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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향로-망경봉(1,181.5m : 원주)
*일 시 : 2005. 12. 11(일), 제57차(27명), 날씨(
*코 스 : 성남매표소-상원골-쌍룡수-상원사-망경봉-삼거리-영원골-영원사-금대매표소
*소 시 : 오전 8시 40분 ~오후 1시 10분 완료(11.1Km, 약4시간 30분간 소요)
치악산(雉岳山).
그 동안 찾았던 치악산은 혹서나 혹한기가 대부분이었다.
영하 10~20도의 혹한 속의 산행이거나, 영상 30~36도 내외의 혹서기의 산행으로 만나곤 했던 치악산의 제57차산행도 예외없는 혹한기 산행으로 만나게 됐다.
근년 겨울 날씨의 전형적인 삼한사온(三寒四溫) 현상은 이미 석기시대의 유물로 사라진지 오래다. 삼한사한(三寒四寒)이거나 삼온사온(三溫四溫)으로 변했다.
雉岳山 비로봉은 해발 1288m로 백두대간인 오대산에서 서남쪽으로 갈라진 줄기로 원주시 를 감싸고 있는 鎭山으로 사계절 많은 등반인을 유혹하는 명산이다. 남북으로 길게 누운 주능선을 경계로 서쪽은 급경사이나 횡성군에 속하는 동쪽은 완만한 산세를 보인다. 최고 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쪽의 망경봉(1182m), 북쪽의 매화산(1085m) 등 1천m급 고봉들이 줄지어 남북 14km에 걸쳐 주능선을 이루고, 계곡이 깊고 가파르다.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장장 14㎞나 능선으로 일명 ‘치악산맥’으로 불린다. 남북 종주 코스를 비롯해 비로봉 코스, 남대봉 코스 등 열 개 이상의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국립공원의 하나다. 치악산의 여러 코스 중에서도 조용하고 등산로에 눈이 많이 쌓여있어 겨울산행으로 찾기에 제격이다. 치악산이 품고 있는 대표적 사찰은 구룡사(신라 문무왕 8년 66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함)와 상원사를 꼽는다. 특히 상원사는 설악산 봉정암과 같이 고산(높이 1000m급)에 위치하며 '雉岳'이란 이름을 잉태한 보은(報恩)의 상징인 까치의 전설을 간직한 사찰로 유명하다.
오전 7시 25분.
호법IC를 빠져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든 하행이다.
도로는 추운 날씨 탓인지 을씨년스럽도록 한산하다. 고속도로가 항상 이렇게 쾌통(快通)하다면 물류는 물론 사람들의 이동이 혈맥처럼 순조로울 것이다. 늘 동맥경화에 시달리는 도로사정이 항상 힘든 여행을 만든다.
상원사 코스 기점인 성남매표소는 신림면 소재지에서 약 9km 떨어져 있다.
중앙고속도로 신림IC에서 북쪽 88번 지방도를 따라 1.5km 정도 더 가면 치악산 국립공원 안내판이 보이는 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좌회전, 2.5km 들어서면 성황림을 지나고, 이어 2.7km 더 가면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 작은 주차장에 닿았다.
아침 8시 40분.
옛 기억을 더듬으며 변화한 성남 매표소 일대는 숱한 맨션과 산장, 그리고 음식점들이 들어차있다. 매표소에서 국립공단 직원이 지정한 등산로를 등반하라는 강권이다.
염두(念頭)한 성남매표소-상원사-망경봉-향로봉-보문사 코스를 포기하고 영원사로 내려가는 수정코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을건조기 산불방지 탐방로 출입통제공고
자연공원법 제28조 규정에 의거 국립공원 탐방로 일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출입통제를 공고합니다.
1. 통제기간 : 2005. 11. 15 ~ 2005. 12. 15 2.
2. 통제목적 : 가을철 건조기 국립공원 산불방지 및 자연자원보호.
3. 개방구간 : 구룡매표소~비로봉, 성남매표소~남대봉, 금대매표소~남대봉.
※ 통제기간은 기상여건 등을 감안하여 조정 운영되오니 공원탐방시
공원 홈페이지 공지사항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4. 위반시 벌칙내용
통제된 탐방로를 허가 없이 출입한 자와 인화물질 소지 및 흡연자는
자연공원법 제86조 규정에 의해 50만원의 과태료 부과.
6. 문의처 : 국립공원관리공단 치악산사무소(033-732-5231)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 포장소로를 따라 북향하는 상원골이다.
상원골 끝에 걸린 파란 하늘에 줄비행기 한 대가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동북향이다.
어린 시절 일직선을 그으며 지나가는 줄비행기는 마치 무성영화처럼 침묵으로 이동하는 그 장면에 매료되어 비행기가 사라질 때까지 맥 놓고 바라보곤 했었다. 갑자기 가까운 인가에서 들려오는 폐견(吠犬)소리 때문에 얼른 하늘에서 눈을 뗐다.
얼음 밑으로 흘러가는 잔잔한 계류소리가 계곡이 생존사실을 일러준다.
콘세트형으로 만든 작은 비닐하우스 안 천정부분을 가로로 걸친 긴 막대마다 매달린 메주하우스가 이채롭다. 겨울철 안방 천정 아랫부분에 달려있을 메주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야외 메주하우스는 다소 의아한 광경이다. 일행들의 행보소리에 놀란 참새 떼들이 군무라도 하듯 파르르 떨며 쏜살같은 이동이다.
8시 52분.
‘마지막 집 봉이민박(-762-3391)’ 앞을 지났다.
<망경봉(남대봉) 4.9Km, 상원사 4.2Km, 성남매표소 1.0Km>
매표소를 통과한지 1Km 지점이다. 약 1km 구간은 임도처럼 평범한 포장과 비포장길의 반복이다. 좌측 계곡은 무거운 침묵과 함께 동결된 상태다. 소나무와 각종 낙엽성 나목들이 조화를 이루는 겨울 계곡은 언제 봐도 처절하리만치 고독하다.
9시 08분.
무인 검표소 박스가 앉아있는 지점이다.
