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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해서
[발미론]은 비록 조선조 풍수고시학 과목에 들지는 않았지만 조선조 사대부 유학자들의 풍수 공부에 필수서로서 지금도 그 후손들이 [발미론]을 소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발미론]의 저자에 대해서 기존의 문헌에도 종종 혼란을 보이고 있다.
혼란의 핵심은 [발미론]의 저자가 채원정(蔡元定)인가 그의 아버지 蔡發인가 하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이 두 부자 가운데 한 명이 발미론을 썼다는 점이다.
채원정에 대해서는 중국의 정사 [宋史] 434권 열전 儒林 4 편에 채원정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파악은 어렵지 않다. 채원정은 자를 季通이라 하였으며, 西山에 집을 지엇다는 기록 등으로 '채서산'이 확실하다. 그러나 채원정의 저서로 열거된 것 가운데 [발미론]은 없다.
채원정의 아버지 채발에 대해서는 송사에서 자세한 기록이 없이 다만 채원정의 아버지라는 것 이외에 다른 기록이 없다. [고금도서집서] [名流列傳]에서 송나라의 풍수학인을 언급한 대목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蔡神與
按地理正宗 蔡神與號牧堂著發微論
즉 채목당이 발미론을 지었다는 이야기로 채원정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나 채원정의 아버지가 풍수에 능하였고, 채원정 자신도 풍수에 능하여 스승인 주자에게 풍수를 가르쳤다는 사실에서 채원정이 풍수에 능하였고, 그 풍수는 결국 그 아버지 채발에게서 배웠다는 사실에서 그 아버지의 저서가 아닐까하는 추정이다.
그러나 [欽定四庫全書] 子부에 수록된 [발미론] 제요에서는 이 책을 宋의 채원정이 撰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역시 저자의 혼란을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다.
"원정의 아버지 발의 호를 스스로 목당이라 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은 발의 손에 의해 나온 것일 것이다. 혹시 후세사람이 잘못하여 원정의 것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알 수 없다"
2. 책의 구성과 특징
발미론은 총 14편으로 구성된다.
剛柔편
動靜편
聚散편
向背편
雌熊편
强弱편
生死편
微著편
分合편
浮沈편
饒減편
趨避편
裁成편
感應편
발미론의 특징은 주역 계사전의 철저한 體化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글로서 '형이상학적 유학 풍수'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자세하게 다루기로 한다.
다음은 발미론 원문으로서 地理天機會元에 수록된 것을 풍수학인 최낙기 선생님이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하신 것입니다.
[사고전서]에 수록된 발미론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사고전서에 수록된 것은 현재 이훈 선생님이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地理天機會元에 수록된 발미론은 최낙기 선생님이 번역을 완료하였는바, 이훈 선생님의 [사고전서]본 번역이 완료 되는대로, 최낙기 선생님의 번역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원문을 복사하여 풍수 공부에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입력자: 최낙기
發 微 論 (地理天機會元)
<剛柔篇>
o 易曰立天之道陰與陽立地之道柔與剛郡氏文曰天之道陰陽盡之矣地道剛柔盡之 矣故地理之要莫尙于剛柔剛柔者言乎其體質也
o 天地之初固若 沙之勢未有山川之可言也旣而風氣相摩水土相 則剛者屹而獨 存柔者洶而漸去于是乎山川形馬
o 凡山皆祖崑崙分枝分脈愈繁愈細此一本而萬殊也凡水皆宗大海異派同流愈合愈 廣此萬殊而一本也
o 山體剛而用柔故高聳而凝定水體柔而用剛故卑下而流行此又剛中有柔柔中有剛 也
o 邵氏以水爲太柔火爲太剛土爲少柔石爲少剛所謂地之四象也水則人身之血故爲 太柔火則人身之氣故爲太剛土則人身之肉故爲少柔石則人身之骨故爲少剛合水 火土石而爲地猶合血氣骨肉而爲人近取諸身遠取諸物無二理也
o 若細推之凡 燥者皆剛坦夷者皆柔然坦夷之中有 燥則是剛中有柔柔中有剛也 凡强急者皆剛緩弱者皆柔然强急之中有緩弱緩弱之中有强急則是柔中有剛剛中 有柔也自此以往 推無窮知者觀之思過半矣
<動靜篇>
