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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사모]한국사를사랑하는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나도사랑을했으면
나는 멘추와 멘트호트페라는 이름이 그리스 전설에서 그리스 섬들의 재판관이자 입법자이며 지배자로 등장하는 라다만티스Rhadamanthys의 이름에 반영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름은 이집트어 레디 멘추([멘추]가 주다)로부터 이끌어 낼 수 있다. 라다만티스는 또한 헤라클레스의 호전적인 계부로서 그 영웅에게 활쏘기를 가르쳤다. 그런데 멘추는 궁술의 신이 었다. 멘추는 여신 라트와 연결된다. 우리는 메소포타미아의 사료를 통해 라트에 모음이 삽입되어 리아Ria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크레타 종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여신인 레아Rhea의 이름이 우래한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시기에 민Min은 멤피스에서 황소신 아피스Apis에 대한 숭배를 창시한 인물로 여겨졌다. 또 다른 이집트의 황소 숭배, 즉 로마인이 므네비스Mnevis라고 불렀던 황소에 대한 숭배는 이집트의 Mnewe메네붸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이 황소 숭배는 크레타에서 처음으로 왕궁이 건축되기 수백 년 전인 이집트의 고왕국 시대부터 '나선형 성벽'과 관련되었다. 따라서 3중의 일치가 나타난다. 즉 민과 메네붸라는 두 이름과 각각 관련된 두 가지 황소 숭배가 이집트에 존재했고, 민은 왕조 창시자의 이름이고 메네붸는 '나선형 성벽'과 연결되었으며, 크레타에는 왕국 창시자인 미노스 왕 및 라비린토스labyrinthos(미궁)와 관련된 황소 숭배가 있었다. 그리스 전승은라비린토스가 위대한 장인이자 건축가인 다이달로스Daidalos에 의해 이집트의 원형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점에 대해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도끼'를 뜻하는 리디아어 단어라고 주장하는 라브리스labrys에서 라비토린스라는 이름을 이끌어 내려는 시도는 별반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1860년대에 이집트학 학자가 제안한 것처럼, 헤로도토스를 비롯한 다른 고대 저자가 묘사한 거대한 이집트식 미궁 유적지를 가리키는 이집트 지명으로서 재구성된 R-pr-n-h.nt(레-페르-엔-헤네트)로부터 이끌어내는 것(20세기 이집트학 학자들은 이러한 제안을 거부했다)더욱 그럴듯해 보인다.
멘추 숭배뿐만 아니라 민과 므네비스, 그리고 아피스 숭배에서 유래한 황소숭배가 그리스 전역에서 나타나기는 했지만 염소와 숫양 숭배가 등장하자 황소 숭배는 곧 퇴색하고 말았다. 제12왕조가 시작될 무렵 이집트 왕실은 매/황소 신 멘추 대시 숫양 신 아몬을 섬겼다. 이미 언급했듯, 이멘-엠-하트 및 S-n Wsrt(센 우세레트)라는 이름의 제12왕조 파라오들은 그리스 전승에 등장하는 강력한 정복자 멤논 및 세소스트리스와 동일시할 수 있으며, 비문 증거에 따르면 이들은 동부 지중해 지역에 대한 광범한 원정을 수행했다. 따라서 에게 해 유역 전체에서 널리 발견되는 예언적인 숫양/염소 숭배가 기원전 20세기에 이집트에서 두각을 나타낸 직후 도입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집트에서 숫양/염소 숭배는 아몬 및 오시리스Osiris와 관련되었고, 에게 해 지역에서는 그리스의 아몬과 오시리스 격인 제우스 및 디오니소스와 관련되었다.
숫양과 염소 사이의 혼동은, 그리스인에게 멘데스라고 알려진 삼각주 도시의 신탁 제식과 관련된 우수한 혈통의 숫양 종이 다산의 상징으로서는 다소 당혹스럽게도 멸종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자연스럽게 유발된 것으로 보인다. 헤로도토스는 염소와 숫양이라는 표현을 번갈아 사용했으며, 이런 식으로 이후 수세기 동안 계속해서 혼동이 나타났다. 북서 그리스에 위치한 도도나Dodona는 이런 유형의 시탁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으로 인정받았다. 헤로도토스를 비롯한 그리스 저자들에 따르면, 도도나는 리비아 사막에 위치한 시와Siwa 오아시스의 신탁소와 아몬을 숭배하는 테베 신탁소가 전래해 설립되었다. 고고학은 도도나와 시와 사이의 주목할 만한 유사성을 확인해 주었다. 더욱이 시와에서 행해진 아몬 숭배는 당리 설명할 수 없는 도도나Dodona라는 이름의 기원으로 보이는 신Ddwn(다둔)과 관련되었다.