<남대봉(망경봉) 3.7Km, 상원사 3Km>
서울시 등반대회 이후 모처럼 참여한 장숙자-왕영주씨 콤비의 잽싼 쾌보다.
겨울 풍광이 살아있는 상원골의 내부가 차츰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빨치료로 여러 날 금주한 정감사님의 행보도 오늘따라 가볍다.
<맹자(孟子)> ‘진심장(盡心章)’의 ‘궁즉독선기신(窮則獨善其身 ; 무슨 일이 잘 안 풀려서 궁색할 때는 홀로 자기 몸을 닦는 데 힘쓰고, 일이 잘 풀릴 때는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한다)이란 글을 가슴에 새겨 본다는 조선일보 컬럼니스트 조용헌씨.
인생사 살다 보면 잘 풀릴 때보다는 안 풀릴 때가 훨씬 더 많다.
그 안 풀릴 때가 항상 문제다. 그 해소방법에 공감해 소개하는 거다.
‘궁즉 변방독서 삼일등산(窮則 邊方讀書 三日登山)’
매사가 잘 안 풀릴 때에는 변방에 처박혀 열심히 책을 읽고, 일주일에 3일은 부지런히 산을 올라 다니면서 땀을 흘리는 방법이 그것이다. 땀을 흘려야 자기를 지킬 수 있다는 의미다.
9시 15분.
상원골 계곡은 차츰 깊어가는 해발 670m 간이주차장이다.
국립공원안내간판이 서있는 이 지점부터 본격적인 등반로답게 소로로 접어든다.
좌측 계곡 아래 소에 고인 물이 80%가 얼어있고, 낙수부분 주변만 녹아있다.
망경봉 능선을 바라보며 올라가는 경사로 주변은 겨울산죽군락이다.
3분 후 처음 맞는 철다리를 지난 6분 만에 만난 다목적 표지판이다.
<치악 01-35, 033-732-5231, 033-119>
9시 28분.
<남대봉 2.9Km, 상원사 2.2Km, 성남매표소 3.0Km>
계곡을 가로지르는 두 번째 철다리를 차례로 건넜다. 30분에 세 번째, 33분에 네 번째, 35분에 연결된 두 개의 철다리를 건넜다. 어제 새벽까지 안병만 소장께서 마련했다는 고라니와 꿩을 요리해 질펀한 술판을 치뤘다는 김영주-김제범-김병찬씨 일행의 행보는 가히 초인적이다. 특히 감기증세로 목소리까지 변음된 김병찬씨의 우렁찬 목소리와 창가는 오랜만에 듣는다. 모친 초상으로 연 3주 결참한 그가 궁금한지 많은 회원들이 그의 행방을 물어왔다.
9시 36분과 48분.
두 차례에 걸친 스탠딩 휴식을 가졌다.
까치박달, 물참대 명찰을 단 나목들의 수피를 한참 응시했다.
9시 49분.
<상원사 1.0Km, 망경봉(남대봉) 1.7Km, 성남매표소 4.2Km>
세 갈래 계류가 합쳐지는 합수점을 지나 여섯 번 째 철다리를 건넌 이후 성남골이 끝나고 가파른 능선으로 올라붙었다. 통나무를 잘라 턱을 만든 계단이다.
나이 들수록 키도 줄어든다는 보도(2005.12.05)다.
미 하버드대 의과대학이 발행하는 ‘하버드 건강뉴스(Har vard Health Letter)’ 12월호는 대개의 사람들이 40세부터 키가 줄어들기 시작해 10년마다 0.5인치(약 1.3㎝)씩 줄어든다고 전했다. 원인으로는 척추 골절이나 구부정한 자세를 들 수 있다. 키가 줄어든다고 해서 곧바로 건강이 나빠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영양 부족이나 골다공증으로 인해 등이 구부정해지는 척추 후만증(後彎症)은 목이나 등에 통증을 유발한다.
그렇다고 걱정만 할 필요는 없다. ‘하버드 건강뉴스’는 키가 줄어드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소개했다.
먼저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허리 근육을 강화할 수 있는 운동에 힘을 써야 한다고 충고했다. 예를 들어 배를 깔고 누운 자세로 머리와 어깨를 들어 올리는 연습이 좋다.
둘째, 뼈를 튼튼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를 위해 몸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나이든 사람에게 중요하다고 하버드 의대는 조언했다. 이에 더하여 칼슘과 비타민D를 꾸준히 섭취하는 것도 좋다고 한다.
나이 들수록 머리카락이 자꾸 빠지고, 청력은 물론, 기억력도 쇠퇴하고 키까지 작아짐은 모든 동물들이 겪는 공통된 현상이 아닌가. 늙음은 유체적인 결핍화와 정신적인 고독이 어우른 진화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자꾸 슬퍼진다.
10시 04분.
바위위에 무수한 작은 돌을 올려놓은 적석암(積石岩)을 지났다.
<치악 01-32, 033-732-5231, 033-119>
<상원사 0.4Km, 성남매표소 4.8Km>
산행의 절반 이상을 마친 셈이다.
10시 08분.
상원사를 300여m 남겨놓은 지점의 ‘쌍룡수’라는 샘에 닿았다.
상원사 스님들이 차(茶) 물로 사용했다는 쌍용수 샘터는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상원사 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초참(初參)한 이대형씨부부가 다소 처진다는 일행의 전갈이다.
후미를 생각한 보속조절을 위해 선착한 일행들에게 눈 속에 잠긴 쌍룡수 한 잔씩 마시기를 권유했다. 북쪽 저만치 둔덕에 상원사가 겨울오전 늦잠에 빠져있다.
10시 16분.
상원사 일주문 앞, 해발 1,084m 삼거리다.
<영원사 2.8Km, 비로봉 10.5Km, 성남매표소 5.2Km>
예서 좌측 길을 따라 영원사나 비로봉을 향한 치악산 종주의 갈림목이다.
쌍룡수에서 왼쪽 사면길을 따르면 망경봉 남릉으로 이어진다.
배낭을 내리고 상원사 법당 앞으로 올라갔다.
1994년 12월 겨울 이맘 때 아내를 데리고 치악산 종주를 위해 00산악회에 참여한 바 있다. 진눈깨비가 대책없이 무작정 쏟아지는 밤이었다.
