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2007년 5월 8일부터 11일까지 판문점에서 제5차 남북 장성급군사회담을 개최해, (i)비무장지대 관통 열차 시험운행을 위한 군사보장 잠정합의서와 (ii)5개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원래 이번 장성급 회담은 남한 측이 남북 철도·도로 통행의 군사적 보장합의서 채택을 위해 군사실무회담을 먼저 제의한 것이 발단이 됐다. 북한은 실무회담 제의를 장성급회담으로 격상해 역(逆)제의했고, 남한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회담이 열리게 된 것이다.
남한이 의도했던 항구적 철도·도로 통행을 위한 군사적 보장은 오는 17일 경의선·동해선 철도의 1회 시험 개통으로 낙착된 반면,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NLL(Northern Limit Line: 서해 북방한계선) 재설정 문제를 이슈화하고 분쟁화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NLL 문제와 직결된 ‘공동어로’의 실현과 ‘해주 직항로’ 문제를 앞으로 협의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곧 북한의 의도대로 NLL 관련 이슈를 “계속 협의해 나간다”는 중요한 근거를 남한 측이 북한에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회담 종료 후 북한 측 회담 대표가 “이번 회담의 기본의제는 공동어로를 실현하기 위한 서해 해상분계선 설정 문제였다”면서 회담결과에 불만을 표시했다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이번 회담의 승자(勝者)는 북한이라고 보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분석해 볼 때, 11일 발표된 공동보도문 전문(全文)에는 쌍방이 “서해 해상에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공동어로를 실현하는 것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켜 나가는데 있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는데 견해를 같이 했다”고 명시되었으며, 이어 “쌍방은 서해에서의 평화를 정착시키고 민족의 공영, 공리를 도모하는 원칙에서 공동어로를 실현하기로 하였다”고 명문화됐다.
이어서 보도문은 “서해 해상에서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고 공동어로 수역을 설정하는 것과 관련한 문제를 계속 협의하기로 하였으며 … 서해 해상에서의 군사적 신뢰가 조성되는데 따라 북측 민간선박들의 해주항에로의 직항문제를 협의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NLL은 6·25 전쟁에서 UN군이 전투를 통해 확보한 대북 해상경계선으로 수도권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인 서해 5도를 포함하고 있다. 북한은 NLL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다각적이고 집요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그 일환으로 ‘공동어로’의 설정과 ‘해주 직항로’를 요구해왔다. 지난 1999년과 2002년 NLL 지역에서 북한의 도발에 의한 남북 간 해전이 벌어졌었고 2002년에는 아군 6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 후 북한은 독자적인 ‘통항 질서’와 ‘통제 수역’을 선포,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위험 지역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들어 북한의 주장을 일부 수용, 《NLL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미명 하에 이 지역을 공동어로 구역으로 설정하려는 기도가 있어왔다. 국민 여론의 반대에 부딪쳐 눈치를 보던 이 정권이 이번 장성급회담에서 1회성 군사보장장치를 얻어내는 대가로 NLL 문제를 향후 논의 대상에 포함하기로 합의해 준 것은 크나큰 과오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우리의 대북 해상경계선인 NLL 지역을 분쟁화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국방부와 회담관련자들의 중대한 잘못이라 할 것이다. NLL에 관한 한, 《논의 不可》라는 원칙을 견지했어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5조 2항은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NLL은 우리의 대북 경계선으로 NLL의 분쟁지역화 내지 무력화는 국토방위의 임무를 소홀히 한 反국가적 범죄행위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회담 대표단은 ‘논의를 허용한 것 자체는 별 것 아니다 … NLL 문제가 본격 논의될 때 북한 주장을 수용하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라고 항변할 지 모르나, 바로 이러한 경솔함과 소홀함이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행위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향후 이 합의를 근거로 집요한 NLL 파괴 공작을 감행해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제5차 남북 장성급회담 공동보도문에서 명시된 합의 사항들은 앞으로 북한의 억지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논거로 활용될 것이다. 그만큼 ‘명문화된 합의’에 서명해 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은 ‘NLL 무력화’를 위한 일관되고 집요한 태도를 보여 주목되었다. 특히 회담 도중 북한 해군사령부는 평양의 방송 매체들을 활용, ‘남한이 5개 도서 지역에 무력을 증강시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면서 ‘제3의 서해 교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협박성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북한이 구사하는 고도의 심리전과 대남 교란 전술에 우리 국방부와 군이 가일층의 경계태세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는 남북이 경의선·동해선 철도 연결구간에서의 열차 시험운행에 합의한 것이 또 하나의 주목거리다. 이에 따라 남북의 열차가 5월 17일 낮 12시 10∼20분께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구간의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하게 된다. 또 열차에는 남한 인사 100명과 북한 인사 50명이 각각 탑승할 예정이다.
열차가 남북을 관통하는 것은 경의선의 경우 1951년 6월 12일 이후 56년, 동해선의 경우 1950년 이후 57년 만의 처음으로서, 우리 국민들에게 ‘평화’ 및 ‘통일’의 환상과 ‘상징적 의미’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언론이 크게 보도해 이 이벤트의 효과를 극대화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냉철히 분석해 볼 때, 이번 남북 철도 시험운행은 노 정권이 추구하는 일련의 ‘평화 흥행’ 프로젝트 중의 하나라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게 한다. 국민들에 남북 화해·평화 환상을 심어줌으로써, 대선(大選) 국면전환을 위한 정상회담-평화체제 분위기 조성용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