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재능시낭송 본선대회를 보고<후기> / 이 혜정
2014년 12월 6일 토요일,
올겨울 들어 가장 큰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날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재능시낭송대회 본선경연대회가 있었던 날이다.
일찍 가지 않으면 좌석이 없어 입장을 할 수가 없기에 시낭송공부하는 분들과 함께 일찍 만나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간단히 하고 여유있게 티켓을 받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낭송인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늘 그렇듯이 참가자들은 고운 무대의상을 갈아입고, 사진을 찍는 등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이었다.
잠시 후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역시 유자효시인이 맡았다.
심사위원으로는 김남조시인(심사위원장), 문정희시인(시인협회장), 김세원(성우), 정동환(배우),
박영애(재능시낭송협회장) 등 5분이 맡았다.
해마다 녹음된 노래로 들려주던 시인만세 노래는 이번에는 기타연주하나로 노래로 불렀는데 나름대로 신선하게 들렸다.
1번 참가자 김경숙(전남)씨가 조지훈의 석문을 낭송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회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잔잔하고 차분한 낭송이었다.
총 24명이니 4부로 나누어 6명씩 낭송하고 특별 공연이 하나씩 들어가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느 대회이건 잘하는 시낭송의 정석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정확한 발음으로 정확한 전달을 하는 것,
그 다음은 시의 몰입도, 즉 그 시를 얼마나 잘 이해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푹 젖어서 낭송했나 하는 것이 심사의 키포인트이다.
낭송을 들어보면 그 시를 얼마나 내 안에서 묵히고 삭혔는지 그 느낌이 전해져온다.
난 항상 나와 공부하는 분들에게 <詩를 묵히고 삭히고 곰국을 만들어서 낭송하라>고 말한다.
그만큼 그 시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낭송하라는 의미이다.
이번에 좀 특이했던 건 작년에 비해 손동작을 자연스럽게 시의 흐름에 맞게 쓴 낭송자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점이 심사에 유리하게 작용을 했다는 점이다.
6번 갈보리의 노래(박성락)-은상,
11번 태양의 각문(김명수)-금상,
13번 촛불 앞에서(이영미)-동상,
14번 내일(김희정)-대상 등 이 네 사람의 낭송자들은 다른 낭송자들에 비해 손동작을 많이 썼고 크게 썼다.
그런데 그 제스처가 낭송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았고 낭송에 몰입해서 터져 나오는 자연스런 몸짓으로 느껴져서 낭송을 듣는데 감동을 배가 시켰다.
제스처를 불필요하게 부자연스럽게 쓰면 낭송을 감상하는데 거슬려도 시에 몰입해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제스처는 낭송을 더 감동적으로 들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론 너무 많이 쓰면 산만해진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파격적인 수상자는 대상 수상자이다.
일단 무대에 등장할 때 의상부터가 파격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낭송자들은 화려한 드레스 한복 차림이었는데 반해, 김희정씨는 빨간 긴 브라우스에 까만 나팔바지 차림이었다.
고은 시인의 내일이라는 시를 낭송했는데, 시의 길이도 본선용 시로서는 너무 짧았고 무엇보다 낭송이 독특했다.
손동작을 많이 쓰면서 한편의 모노극을 하듯이 연극적인 톤과 분위기로 낭송을 했는데 신기한 건 그 낭송을 들으면서 그 톡톡 튀는 낭송에 빨려 들어가고 나른하고 지루한 여름 한낮, 신선하고 상큼한 바람 한줄기가 스치고 지나간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짧은 낭송을 마치고 들어간 뒤에도 아쉬운 여운이 길게 남는 낭송이었다.
다른 낭송자들은 들으면서 이름 옆에 나름대로 점수를 체크했지만, 김희정씨같은 경우는 이 독특한 낭송을 심사위원들이 대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가늠할 수 없어 그냥 막연히 물음표를 그려 놓았었다.
모든 시상이 끝나고 마지막 대상이 한사람 남았을 때 모두들 누구지?...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딱히 마땅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을 때, 그때 나는 문득 14번이 떠오르며, 아! 이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역시 대상 수상자는 참가번호 14번 김희정씨!
심사위원들도 내가 느꼈던 것같이 신선하게 감동적으로 들었다는 얘기이다.
그렇더라도 지금까지의 재능의 관행으로 봤을 때는 너무나 파격적인 결과여서 다시한번 놀랐다.
나름대로 결과에 수긍을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
이런 방향으로 간다면 지금까지의 틀에 박힌 낭송의 모습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정해진 규칙처럼 참가자들이 입는 의상도 꼭 화려한 한복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의 분위기에 맞는 의상을 입어도 되고, 꼭 긴 시를 낭송해야 큰상을 받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깰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대상을 수상한 김희정씨에게 그 용기와 개척자 정신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렇게 올해도 한해의 시낭송을 마무리하는 제일 마지막 대회인 재능시낭송대회 본선을 끝으로 올 한해의 모든 시낭송 대회가 끝났다.
그동안 2014년 한해동안 이런저런 시낭송대회를 준비하며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해 오신 모든 낭송인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정진해서 다가오는 2015년 을미년에도 더욱더 낭송 잘하는 시낭송인이 많아지길 기원해 본다. <2014,12월>
# 글을 올린 이혜정님은 낭송가 제조기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우리나라 낭송지도 선생님들중에서 가장 잘가르친다는 명성을 떨치는 분입니다.
혹시 시낭송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다면 참고가 되리라 생각되어 이글을 올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