자정부터 시작한 야간등반에 아내를 동반했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고 무리였다.
결국은 상원사에 이르러 종주를 포기하고 여보살의 도움을 얻어 요사채에서 새벽 밤을 보내고 성남리로 롤백했다. 이후 아내자신도 무박산행 참여를 꺼리게 됐고, 홀로산행이 이어졌던 상원사에 얽힌 사연이 기억이 새롭다. 치악산 상원사는 남쪽 일원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조망이 뛰어나다.
상원사
무서울 정도로 적막한 겨울 설경에 누워버린 상원사는 차라리 한 폭의 한국화(韓國畵)다.
상원사 경내로 들어가기가 오히려 두렵다. 사찰이 간직하고 있는 평화와 정적을 깨트릴 용기가 없고, 용기가 있다하여도 犯法같아 선두는 멀리서 한참동안 바라봤다.
굳이 해발로 따지면 상원사는 설악산 봉정암 다음으로 치악산 남쪽 망경봉 중턱 1,100m에 위치한다. 신라 경순왕 왕사인 무착선사가 창건한 상원사는 치악산 山名과 관계된 꿩의 보은설화를 간직한 사찰로 유명하다. 가을단풍이 뛰어났던 치악산은 원 이름이 ‘적(赤)’자를 붙여 ‘적악산(赤岳山)’이었는데, 꿩의 보은 설화 이후 꿩치(雉)자를 써 ‘치악산(雉岳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람의 배치는 망경봉을 북편에 등지고 남향의 대웅전이 정 중앙에 있다.
그 우측에 독성각이, 좌측에 심우당이, 그리고 그 옆구리에 단청이 안 된 신축요사채와 산신각이 좌청룡-우백호를 두르듯 양익을 이룬다. 본당 정면 앞 뜰 공간엔 통일신라 때 도선국사가 조성했다는 3층 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이 신라시대의 쌍탑식 가람이다. 상원사의 창건은 정확치 않으나 절에 있는 쌍탑의 3층석탑 유물로 보아 신라 경순왕 때 무척조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쌍탑 우편엔 오석을 이용해 세운 ‘치악산 상원사 보은의 유래비-치악산 상원사 事跡碑가 서있다. 석탑 전면엔 그 유명한 종각이 ’용바위, 절벽 위에 서 있다.
상원사 대웅전 (上院寺 大雄殿 ; 강원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
상원사는 1984년 6월 2일 강원도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되었다. 상원사는 원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치악산의 남쪽 끝 남대봉(1,182m) 기슭에 있는 절로 100평 남짓한 돌바닥 위에 세워져 있는데 치악산이라는 산 이름이 생기게 한 유서깊은 절로, 대웅전과 요사채-객사(客舍) 등이 남아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8.4m), 측면 2칸(5.3m)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건축된 다포집 건물이다. 6·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가 된 것을 1968년 당시 주지 송문영(宋文永)과 여신도 의성(義成)이 중건·보수하였다. 법당의 불상은 새로 봉안한 것으로, 두공부에 용머리 조각이 있다.
절 앞 바위틈에서는 시원한 샘물 이 솟아오르고 그 앞에는 40여m의 벼랑이 있으며 벼랑 끝에는 희귀한 계수나무 3그루가 서 있다. 치악산의 유래가 된 은혜를 갚은 꿩의 이야기는 이 절에서 생겨난 전설이다. 눈 속에 깊이 파묻혀 있어 겨울잠에 잠든 상원사는 꿩과 얽힌 보은의 설화가 전한다.
경상도 의성에 사는 한 나그네가 과거를 보러 한양을 향해 치악산 기슭 오솔길을 걸어가는데 숲 속에서 구렁이로부터 꿩을 살려준 대목에서 시작하는 설화는 전날 살려준 꿩 세 마리가 은혜를 갚기 위해 나그네의 위험을 구하고자 머리로 종을 치고 죽은 애사다. 이후부터 이 고장 사람들은 이 산 이름을 꿩의 보은을 한 산이라 하여 꿩 치(雉)자를 써서 雉岳山이라고 바꾸었다 한다.
치악산에 한 쌍의 구렁이가 나타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치악산의 상원사 주지스님은 욕심이 많고 속세사람과 같은 데가 많았다.
어느 해 신종(新種)을 만들기 위해 장안 십만 집에서 그 집 식구대로 숟가락 하나씩 거두어 들였다. 이주지스님은 처음에는 불심 그대로 종을 만들려고 했으나 견물생심이라 슬며시 탐욕이 생겨 걷어 들인 숟가락 중에서 절반쯤은 숨겨두었다. 그뿐 아니라 거두어들인 숟가락 중 절반만 들여 종을 하나 만들었다.
높다란 종각을 짓고 종을 매달았다. 서라벌 황룡사의 신종만은 못해도 나라의 태평과 안녕을 빌기에는 손색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거창한 시종식(試鍾式)을 갖게 됐다. 식구 수대로 숟가락을 바친 시주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어 이 큰 종의 첫소리를 들으려했다. 몰려온 사람들은 큰 종의 모습을 보고 모두 스님의 노고를 칭찬했다.
참으로 수고했습니다. 스님이 공덕이 아니었던들 이렇게 큰 종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내용도 모르고 칭찬이 자자했다.
맨 처음 종을 치는 것은 스님이 손수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종을 쳐도 종소리가 나지 않았다. 연거푸 몇 차례 종을 쳐보았으나 바위를 때리는 소리만큼도 나질 않았다 모여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에서부터 부처님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저주의 목소리였다. 그 스님은 부처님의 저주를 받아 구렁이가 됐다는 이야기다.
범종각 아래 높이 40m의 ‘용마암’(용바위)엔 벼랑.