o 其次莫若明動靜動靜者言乎其變通也是以古云水本動欲其靜山本靜欲其動此 達理之言也
o 故凡天下之理欲向動上求靜靜上求動不欲靜愈靜動愈動也
o 夫山以靜爲常是推無動動則成龍矣水以動爲常是推無靜靜則結地矣故成龍之山 必 躍翔無結地之水必灣環悠洋若其偃硬强勒衝激牽射則動不難動靜不難靜 山水之不融結者也
o 然一動一靜瓦相循 環山亦有動極而靜水亦有靜極而動不可執一以論又在人融化 之爲妙也
<聚散篇>
o 其次莫若觀聚散聚散者言乎其大勢也夫山川融結自有天造地設障空補缺不陷不 跌故小聚則地小成大聚則地大成散而不聚不可以言地矣
o 何謂聚山之所交水之所會風氣之常藏也何謂散山之所去水之所難風氣之 ?也
o 今之言地理往往多論地形之巧拙而不明聚散大勢若聚則奇形怪穴而愈眞正大勢 若散則巧穴天然而反虛假歷觀古人之葬大抵穴多巧怪非好怪也良由得山水之正 則怪穴所爲常也今人於大聚之中或乃拘于形穴而不葬者陋矣
o 然有大勢之聚散有穴中之聚散大勢之聚散見乎遠穴中之聚散見乎近是二者有相 須之道焉
<向背篇>
o 其次莫若審向背向背者言乎其性情也夫地理之與人事不遠人之性情不一而向背 之道可觀其向我者必有周施相與之意其背我者必有壓棄不顧之狀雖或暫焉矯飾 而眞態自然不可掩也
o 地理亦然故觀地者以觀其情之向背向者不難見凡相對如君臣相待如賓主相親相 愛如兄弟骨肉此皆向之情也背者亦不難見凡相視如仇敵相據如路人相忌如嫉寃 逆寇此皆背之情也
o 觀形貌者得其僞觀性情者得其眞向背之理明而吉凶禍福之機灼然故嘗謂地理之 要不過山水向背而已矣
<雌雄篇>
o 其次又當看雌雄雌雄者言乎其配合也夫孤陽不生獨陰不成天下之物莫不要相配 對地理家以雌雄言之大槪不過相對待之理
o 何以言之山屬陰水屬陽故凡山之融結必遇水之灣 環勢雖順水而來形必逆水而就 此山水配對有雌雄也
o 然山之與水又各有雌雄焉陽龍取陰穴陰龍取陽穴此龍穴相對有雌雄陽山取陰爲 對陰山取陽爲對此主客相對有雌雄
o 其地融結則雌雄必合龍穴砂水左右主客必相登對若單雌單雄不相登對則雖或結 地必非眞造化也經曰雌雄相喜天地交通又曰雌雄不顧不勞看古人多以此爲要妙 亦天地自然之理也
<强弱篇>
o 其次又當辨强弱强弱者言乎其稟氣也夫天下之理中而已矣太剛則折故須濟之以 柔太柔則弱故須濟之以剛剛柔相濟中道得矣
o 論地理者必須論其稟氣稟偏于柔故其性緩稟偏于剛故其性急稟剛性急此宣穴于 緩處若復穴于剛急之處則必有絶宗之禍稟柔性緩此宜穴于急處若復穴于緩弱之 處則必有冷退之患强來强正則傷龍弱來弱下則脫氣
o 故立穴之法大槪欲得酌中恰好的道理不得倚看一偏裳偏便生病出來然非權衡有 定則亦未易語也
<順逆篇>
o 其次又當分順逆順逆者言乎其來去也其來者何水之所發山之所起也其去者何乃 水之所趨山之所止是也知來去而知順逆者有矣不知來去而知順逆者未之有也
o 夫順逆二路如盲如聾自非灼然有見鮮不以逆爲順以順爲逆者矣要知順山順水者 順也所謂來處來者是也逆山逆水者逆也所謂去處去者是也
o 立穴之法要逆中取順順中取逆此一定之理不可改易若又推而廣之則龍有順逆脈 有順逆順龍之結穴者必逆逆龍之結穴者必順此亦山川自然之勢也
o 大槪論逆順者要知山川之大勢默定於數里之外而後能辨順逆於咫尺微茫之間否 則是黑白混淆以逆爲順以順爲逆者多矣
<生死篇>
o 其次又當識生死生死者言乎其取舍也夫千里來龍不過一席之地尙非以生死別之 則何所決擇哉
o 生死之設非一端大槪有氣者爲生無氣者爲死脈活動者爲生粗硬者爲死龍勢推左 則左爲生右爲死推右則右爲生左爲死
o 又如瘦中取肉則瘦處死而肉處生飽中取饑則饑處生而飽處死凡此之類又在人 細推之生則在所取死則在所舍取舍明而後穴法定穴法定而後禍福應若生死難辨 取舍何當則非眞造化矣
<微著篇>
o 其次又當察微著微著者言乎其氣脈也夫氣無形者也屬乎陽脈有形者也屬乎陰陽 淸陰獨故氣微而脈著
o 然氣不自止必依脈而立脈不自爲必因氣而成盖有脈而無氣者有矣未有有脈而無 氣者經曰氣乘風散脈遇水止無脈無氣者水害之也有脈無氣風害之也
o 善觀氣脈者以有形察無形不善觀者以無形蔽有形蓋無形只在有形之內但智者所 見實故于粗淺而得其精微愚者所見昏故荒忽茫昧而不曉
o 豈知四水交流則有脈八風不動則有氣此有目者所共見有心者所共知而術之至要 初不外是觀氣脈者於此求之則庶乎其不惑矣
<分合篇>
o 其次又當究分合分合者言乎其出沒也夫脈之爲脈非徒然而生頓然而有其出也必 有自然之來則有分水以導之其沒也必有所止則有合水以界之
o 郭氏云地有吉氣土隨而起支有止氣水隨而比又曰支之所始氣隨而起支之所終氣 隨而鍾此古人論氣脈之源流也氣隨土而起故脈行必有脊氣隨水而比故送脈必有 水氣起于支之始故上有分氣鍾于支之終故下有合
o 無分有合則其來不眞爲其內無生氣可接也有分無合則其止不明爲其外無堂氣可 受也有分有合則有來有止有出有沒斯龍穴融結的定無疑然後爲全氣之地也
o 然有小分合大分合其地融結有三分三合穴前後一分合起主至龍虎所交二分合祖 龍至三水交會三分合小合則爲小明堂大合則爲大明堂合於龍虎內則爲內堂合於 龍虎外則爲外堂其合一一不相亂如此是又不可不知也
<浮沈篇>
o 其次又當別浮沈浮沈者言乎其表稟也夫脈有陰陽故有浮沈陽脈常見於表所以浮 也陰脈常收干稟所以沈也大 地理家察脈與醫家察脈無異善醫者察脈之陰陽而 用藥善地理者察脈之浮沈而定穴其理一也
o 夫三陰從天生以其陰根于陽也故陰脈必上小而下大其出口也必圓三陽從地出以 其陽根于陰也故陽脈必上大而下小其出口也必尖後之觀脈者不必問其何如但見 口尖者皆陽其脈浮於表口圓者皆陰其脈沈於稟此一定不易之法
o 若又推而廣之則凸者脈沈凹者脈浮微細者脈浮粗重者脈沈衆高一低者脈浮衆低 一高者脈沈於此相乘陰陽之理得矣
<淺深篇>
o 其次又當定淺深淺深者言乎其準的也夫淺深得乘風水自成故下地者必以淺深爲 準的宜淺而深則氣從上過宜深而淺則氣從下過雖得其地而 不應者爲此故也