제우스와 디오니소스 사이의 혼동은 크레타(제우스가 죽은 곳으로 알려졌다)와 북부 그리스 변경, 즉 서쪽으로 도도나에서 동쪽으로 멀리 트라키아와 프리기아에 이르는 지역에서 특히 심했다. 다른 이유로 인해 특히 보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이 지역은 미분화도힌 제식을 보존한 것으로 보이는 데, 이 제식은 나중에 도입된(혹은 발생한) 보다 구체적인 제식으로 대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 같은 많은 제식 중심지들은 초기의 요소를 보존했다. 숫양/염소 숭배에 관한 부분의 말미에서는 이집트 종교에서 오시리스의 수난을 재연하는 것과 그리스 극장의 유래 사이의 유사성을 고찰한다. 그리스에서 비극(본래 종교적이었다)이 디오니소스 및 염소, 즉 트라고스tragos와 관련되었다는 점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제3권의 제3장 '미녀'는 여신 아프로디테에 관한 내용이다. 아프로디테라는 이름은 아포르스aphors(거품)에서 유래한다고 전해져 왔다. 그러나 달리 알려진 바 없는 접미사 -디테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거품에서 솟아오르는 여신이라는 고전적인 이미지는 그 전승이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 온 것임을 입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동음이의 기교나 민속 어원처럼 보인다. 진짜 어원은 이집트어 페르 와지트([와지트]의 집)에서 왔음이 거의 확실하다. 이 이름의 두 도시, 즉 이후 그리스인에게 부토스라고 알려진 나일 삼각주의 도시와 아프로디토폴리스Aphroditopolis라고 불린 상이집트의 도시를 지칭했다는 사실은 와지트와 아프로디테가 동일함을 증명한다. 이집트의 신을 그 거처와 관련지었다는 점은 아테나 여신과 관련하여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페르 와지트가 주소로 사용돠ㅣ었음이 입증되었다. 여기에는 음성학적으로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 pr의 r이 보존되는 경우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치모음 a/i는 거의 습관적으로 첨가되었을 것이다. 어쨋든 아프로스보다는 아페르-와지트에서 파생되었다고 보는 편이 음성학적으로 분명히 더 낫다.
아프로디테가 페르 와지트에서 유래한다는 주장은 의미론적으로 매우 강력하다. 와지트는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이었으며, 범람 이후의 새로운 성장과 관련되었다. 마치 아프로디테가 봄, 그리고 청춘의 사랑과 관련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와지트는 또한 그 계절에 나타났던 뱀과도 관련되었다. (중략)
'미녀'에 뒤이은 제4장 '그리고 야수'는, 힉소스가 신봉했던 거스로 여겨지는 신인 세트Seth 혹은 수테크Sutekh에 관한 내용이다. 이집트 신화에서 세트는 외부 세계의 신이자 사막의 신이며, 그곳에 사는 야생적이고 예측할수 없는 자들의 신이었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바다의 신이었다. 힉소스의 정복이 성서에 나오는 이집트 체류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과 마차가지로, 힉소소의 세트가 곧 황야와 화산, 그리고 사나운 바다의 신인 이스라엘의 야웨였다고 여길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는 듯하다. 우가리트 신화에서 다신의 신 바알의 적수는 셈족의 야웨 겪인 '바다'를 의미하는 얌Yam이었다. 헬레니즘 시대에 세트는 티폰Typjon이 되었지만, 다른 모든 이집트 신들과는 달리 그에 해당하는 그리스 신은 없다. 그 이유는 명백히 보인다. 당시까지는 악의 전형인 세트가 존경받을 만한 신으로서 취급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그리스의 주요 신 가운데 그에 상응하는 이집트 신이 없는 경우는 포세이돈이 유일하다. 나는 해결되지 않은 이 두 부분을 서로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신 모두 바다와 지진, 사냥, 전차, 그리고 말과 관련되었으며 대체로 심술궃었다. 힉소스가 세트에게 온전히 헌신한 것과 마찬가지로, 포세이돈은 미케네 문명기의 크레타와 그리스에서 발굴된 선형 문자 B 문자판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신이었다. s가 t로 교체된 포테이돈 같은 형태의 이름을 인도유럽학자는 어근 포트(힘)와 관련지었다. 그러나 접미사 -데온/돈을 디오스dios(신성한)와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고대 모델 내에서 연구하는 사람에게 s와 t의 교체는, ts의 형태였던 것으로 보이는 셈어 문자 짜데를 연상시킨다.
