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에게서 결혼반지 받는 마리아
‘성모님 결혼식’에 관한 13세기 ‘황금전설’ 내용 묘사
16세기 초 라파엘로
작품… 부드러움?우아함이 특징
성모님의 결혼식에 관해서는 13세기 말에 쓰여진 ‘황금전설’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요아킴과 안나는 아이를 낳으면 성전에 봉헌하겠다는 하느님께 드린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리아가 3살이 되자 딸을 성전으로 데려갔다. 성전은 산에 위치했기 때문에 제단까지는 열다섯 계단을 올라가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젖을 뗀 세살배기 아이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요아킴과 안나는 그렇게 마리아를 성전에 두고 내려왔다. 그곳에는 마리아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함께 남겨졌다고 한다.
마리아가 14살이 되었을 때 제사장은 성전에서 길러진 이들 소녀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결혼을 시킬 것을 명했다. 모든 이들이 제사장의 명을 따랐으나 마리아만큼은 성전에 봉헌되었으므로 결혼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제사장은 크게 당황했다. 제사장이 유다의 원로들에게 고견을 구하였고, 이들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듣고자 하였으며, 마침내 주님의 소리가 들려왔다.
“다윗 가문의 남성들 가운데 결혼하지 않은 자들은 막대기를 들고 제단으로 모이게 하라. 막대기에 꽃이 핀 자가 마리아의 배우자가 될 것이다.”
소집된 남성 중에 요셉도 있었다. 그는 유일하게 막대기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너무 늙었기 때문에 14살짜리 처녀와의 결혼은 가당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제사장이 다시 기도를 올리자 “막대기가 없는 자의 막대기에서 꽃이 필 것이다.”라는 말씀이 들려왔다. 요셉이 막대기 하나를 들어 제단에 올려놓자 금세 거기서 꽃이 피기 시작했고 비둘기 한 마리가 그 위에 앉았다. 성모 마리아의 배후자가 탄생되는 순간이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 전설을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1520)는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에는 신랑 요셉이 신부 마리아의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막 끼워주려는 순간을 담고 있으며, 주례를 보는 사제는 수염이 길게 늘어져 있는 유다의 제사장이다. 요셉은 수염이 있는 중년 남성으로, 성모 마리아는 꽃다운 처녀로 그려졌다. 요셉 뒤쪽에는 마리아와의 결혼에 응모했던 젊은이들이 보이는데 모두 막대기 하나씩을 들고 있으며 자세히 보면 요셉의 것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것에도 꽃이 피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앞쪽의 한 젊은이는 자신이 채택되지 않은 것에 화가 났는지 막대기를 부러뜨리고 있다.
화면 뒤쪽 웅장하게 보이는 원형의 건축물은 성모님이 14살까지 살았던 전설 속의 성전이다. 인물들은 고요하고 우아하며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또한 인물과 배경 사이의 넓은 광장은 원근법을 통해 공간감이 완벽하게 표현되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스무 살이 되던 1504년에 그린 것인데 풍운의 꿈을 안고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에 오기 직전에 그린 것으로서 아직은 스승 페루지노의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고졸함이 엿보이지만 이 초기 작품에 드러난 부드러움과 고요함, 우아함은 이후 라파엘로 그림의 ‘트레이드 마크’로서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상징이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연(地緣)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가 보다. 라파엘로는 바티칸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아테네 학당’을 그린 장본인이다. 소도시 출신의 그가 바티칸에 입성하여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사람으로 성 베드로 성전을 재건축했던 건축가 브라만테가 그를 교황에게 소개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에 그려진 뒷 배경의 성전은 바로 브라만테가 로마에 세운 건축물을 재현한 것이다.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인 셈이다.
고종희·한양여대 교수·서양미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