o 吾嘗以八卦定淺深頗得其要大槪先觀來脈之陰陽次看四山之從佐且如來脈入首 强作穴凹出口尖此皆脈浮而屬陽也以乾卦當之來脈入首弱作穴凸出口圓此皆脈 沈而屬陰以坤卦當之
o 乾純陽也取陰爲穴故立穴取巽兌離三陰也坤純陰也取陽爲穴故立穴取艮坎震三 陽也
o 凡脈陽四山高於本身兌之象也上 爲陰穴宜淺四山與本身齊離之象也中 爲陰 穴宜不淺不深四山低於本身巽之象也下 爲陰穴宜深
o 凡脈陰四山高於本身艮之象也上 爲陽穴宜淺四山與本身齊坎之象也中 爲陽 穴宜不淺不深四山低於本身震之象也下 爲陽穴宜深
o 槪而言之陽脈浮當淺陰脈沈當深詳而言之陰脈中有淺深陽脈中亦有淺深以四山 從佐不同則陰有時而變陽陽有時而變陰斯言也惟通變者可以審此可不審哉
<饒減篇>
o 其次又當正饒減饒減者言乎其消長也夫龍虎左右各有饒減然饒減龍虎者何哉此 消長陰陽之義也
o 饒減之法大槪以先到者爲主龍山先到則減龍而饒虎其穴必居左虎山先到則減虎 而饒龍其穴必居右
o 蓋山水關鎖必須交固然後氣全穴左則取左山爲關須右邊水過宮鎖斷所謂陰鎖陽 關也穴右則取右山爲關須左邊水過宮鎖斷所謂陽鎖陰關也
o 惟有朝山朝水則順關順鎖不妨若橫水過宮則逆關逆鎖方善斷不可改易也毫厘差 謬禍福大遠可不審哉
<趨避篇>
o 其次又當詳趨避趨避者言乎其決擇也
o 夫天下之道二吉凶善惡常相半不能皆吉也而必有凶不能皆善也而必有惡故人之 所遭有不齊也旣所遭之不齊則必有以處之趨吉避凶去惡從善是也地理亦然
o 夫山川之所鍾不能皆全純粹之氣不能無所駁雜旣不能無所駁雜則姸 醜好紛然 前陳亦其宜耳
o 然而山川之變態不一咫尺之移轉頓殊或低視而醜或高視而好或左視而姸或右視 而 或秀氣聚下而高則否或情意偏右而左則虧
o 如此者可不知所決擇知所決擇庶得趨避之道矣
<裁成篇>
o 其次又當知裁成裁成者言乎其人事也
o 夫天不人不因人不天不成自有宇宙卽有山川數不加多人不加少必天生自然而然 是則天地之造化亦有限矣是故山川之融結在天而山川之裁成在人或過焉吾則裁 其過使適於中或不及焉吾則益其不及使適於中裁長補短損高益下莫不有當然之 理其始也不過目力之巧工力之具其終也奪神功改天命而人與天無間矣
o 故善者盡其當然而不害其爲自然不善者泥乎自然而卒不知其所當然所以道不虛 行存乎其人也
<感應篇>
o 其次又當原感應感應者言乎其天道也夫天道不言而善應福善禍淫皆是物也諺云 陰地好不如心地好此善言感應之理也是故求地者必以積德爲本若其德果厚天必 以吉地應之是所以福其子孫者心也而地之吉亦將以符之也其惡果盈天必以凶地 應之是所以禍其子孫者亦本於心也而地之凶亦將以符之也蓋心者氣之主氣者德 之符天未嘗有心於人而人之一心一氣感應自相符合耳郭氏云吉氣感應鬼福及人 人之於先骸固不可不擇其所而安 之然不修其本惟末是圖則不累祖宗者寡矣 欲有以福其子孫哉地理之微吾旣發明之故述此于篇終以明天道之不可誣人心之 所當謹噫觀是書者其知所愼哉
발미론은 조선조 사대부들의 풍수 공부에 필수적이었던 풍수 고전으로서, 주역의 논리가 전편을 통해 지배하고 있는 아주 아름다운 글입니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성리학의 대가 주자(주희)의 풍수관에게도 영향을 끼친 대유학자였습니다. 따라서 [발미론]은 그 내용이나 문체의 품격에 아주 뛰어난 책입니다.
이러한 훌륭한 책을 이훈 선생님이 번역을 하여 흔쾌하게 이곳 홈페이지 [풍수고전강독란]에 연재를 해 주시고자 합니다. 까닭은 풍수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서로 도움이 되고자 함입니다.
많은 관심과 질문을 통해 서로의 공부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본 교수 역시 기말고사가 끝나고 몇 가지 잡무가 처리 되는대로 [발미론]에 대한 자세한 역해작업을 하여 이곳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02. 6. 17. 김두규 교수
[발미론] 제 1편
剛柔篇
易曰, "立天之道, 曰陰與陽", 邵氏曰 "立地之道, 剛柔盡(本論의 字는 盡의 俗字)之矣".
譯:
주역에, " 하늘의 도가 세워짐은, 음과 더불어 양이다 말한다"라 하였고, 소씨(소강절)가, "地의 도가 세워짐은, 剛柔(陰陽)의 다함이다"라고 했다.
故地理之要, 莫尙於剛柔.
譯:
그러므로 地理의 요점은 剛柔보다 더할 것이 없다!
剛柔者, 言乎其體質也.
譯:
剛柔라는 것은, 그 체질을 말한다.
天地之初, 固若 沙之勢, 未有山川之可言也.
譯:
天地의 시작은, 진실로 출렁이고 모래 같은 勢이니, 山川이 가히 있다고 말할 수 없다.
旣而風氣相摩, 水土相탕, 則剛者屹而獨存, 柔者淘而漸去, 於是乎山川形焉.
譯:
오래지 않아 바람과 기운은 서로 부딪치고, 물과 흙은 서로 씻어내니, 곧 강한 것은 우뚝 솟아 홀로 존재하고, 부드러운 것은 차츰 흘러 통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山川의 形이 있게 되었다.
山體剛而用柔, 故高聳而凝定.
譯:
산의 體는 剛이고 이에 柔는 用이니, 그러므로 높이 솟고 응축됨을 정한다.
水體柔而用剛, 故卑下而流行.
譯:
물의 體는 柔이며 이에 剛은 用이니, 그러므로 낮게 아래로 흘러간다.
此又剛中有柔, 柔中有剛也.
譯:
이것은 또한 강함 중에 부드러움이 있고, 부드러움 중에 강함이 있다.
邵氏以水爲太柔, 火爲太剛, 土爲小柔, 石爲小剛, 所謂地之四象也.