이 벼랑 위 바위 끝에는 말발자국 형태와 사람의 손가락 자국같이 패어진 곳이 선명하여 그 밑으로는 갈색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말발자국과 손자리 그리고 갈색의 흔적에 따른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치악산 상원사에서 동남간으로 40리에 제천 땅 백련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의 주지 스님은 여자를 좋아했었다. 그는 스님이면서도 아내를 두고 세속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 스님은 치악산 남대봉 기슭에 있는 상원사의 주지도 겸했다. 이 스님은 백련사와 상원사를 왕래하며 두 절의 주지 스님으로 있었는데 불제자로써 마땅히 불도에만 정신을 쏟아야 할 터인데도 여자를 너무 좋아하여 백련사에는 본처를 두고 상원사에도 소실을 얻어 재미를 보고 있었다.
주지 스님이 가는 날이 잦아지자 백련사에 있는 본처는 몰래 남편의 뒷조사를 통해 상원사에 젊은 소실을 두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무리 스님과 몰래 살고 있는 처지이기는 하나 본 부인은 참고 살아가기가 어려웠다.
이 스님은 백련사에서 상원사를 용마로 왕래했다.
용마는 번개처럼 잘 달리는 말이었다.
슬며시 화가 난 본처는 내놓고 싸울 수도 없어 속으로만 앓고 있다가 스님이 타고 다니는 용마를 굶겨 죽이기로 했다.
"저 놈의 말만 없으면 스님은 첩이 있는 상원사를 자주 가지 못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되도록 말에게 죽을 적게 먹이기로 했다.
한 번 뛰었다 하면 천리도 마다 않는 용마였지만 본처의 계획저긴 음모를 어느 날 스님을 태우고 상원사로 달리는데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았다. 속 모르는 스님은 용마에게 채찍만 호되게 내리쳤고 주인의 채찍을 맞은 용마는 용을 써 겨우 상원사까지 이르러 그만 마지막 바위에 턱을 내고 털썩 꺼꾸러지고 말았다. 이 바람에 등에 올라탔던 스님은 말잔등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바위에 손을 짚었고 말은 앞발을 디딘 채 그 바위에 발자국을 남기고 벼랑으로 떨어졌다.
그 후 가까스로 올라온 스님은 이것이 큰 부인의 소행이었음을 알고 소실과 상원사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 스님의 손자국과 용마의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있고 말이 떨어지며 흘렸다는 핏자국이 또한 남아있어 후세사람들은 이 바위를 「용마바위」라고 부른다.
역사가 바래지면 신화가 되고, 생활이 바래지면 전설이 된다고 했던가.
전설이 남긴 인간적인 교훈은 항상 우리들을 숙연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전설을 보물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10시 27분.
일주문 앞 갈림길로 되나왔다.
상원사에서 망경봉으로 향하는 분기점에서 서쪽 사면길로 들었다.
사면길을 따라 300m쯤 가면 또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영원사 2.5Km, 비로봉 10.2Km, 상원사 0.3Km>
여기서 오른쪽 길을 따르면 망경봉 남릉을 거쳐 망경봉으로 이어진다.
치악산 주능선 종주일 경우 이 길을 따라야 한다.
10시 36분.
삼거리다.
우측은 첫 번 째 삼거리에서 영원사로 향하는 안부로 내려가는, 말하자면 삼각지점이다.
<영원사 2.5Km, 남대봉 2.5Km, 비로봉 10.1Km>
통나무턱 계단길을 올라갔다. 원주벌에서 불어드는 차디찬 강풍이 맵다.
10시 48분.
치악산 제2고봉인 해발 1,081m 망경봉 약 50평 너비의 너른 공터에 올랐다.
비로봉 방향 능선 입구에 자리잡은 산불감시초소 좌편에 입산금지 프레카드가 단단히 묶여있다. 선착순대로 배낭을 내리고 긴 휴식시간을 가졌다.
<비로봉 9.8Km, 상원사 0.9Km>
치악산 망경봉(1081.5)은 지도상 남대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상원사 바로 북쪽에 있는 산을 말한다. 지도나 안내표지판에는 남대봉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 남대봉은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2km 지점에 위치한 지도상의 시명봉으로 표기된 봉이다.
정상 일대는 온통 응고된 설화다.
바로 코앞에 거대한 남근석 망경대가 보이고 북쪽으로 뻗은 주능선 끝에는 치악산의 주봉인 비로봉이, 그 옆으로 매화산이 연이어져 보인다. 동으로 백덕산과 감악산이 뚜렷하고, 서쪽 산 아래 펼쳐진 원주시내가 시원한 조망을 이룬다.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정호승 시인이 ‘가을’에서 읽은 노래다.
돌아보지도, 울지도 말라.
지리산에 숨을 생각일랑 말고, 치악산에 작은 호흡을 뱉을 수 있을지언정 치악산 자락 어느 곳에라도 기대거나 숨어들지 마라.
서쪽 멀리 원주 시내가 명치끝에 걸려있다.
상원사 일대는 물론이지만 망경봉 일대에도 전설어린 기암도 숱하다.
망경대에 수십 길 높이의 남근석을 닮은 기둥바위가 있고, 영원사계곡에는 아들바위가 있다.
10시 57분.
일행 모두가 합류해 삼거리로 되 내려섰다. 예상대로 속보다.
영원골로 방향으로 사면 횡단길을 6분 거리의 망경봉 남릉 사거리 안부로 내려섰다.
11시 3분.
영원사로 내려가는 사거리 갈림길이다.
산행 전 일행에게 고지했던대로 내리막은 생각보다 바튼 급경사다.
이미 아이젠 착용을 마친 뒤라 큰 연려는 없겠지만 조심스런 구간이다.
너덜지대와 거대한 바위를 안고 돌아가는 지점이 여러 곳이다.
“호박나물에 이빨자랑이네.”
짐짓 김병찬씨의 너스레로 웃었다.
영원골 계곡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깎아지른 내리막을 게걸음질로 내려가고 있다.
계곡 길은 무성한 숲 대신 두터운 눈으로 뒤덮여 하산하기가 오히려 수월한 면도 있다. 계곡의 모든 굴곡을 눈이 덮여 하산길이 오히려 편하게 하는 편리한 면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은 동계산행 중 깊은 계곡에 들어갔을 때 경험하는 경우다. 계곡의 물은 모두 동결되어 흐름소리도 멎은 상태다.
음나무(=엄나무) 명찰이 걸린 나목이다.
