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편지 99신]방아간에서 막 찧은 쌀 택배
친애하는 셋째형께.
오늘 쌀(신동진) 20kg짜리 두 푸대를 착불택배로 보냈습니다.
작년 가을에 수확한 나락을 그동안 정미소에 맡겨둔 것 아시죠?
아버지는 평생 쌀농사를 지어 가을에 두 푸대, 초여름에 두 푸대씩을 보내주셨지요.
우리 형제는 부모 잘 만난 덕분에 그동안 한번도 쌀을 팔아(구입)본 적이 없는 행복한 촌놈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형, 고향에서 갓 찧은 쌀을 받는 것은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 듯합니다.
올해부터 내가 아버지 대신 형들의 논까지 짓는데, 저는 방아를 찧지 않을 생각이거든요.
임대료가 1마지기에 쌀 1가마(80kg)더군요.
가을에 나락을 수확하여 모두 농협에 RPC로 내버리고,
임대료는 쌀 3가마에 해당되는 시세(60여만원)로 형님들 통장에 넣어 드릴 생각입니다.
이것부터가 '아낌없는 주는 나무'였던 부모와 형제의 다름이겠지요.
아무튼, 자라면서 부모의 일을 도와드린다며 농사일(모찌기, 모심기, 농약하기, 김매기 등)을 해보긴 했으나,
도시에서만 40여년 살다가 고향 내려와 처음으로 지어보는 벼농사는 장난이 아닌 듯합니다.
물론 그전과 달리 웬만한 일은 농기계로 다 해치운다지만, 신경쓰이는 일이 한두 개가 아니더군요.
본격적으로 뜨거워지기 전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논두럭 풀을 예초기로 베고 왔습니다.
달포 전에 했는데도, 그새 풀들이 우허니 자라 무릎에 닿더군요.
예초기도 몇 번 해보니 겁도 없어지고 할만은 하지만,
직업적으로 하려니 심란한 생각도 듭니다. 하하.
계속 긴장하다 보니 3시간만 하면 목이 뻣뻣하고 잘 안돌아갑니다.
그러나 예초기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인 듯 거칠 것이 없어서 속이 다 시원합니다.
최근 어느 글에서 그 기분을 ‘통쾌무비痛快無比’라고 표현했지만,
풀 숲을 이룬 두럭이 순식간에 매꼬롬해지는 게 보기에 심히 좋더군요.
세상일이 이런 ‘예초질’처럼 시원하게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대도시에 살면서 스트레스가 그동안 엄청 쌓인 탓도 있을 것입니다.
예초질은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인 듯했습니다.
“오너라, 오너라, 내가 이 예초기로 다 밀어주마” 혼잣말까지 했는걸요.
4필지 논두럭을 모두 하려면 하루 3시간씩 사흘은 해야겠더군요.
형도 시간이 되면 한나절쯤 ‘예초질 체험학습’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가실 것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연중무휴 24시 편의점 경영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가지만,
형이 받는 스트레스는 내가 가름할 수가 없습니다.
장마가 오기 전에는 네 다랭이 피와의 전쟁을 벌였습니다.
아예 모든 논고랑을 뒤지며 예전처럼 김을 매는 고행을 자청했지요.
피도 초보라고 우습게 알았는지, 왜 우리 논에만 피가 꽉 들어찼는지 모를 일입니다.
피와의 전쟁, 풀과의 전쟁에서 1주일째 녹초가 되어서도
정신은 은화처럼 맑기에 형에게 이런 편지를 쓰는군요.
‘못난 소나무가 산소 지킨다’는 속담이 사실인 것처럼
네 아들 중 막내인 내가 고향에 살면서 농사를 지을 줄 누가 알았을까요?
힘은 들어도 보람을 느낄 때가 더 많습니다.
‘보따리 싸기’의 달인으로 한평생을 보따리만 싸다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나도 누가 오기만 하면 싸줄 게 없나 두리번거리곤 합니다.
그러니 마늘, 양파, 감자, 생강 등 밭농사도 지어야지요.
막역한 친구가 감자를 조금 보내주자 ‘부모전자전父母傳子傳’이라고 카톡을 보냈더군요.
물론 아내의 장기부재에서 오는 외로움도 있겠지요.
그보다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형들의 성원聲援이 부족하다는 것일까요?
하지만, 그것도 지난달 마지막 주말, 형의 배려로 조금 풀렸지요. 하하.
나와 2년 동안 한동네에서 날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초대, 저녁을 사셨지요.
물론 그 가운데에는 형의 친구인 이장도 포함되었지만, 주로 내 친구와 내 후배가 주축이었지요.
몇 달 전 이장의 동생이 자기 형에게 점심을 산다며
전주에서 내려와 점심 같이 하고 싶은 친구들을 부르라했다 해서 나도 끼었답니다.
이장인 형이 얼마나 면面이 설 일이겠습니까?
그때, 어느 형이 내려와 밥 한끼 산다며 내 친구들을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은근슬쩍 부러웠거든요.
마치 내 마음을 눈치나 챈 듯이 형이 내 면을 세워준 셈이지요.
고마웠습니다.
그런 것이 형제간의 정리情理가 아니겠는지요.
형, 날씨조차 엄청 더운데,
코로나까지 4차유행이네 뭐네 야단입니다.
이것 참, 정말 하수상한 세월입니다.
건강 유의하기 바라며 줄입니다.
7월 15일
고향에서 동생 씁니다
첫댓글 노가다 품삯 하루에 15만원 × 4 =60만원
세분형님들 쌀값 드리려면 열 이틀은
땀 뻘뻘흘리며 괴물풀깍는 기계와 씨름을 해야하누만 ㅎ
농사짓는 농부에게 일당이나 나와요?
물어보면 일당 나오면 부자되지요ㆍ
예전에 말했다시피 겨울엔 전주에서 노가다하고 농사철에는 고향에서 농사짓고
그래야 겨우 타산을 맞출수있다고 했지요.
농사 아주크게 대규모로 기계화 농사를 짓는것아니면 일당도 안나온다고 ㆍ나락 물수매하여 비료.농약값.형님들 쌀깂드리고 나머지는
얼마나 될꼬?
일당이나 나오려나? ㅎ
농자천하지대본은 왠 말인가?
땀속에 묻혀사는 작가친구 얼굴이 선하게 보이네ㆍ
만감이 교차하게 만드는 성공 스토리!
2막에 힘든 농사, 어르신께 효도, 생활 일기 등 그야말로 살인일정 가운데서 운동장보다 더 큰 4필지 논에서 쌀을 만들다니..
친구지만, 존경스럽다.
그 옛날, 뻐꾸기 우는 소리, 이랴이랴 하면서
피땀 흘려 벼를 키우는 그 절실했던 그 시절 추억도 이참에 소환해 본다.
우리 우천 벗님은 애국자, 덕분에 쌀을 다른 일상품보다 싸게 먹고 있소이다.
프로농부님의 자녀도 역시 프로의 길로...
농자천하대지본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