譯:
邵氏는 물을 큰 부드러움(太陰)을 여기고(삼고), 불은 큰 강함(太陽)으로 삼고, 흙은 작은 부드러움(小陰)으로 삼고, 돌은 작은 강함(小陽)으로 삼았는데, 이른바 땅의 四象이다.
水則人身之血, 故爲太柔, 火則人身之氣, 故爲太剛, 土則人身之肉, 故爲小柔, 石則人身之骨, 故爲小剛.
譯:
水는 곧 사람 몸의 피니, 그러므로 太柔(太陰)를 이루고, 火는 곧 사람 몸의 氣이니, 그러므로 太剛(太陽)을 이루며, 土는 곧 사람 몸의 살이니, 그러므로 小柔(小陰)를 이루고, 石은 곧 사람 몸의 뼈이니, 그러므로 小剛(小陽)을 이룬다.
合水·火·土·石而爲地, 猶合血·氣·骨·肉而爲人.
譯:
水와 火와 土와 石이 합하여 땅을 이루는 것이, 마치 血과 氣와 骨과 肉이 합하여 사람을 이룸과 같다.
近取諸身, 遠取諸物, 無二理也.
譯:
가깝게는 사람의 몸을 취하고(前文之爲人), 멀게는 사물을 취하니(前文之爲地), 이치가 둘이 아니다.
若細推之, 凡고燥者, 皆剛夷坦者, 皆柔然, 고燥之中有夷坦, 夷坦之中有고燥, 則是剛中有柔, 柔中有剛也.
譯:
만일 세세함을 추정하면, 무릇 마른 것은, 강함과 평탄함이 함께 한 것이고, 유연함도 함께이니, 마른 것 속에서 평탄함이 있고, 평탄함 속에서 마른 것이 있어, 곧 이는 강함 중에 부드러움이 있고, 부드러움 중에 강함이 있는 것이다.
凡强急者, 皆强緩弱者, 皆柔然, 强急之中有緩弱, 緩弱之中有强急, 則是柔中有剛, 剛中有柔也.
譯:
무릇 강하고 급한 것에, 강하고 緩弱함이 함께 하는 것이고, 유연함도 함께 하여, 강하고 급함 중에 緩弱함이 있고, 緩弱함 중에 강하고 급함이 있으니, 곧 이를 부드러움 중에 강함이 있음이요, 강함 중에 부드러움이 있음이다.
自此以往, 盡推無窮, 知者觀之, 思過半矣.
譯:
이로부터(=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하여) 無窮하게 추구하면, 知者가 땅을 봄에, 이미 절반 이상 뜻을 아는 것이다.
(自此以往은 "여기서부터, 이로부터, 이러한 관점에서부터"등으로 자주쓰임)
예문: 自今日以往: 오늘부터
발미론 제 2편
動靜篇
其次莫若明動靜.
譯
그 다음은 動靜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문법 설명:
莫若: ..하는 것이 좋다는 표현보다는 최상급으로 해석을 하심이 더 뜻이 강하고 명쾌함)
예문:
心莫若和 :
마음은 화평스러움이 최고이다(화평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이 최고이다)
動靜者, 言乎其變通也.
譯:
動靜이라는 것은 그 변화하고 통함을 말한다.
夫槪天下之理, 欲向動中求靜, 靜中求動, 不欲靜愈靜, 動愈動.
譯:
무릇 천하 이치의 대요는, 動으로 향하고자 함에 靜을 구하고, 靜 중에 動을 구하며, 정하지 않고자 함에 더욱 정하고, 동함에 더욱 동한다.
古語云, "水本動, 欲其靜. 山本靜, 欲其動", 此達理之言也.
譯:
옛말에 말하길 " 水는 본래 動하나, 靜하고자 하고, 山은 본래 靜하나, 動하고자 한다"하였으니, 이것은 이치를 통달한 말이다.
故 山以靜爲常, 是爲無動, 動則成龍矣.
譯:
그러므로 산은 정으로 항상 함을 삼아 동함이 없으나, 동한 즉 龍을 이룬다.
(常은 '항상함', 본질')
水以動爲常, 是爲無靜, 靜則結地矣.
譯:
水는 동으로 항상 함을 삼아 이는 靜함이 없으나, 靜한 즉 結地(혈을 맺는다.)한다.
故 成龍之山必 躍翔舞(『葬經』「山勢篇」“若鸞”); 結地之水必灣環悠揚.
譯:
그러므로 龍을 이루려면 山이 반드시 도약하고 뛰어 올라, 빙빙 돌면서 춤추고, 結地하려면 水가 반드시 굽어지고 유원하게 돌아오면서 위로 올라야 한다.
若其偃硬側勒, 衝激牽射, 則動不離動, 靜不離靜, 山水之不融結者也.
譯:
만약 그 쓰러지고 단단하며 측면이 묶이고, 맞부딪치며 물결이 부딪치면서 끌어당기고 찌르면, 곧 動이 動함을 떠나지 않고, 靜이 靜함을 떠나지 않으니, 山水가 融結한 것이 아니다.
然一動一靜, 互相循環 , 山亦有動極而靜, 水亦有靜極而動.
譯:
그러나 한번 動하고 한번 靜함이, 서로 좇으면서 돌아오면, 山 역시 靜함이 이에 極하면 動함이 있고, 水 또한 動함이 極하면 이에 靜함이 있다.
:[不可執一而論, 又在人融化之爲妙也.]
譯:
하나에 집착하여 논해서는 안되고, 또한 사람과 융화함에 오묘함이 있다.
聚散篇
其次莫若觀聚散.
譯:
그 다음은 聚散을 觀함이 더욱 중요하다
註: 聚散篇은 김동규 譯, {人子須知} 第八節 聚散定穴. p.517. [聚散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大勢의 聚散이요, 또 하나는 穴場의 聚散이다.]
聚散者, 言乎其大勢也.
譯:
聚散이라는 것은, 그 큰 세를 말함이다.
歷觀古人之葬, 大抵穴多奇怪.
譯:
歷代로 고인의 장함을 보면, 대체로 혈에 기괴함이 많다.
非好怪也, 良由得山水之正, 則怪穴所爲常也.
譯: 괴이함이 좋은 것은 아니나, 山水의 진실로 올바름만을 얻기만 하면 오히려, 怪穴도 법을 이룬다.