내가 제안하는 포세이돈의 어원은 파[우](~의 그) 시돈 또는 페르 시돈(시돈의 집)이다. 시드Sid는 시돈Sidon의 수호신으로서, 그 이름은 어근 수드(사냥하다)에서 유래했다. 시드는 사냥과 고기잡이, 전차, 그리고 바다의 신었다. 따라서 의미론적 일치는 완벽하다. 그러나 그러한 유래와 관련된 어려움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유형의 이집트-셈어 형태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지 가설로서만 그러한 어원을 제안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어원이 받아들여질 수 있든 없든, 나는 세트와 포세이돈 사이의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줄 수 있으며, 고전기에 그 두 신이 동일시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러한 유사성이 특히 흥미롭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두 신 및 두 신에 대한 숭배 제식 사이의 유사성은 결코 이후의 '이집트화'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제5장 '굉장한 쌍둥이'는 쌍둥이인 아폴론 과 아르테미스에 관한 내용이다. 이집트에서 태양은 다양한 방식, 즉 라Ra와 태양 원반을 상징하는 아톤Aton, 아침의 젋은 태양인 케페레르와 밤의 늙은 태양 Tm(템) 등으로 숭배되었다. 음성학적인 측면에서 케페레르로부터 아폴론을 이끌어내는 데 따르는 유일한 문제점은, h가 o로 음역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도입이 뒤늦게 그리고 페니키아인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h가 h(그리스어에서 매우 빈번하게 o로 전환된다)와 융합되는 차용도 가능하다. 공교롭게도 아폴론의 유래가 사실상 이러한 경우임을 나타내는 두 가지 징후가 있다. 뒤늦은 도입은 아폴론이라는 이름이 선형 문자 B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해 암시된다. 그리고 페니키아인을 통한 도입은 CaCoC식모음 삽입에 의해 암시되는데, 이는 그 이름이 a-가 o-로 바뀌는 '가나안어 모음 변천'을 거쳤음을 시사한다.
의미론의 측면에서 볼 때, 케페레르에서 아폴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케페레르는 그리스어로 하르마키스Harmachis라고 표현 되는 호르 엠 아하트(떠오르는 태양으로서의 호루스)와 동일시되었다 호루스Horus는 적어도 핀다로스Pindaros 시대(기원후 5세기)부터 아폴론과 동일시되어 왔지만, 날이 밝아오는 모습을 나타내는 이러한 형상은 언제나 젊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아폴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측면인 듯하다. 호루스 신화의 중심 내용은 수중 괴물로 나타난 세트와 싸워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다. 그리스에서 아폴론 신화의 주 내용은 델포이Delphoe에서 누이 아르테미스와 함께 피톤Python을 죽인다는 것이다. 나는 델포이가 아텔포스adelphos(형제)와 마찬가지로 '한 쌍' 또는 '쌍둥이'를 뜻하는 셈어 단어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아폴론의 별칭인 델피니오스Delphinios는 또 다른 별칭인 디디모스Didymos(쌍둥이)와 짝을 이루는 것이며, 아폴론이 쌍둥이라는 점은 그의 본성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그리스 종교사들은 아폴론의 쌍둥이 누이 아르테미스가 오로지 달의 여신이었을 뿐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제 아르테미스는 저녁과 밤에 활동하는 사냥의 여신으로 간주된다. 헬레니즘 시대에 아르테미스는 달과 동일시된 이집트의 고양이 여신 바스테트에 상응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바스테트는 불의 모습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모습을 통해 호루스의 적들을 무찌르는 데 일조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능력으로 바스테트는 암사자로 여겨졌고, 또한 라와 저녁 태양신 템에 상응하는 여신으로 간주되었다. 