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후 느지막이 주인님이랑 근처 산을 올랐다. 산이래 봤자 채 200여 m에 불과하지만 우리같은 늙은이들에겐 그리 만만한 높이나 거리는 아닐 터. 땀을 흘리며 걷는 산길임에도 그 상쾌함은 어디에 비유할 수 없음은 젊은 시절에 느꼈던 것보담 훨씬 더할 뿐 아니라 난데없이 불끈 솟는 노익장의 호연지기(浩然之氣)랄까 뭐 그런 자신감꺼정 드는 감정이란...며칠 전에 올랐을 땐 좌우로 아카시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는데, 오늘 보니 하얀 꽃잎들이 모두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으니 아마도 며칠 전 사흘에 걸쳐 느닷없이 내습한 비바람 때문이었으리라.
아카시아 나무는 원래 이름이 아카시라고 하며 북미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는데, 우리나라 산하에 지천으로 널린 게 아카시아 나무이니 가히 해충들이 우글거리는 무궁화 대신 국화(國花)로 삼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인데...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카시아 나무는 대개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척박한 토지에서 잘 자라니 귀하게 여길 이유가 없고, 뿌리가 워낙 멀리 뻗어나가니 다른 나무들의 성장을 방해할 뿐 아니라 목재로도 땔감 외엔 별 쓸모도 없다는 인식 때문에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은데...게다가 일제시대 총독부가 의도적으로 산림녹화용으로 아카시아 나무를 심게 하였다 하는 이야기 때문에 더욱 우리들에게 괴씸죄로 걸려든 게 아닐까?
우리가 어릴 적에 들은 얘기인데, 어느 집에 하는 일마다 어긋나고 가세가 기울어져 가니 용한 점쟁이에게 무슨 방법이 없나 물었단다. 하니 점쟁이가 잔뜩 거드름을 피며 요령을 흔들어대고는 하는 말이, "어허, 이럴 수가... 조상 묘에 뱀이 휘감고 있으니 이를 어찌 할꼬." 하더란다. 해서리 그 집안 대주가 급히 이장을 서두르고 조상 묘를 파헤치니 아 글쎄, 조상의 시신이 든 관을 아카시아 뿌리가 덩굴처럼 휘휘 감고 있었다지 뭔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척박하고 매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아카시아의 입장에선 살기 위하여 물기와 영양분을 찾아가는 건 당연한 귀결 아닌가? 그렇게 아카시아 나무는 사람들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무시만 당하는 아카시아 나무에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인데...아카시아 나무가 우리들의 삶에 끼치는 긍정적인 요소는 실로 대단하다고 할 터인 바, 몇 가지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면서 아카시아 나무에게 긴 세월 짊어지워져 왔던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어야 하겠다.
먼저, 아카시아 나무는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니 해방 후 전 국토가 민둥산이었던 시절 빠른 기간 내에 숲을 울창하게 하는 데는 그만한 재료가 없었다. 특히나 나무 없는 민둥산과 산사태의 악순환으로 부엽토가 부족한 땅에 심을 수 있는 건 오직 아카시아 나무 뿐이었다. 해서리 우리들이 초등학교 시절 가을이 되면 으레 정부는 전국의 아이들을 동원하여 아카시아 씨앗을 채취하라고 독려하였는데, 그넘의 아카시아나무는 있어도 꼭 가파란 언덕배기에 있는 데다 씨앗은 또 워째 그리 높은 데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장면들이 한 두번 연출된 게 아니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속도로 산림녹화에 성공하였으니, 오 아카시아 나무여! 고맙네 정말 고마워.
다음, 아카시아 나무가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고 다른 나무들의 성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웃기는 게 척박한 땅에서 다른 나무들이 자라는 데 중요한 성분인 질소를 유지시켜 주는 건 아카시아 나무의 뿌리라고 한다. 더욱 반전의 계기가 되는 사실은, 아카시아 나무는 토질이 정상적으로 좋아지면 다른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백전백패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나무의 수명이 기껏해야 20~30년이라니,무릇 세상사 억울한 죽음 한 둘이었겠냐만 아카시아나무의 억울함은 여태꺼정 알아주는 이 하나 없었으니!
그리고 아카시아 꽃을 보자. 아카시아 꽃 한 송이의 부피나 무게에 견줄 수 있는 꽃들을 주변에서 찾기란 대단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아니, 나의 경우 지금까지 그렇게 큰 꽃송이를 아카시아 외의 꽃에서 기필코 본 적이 없다. 그렇게 큰 꽃송이에 셀 수 없이 촘촘히 박힌 꽃들이 풍기는 향기는 얼마나 향기롭고, 꽃 하나하나의 속에 소복이 든 꿀은 또 얼마나 달콤한지...하니 우리나라 벌꿀 중 아카시아 꿀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어릴 적 배고플 때 아카시아 꽃송이를 따서 한 웅큼 훑어 입 안에 털어넣고 씹을 때의 그 달착지근했던 맛이라니...
아련한 추억 속의 꽃 아카시아 꽃을 남은 삶에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지 갑자기 처연한 느낌이 드나니... 이 밤 아카시아나무와의 삶을 추억하면서 수감생활 33년의 범서방파 폭력조직의 두목 출신과 옥중 결혼하여 한때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었던 고 이영숙님의 히트곡 '아카시아의 이별'을 들으며 잠이나 청해 본다. 이영숙님의 고귀한 사랑이 아카시아 꽃향기맹키로 오래오래 기억되길 기원하면서...
첫댓글 항상 좋은 글을 올려주는 정해수 동문에게 감사 하다는 말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