良: 진실로, 참으로
由는 猶와 같은 뜻(오히려, 더욱더)
今人於大聚之中, 或乃拘于形穴而不葬矣.]
譯:
오늘날 사람들이 大勢의 聚의 무리를 대함에 있어서, 혹자는(때로는) 形穴에 구애받아 장사하지 않는다.(그 땅을 취하지 않는다)
於
於의 뜻은 다양하나 영어의 at, by, in, as, than등의 뜻
여기에서는 by정도로..
오늘날 사람들이 大勢의 聚의 무리를 대함에 있어서
或: 경위 따라서, 때로는 ,혹은, 어떤 사람은
或乃拘于形穴而不葬矣
어떤 사람들은 형혈에 구애되어 장사를 지내지 않기도 한다.(그 땅을 취하지 않는다의 뜻)
然有大勢之聚散, 有穴中之聚散.
譯:
그러나 大勢에도 모이고 흩어짐이 있고, 혈 중에도 모이고 흩어짐이 있다.
大勢之聚散見乎遠, 穴中之聚散見乎近, 是二者有相須之道焉.
譯:
대세의 모이고 흩어짐은 멀리서 보여지고, 혈중의 취산은 가까운데에서 나타난다.
이 두 가지(대세지취, 혈중지취)는 상호보완적 의미(도)를 가지고 있다.
向背篇
其次莫若番向背.
譯:
그 다음 차례로 向背가 매우 중요하다.
註: 1) 김동규 역, 『人子須知』「제9절 向背定穴」"蔡牧堂 云, 向背란 산천의 정성인 것이다.…(省略)" pp.518∼519.
2) 최창조 역, {청오경·금낭경}, 민음사, pp.113∼114에서 坐向(背向)의 중요성을 밝히고 있다.
3) {명산론} [立向第六] 참조.
向背者, 言乎其情性也.
譯:
向背라는 것은, 그 情性을 말한다.
:[夫地理與人事不遠, 人之情性不一, 而向背之道可見.]
譯: 무릇 地理와 人事는 멀지 않고, 사람의 情性이 한결같지 않으니, 이에 向背의 道가 가히 나타난다.(사람의 정과 성이 다르듯 向背의 道 또한 다르게 나타난다는 뜻.)
***
人之情性不一, 而向背之道可見 문장에서
1) 而의 용법에는 and, but, as...등 다양.
2) 可見의 경우
可+자동사
可+ 타동사
可+자동사의 경우 수동의 의미 혹은 일반 주어(영어의 man)로 번역함하면 문장 뜻이 명쾌해짐.
向背之道可見의 경우
'向背之道'가 보여 질 수 있다; (사람들은) 向背之道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人之情性不一, 而向背之道可見
사람의 성정(내면) 하나가 아니지만(다양하지만),
그 앞면과 뒷면(향배)를 (사람들은) (쉽게)볼 수 있다.
其向我者, 必有周族相與之意
譯:
나를 향하는 것은, 반드시 周旋相與(두루 돌며 서로 함께 한다)의 뜻이 있다.
其背我者, 必有厭棄不顧之狀.
譯:
나를 등진다는 것은, 반드시 싫어하고 꺼려 돌아보는 모양이 아니다.
雖或暫焉矯飾, 而眞態自然不可 也.
譯:
비록 잠시 속이고 덮어 가려도, 이에 자연의 형상은 가히 가릴 수 없다.
故 觀地者必觀其情之向背.
譯:
그러므로 觀地하는 자는 반드시 그 向背의 뜻을 觀해야 한다.
註: {명산론} [二氣第二] "向貴接山, 背山則不發祿, 向貴接水, 背水則不長益."
向者不難見, 凡 相對如君臣, 相待如賓主, 相親愛如兄弟骨肉, 此皆向之情也.
譯:
向이라는 것은 드러남이 어렵지 않으니, 무릇 서로 대함이 君臣과 같고, 서로 기다림이 손님과 주인 같고, 서로 親愛함이 兄弟·骨肉과 같으니, 이것이 모두 向의 情이다.
背者亦不難見, 凡 相視如讐敵, 相抛如路人, 相忌如嫉 逆寇, 此皆背之情也.
譯:
背라는 것 또한 드러남이 어렵지 않으니, 무릇 서로 살펴봄이 원수와 적과 같고, 서로 내던져짐이 길가의 사람과 같고, 서로 싫어함이 시기하고 불평하며 거스르고 원수와 같으니, 이것은 모두 背의 情이다.
觀形貌者得其僞, 觀情性者得其眞.
譯:
形貌를 관하는 것은 그 거짓을 얻고, 情性을 관하는 것은 그 참됨을 얻는다.
向背之理明, 而吉凶禍福之機灼然.
譯:
向背의 이치를 밝히면, 길흉화복의 조짐(기미)이 명확해진다(즉 향배를 알기만 하면 길흉화복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의 뜻)
故嘗謂地理之要, 不過山水向背而已矣.
譯:
그러므로, 일찍이 지리의 중요함을 일컬어, 산수의 向背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하였다(즉 산수의 향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의미)
雌雄篇
其次又當看雌雄.
譯:
그 다음은 또한 당연히 雌雄을 본다.
雌雄者, 言乎其配合也.
譯:
雌雄이라는 것은, 그 配合을 말한다.
夫孤陰不生, 獨陽不成.(『明山論』「二氣第二」참조)
譯:
무릇 陰이 외로우면 생 함이 없고, 陽이 홀로되면 이룸이 없다.
天下之物, 莫不要相配對.
譯:
천하의 사물은, 서로 짝하고 상대하여 구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地理家以雌雄言之大槪, , 不過相對待之理.
譯:
지리에서 雌雄의 대요를 말하는 것은, 서로 상대함의 이치에 불과하다.(오로지 상대함의 이치가 중요하다는 의미).
何以言之?
譯: 무엇을 말함이요? (무엇으로써, 어떻게 그것을 말하는가?)
山屬陰, 水屬陽, 故山水相對有雌雄.
譯:
山은 陰에 속성이고, 水는 陽에 속성이니, 그러므로 山水가 서로 대함에 雌雄이 있다.
而山之與水各有雌雄.