케페레르와 템은 호르 아하투이(두 지평선 호루스)의 쌍둥이 같은 두 측면을 이루었는데, 호루 아하투이는 곧 라에 상응하는 존재였다. 템의 배우자인 테메트/바스테트는 어느 정도 독립성을 띠었던 것으로 보이며, 기원전 3000~2000년의 중반부터는 두 지평선의 호루스의 관련된 두 사자 여신과 연결되었다. 이집트의 가장 거대한 호루스 기념물은 기자의 스핑크스였다. 비록 그 기념물은 한 마리의 사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건축 당시로부터 1천여 년이 지난 기원전 15세기 말 그 부근에 삽입된 헌정의 글은 호르 아하투이, 그리고 템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거의 확실한 호리 템을 언급한다. 음성학적 근거에서 볼 때, 여성형 헤레트 테메트는 아르테미스에 대한 적절한 어원을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집트어 단어의 마지막 음 -t는 흔히 그리스어 단어의 마지막 음 -is에 상응하며, 중간에 등장하는 t는 이집트어의 표준적인 발전에 따라 생략된다. 그리고 이집트어의 h가 o로 변경되므로, 호르가 [ㅎ]아르 모음 삽입되는 것은 충분히 입증된다. 따라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쌍둥이적 성격은 케페레르와 템의 쌍둥이적 성격, 즉 아침 태양과 저녁 태양 사이의 쌍둥이적 성격으로 볼 수 있다.
아폴론-아르테미스와 카드모스-에우로파Europa(카드모스와 에우로파라는 이름은 각기 셈어 카담[동쪽]과 아라브[서쪽,저녁]에서 유래한다) 사이의 유사성(생략)
오르페우스Orpheus라는 이름은 이집트어 [이]레파트(세습왕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이집트어는 그리스어로 오르파이스Orpais라고 음역되었다. [이]레파트는 흔히 게브Geb라고 알려진 이집트 신에게 붙여진 호칭이었다.
크레타의 펠라스고이가 헬레네스임을 시사하는 보다 뚜렷한 징후는, 펠라스고이를 기원전 12세기 팔라스타인에 정착한 찰리스티아인과 연결시킨 몇몇 학자의 연구에서 발견할 수 있다. 견실한 성서적 전통에 따르면, 필리스티아인은 크레타에서 온 것으로 여겨졌다. Pelasg(펠라스그)가 Pelast(펠라스트)와 같다는 것은 ,본래 선先헬레네스어 단어의 마지막 폐쇄음이 그리스인이게는 g로 들리는 반면 이집트어나 셈어를 쓰는 사람에게는 t로 들렸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선헬레네스의 존재에 관한 의혹은 접어두더라도, g와 t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는 자음을 만들어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두 문자를 관련지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 1951년에 장 베라르는 기원후 5세기 헤시키오스의 거대한 사전과『일리아스』제16권 233행의 주석에서 발견되는 '펠라스기콘Pelasgikon/펠라스티콘Pelastikon' 변형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두 문자의 연관성을 뒷받침했다. 이는 (g)와 T(t)의 표기 형태에서 혼동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다른 곳에서 주장했듯이 만약 그리스어 알파벳이 기원전 15세기부터 사용된 것이라면, 그러한 오류는 원문상의 변형뿐만 아니라 펠라스고이라는 이름까지도 설명해 줄 수 있다. 즉 펠라스고이는 가나안어 형태로 재구성된 발음인 Pelast(펠라스트)에서 온 것일수 있다. (헤부데스를 잘못 읽어 헤브리데스Hebrides라는 이름이 된 사례는 이 겨우에 대하 유비를 제공한다.)
보이오티아에 침입한 전설상의 이집트-페니키아인이 맞닥뜨린 원주민 이름인 아오네스Aones와 히안테스Hyantes의 가장 그럴듯한 기원은 이집트어 이운[티우](궁수,이민족)으로 보인다. 이 단어는 다른 단어보다 족히 1천 년 이상 앞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이우네트(활)와 이운(기둥 혹은 나무줄기)이라는 명확한 어원을 갖는다.
