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4:33-34]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아멘!!♥
☆20230529 날마다기막힌 새벽 #1235
"믿음없는 시대의 희망의 그루터기 "
이사야서 6장 11절 ~ 13절
"이사야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포기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으심..
심지어는 용서하기 싫으심..입니다..
하나님이 이땅에 사람 지으심을 후회하셨다..
하나님의 후회 참 마음아픈 단어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하실때 전패라는
단어를 사용하십니다..
10분의 1도 남지 않게 하겠다는 말씀...
오늘 본문에 그루터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모든 나무가 다 베어져도 그루터기는 남아서
다시 자라난다는 말씀....
노아의 식구들이 바로 그루터기 였죠...
이 그루터기가 된 노아의 식구들을
거룩한 씨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40대때 생사를 건
교회개혁이라는 책을 쓰고
정말 피가 터지도록 싸웠습니다...
정말 목회를 못하겠구나 하는 힘든
투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얘기하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바뀌지 않았고
교회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실패했나?
발버둥치고 노력했던것이
무가치한것이었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첫째 옳지 않은 일에 대해 소리지르는 사람이
한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입니다..
큰 보람이었습니다....
아닌것을 보고 옳지 못한것을 보고도
소리를 지르지 못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소리지름 아파함 고통당함...
이 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때문이라는 것...
사랑하는 주의 몸된 교회 때문에...
아파해보고 고통당해 봤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그 만큼 아프고
힘들어 봤다는 것이
저에게는 영광이지..쓸데없는 고통으로만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더 좋은 것은 그 부르짖음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한국교회를 지키는 그루터기 역활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씨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저들이 결국엔 교회를 지켜낼 것이고...
저들이 결국엔 이 세상을 지켜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늘 날기새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학생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로
공급받는 은혜자들입니다...
교회와 세상의 불의에 잠잠하는 자가 되지 마시고..
좀 고통스러워도 손해보는 한이 있어도..
좀 아픈일을 당하여도 용기있게 소리지르는
돌들이 될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 정의 때문에..
손해도 좀 보고..상처도 좀 받고..
고통도 좀 당할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지..
백날 천날 은혜만 사모하고 좋은것만 사모하고
살아간다면 부끄러운 사람이 아닐까요?
교회개혁을 위해 피 터지게 싸우다 보니
내가 심판을 하고 싶더라구요...
사람을 자꾸 정죄하게 되구요...
판단하고 함부로 미워하게 되구요
그것은 지나친 것이에요...
잘못된 교회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고 나무를 베던가
자르시던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저와 우리들이 할일은 아닙니다..
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투기니라....는 말씀..
날기새......"
애쓰셨습니다..
"평안할찌어다 "
"내가 변해야
직장이 교회가
세상이 변한다...
모든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
내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기회는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 기회를 누릴 믿음이 부족할뿐..."
주님의 마음으로
기대하며 선포하고
축복합니다~~^♡^
아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사무엘상 2:25)
이 본문 말씀은 우리들의 삶과 관련하여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아주 극심하게 죄를 짓는 자에게 주님은 더이상 그의 회개를 허락하지 않으실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라고 말한 — " 꼭 회개함을 주사" 라고 말하지 아니한 — 이유입니다(디모데후서 2:25). 죄의 삶에는 "너무 늦은 때"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2:17의 에서의 이야기도 그러합니다.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는 버려졌고, 회개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평생 죄를 지은 후에라도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들은 분명히 구원받을 수 있으며, 또 구원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비로우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매달렸던 강도를 보십시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43).
2) 하나님은 죄짓는 사람이 옳은 일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옳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그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순종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다른 목적이 있으셨고 그들이 죄를 짓고 죽음에 이르도록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대권하에서 주권적으로 결정하시며 반드시 그대로 되어지는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 어떤 자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을 뜻하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 때때로 하나님의 나타난 뜻 즉 계명이 행해지기를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고 지혜로운 목적으로 다른 것을 주권적으로 뜻하셨기 때문입니다.
제 짐작에 엘리 제사장도 자신의 아들들이 변화되기를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가 마땅히 해야 할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순종하기보다 죄로 인해 죽임당하기를 그 대권하에서 주권적으로 뜻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날 때(보통 우리는 이런 일을 미리 알지 못하며), 우리는 이 일을 바꾸어 주시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가 아니며, 오히려 그 대답은 "이 죄를 극복하게 하여 주지 않고 회개를 허락하지 않는 지혜롭고 거룩한 목적이 내게는 있다. 너는 지금은 이 목적을 보지 못한다. 나를 믿어라.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알고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