譯:
이에 山과 더불어 水는 각기 雌雄이 있다.
陽龍取陰穴, 陰龍取陽穴, 此龍穴相對有雌雄, 陽山取陰爲對, 陰山取陽爲對, 此主客相對有雌雄也.
譯:
陽龍은 陰穴을 취하고, 陰龍은 陽穴을 취하니, 이것은 龍과 穴이 서로 대함에 雌雄이 있고, 陽山은 陰을 취하여 대함을 이루고, 陰山은 陽을 취하여 대함을 이루니, 이것은 主客이 서로 대함에 雌雄이 있음이다.
其地融結則雌雄必合.
譯:
그 땅이 融結 됨은 곧 반드시 雌雄의 합이다.
龍, 穴, 砂, 水, 左, 右, 主, 客必相登對, 若 單雌單雄, 不相登對, 雖或結地, 必非眞造化也.
譯:
龍·穴·砂·水·左·右·主·客은 반드시 서로 대함을 얻으니, 만약 홀로 雌하고 홀로 雄하면, 서로 대함을 이룬 것이 아니며, 비록 結地 했더라도, 반드시 참된 조화가 아니다.
經曰 "雌雄相喜, 天地交通", 又曰 "雌雄不顧不勞看", 古人多以此爲要妙, 然逆天地自然之理也.
譯:
경에 말하길, "雌雄이 서로 즐거우니, 천지가 서로 통한다"했고, 또 말하길 "자웅이 돌아보지 않으니 노력하지 않는 구나"했으니, 많은 옛 사람들이 이것으로서 묘함을 구했고, 그리하여 천지자연의 이치를 받았다.
* *계속 읽다보면 발미론은 풍수경전 중에 가장 기초적이면서 철학적 풍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소위 풍수의 초발심자경문이라고나 할까요!. 풍수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장경과 더불어 발미론의 2경을 먼저 공부하면 쉬우면서도 가깝게 풍수에 다가갈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훈 **
强弱篇
其此又當辯强弱.
譯:
그 다음으로 또한 당연히 强弱을 말한다.
强弱者, 言乎其稟氣也.
譯:
强弱이라는 것은, 그 稟氣를 말한다.
夫天下之理, 中而已矣.
譯:
무릇 천하의 이치는, 中(造化, 中道)일 뿐이다.
太剛則折, 故須濟之以柔;
譯:
太剛하면 꺾이니, 그러므로 마땅히 부드러움으로 그것을 보완해야 한다.
太柔則弱, 故須濟之以剛.
譯:
太柔하면 곧 약하니, 그러므로 마땅히 강함으로써 그것을 보완해야 한다.
剛柔相濟, 中道得矣.
譯:
剛柔는 서로 구하니, 中道를 얻음이다.
論地理者, 必須察其稟氣, 稟偏於柔, 故其性緩;
譯:
地理를 論하는 것은, 반드시 그 기품을 마땅히 살펴야 하니, 稟이 柔로 치우치면, 반드시 그 성질이 완만해 진다.
稟偏於剛, 故其性急.
譯:
稟이 강함으로 치우치면, 반드시 그 성질이 급해진다.
稟剛性急, 此宜穴於緩處.
譯:
稟이 강해 성질이 급하면, 혈은 마땅히 완만한 곳으로 해야한다.
若復穴於剛急之處, 則必有絶宗之禍.
譯:
만약 강하고 급한 곳에 재차 혈이 있으면, 곧 반드시 絶宗의 禍가 있다.
稟柔性緩, 此宜穴於急處.
譯:
품이 부드러워 성질이 완만하면, 마땅히 혈은 급한 곳으로 해야한다.
若復穴於弱緩之處, 則必有冷退之患.
譯:
만약 약하고 완만한 곳에 재차 혈이 있으면, 곧 반드시 쓸쓸하게 물러나는 우환이 있다.
强來强下則傷龍, 弱來弱下則脫 .
譯:
강하게 오고 강하게 내려오면 곧 龍이 상처입고, 약하게 오고 약하게 내려오면 곧 脈이 여윈다.
故 立穴之法, 大槪欲得酌中恰好底道理, 不得僑於一偏, 才偏便生出病來.
譯:
그러므로 立穴하는 법의, 대요는 中을 취하여 얻고자함이 흡사 도리에 이르러 좋아하는 것 같고, 임시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침을 얻는 것이 아니니, 근본이 치우쳐 뚱뚱하게 生하여 나오면 병이 오게 된다.
然非權衝有定, 則亦未易語也.
譯: 그리하여 원칙과 상황에 있어 정해짐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곧 또한 쉽게 말할 수 없다.
順逆篇
其次又當分順逆.
譯:
그 다음은 또한 당연히 順逆을 분별해야한다.
順逆者, 言乎其去來也.
역:
順逆이라는 것은, 그 去來을 말하는 것이다.
其來者, 何, 水之所發, 山之所起是也.
譯:
그 來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水의 출발하는 바이고, 산이 일어나는 바가 이것이다.
其去者, 何, 水之所趨, 山之所止是也.
譯:
그 去라는 것은 무엇인가? 水의 달려가는 바이고, 산의 멈춤이 이것이다.
知來去而知順逆者有矣, 不知來去而知順逆者未之有也.
譯:
來去를 알면서 순역을 아는 사람은 있으나,
來去를 알지 못하멶서 順逆을 아는 사람은 있지 않았다.
夫順逆二路, 如盲如聾, 自非灼然. 有見, 鮮不以逆爲順, 以順爲逆者矣.
譯:
무릇 順逆의 두 가지 길은, 맹안 같고 귀머거리 같으아 식별하기가 어려워, 스스로 분명하지는 않다. 만일 밝게 보이는 것이라면, 逆을 順으로, 順을 逆으로 생각하는 자는 드물 것이다.
주) 如盲如聾: 인식하기 어렵거나 식별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함.
要知順山順水者, 順也, 所謂來處來者是也.
譯:
요컨대 順山과 順水를 안다는 것이 順이니, 이른바 와여할 것에 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주:
1) 所謂來處來者是也: 所...者 용법
2) 이른 바 올 자리에 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3) 處의 뜻은 마땅히 제자리에 있는 것, 머무르는 것의 명사 동사
逆山逆水者, 逆也, 所謂去處去者是也.