헤시도오스가 포이닉스를 아도니스의 아버지로 묘사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경우라면(중략)아도니스의 페니키아 혈통은 그 이름이 가나언어 아돈(군주)에서 유래했다는 것만큼이나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갈(이 이름은 셈어 하가르(방황하다)에서 유래한것으로 보인다)
『탄원자』 117행에서 부닌은 '구릉 지대'를 뜻하지만 '암소의 땅'을 암시하며(어간 bou-[부-]는 '소'를 뜻한다), 아피안은 잊비트의 에파포스 격인 아피스를 떠올리게 한다(262행 참조) (Garvie)
에파포스Epaphos와 어간 ephap-(에파프) 사이의 명확한 유사성을 지적하는데, 희곡에서 종종 나타나는 어간 ephap-(에파프-)는 '잡다'와 '애무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또한 에피프노이아epipnoia라는 단어는 이오를 임신시킨 제우스의 부드러운 숨결과 더불어 나중에는 다나오스와 그 딸들을 위협하는 폭풍을 뜻하기도 한다. 이들과 아피아(안)Apia(n) 외에도, 에파포스라는 이름과 관련한 또 다른 이름을 장 베라르가 제사한 바 있다. 입피라는 이름은 두세 명의 힉소스 파라오들에게 붙여진 이름이었으며, 그리스어로는 통상 아포피스라고 번역되었다. 애스터가 지적하듯히, 모음 삽입 과정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추기 이집트어가 기워전 2000~1000년의 말엽에 a_가 o_로 바뀌는 모음 변천을 겪었다는 사실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아나크라는 이름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히타이트로 보이는 키리야트 아르바의 지배자들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지만, 일반적으로는 에게 해 지역에서 온 것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키크고힘센 필리스티아인을 가리켰다. 와나크트(w)anakt-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프리기아에서도 나타나므로, 아나크는 그 단어로부터 파생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어원 추정은 모호함을 차지하고라도, 키리야트 아르바가 분명 기원전 17세기나 18세기에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내가 믿는 바와 같이 필리스티아인이 주로 그리스어를 사용했다면, 아나크는 당연히 와나크트에서 유래한 차용어였을 것이다.
어쨋든 프레레는 그의 일반적인 주장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이집트어 어근 아나크를 알지 못했다. 아나크의 기본 의미는 안크(또는 앙크ankh)라는 유명한 상징 의미와 마찬가지로 '생명'이지만, 그 확장 범위는 상당히 넓다. 아나크 제트(그가 영원히 살기를)라는 표현은 생존하는 파라오의 이름 뒤에 붙여지는 공식적인 관용 표현이었는데, 이는 인도유럽어에서 그 어원을 발견하지 못한 그리스어 와낙스(w)anax, 와나크토스(w)anaktos(왕)의 그럴듯한 어원이 된다. 아나크는 또한 '관棺'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으며, 이는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의 중심지에 있는 성골함聖骨函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나크토론Anaktoro
n의 어원으로 보인다.
우리의 관심사가와 더욱 깊은 관련을 갖는 것은 , 살아 있는' 물을 묘사하는 무안크 라는 어구에서 나타나는 안크의 용례이다. 아낙토스Anaktos는 특히 실전된 서사시『다나오스』의 시행, 포타무 네일로이오 아나크토스(왕의/살아 있는 강 나일의)에서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사용된다. 나일 강은 비옥함과 생명을 부여하는 힘으로 유명했다. 더욱이 기원후 1세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신화 작가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아이깁토스와 다나오스의 어머니인 나일 강의 딸은 안키노에라고 불렸다. 이 이름이 안크 노이(살아 있는 바다 또는 물의 생명)라는 이집트어 형태에서 파생했을 가능성은, 그 이름의 변형인 안키르로에 또는 안키로에로 인해 더욱 커진다. 로에는 그리스어로 '시내 또는 흐름'을 뜻한다.