드문드문 보이는 정절의 상징인 우리의 겨울 소나무가 단연 돋보인다.
충절과 의리의 상징인 겨울 소나무는 춘궁기엔 보시(報施)의 나무였다.
현재 일본을 통해 남해안에 상륙한 재선충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민족수(民族樹) 소나무.
사상최악의 생존투쟁에서 이겨 우리 겨울산의 상록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목과 겨울소나무가 어우른 영원골 계곡은 이유미·국립수목원 생물표본연구실장의 기고대로 겨울나무는 자연을 최대한으로 농축한 ‘공존(共存)의 미학(美學)’이다.
11시 05분.
가파른 내리막에 걸친 로프다.
<영원사 1.9Km, 상원사 0.9Km>
다래넝쿨 나목 줄기가 길을 가로막는다.
한 철 이곳으로 올라가는 등산객들에겐 목을 축일 수 있는 좋은 청량제가 되겠다.
11시 17분.
두 개의 수직바위벽이 들어선 석문협곡이다.
<금대야영장 3.9Km>
영원사 방면에서 올라오는 중년의 남자와 초등학교 5학년 쯤 뵈는 부자 등산객을 바라본 김병찬씨의 일갈에 잠시 민망스러운 시간을 가졌다.
“완전히 국화빵이로군”
한 눈에 봐도 그들 부자는 복사기에서 막 뽑아낸 인쇄물처럼 너무나 흡사해 웃음이 나왔지만 어줍은 표정의 중년남자를 곁눈질하곤 얼른 고개를 돌렸다. 웃자고 한 얘기지만 듣기에 따라선 다소 거북하다는 느낌이다.
단풍나무과인 복장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쇠난간을 잡고 내려서는 경사로다.
11시 29분.
가파른 내리막 바위사면에 걸쳐있는 철다리다.
가래나무 명찰을 보고 일행들마다 가래나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가래나무(재梓>, 추목楸木, 추자楸子, 핵도목核桃木, 산핵도山核桃)는 호도와 비슷하나 약간 길고 좀 갸름한 열매를 가래라고 하는데 가래가 달리는 나무이다. 호도가 수입종인 데 비하여 가래나무는 우리나라에 본래부터 자라던 토종나무다. 일산 신도시 건설을 위한 지표조사 때도 출토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3∼4천년 이전부터 식용하던 열매로 생각된다. 조선왕조실록 세종12년(1429) 5월24일조에는 병조에서 중국 배의 제도에 따라 병선을 제조할 것을 건의한 내용 중에<각 포(浦)의 병선은 모두가 마르지 아니한 송판(松板)으로 만들고 또 나무못을 썼기 때문에, 만일 풍랑을 만나면 이어 붙인 곳이 어그러지고 풀리기 쉬우며, 또 틈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새고 젖어서 빨리 썩게 되어 7, 8년을 견디지 못하고, 또 개조하기 때문에 연변의 소나무가 거의 다 없어져 장차 이어가기 어려울 형편입니다.
중국 배도 역시 소나무로 만들었으나, 2, 30년을 지날 수 있사오니, 청컨대 중국 배의 제도에 따라서 쇠못을 써서 꾸미고 판 위에는 회(灰)를 바르며, 다시 느티나무 판을 써서 겹으로 만들어 시험하되, 만약 느티나무를 구하기 어려우면 각 포에 명하여 노나무[?]·전나무·느릅나무·가래나무(楸) 등을 베어다가 바다에 담가 단단하고 질긴가, 부드럽고 연한가를 시험하여 사용하게 하소서>하였다. 또 능림으로 소나무와 함께 사용한 예는 세종 20년(1437) 10월12일 조에 임금이 송도를 지날 때 생도와 부로 등이 가요를 지어 바친 내용 일부다.
‘저 높은 능 바라보니 소나무·가래나무 울창도 하올세라. 서리 이슬 내린 뒤면 사모하심 더욱하여, 이 첫겨울 접어들면 몸소 정결히 제사지내어, 정성으로 성실하고 공경함으로 효도하심 능히 펴셨서라’
또 동의보감에 보면 <가래나무 껍질은 성질이 차며 맛이 쓰고 독이 없고 피부층을 죽인다. 고약을 만들어 악창, 누창, 저창, 음종 등을 낫게 하는데 피고름을 없애고 새살이 살아나게 한다>하여 약제로도 널리 이용된 것 같다.
중부 이북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20m, 지름 80cm에 이른다. 잎은 기수 우상복엽으로 나며 소엽은 7∼17개이고 타원형이고 잔톱니가 있다. 꽃은 암수 한 나무로 5월에 피며 열매는 길이 4∼8cm의 핵과로 달걀모양 또는 구형이며, 종자는 달걀모양으로 끝이 뾰족하고 9월에 익는다. 목재는 회갈색으로 walnut이라 하며 재질이 좋은 나무로 유명하다.
가래나무와 호도나무의 구별은 소엽의 수가 7개 이상이고 톱니가 있으며 열매는 양끝이 뾰족한 달걀모양이면 가래나무, 소엽의 수가 7개 이하이고 톱니가 거의 없으며 열매가 둥글면 호도나무다. 식물도감에 나타난 해석이다.
11시 42분.
철다리를 건넜다.
<영원사 0.9Km, 금대야영장 3.5Km, 상원사 1.8Km>
서어나무(서나무)는 西木(서목), 견풍건(見風乾)으로 부른다. 왜 나무 이름이 서목이 된지는 알 수 없으나 서쪽에 있는 나무란 뜻인데 우리말로 읽을 때 서나무, 서어나무가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서어나무의 오래된 줄기를 한 번 보면 좀처럼 잊을 수 없는 나무이다. 대부분의 큰 나무 줄기는 둥근 원통형이나 이 나무는 줄기가 회색이면서 울퉁불퉁하여 운동선수의 잘 발달한 근육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어나무는 참나무 종류와 함께 우리 나라 중부 지방을 대표하는 수종이다. 그만큼 많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는 의미인데 줄기가 울퉁불퉁하니 쓸모가 크게 없기 마련이다. 표고 골목 등으로 쓸 수 있으나 참나무에 익숙한 사람들은 서어나무를 잘 쓰지 않는다. 전라북도에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화암사란 절이 있는데 조선조 후기건물로서 건축양식이 독특하여 81년 6월 11일자 보물 662호로 지정된 사찰건물 이다. 이 절의 우화루(雨花樓) 및 극락전을 개축할 때 나온 불구(佛具)의 수종이 서어나무이었다.
