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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눈물
전 호 준
지난해 11월 16일 늦둥이 외아들 놈이 논산훈련소에 입대를 했다.
키는 훌쩍 내가 쳐다볼 만큼 자랐지만, 나에겐 언제나 엉덩받이 어린애다.
아바이를 닮았는지 체격이 약한 놈이 신병훈련소의 강한 훈련을 어떻게 견디어낼까? 노심초사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부대장으로부터 훈련소 수료식 면회 초청장이 날아왔다. 입대한 지 꼭 38일이 되는 날이다.
걱정하던 아들놈을 만난다는 생각에 아내는 밤잠을 설친다. 자동차를 갖고 낯선 길을 찾아가기가 부담되어 열차 편을 이용하기로 하고 KTX 열차표 예매까지 해놓았다.
아침 07시 20분 출발 KTX를 이용 동대구역을 출발 대전역에 내려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며 면회 장소인 논산시 연무읍 소재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에 도착했다. 입영하던 날도 연무대 연병장에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도 사랑하는 아들들을 나라에 맡기고 돌아서는 어머니들의 눈물 같은 이슬비가 소리 없이 오락가락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날씨 탓인지 수료식은 금방 끝이 났다. 똑같은 복장의 수백 명의 장병들이 한꺼번에 흩어지니 아들 찾기가 힘들다. 연병장 가장자리를 따라 면회 온 가족들을 위해 소속 중대별로 팻말이 세워져 있다. 아들이 소속되었던 6중대란 팻말 앞에 무작정 기다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서 “아빠”하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아들놈이다. 얼룩무늬 제복에 베레모를 쓰고 거수경례하는 아들의 모습이 예상외로 의젓하고 건강해 보여 기쁜 마음으로 뜨거운 포옹을 했다.
부모님이나 가족면회 시 주어진 시간에 함께 외출할 수 있다는 초청장을 보고 예약해 놓았던 펜션에 전화를 했더니 얼마 후 차가 왔다.비교적 전망도 좋고 따뜻하고 아늑한 방에서 좋아하는 삼겹살에 준비한 음식들을 차려놓고 식사를 하던 중 아내 휴대폰에서 호출음이 울렸다.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본 아들놈이 밥맛이 없다며 수저를 놓는다. 서부전선 최전방 5사단으로 배속되었음을 부모님께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온 모양이다. 아무튼, 좋은 세상이다.
불안하고 초조해하는 아들에게 군대는 전후방이 따로 없다고, 지난날 나의 군 생활을 들먹이며 안심시켰지만 추워지는 날씨와 최근 안보 불안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도발과 최전방이라는 말에 아내의 마음이 안절부절못하다.
몸조심하라는 당부를 하며 시간이 되어 부대에 데려다 놓고 돌아서는 아내는 아들이 볼까 봐 돌아서서 눈물을 훔친다, 어찌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 어머니들이 오늘 이 시간 이곳에 아내뿐이겠는가? 이 세상 사랑하는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다를 바 없지만, 과연 자식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며 그 애간장 녹이는 마음을 얼마나 알기나 할까?
울먹이는 아내를 다독이며 돌아오는 길, 빗물이 흐르는 차창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벌써 4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나의 어머님의 눈물짓던 그때 그 모습이 오늘 보인 아내의 눈물짓는 모습 속에 한데 어우러져 환상처럼 눈앞에 아른거린다.
1969년 1월 15일 나는 안동에 있는 육군 제36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한겨울 강추위와 싸워가며 6주간의 고된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새로 지급된 피복과 작대기 하나 이등병 계급장에 들떠있는 나에게 거두절미 그냥 전방이라는 달갑지 않은 특명이 떨어졌다.
나라를 온통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1.21사태가 일어난 지 불과 1년, 오늘 본 아들놈의 심정도 이와 다를 바 없었으리라, 왠지 모르게 초조하고 불안한 심사를 가누며 인솔자가 이끄는 데로 한동안 행군해 다다른 곳은 한밤중 안동 역전이었다. 역전 희미한 전깃불 아래 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우리들의 도착을 애타게 기다린 듯 한꺼번에 대열 속으로 파고들어 온다.
