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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北海道)】
“법화경(法華經)은 겨울의 신심(信心)이 아닌가.”
오늘 1월 15일 이케다 선생님의 홋카이도 지도로부터 65년
2024년 1월 15일
오늘 1월 15일은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님이 65년 전 겨울, 홋카이도(北海道)를 방문해 격려행(激勵行)을 시작한 날.
◆ ‘청년의 힘’으로 여명을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님이 서거(逝去)한 후, 첫 새해를 맞은 1959년 1월.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홋카이도(北海道)에서 ‘제일보(第一步)의 투쟁(鬪爭)’을 시작했다. 31세의 젊은 양 어깨에 은사(恩師) 사후(死後)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미래가 모두 걸려 있었다.
“당시 총무(總務) 역직(役職)과 함께 청년부(靑年部)의 실장(室長)도 겸무(兼務)하던 나는, ‘청년의 힘’으로 이 한 해를 창가(創價)의 여명(黎明)으로 만들겠다고 맹세하고 기원했다.”
“나는 선진(先陣)을 끊어 행동하고 행동했다. ‘간부(幹部)가 솔선(率先)하여 가장 어려운 곳으로 가는(맡는, 담당하는) 것이다. 법화경(法華經)은 겨울의 신심(信心)이 아닌가.’라며 내 자신이 가장 먼저 엄한의 홋카이도로 향했다.”
〈「수필(隨筆) ‘인간혁명(人間革命)’ 빛있으라」 ‘신시대(新時代)의 여명(黎明)’〉
◆ 15일, 오타루(小樽)로
이 방문 4년 전의 ‘오타루문답(小樽問答)’에서는 이케다 선생님이 사회를 맡아 학회(學會)의 정의(正義)를 만천하(滿天下)에 보여주었다. 그 무대가 된 오타루시(小樽市) 공회당(公會堂)에, 약 1000명의 참석자가 모였다. 이케다 선생님은 어서강의(御書講義)와 질문회(質問會)를 실시하며, 절복(折伏)에 고민하는 동지들을 따뜻하게 격려했다.
“한 사람을 생각하는 일념(一念), 상대(相對)의 행복(幸福)을 진심(眞心)으로 기원(祈願)하는 일념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生命)은 지구(地球)보다 무겁습니다.”
◆ 16일, 첫 방문인 아사히카와(旭川)로
오타루(小樽)에서 열차로 5시간에 걸쳐 첫 방문인 아사히카와(旭川)로. 어서강의와 질문회가 열린 회장(會場)은 초만원. 야외에서는 많은 청년부원(靑年部員)들이 열린 창문으로 들려오는 선생님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도중(途中), 지붕에서 낙설(落雪)이 있어, 손에 든 어서(御書)나 코트가 눈투성이가 되어도, 동요하는 일 없이 진지하게 계속 들었다고 한다.
※ 자세한 것은 소설 『신·인간혁명(新·人間革命)』 제13권 ‘북두(北斗)’ 장(章).
◆ 17일, 유바리(夕張)로
아사히카와(旭川)에서 철로로 5시간, 유바리(夕張)로. 시카노타니(鹿ノ谷)역(당시)에 내린 이케다 선생님은 마중 나온 벗에게 말했다.
“도다(戶田) 선생님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이곳 유바리에 왔습니다!”
전해(前年)인 3월 1일, 생전의 도다 선생님이 유바리의 여자부(당시)와 나눈 약속을 완수하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것이다.
어서강의 등을 마친 선생님은, 도다 선생님이 2년 전에 숙박했던 여관의 같은 방으로. 방에 들어가면서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선생님, 지금 다이사쿠(大作)가 왔습니다.”
언제, 어느 때나 이케다 선생님은 흉중의 스승과 대화하면서 광포(廣布)를 위해 동지를 위해 계속 싸우고 있었다.
◆ 18일, 삿포로(札幌)로
유바리(夕張)에서 삿포로(札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고금(古今)의 일화(逸話)를 통해서 벗을 격려. 삿포로에서는 남녀 청년부의 지도회가 실시되어,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지도(指導). 밤에는 어서강의와 질문회.
이어 다음 날인 19일에도 촌가(寸暇)를 아껴 아침부터 동지들을 격려했다.
65년 전에 새겨진 사제불이(師弟不二)의 투쟁(鬪爭)의 혼(魂)은 지금도 북쪽 대지 맥박(脈搏)친다.
자, 지금이야말로 삼대성(三代城)의 우리가 일어설 때. ‘세계청년학회(世界靑年學會)’ 개막(開幕)의 여명(黎明)을 홋카이도에서부터!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항상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