중부 이남에 자라는 낙엽활엽수 교목으로 나무높이 10∼15m, 지름 1m에 달한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처음에는 붉은빛이 돌지만 초록빛으로 변하며 타원형 또는 달걀모양이다. 잎의 끝은 꼬리처럼 길게 되고 아심장저로 가장자리는 이중톱니가 있다. 측맥은 10∼12쌍으로 뒷면 잎맥 위에 잔털이 있다. 꽃은 암수 한 나무로 잎보다 먼저 4∼5월에 피며 견과는 9∼10월에 성숙하며 3각상 달걀모양으로 털이 없다. 이삭은 밑으로 처지며 포는 보리이삭이 덤성 덤성 벌어져 있는 것 같다. 서어나무와 개서어나무(Carpinus tschonoskii )는 매우 비슷하여 구분이 어려운데 잎의 끝이 꼬리처럼 길고 잎의 표면에 털이 없으면 서어나무, 잎의 끝이 예두로 되는 경향이 있고 잎의 표면에 털이 있으면 개서어나무 이다. 대체로 서어나무는 산의 아랫쪽에, 개서어나무는 좀 높은 곳에 자란다.
서너 살 어린애 손목마디 굵기의 쇠와이어가 쳐진 난간이다.
11시 48분, 49분에 철다리, 51분에 나무다리, 52분에 철다리를 건넜다.
11시 54분.
우측 아래 맑은 계곡은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색깔의 소가 패어있다.
하강한 선녀가 잠시 멱을 감았던 선녀탕으로 생각하자.
12시 정오.
판목이 깔린 3단의 나무다리 지점이다.
<금대야영장 2.9Km, 상원사 0.5Km, 상원사 2.3Km>
12시 10분.
영원사가 지척인 영원산성 입구 공터다.
<영원산성 600m ↑ >
영원산성 [領願山城]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치악산 남서쪽에 돌로 쌓은 신라시대의 산성으로, 사적 제447호 강원기념물 제27호로 2003년 6월 2일에 지정됐다.
신라 문무왕 또는 신문왕 때에 쌓았다고 하나 확실한 고증이 없다. 또는 나말 후삼국의 혼란기에 양길(梁吉)과 궁예(弓裔)가 이곳에 거처하면서 인근 고을을 차지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문헌에는 영원성이라 하여 둘레가 3,749척이며, 성 안에 우물 한 개와 샘 다섯 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둘레 4km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으며, 높이는 1∼3m, 면적은 17만 5,537㎡로 보존되고 있다. 원주시는 이미 보존된 4Km의 석성(石城)을 기점으로 2001~2004년까지 훼손된 일부 구간을 복원을 마쳤다는 보도다.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는 원주와 이웃 고을 주민들이 이곳에 들어와서 지켰으며, 치악산의 서쪽 중턱에 있는 금대산성이나 해미산성과 서로 교류하여 적을 물리칠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자리잡고 있다.
다듬지 않은 돌덩이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모습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으나, 옛날 치열한 접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중에서 유명한 접전으로는 고려시대인 1291년(충렬왕 17) 원나라의 합단군(哈丹軍)과 원충갑(元沖甲)이 이끄는 부대와의 싸움이다. 향공진사(鄕貢進士)로 별초군(別抄軍)에 있던 원충갑은 이곳에서 원주의 백성들과 함께 적군을 물리쳐 이름을 날렸던 격전장으로 유명하다.
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원주목사 김제갑(金悌甲)은 왜장 모리 요시나리[森吉成]의 군사가 쳐들어오자 관병과 의병을 이끌고 이곳에서 맞서 싸우다가 성이 함락당해 그의 아들 시백(時伯)과 부인 李씨와 함께 순절하였다. 원주 학성동(鶴城洞)에는 ‘문숙공 김제갑 충렬탑’이 서있다. 천연의 요새인 영원산성은 근래 당시 저항을 위해 주둔했던 선조(先祖)들이 쓰던 각종유물(솥, 숟가락)이 발굴된 바 있다.
선두그룹 7~8명이 후미를 기다리는 긴 휴식시간이다.
초참인 이소연씨의 행보도 나무랄 데 없었다. 강남 모 산악회를 열심히 다녔다는 이야기대로다. 하산주 두어 잔을 마셔도 괜찮을 지점이다. 예서 부터는 거의 평지와 다름없는 완만한 내리막 차로다.
12시 42분.
일행 모두가 합류했다.
어려운 영원사 급내리막을 무사하게 내려온 일행들의 밝은 표정이 고왔다.
<금대야영장 2.8Km>
나무다리로 내려선 영원사 정문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板富面) 금대리 1388 소재 영원사(鴒-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다. 676년(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영원산성의 수호 사찰로 창건하여 영원사(永遠寺)라고 하였다가 조선시대 1664년(현종 5)에 인환(仁煥)이 중건하면서 영원사로 바꾸었다. 그 뒤 한때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39년에 이계호(李戒浩)가 중건하였고, 오랜 풍우로 붕괴 우려가 있었던 법당을 주지 김병준(金秉俊)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三聖閣), 요사채 2동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신 불단과 신중탱화를 모신 신중단(神衆壇), 영가(靈駕)의 천도를 위한 영단(靈壇)이 갖추어져 있으며, 삼성각 안에는 칠성·산신·독성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옛 석물(石物)이나 특별한 문화재가 없고 전통 사찰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다.
절 뒤쪽 산 위에는 4㎞에 걸쳐 영원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석성(石城)은 문무왕 때 축성하였으며, 892년(진성여왕 5) 후고구려의 궁예가 이 성을 근거로 하여 부근의 여러 고을을 공략하였다는 사실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1291년(충렬왕 17) 대몽항쟁과, 임란 때는 원주목사 김제갑(金悌甲)이 왜적과 싸우다가 순사한 곳이다.
