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친구들과 함께 달음산을 등산하면서 하산길에 황토흙을 비닐팩에 조금 담아 왔다.
집에 있는 화분 분갈이를 위해서였다. 보통 4월 식목일을 전후해서 분갈이를 하는데 금년에는 조금 지체 되었다.
베란다에 있는 화분이 세어 보니 35개, 거실에 있는 것이 3개, 방안에 두 개가 더 있다. 베란다에는 주로 고무나무와 난이 주류를 이루고 그외에 제라늄과 기타 몇종류의 식물들이다.
어찌된 판인지 화분에 물 주고 분갈이 하는 일은 나한테 씌워졌다. 아마도 집에서 제일 자유시간이 많은 사람이 맡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매일 아침 화분에 물 주는 일뿐만 아니라 쓰레기 버리는 일까지도 맡겨졌다. 허긴 빈 술병을 마신 사람이 버리지 않으면 누가 버리겠는가? 요즘 쓰레기도 분리 수거를 하므로 종이류는 매주 목요일에 그외 음식물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는 집에서부터 분리해서 현관 앞에 모아두었다가 제법 공간을 차지한다 싶으면 내다 버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까지 내차지가 된 것이다.
산에서 황토를 담아 오면서 썩은 나무 둥치도 두어개 주워 담아 왔다. 본래는 부엽토를 담아 오려고 했는데 부엽토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물이라고 맨땅에 심으면 다 잘 자라는 게 아니다.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라는 데는 필수영양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썩은 나무 둥치는 더 잘게 부수어 황토에 섞어서 분갈이때 쓸 작정이다. 흙은 만물의 근원이다. 흙이 있어야 식물이 자라고 그 식물을 뜯어먹고 모든 동물이 살아간다.
고대에는 우주의 기본원소를 공기, 물, 불, 흙 이 네 가지를 4대원소라고 믿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물질에는 온, 냉, 건, 습의 네가지의 일차적이고 살 상반되는 기본적인 특질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특질들이 두 개씩 짝을 이루어 다양한 비율로 4대 원소를 형성하여 모든 물질에 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생명유지를 위하여는 4대요소가 필요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농업생산이 곧 생명이나 다름 없었다.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넓히기 위해 다랭이논의 논둑을 수직보다도 더 넓혀 둔각으로 쌓아올린 선인들의 지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나락 한 포기라도 더 심기 위해서 말이다.
땅에도 기운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지기이다. 며칠전 좌빨들이 노통서거 몇 주년이라고 봉하마을에 몇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부터 그 생가를 구경하려고 관광버스가 줄을 섰다고 들었다. 옛날부터 관의 녹을 먹을려면 고향의 높은 산의 정기가 없으면 논두렁 정기라도 받고 태어나야 한다고 했다. 내가 봉하마을과 뒷산 부엉이 바위에도 올라가 보았지만 산의 정기라곤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생가를 구경한 사람들은 너도 나도 흙을 한 줌씩 싸 갔다고 한다. 아마도 무슨 정기를 받고자 했을 것이다.
쇼팽은 외국에 망명해 있으면서도 조국의 흙을 병에 담아서 보물같이 보관했다고 들었다. 일본 고시엔 야구장에는 해마다 흙을 보충한다고 한다. 일본 전국에 있는 수천개의 고교에서 고시엔 야구장까지 올라와 시합을 하려면 수많은 예선전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고시엔 구장에 서는 것만 해도 영광으로 생각하여 선수들이 기념으로 구장 흙을 한춤씩 퍼 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하관시 상주가 관 위에 뿌리는 한줌의 흙은 어떤 의미를 던져 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