譯:
逆山과 逆水라는 것은, 逆이니, 이른바 가야할 곳에 가는 것이 이것이다.
立穴之法, 要順中取逆, 逆中取順, 此一定之理, 不可改易.
譯:
立穴의 법은, 順 중에 逆을 취함과, 逆 중에 順을 취함을 요구하는 것이니,
이것은 일정한 이치가 있으니,
쉽게 고칠 수 없다.
若又推而廣之, 則脈有順逆, 龍有順逆.
譯:
만약 이것을 궁구하여 확장시키면,
脈에 順逆이 있고, 龍에도 順逆이 있다.
則脈有順逆, 龍有順逆.
譯:
곧 맥에도 順逆이 있고, 龍에도 順逆이 있다
順龍之穴結必逆, 逆龍之穴結必順.
譯:
順龍의 穴은 반드시 逆으로 맺고, 逆龍의 穴은 반드시 順으로 맺는다.
此亦山川自然之勢也.
譯:
이것 또한 산천과 자연의 勢이다.
大抵論逆順者, 要知山川之大勢, 默定于數里之外, 而後能推順逆於咫尺微茫之間.]
譯:
무릇(대저) 逆順을 논하는 것은, 산천의 큰 세를 아는 것을 요구하고,
몇 리밖에서 조용히 자리를 정하고, 이후에 능히 順逆의 지척간의 미세하고 아득한 모양을 추정할 수 있다.
否則黑白混淆, 以逆爲順, 以順爲逆者多矣.
譯:
그렇지 않으면 흑백이 뒤섞여, 역을 순으로 생각하고, 순을 역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게 된다.
生死篇
其此又當識生死.
譯:
그 다음은 또한 당연히 生死를 판별한다.
生死者, 言乎其取舍也.
譯: 生死라는 것은, 그 취하고 버림을 말한다.
[夫千里來龍, 不過一席之地.]
譯:
千里를 달려온 龍도, 한 자리의 땅에 불과하다.
(천리의 긴 내룡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혈 하나 맺는 것:結穴에 있음을 말함)
非以生死別之, 則何所決擇哉, 生死之說非一端, 大槪有氣者爲生, 無氣者爲死.
譯:
만약 生死로서 내룡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써 판단하고 택할 수 있겠는가?
生死의 이론은 하나의 실마리로 설명할 수 없으나,
대개 氣가 있는 것이 生이며, 氣가 없는 것이 死이다.
活動者爲生, 粗硬者爲死.
譯:
脈이 생기 있게 움직이는 것이 生이며, 거칠고 굳은 것은 死이다.
龍勢推左則左爲生, 右爲死.
譯:
龍의 勢가 왼쪽으로 변화하면 곧 왼쪽(左旋)이 生이며, 오른쪽이 死가 된다.
龍勢推右則右爲生, 左爲死.]
譯:
龍의 勢가 오른쪽으로 변화하면 곧 오른쪽(右旋)이 生이며, 왼쪽이 死가 된다.
又有瘦中取肉, 則瘦處死而肉處生.
譯:
또 파리함 중에 살을 취함이 있으면, 곧 여윈 쪽이 死가 되며 살찐 쪽이 生이 된다.
節中取饑, 則饑處生而節處死.
譯:
절 중에 마른 곳을 취함에, 마른 곳이 生이고 節처가 死가 된다.
如此之類, 在人細推之.
譯:
이와 같은 분류는, 사람들이 세세히 추정해야 한다.
生則在所取, 死則在所舍.
譯:
生은 즉 취하는 바에 있고, 死는 즉 버리는 바에 있다.
取舍明而后穴法定, 穴法定而后禍福應.
譯:
취하고 버리는 것이 밝혀진 이후에야 穴法이 정해지고,
穴法이 정해진 이후에 禍福이 응한다.
若生死難辨, 取舍何當, 則非達造化矣.
譯:
만약 生과 死의 분별이 어렵다면, 취하고 버림이 어찌 가당하겠는가? 그러한 즉 조화에 도달하지 못할 곳이다!
微著篇
其此又當察微著.
譯:
그 다음은 또한 당연히 미미함과 드러남을 살핀다.
微著者, 言乎其氣脈也.
譯:
미미함과 드러남이란 그 氣脈을 말한다.
夫氣, 無形者也, 屬乎陽.]
譯:
무릇 氣에서 形이 없는 것은 陽에 속한다.
屬乎陽
乎는 於 혹은 于와 같은 의미로도 씀.
즉 양에 속한다.
脈 有形者也, 屬乎陰.]
역:
맥에서 형이 없는 것은 음에 속한다.
陽淸陰濁, 故 氣微而脈 著.
譯:
양은 맑고 음은 탁하니, 그러므로 氣(陽淸)는 미미하고 이에 脈(陰濁)은 분명하다.
*** 그러므로 기는 은미하고 맥은 뚜렷하다.
然氣不自成, 必依脈 而立.
譯:
그러나 氣는 스스로 이루지 않고, 반드시 脈에 의존해 세워진다.
脈不自爲, 必因氣而成.
譯:
脈은 스스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반드시 氣로 因하여 이루어진다.
蓋有脈而無氣者有矣, 未有無脈 而有氣者也.
譯:
대개,
맥이 있으면서 기가 없는 것은 있으나,
맥이 없으면서 기가 있는 것은 없었다.
經曰, "氣乘風散, 界水止".
:譯:
****
氣乘風, 散, (氣)界水, 止
주어(+동사+ 목적어)+ 동사 형테: 전체적으로 영어의 2형식 문장!
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기는 (물을 만나면:界) 멈추고
無脈無氣者, 水害之也.
:譯: 맥이 없고 기도 없는 것은, 수해가 있다.
역:
맥도 기도 없는 것,
그것을(之)을 물(水)가 해친다(害공격을 한다).
有脈無氣者, 風乘之也.
譯: 脈이 있고 氣가 없는 것, 그것을 바람이 타게 된다.
善觀氣脈者, 以有形察無形.
譯:
氣脈을 잘 살피는 자는, 유형으로써 무형을 살필 수 있다.
不善觀者, 以無形蔽有形.
譯:
잘 살피지 못하는 자는, 무형으로써 유형을 은폐한다.