영원사의 령자가 <령(領)과 령(鴒)>으로 제각각이다. 전자는 거느릴 ‘령’이고, 후자는 할미새 ‘령’이다. 어느 것이 맞는 글자인지 확인할 일이 생겼다.
영원사까지 찾는 신도를 위해 포장도로로 변한 내림이다.
두런두런 나누는 정담을 길바닥에 흘리며 금대매표소 주차장으로의 이동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자연석에 음각한 입석이다. 이 지점이 영원사 경내임을 알리는 표지석인 셈이다.
27명 일행 중 감기몸살기운으로 산행을 포기한 오이사님 대신 그의 내자인 조여사님의 여유는 항심이다.
오후 1시 5분.
일행전원이 산행을 완료했다.
오전 8시 40분 성남매표소를 출발, 상원골-쌍룡수-일주문-상원사-일주문-망경봉-삼거리-사거리안부-영원골-영원사를 거쳐 오후 1시 10분에 금대매표소 주차장에 닿았다.
총 1.1Km, 약4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주차장 화장실은 동파를 우려해 모두 잠금질한 상태다.
이동식 화장실 하나로 여자용화장실로 남긴 공단의 짧은 처사가 너무하다 싶었다.
오후 1시 15분.
금대리 일대 음식점이 모두 비철 휴업상태다.
원주시내 식당을 이용하기로 하고 차량을 움직였다.
주차장에서 원주~제천간 3번 국도삼거리까지는 약 900m 거리를 빠져나와 시내로의 진입이다. 중앙고속도로 개통 전에는 이 도로가 시장바닥처럼 붐볐는데 현재는 한산한 상황이다. 다. 원주시 단구동 ‘조마루뼈다귀집’(766-3993)에서 28명의 일행이 들어섰다. 동시다발적인 식사준비가 가능하기 때문에 선택한 식당이다. 김영주씨가 제공한 발렌타인21을 반잔씩 아우르며 안전산행을 자축하는 건배를 가졌다. 그리고 건한 해장국에 소주잔을 비우는 과정이 있었다.
오후 2시 39분.
식당을 떠나 귀로에 올랐다.
예상과 달리 원만한 통행이 될 것이란 문막 주변은 극심한 정체다.
문막~여주간 국도를 통과 여주IC로 재진입했다.
호법IC를 지나며 소통이 원활했다. 일몰전에 입경하리란 예상이 또 빗나갔다.
일요일 오후 88도로는 이제 상습적인 정체구간이 되었다. 약 1시간가량 시간을 흘렸다.
도시가 온통 검게 변한 시간이다.
5시 50분에 당산역,
6시 10분 강서구청 앞 통과다.
이른 귀가에 주당회원 모두가 뒤돌아보지 않고 곧장 내린다.
최고의 성적을 자랑하고 싶나보다. 술 이기는 장사 따로 없다.
6시 20분 발산역에 내렸다.
김제범씨와 마지막 갈증을 생맥주 두어 잔에 씻는 시간을 가졌다.
*교통 :
-열 차[청량리~원주간 1일 17차례 운행, 원주~국향사 간 시내버스 이용]
-승용차
①영동고속도로 남원주IC-시내관통-원주공고 앞-국향사 앞]
②남원주IC-중앙고속도로신림IC-88번지방국도-(금대리)-삼거리-88번지방도(주 천 방향)-배나무거리 3거리(좌회전)-윗성남-높은 다리-상원사주차장, 윗성남매표소]
-버스[원주 자양동 종점서 1일 5회(07:20, 09:25, 12:25, 15:25, 16:55) 성남행 21번 동신운수 시내버스 이용. 성남에서 자양동행 버스는 1일 5회(08:30, 10:30, 14:30, 16:30, 20:00) 출발. 약 50분소요. 요금 700원. 연송정 버스종점에서 매 표소까지는 약 1.2km 거리. 또는 원주에서 수시 운행하는 신림행 시내버스나 시외 버스 이용, 신림에서 택시(개인택시 033-763-3979) 이용.
-대중교통편은 원주까지 고속버스나 중앙선 열차편 이용,
원주∼신림간은 21번 시내버스, 신림∼성남간은 1일 5회 운행하는 버스 이용.
*숙식 :
-성남지구 숙박/음식점
상원산장 숙박 및 음식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2-7047
연송정 숙박 및 음식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16-242-3810
들꽃이야기 숙박 및 음식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2-2823
선녀와 나무꾼 숙박 및 음식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2-0066
성남산장 숙박 및 음식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2-0066
채락산장 민박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3-3402
치악산민박 민박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033)762-7979
봉이민박 민박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2-3391
다래민박 민박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3-2978
은혜민박 민박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3-0603
송이민박 민박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2-8580
금강산민박 민박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2-7603
산수민박 민박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033)763-3633
소롯길 산방(-763-5544)
-금대리[계곡산장(033-763-3087), 금대별장(-762-5462), 금천민박(-763-7950),
가마솥(-763-7519), 청솔가든(-763-8960), 치악산장(-762-4338)]
금대장여관 숙박 및 음식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033)763-6663
치악산관광농원 민박 및 음식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033)762-0962
민박-진선미 민박 및 음식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033)762-1488
*기타 : 문의 치악산국립공원 성남매표소 033-762-5695.
