은 첫날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사실 저는 라헬이 아니고 레아라고 야곱에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아무 말도 없이 첫날밤을 보내게 됩니다. 이것은 그동안 당했던 수모를 동생에게 복수하려고 독하게 마음먹고 입을 꾹 닫고 참고 있었던 것일까요? 레아의 속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레아도 내심 야곱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흠모하다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동생에게 미안하기는 하여도 나라고 이렇게 결혼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라반은 두 딸을 순서대로 결혼시키려고 이미 마음 먹고 있었고, 한 편으로는 젊고 성실하고 똑똑한 일꾼인 야곱을 오랫 동안 붙들어 둘 수 있는 일석이삼조의 잔꾀를 낸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혜택을 입은 것은 레아였습니다. 레아가 남몰래 흘려야 했던 연약함과 약점에 대한 절망과 슬픔을 단 번에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고, 불의를 진리로 바꾸고, 슬픔을 기쁨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특별한 계획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레아가 야곱의 첫 아내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이며 나아가서 레아 자손을 통하여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가시려는 구속사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메시아 계보(족보)를 보면 하나님은 약한자들을 연결고리로 하여서 예수님의 탄생까지 이어지게 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놀라운 구속사적 원대한 계획을 어찌 라반이 알겠으며, 야곱이 알겠으며, 레아와 라헬이 알았겠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약한자를 강하게 하시고, 넘어진 자를 일으키시고, 슬픈자를 위로하시고 약한자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이신 것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레아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야곱의 첫 아내가 되었지만 그가 가진 신체적인 약점이나 외모의 변화는 여전히 그대로 였을뿐만 아니라 강제로 맺어진 신랑 야곱은 여전히 동생 라헬에게만 마음을 주었습니다.
현실적으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나 마찬지 였으며,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로 다시 칠년을 봉사하기로 작정합니다. 이 모습을 본 레아는 절망했을 겁니다. 몸도 마음도 무너져서 이제는 남편이 된 야곱이 동생만을 해바라기 하면서 칠년을 하루 같이 보내는 그 모습을 또 다시 지켜 보기만 하여야 하는 고통의 2라운드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레아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극도로 원망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그냥 저를 내버려 두시지 왜 결혼을 하게 하여서 더 큰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보게 하십니까? 그냥 신세 한탄을 하면서 나는 못난 사람이야, 약한 사람이야 라고 살아가게 하시지 더 대놓고 무시 당하고 버림당하는 치욕의 상황을 겪게 만드십니까? 차라리 옛날로 돌려주세요. 나는 정말 죽고 싶기만 할 뿐입니다”
남몰래 통곡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레아가 눈에 선합니다. 백번이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며, 야곱이 다시 봉사하는 칠년 내내 고통은 더욱 가증되어갔을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예전에 그냥 지켜 보던 언니의 심정이 아니라, 어쨌든 야곱이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레아의 이러한 비통의 심정을 역시 또 보고 계셨으며, 레아가 당하고 있는 고통의 심정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시려는 역사를 실행 시키셨습니다. 31~35절을 읽어 드립니다.
“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아멘.
31절에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셨다” 라고 하셨고, 33절에도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레아의 이름에 각자 내 이름을 넣어 보십시오. 그리고 “사랑 받지 못함을” 이라는 말 대신에, “약점을, 연약함을, 못생겼음을, 장애가 있음을, 고통을, 슬픔을, 버려졌음을, 낙심을, 눈물을, 학대 받음을, 인정받지 못함을, 처절하게 버티고 있음을...” 이런 말로 대치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의 처지와 형편과 상황과 문제와 현실의 삶을 낱낱이 지켜보고 계심을 대입 시켜서 실제적으로 나를 지켜 보고 계시는지, 나의 호소를 듣고 계시는지 느껴 보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약한자와 연약한 자, 그리고 자존감이 떨어지고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편에 서 계시고 그들를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함과 비교되는 결함 때문에 남몰래 숨어서 눈물 흘릴 때 항상 곁에서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냥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니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우리읙 고통에 100% 동참해 주십니다.
시편의 고백처럼 “나의 유리함(한탄)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라고 호소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한탄을 기쁨으로, 눈물을 웃음으로 바꾸어 주시는 역사를 실행 하실 겁니다.
하나님은 레아가 남자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상황을 물리쳐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은 충만하게 받고 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레아를 너무나 사랑하고 계시다는 증거로 동생인 무려 아들을 4명이나 갖게 하셨습니다. 그 네 명의 이름 뜻에는 레아가 받은 은혜와 회복의 상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첫째,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는 뜻이며,
둘째, 시므온은 “들으셨다”(사랑받지 못함을 들으셨다)는 뜻이며,
셋째, 레위는 “연합”(지금부터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로다)이라는 뜻이며,
넷째, 유다는 “찬송”(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이라는 뜻입니다.
순서를 보시면, 하나님은 레아의 연약함을 돌보셨고, 그녀의 괴로움을 들으셨고, 그와 야곱이 남편과 아내로 연합하도록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고, 결국에는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 하리로다”라는 찬송과 영광을 돌리도록 완전한 회복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한 인생을 온전케 하시며, 고치시며, 회복하시며, 세워 가시는 과정입니다.
레아는 정말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미 선천적으로, 신체적으로 연약함을 몸에 지니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녀가 가진 고통은 뿌리가 깊고 상처는 아물지 않고 커져만 갔습니다. 거기에다 동생과 비교하여 선택 받지 못했고, 남편에게도 전혀 사랑 받지 못하는 버림 받은 비참한 삶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오랜 고통을 견디며 하나님을 붙드고 부르짖으며 버텨낸 결과(사실은 눈물 흘리면서도 버티게 하신 것도 하나님) 하나님은 그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들으시고 그에게 완전한 회복의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오늘 레아의 이갸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다 레아와 같이 각자가 지닌 약점, 연약함이 없을 수 없습니다. 다 있습니다. 칼로 베이고 불로 데이는 듯한 심각한 고통으로 남몰래 눈물 흘리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통속에서도 나의 하나님을 부르기를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다 보고 계시고, 우리의 신음 소리를 다 듣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이러한 약점과 고통과 부르짖음의 험난한 인생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레아의 인생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곧 우리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연약한자의 편에서 함께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반드시 연약함을 교쳐 주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회복이 아주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견뎌야 합니다. 버텨야 합니다. 이겨내야 합니다.
그 언젠가 은혜와 복을 충만하게 받는 그 날에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회복의 주인공들이 되셔야 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됨을 굳게 믿고 하루하루 부르짖기를 멈추면 안 됩니다.
약함, 연약함, 비교당함, 자존감 떨어짐, 이런 것들이 내 삶을 짓누를 때에, 레아의 고통과 회복의 역사를 기억하십시오.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만은 나를 너무나 사랑하여 주시고 계심을 믿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오늘 레아의 이야기가 내 인생에 잘 접목이 되어서 내 연약함, 결핍, 부족, 모자람, 불편함 들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믿음의 회복으로 역사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 하리로다” 우리 인생 가운데 이러한 찬송과 영광이 날마다 고백 되어지는 회복과 은혜의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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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의 연약함을 지켜보아 주시고, 고통의 신음 소리를 들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곁에 항상 머물러 주셔서 능력으로 위로로 사랑으로 회복의 은혜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감당하시려 십자가를 홀로 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