오늘 안동역을 통해 신병들이 배출된다는 소식에 면회 나온 가족 친지들로 북새통이다. 제각기 찾아야 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아우성과 대오를 이탈하지 말라는 인솔자의 호령에 역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그 소란하고 무질서 속에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겠지, 귀를 의심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다시 소리가 들린다. 어머님의 목소리라는 직감에 대열을 이탈해 뛰쳐나가니, 상상치도 않았던 어머니가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고 계셨다. 너무나 반갑고 기쁜 마음에 순간적으로 어머님의 품에 안기니, 뜨거운 눈물이 왈칵 눈시울을 적신다.
울먹이는 나에게 사내자식이 울면 안 된다며 나의 등을 토닥이며 아들이 볼세라 고개를 돌려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21사태를 전방에서 직접 겪은 큰아들도 아직 제대하지 않았는데 둘째까지 전방으로 보내야 하는 어머님의 그때 그 마음은 과연 어떠하셨을까?
벌써 사흘 전에 오셔서 부대에 세 번이나 면회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하시고 온 김에 꼭 한번 아들을 보고 가시려는 일념으로 친척 집에 머물며 알아보니 오늘 밤중으로 안동역을 통해 신병들이 배출된다는 소리 소문을 듣고 정확한 내용도 시간도 모른 채 무작정 초저녁부터 나오셔서 추운 겨울밤 기나긴 시간을 대합실에서 준비한 음식이 식을까 봐 수건으로 둘둘 말아 품 안에 품고 계셨다고 한다.
너무나 짧은 시간 꿈속에 만나듯 어머님을 뵈옵고 전방으로 향하는 군용열차 안에서 얼음 알이 되어버린 삶은 계란과 싸늘하게 식어 굳어버린 떡 조각을 씹으니,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온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이 났다.
자식을 길러봐야 부모님의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47년 전 그날 자식이 볼세라 애써 고개를 돌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시던 나의 어머님의 눈물을 오늘 아내가 흘리는 눈물에서 어머님의 모습이 상기되어 회한의 눈물이 난다.
아내의 눈을 피해 창밖을 바라보니. 이따금 차창에 흐르는 빗물이 그때 그날 어머님이 흘리시던 눈물이 되어 내 가슴 깊은 곳으로 아련히 젖어든다.
첫댓글 69년도라면 요즘 군대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웠지요. 저는 첫째 남동생 면회하러 의정부 다녀왔고 둘째 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고생끝에 겨우 면회한 경험 있습니다. 그 추운 겨울 싸온 음식 품고 아들 놓칠세라 살피셨을 어머니의 눈동자 . 지금 저도 눈물날려 합니다.
어머니의 온정은 지울 수 없는 낙인입니다. 47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이 서린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논산훈련소 30연대 훈련병 시절이 생각납니다. 광주 포병학교 훈련 받을 때 부모님이 면회 딱 한번 오셨는데, 너무 반가워 정말 눈물 흘린뻔 했습니다. 아들 놈 군에 보낼 때는, 공군 보냈는데 기분 좋아하니 형수님은 아들 군에 가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서방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더군요. 아버님을 닮아 군생활 씩씩하게 잘 하리라 생각합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70년대 중반 논산훈련소 수료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면회, 초청장 같은건 꿈도 못 꾸었지요. 그런데도 찾아가신 어머니의 자식사랑 대단하십니다.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부대에서 초청장이 다 날라오고..., 며칠전 뉴스에 논산훈련소 주변의 바가지 숙박료가 도마에 오르더군요. 그때는 거의 3년을, 요즘은 2년도 안 되는데 사병들이 많이 힘들어합니다. 강한 군대, 강한 어머니, 강한 병사들이 그리워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겪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잘 참고나면 참은 만큼 보람도 있는게 군대라는 조직이 아니겠습니까. 옛날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머니의 눈물, 아들 군에 갈때, 딸 시집갈때 요즈음은 상황도 많이 달랐지만 연애도 아닌 중매로 만난 결혼, 아버지 할머님을 석달 간격으로 하늘 나라로 보내드리고 일년도 안되어 저가 결혼하게 되어 한꺼번에 세가족을 떠나 보내는 어머님의 눈물 잊혀지지 않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던 적을 생각하며 잘 읽었습니다. 최상순드림
논산훈련소는 비가 자주왔고 부대에서 교장까지 멀어서 오가며 고생한것이 생각납니다. 아드님의 훈련후 자대배치 광경과 전선생님과 연결한 내용이 감동을 줍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