이나코스의 딸 이오의 이름은 동사 이에나이ienai(방랑하다)에서 파생했는데, 이는 하갈Hagar의 어원을 하가르(방랑하다)라고 추정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명백한 이집트어와 셈어 어원 추정도 있다. 근대의 주석자들은 희곡에서 계속 나타나는 이오(이오)와 이온(이오니아인), 그리고 이온(제비꽃) 사이의 명백한 동음이의 기교를 인정한다. 이오니아인이라는 이름의 이집트어 기원은 앞서 제시했다. 이오의 두가지 어원 가운데 하나는 이집트어 이아흐(달)로 보이는데, 이는 콥트어 방언인 보하이르어Bohairic로 이오흐라고 번역된다. 더군다나 이오가 아르고스에세 사용된 '달'을 뜻하는 방언이었다는 전승들도 있었다. 프레더릭 알이 지적하듯이, 이오와 이시스 사이의 관련도 이와 연결된다. 이시스는 아주 후기의 이집트 종교에서 달과 관련되었다. 더 나아가 알은 '암소'에서 합체된 뿔과 여성성이 달과 연결된다고 지적한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이오의 두 번째이자 내 생각으로는 오히려 보다 근본적인 이집트어 어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이헤트(암소, 복수형은 [이후]와 이와(긴 뿔 달린 가축용 소)가 바로 그것이다.
이오의 자손들 이름 가운데 우리는 앞서 에파포스라는 이름을 살펴보았다. 후기 이집트어 Rb(레브)에서 유래한 리비아Libya는 아테나의 한 형태라고 생각한다. 많은 학자들은 리비아의 아들인 벨로스Belos의 이름을 셈어 어근 바알에서 이끌어냈다. 바알은 일반적 의미로는 '주主'를 뜻하고, 구체적인 의미로는 그 이름을 지닌 신을 가리킨다. 포이닉스라는 이름은 명백히 페니키아와 관련된다. 역설적이게도, 티로스의 왕 아케노르는 이 가문에서 유일하게 '남자다운' 또는 '대담한'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름을 가진 인물이었다. 아이깁토스라는 이름의 어원은 그다지 분명치 않다. 본래의 헤[트]-카-프타흐(프타Ptah 신의 정령이 깃든 신전)은 하이집트의 수도 멤피스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후기 청동기 시대에 이르렀을 때에는 그 이름이 동부 지중해 전역에서 '이집트인'이라는 뜻으로 흔히 사용되었던 듯하며, 아이-쿠-피-티-요Ai-ku-pi-ti-jo라는 인명은 미케네 시기 그리스에서 언급된다.
아이깁토스의 쌍둥이 형제이자 경쟁자인 다나오스의 이름은 선형 문자 B에서 다-나-요Da-na-jo로 나타나지만, 이는 훨씬 더 복잡하고 매혹적인 무제를 제공한다. 이집트 역사나 신화에서 이 이름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이름은 에게 해 지역과 오래전부터 관련되어 있었으며, 그 시기는 거의 기원전 3000~2000년에까지 이른다. 다-다-나Da-na-ne는 선형 문자 A에서 입증된다. 티나이 또는 타-나-유ta-na-yu는 기원전 15세기부터 그리스를 지칭하는 이집트어 이름으로 등장하며,은 다인은 기워전 13세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다. 애스터는 다나오스라는 이름의 어간을 단엘 또는 다니엘Daniel 같은 이름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셈어 단[다난](재판관)과 관련지었으며, 또한 다나오스를 시조로 하는 다나오스인이 셈어를 사용하는 종족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들이 후기 청동기 시대에 필시 남동부 아나톨리아의 킬리키아Cilicia에서 그리스로 왔다고 본다. 나는 동부 지중해에서 다니/다나Dani/a 또는 타니/타나Tani/a라고 불린 여러 민족들 사이의 관련 가능성을 받아들이며, 킬리키아와 남부 에게 해 지역 모두 청동기 시대에 상당히 셈족화되었다고 믿는다. 한편 나중에 킬리키아에서 발견되는 Dnnym(단님)과 성서에 나오는 단Dan이라는 종족이 에게 해 지역으로 가 것이 아니라 에게해 지역에서 홨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을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인 식민지화는 상당히 일찍이 이루어졌으며, 이에 관한 모든 전설들은 다나오스가 그리스로 이주해온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단Dan-이라는 이름을 둘러싼 치밀한 동음이의 기교가 이집트어와 서부 셈어, 그리고 그리스어에서 오래전부터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앨런 가디너는 다-인 또는 데네Dene라는 지명이 기원전 11세기에 이르러 허기가 굽은 노인을 표현하는 한정사나 그림 문자와 함께 씌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를 '늙은'과 '지친'을 뜻하는 이집트어 테니(이는 나중에 tni[테니]라고 표기되었는데, 그 시기에는 d와 t_, t 가 모두 동일하게 발음되었다)와 관련짓는다. 그래서 그는 다-인 또는 테네를 '지친 땅'이라고 부른다.