*탐방로거리/소요시간 안내
구룡매표소 ~ 구룡사 0.9㎞ 15분
구룡매표소 ~ 대곡야영장(자연해설센터) 1.5㎞ 30분
구룡매표소 ~ 세렴폭포 3㎞ 왕복2시간30분
구룡매표소 ~ 세렴폭포 ~ 사다리병창 ~ 비로봉 ~ 구룡매표소 왕복 11.4㎞ 6시간
구룡매표소 ~ 세렴폭포 ~ 계곡 ~ 비로봉 ~ 구룡매표소 왕복 11.5㎞ 6시간
구룡매표소 ~ 세렴폭포 ~ 사다리병창 ~ 비로봉 ~ 입석사 ~ 황골매표소 9.8㎞ 5시간
구룡매표소 ~ 비로봉 ~ 곧은재매표소 12.6㎞ 6시간15분
구룡매표소 ~ 비로봉 ~ 행구동매표소 13.8㎞ 6시간45분
구룡매표소 ~ 비로봉 ~ 부곡매표소 14.6㎞ 6시간15분
구룡매표소 ~ 비로봉~곧은재~향로봉~남대봉~금대분소(성남매표소)
20.7㎞ (21.4㎞) 10시간
황골매표소 ~ 곧은재 ~ 곧은재매표소 9.2㎞ 4시간45분
황골매표소 ~ 곧은재 ~ 향로봉 ~ 행구동매표소 11㎞ 6시간 15분
황골매표소 ~ 곧은재 ~ 부곡매표소 11.2㎞ 4시간45분
황골매표소 ~ 향로봉 ~ 남대봉 ~ 금대분소(성남매표소) 17.3㎞ (18㎞) 7시간25분
곧은재매표소 ~ 곧은재 ~ 행구동매표소 5.4㎞ 3시간30분
곧은재매표소 ~ 곧은재 ~ 부곡매표소 6.2㎞ 3시간
곧은재매표소 ~ 향로봉 ~ 남대봉 ~ 금대분소(성남매표소) 12.3㎞ (13㎞) 6시간
부곡매표소 ~ 남대봉 ~ 금대분소, 성남매표소 14.3㎞ (15㎞) 6시간
행구동매표소 ~ 보문사 ~ 향로봉 2.8㎞ 1시간30분
행구동매표소 ~ 보분사 ~ 향로봉 ~ 부곡매표소 8㎞ 3시간30분
행구동매표소 ~ 향로봉 ~ 남대봉 ~ 금대분소(성남매표소) 11.9㎞ (12.6㎞) 5시간10분
금대분소 ~ 영원사 ~ 남대봉 5.2㎞ 2시간30분
금대분소 ~ 영원사 ~ 남대봉 ~ 상원사 ~ 성남매표소 11.1㎞ 5시간
성남매표소 ~ 상원사 ~ 남대봉 5.9㎞ 2시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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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촬영 명소인 치악산 용소. 진초록의 물과 어우러진 산자락이 아름답다. >
단풍 맛보기, 치악산 트래킹
치악산을 가장 쉽게 즐기며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코스가 있다. 국립공원 입구 '황장금표'바위에서 시작하는 치악산 트래킹이다. 그냥 걸어도 좋은 이 길을 아이와 함께 찾았다면 국립공원 관리공단의 숲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즐겨보자. 단 사전에 반드시 해설 신청을 할 것.
입구를 따라 얼마 걷지 않아 커다란 나무 아래서 발견한 노란버섯. 버섯에 멈춰서 숲 해설사가 재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남편의 술버릇 때문에 고생해보신분 있으세요?" 갑자기 뜬금없이 날라든 질문에 어리둥절하다. 산을 걷다말고 웬 술? 이 버섯 안에 술을 끊게 하는 묘약이 들었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이 버섯을 먹으면 몸 안에 흡수된 알코올이 분해 되지 않아 맥주 반잔만 마셔도 며칠동안 술에 취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 결국 병원을 찾아 해독치료를 받아야만 한다고. 술 많이 먹는 남편 때문에 속상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송이 따서 먹여볼까 싶은 생각이 드는 버섯이다. 그러나 그 후유증을 간과하지 말자. 남편의 고생스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곤욕. 그저 버섯을 보고 웃고 지나갈 것을 권한다.
버섯 관찰을 지나고 치악산에 얽힌 꿩의 전설 얘기도 끝나갈 무렵 눈앞에 시원스레 뻗어 오른 아름드리 나무기둥들이 보인다. 바로 황장목들이다. 치악산에서 자생하는 소나무인 황장목은 나무 결이 곧고 단단하며 노란색을 띄는 나무질을 가졌다. 그래서 예전엔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하거나 고급 관을 짤 때만 사용했던 고품격 나무이다. 때문에 이곳의 황장목은 베어지는 전량이 한양으로 운송되어 가격 또한 비싸게 팔렸다. 또 나무를 베어내면 바로 옆 물길을 따라 한양까지 운반할 수 있었던 손쉬운 운송법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몰래 나무를 베어 내어 팔고자하는 사람들이 많아 무단벌목을 금지하는 푯말을 만들어 놓은 것이 황장금표이다. 보통 이런 금표는 어느 정도 고도에 올라가야 만날 수 있지만 치악산 구룡지구의 황장금표는 공원을 들어서면서 곧바로 만날 수 있다. 이것은 이곳의 소나무가 산 아래에서부터 군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은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길과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숲길과 견주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게다가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의 모양새도 다채롭다. 이렇게 이어지는 산길은 진초록 물이 담긴 용소를 만나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도 예뻐 사진촬영 배경으로는 더없이 좋다. 다리위에서서 용소를 배경으로 한 컷 추억을 남겨보자. 이곳에서 세렴폭포 방향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자연생태관찰로가 자리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동충하초를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는 장소이다.
문의: 치악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033-732-5231, www.npa.or.kr/chiak)
▒ 맛 집 ▒
석경묵집
치악산 황골에 자리한 석경묵집은 직접 만들어 내는 묵으로 원주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석경사 아래 자리하고 있는 이곳은 오래된 농가를 원형 그대로 살려 개조한 황토집. 집안에서 바라보는 치악산의 풍경도 아름답다. 직접 빚어내는 조껍데기 술 한동이에 곁들이는 감자전 한 접시가 별미이다. 문의 033-747-6283
▒ 숙 박 ▒
치악산 자연휴양림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에 위치한 치악산자연휴양림은 170ha의 시유림에 조성된 곳으로 1994년 7월1일 r장했다. 휴양림 내에는 통나무집, 황토방, 삼림욕장, 산책로, 야생화학습장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집 앞으로 바로 흐르는 계곡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 2003년 2월에 새로 어진 황토방이 인기이다. 숲 중간 중간 벤치와 정자가 놓여져 여름 밤을 시원하게 즐길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 남원주나들목에서 나와 제천방면 5번국도를 이용. 약 13km 지점. 문의 및 예약: 033-762-8288, www.chiakfor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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