그(다나오스)의 이름은 이집트어 데니(배분하다, 관개하다)에서 파생된 형태인 데니우(배분하는 사람, 관개하는 사람)인데, 이는 셈어 단[다난](재판관)과 뚜렷이 관련되ㅏ어 여기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탄원자』의 그리스어 워제인 히케티데스Hiketides로 돌아가 보자. 이 제목은 제우스(제우스는 이 희곡을 처음부터 끝가지 주관한다)의 주요 별칭인 히케시오스Hikesios(탄원자)와 분명하게 관련된다. 다소 낮선 별칭인 히케시오스는 종종 다른 곳에서, 특히 남부 그리스에서 종종 사용된 것으로, 이방인을 보호하는 제우스의 일반적인 모습을 나타낸다.... 히케시오스는이집트어 헤카 카세트와 놀랍도록 유사한데, 이 이집트어는 기우너전 3세기에 그리스어로 힉소스Hyksos라고 번역되었다.
기원전 330년대에 마케노이아가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하자
포세이돈은 미케네인의 주신主神이었고, 이집트의 포세이돈 격인 세트는 힉소스의 주신이었기 때문이다.
기원후 1세기 중반에 이르면, 유대인은 로마 제국 인구의 5~10퍼센트를 형성한다.
기원후 2세기에 세차의 영향력은 의외의 천문학적 일치로 배가된 것으로 보인다. 설명하자면 이렇다. 고대 이집트에는 다수의 정교한 역법이 있었다. 가장 흔한 역년은 속인들의 달력에 사용된 365일 역법과 시리우스(천랑성:로마인들도 이별이 태양과 함께 출몰할 때 1년중 가장 더운 시기로 생각했다)의 출현(이 별이 나타나면 나일 강의 범람이 시작된다고 여겼다)에 의존하는 '시리우스 역법'이었다. 천문학상의 1년은 365.25일이 조금 못 되므로, 이것과 비교하면 365일 역법은 대략 4년에 하루 꼴로 앞서 나갔다. 두 역법은 1460년마다 한번씩 일치했는데, 그러한 일치가 일어날 것이라고 지목한 해는 기원후 139년이었다! 따라서 철저하게 별에 의존했던 이집트 사제 계층은 한 시대의 종말에 관한 이중의 메시지를 받은 셈이었다.
『멤피스 신학』이 묘사하는 우주창조설에 따르면, 멤피스의 지역신인 프타와 그에게서 나온 아툼은 최초의 존재들이었다. 프타는 그의 정신이 위치한 심장에게 세계를 창조했으며, 그의 혀를 통해,즉 말이라는 행위를 통해 세계를 실현했다.
토트는 또한 성서에도 나타난다. 기워전 6세기 혹은 그 이전에 씌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욥기 38징 36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누가 투후트(따오기)에게 지혜을 불어넣었는가?
누가 세크위(수탉)에게 분별력을 주었는가?
욥기에 대한 권위 있는 주석에서, 마빈 포프 교수는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쓴다.
호프만이 투후트를 토트 신과 관련지은 것은 분명 옳았다. 자음의 순서가 제18왕조에서 널리 유포되었던 이름의 형태인 제후티와 꽤 긴밀하게 대응한다. 당시 토트 숭배는 정점에 이르렀고, 페니키아로까지 퍼져 나갔다....비블로스의 필론은 타우토스Taaut(os)라는 페니키아 발음을 제시하는데, 이는 타후트라는 형태를 반영한다...세크위를 수성Mercury의 콥트어 이름 수키와 연결시키는 호프만의 제안은, '수탉'과의 의문스런 연결보다 바람직스럽게 보인다. 알파벳의 발명자이자 모든 지식의 창시작인 전지하고 현명한 토트-타우토스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트레막시무스라는 이름 하에 그리스-로마인의 헤르메스-메르쿠리우스와 동일시되었다.
1419년에는 상형 문자에 과한 5세기 후반의 저서인 『상형 문자』(상이집트 사라인 호라폴로가 썼다)의사본이 이탈리아로 유입되어 번역되었다.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서유럽인은 그리스 여행보다 이집트 여행에 훨씬 더 관심을 가졌다. 최근 재간된 모음집의 편집자들은, 1400년과 1700년 사이에 이집트를 묘사한 서구 여행자의 글이 250여편을 넘는다고 주장한다.
구티족-기원전 2230년경에는 바빌로니아로 쳐들어가 아카드왕국을 무너뜨리고 이지역 대부분을 차지
했다
네브카드네자르(기원전 630~562)
도리스인: 언어학상 다른 그리스 민족과 뚜렷이 구별되는 민족이다. 원래 중부 그리스의 작은 지방인 도리스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1100년경(학자에 따라서는 1200년경)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정복했다.
람세스 2세(기원전 1279~1213)
메네스 기원전 2925년경 통일 이집트의 첫 번째 왕
멘트호트페 이집트 제11왕조의 왕(기원전 2060~2010) 기원전 2060년경 남쪽 지역의 통치를 시작으로, 이집트를 재통을 하여 중왕국 시대를 열었다.
반투아:니제르콩고어족의 베누에콩고어파에 속하는 언어. 아프리카의 대부분 지역에서 쓰인다.4개의 중요한 언어인 르완다어,마쿠아어,코사어,줄루어가 반투어군에 속한다.
베르베르어:북서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언어. 이집트 서부 사막에서 모로코에 이르는 지역에서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선형문자 A 기원전 1700~1600년경 크레타 섬에서 스였으나 아직까지 해독되지 않고 있다.
선형문자 B 기원전 1400~1150년경 그리스어를 표기하는 데 사용된 음절 문자(선형 B문자로 쓴 그리스어를 흔히 미케네그리스어라고 함).
세소스트리스 (기원전1918~1875 재위) 세소스트리스는 고대 그리스인이 부른 이름이고, 이집트어로는 센우세레트이다. 이 파라오의 또 다른 이름은 케페르카라인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아테네를 건국한 케크롭스와 동일 이눌로 여기는 학자들도 있다.
시샤크 Shishak이집트 22왕조의 초대 왕(기원전 945~924) 구약성서에는 기원전 930년경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 맞서 여로보암을 지원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침공앴다.
아마르나 유적지: 상이집트의 고대 도시인 아케타톤(아톤의 지평선)의 무덤 유적지 기원전 1375년경 아크나톤이 아몬 신을 버리고 아톤 신에 헌신하기로 결정
아메노피스: 아크나톤이라고도 하며(기워전 1353~1336 재위)
아모세 1세(기원전1539~1514)
아모세 2세(기원전570~526)
아슈르바니팔(기원전668~627)
사르곤 왕(기원전2334~2279년경 )
아카이아인 호메로스의 글에 다나오이족 및 아르데이오이족과 더불어 트로이를 포위 공격한 그리스인으로 나온다. 호메로스가 그들 거주 지역으로 기술한 곳(그리스 본토, 서쪽 섬들인 레타 섬, 로도스 섬, 키클라데스 섬을 제외한 이웃 섬들) 고고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기원전 14~13세기 미케네인이 활동했던 지역과 정확히 일치한다.
멘트호트페 2세(기워전 2007~1956)
고왕국(3250~2200) 혹은 (2575~2130)
중왕국(2200~1750)
임호텝 조세르 파라오(기원전 2630~2611재위)의 총리를 지냈다.
이오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와 동일시 되었고, 에파포스는 이집트의 신성한 황소인 아피스와 동일
전설의 이 부분은 이오를 시리아 여신 아스타르테와 결부시키고 있다.
중기헬라딕 (기원전 2000~1650)
초기헬라딕(2900~2000)
카탈 휘이크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기워전 6700년경, 그리고 가장 후기의 건축물은 기원전 5650년경으로 추정
투트모세 3세(1479~1426)
펠라스고이:기원전 12세기에 그리스에 살던 종족. 호메로스,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같은 몇몇 그리스인에 의함녀 타라케,아르고스,크레타,칼리디키 등지에 살았다고 한다.
하라파문명 유적지(2500~1700)
히람 왕(969~936)
히타이트:기원전 1340년경 근동을 지배함
하투실리스 1세(기원전 1650~1620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