蓋無形只在有形之內, 但知者所見實, 故 於粗淺而得精微.
譯:
대저 무형은 유형의 안에 있을 뿐이니, 다만 지자가 보는 것은 實이다.
그러므로 조잡하고 천박함 속에서 그 정치한 것을 얻어낸다.
愚者所見昏, 故 於荒忽茫昧而不曉.
譯:
어리석은 자가 보는 것은 혼돈이다.
그러므로 황홀망매함에 있어서 밝게 깨닫지 못한다.
豈知四水交流則有脈, 八風不動則有氣.
譯:
어찌 四水가 교류하면 곧 맥이 있고, 八風이 동하지 않은 즉 氣가 있음을 알겠는가?
此, 有目者所共見, 有心者所共知, 而術之至要, 初不外是也.
譯:
이것은,
눈이 있는 자는 함께 보는 바이고,
마음이 있는자는 함께 아는 바이니,
술법의 지극한 요점은, 처음부터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分合篇
其此又當究分合.
譯:
그 다음은 또한 당연히 분합을 궁구한다.
分合者, 言乎其出沒也.
譯: 분합이라는 것은, 그 출몰(起伏)을 말한다.
夫脈之爲脈, 非徒然而生, 頓然而有.]
譯: 맥이 맥다우려면(맥이 맥이 되는 것은) 다만 그렇게 생함 뿐만 아니라 엎드린 듯하여 있어야 함이다.(참다운 맥이 되려면 맥이 생겨나야하거니와 또한 기복이 있어야 함을 말함)
其出也, 必有自然之來, 則有分水以導之.
譯:
그 出함은, 반드시 자연히 옴에 있으니, 곧 물의 나눔이 있어 그것으로써 自然之來를 인도한다.
其沒者, 必有所止, 則有合水以界之.
譯:
그 沒이라는 것은, 반드시 멈추는 바가 있으니, 곧 合水가 있어 그것으로써 그 멈춤이 있는 바를 경계짓는다.
:
郭氏云: "地有吉氣, 隨土而起, 支有止氣, 隨水而比.
譯:
곽씨(郭璞)가 말하길 "땅에 길한 氣가 있다는 것은, 土를 따라 일어나는 것이고, 가지(支龍)는 머무르는 氣가 있다는 것은, 水를 따라 이에 아우른다." 하였다.
※ 이하 금낭경의 내용은 최창조 역 {청오경·금낭경}, 민음사. 참조.
曰: "支之所起, 氣隨而始. 支之所終, 氣隨而鍾."
譯:
또 말하길, " 가지(支龍)의 일어난 바는, 氣를 좇음으로 시작된다. 가지가 그치는 바는 氣가 따름으로 모인다."하였다.
此古人論氣脈之源流也.
譯:
이것은 고인이 氣脈의 源流를 논한 것이다.(古人: 郭璞을 말함 {금낭경}
氣隨土而起, 故 脈行必有脊
譯:
기가 土를 따르는 것은 이에 일어남이니, 그러므로 脈이 행하면 반드시 척추(行龍節目)가 있다.
氣隨水而比, 故 送脈必有水.
譯:
기가 水를 따르는 것은 이에 아우름이니, 그러므로 脈이 멈춤에는(界水則止) 반드시 水가 있다.
氣起于支之始, 故 上有分
譯:
기가 일어남은 가지의 시작이니, 그러므로 근원에서 나뉨이 있다.
脈鍾于支之終, 故 下有合.
譯:
脈은 가지의 끝에서 모이니, 그러므로 끝에서 合함이 있다.
有合無分, 則其來不眞, 爲其內無生氣之可接也.
譯:
합함이 있고 나뉨이 없으면, 곧 그 옴이 진실 되지 못하니, 그 안은 生氣가 가히 모이지 않는다.
{明山論} [第七明堂] 참조.
有分無合, 則其止不明, 爲外無堂氣之可受也.
譯:
나뉨이 있고 合함이 없으면, 곧 그 멈춤이 명확하지 않으니, 밖에 明堂의 氣를 가히 받음이 없다.
有分有合, 則有來有止, 有出有沒, 則龍穴融結, 的定無疑, 然後爲全氣地也.
譯:
나뉨이 있고 합함도 있으면, 곧 옴이 있고 멈춤이 있으니, 出沒(起伏)이 있어, 곧 龍穴이 융결 되어, 적정함에 의심할 것이 없으니, 그러한 후 땅에 온전한 기를 이룬다.
然有大分合, 小分合, 眞地融結則有三分三合.
譯:
그리하여 大分合과, 小分合이 있으면, 진실로 땅에 融結 된 즉 三分 三合이 있다.
穴前後一分合, 起主龍虎所交二分合, 祖龍至山水大會三分合也.
譯:
穴의 앞과 뒤에 한번 나뉘고 합하면, 龍虎가 주되게 일어난 바 주고받음이 두 번의 分合이요, 祖龍이 山水에 크게 모여 이르면 三分合이다.
小合則爲小明堂, 大合則爲大明堂.
譯:
작게 합하면 곧 작은 명당을 이루고, 크게 합하면 곧 큰 명당을 이룬다.
:※ {명산론} [第四節目], "正受, 或爲大地, 或爲小地…"
合於龍虎內, 則爲內明堂.
譯:
龍虎(內靑龍白虎)가 안에서 합하면, 곧 內明堂을 이룬다.
合於龍虎外, 則爲外明堂.
譯:
龍虎(外靑龍白虎)가 밖에서 합하면, 곧 外明堂을 이룬다.
各不相亂如此, 是又不可不知也.
譯:
각각 서로 뒤섞이지 않음이 이와 같으니, 이는 또한 알지 않으면 안 된다.
浮沈論
其次又當別浮沈 .
譯:
그 다음은 또한 당연히 浮沈을 나눈다.
浮浮者, 言乎其表裏.
譯:
浮沈이라는 것은, 그 드러남과 들어감을 말한다.
夫脈有陰陽, 故有浮沈 .
譯:
무릇 맥에는 陰陽이 있으니, 그러므로 浮沈이 있다.
陰脈常見乎表, 所謂浮也; 陽脈常收乎裏, 所謂沈也.
譯:
陰脈은 항상 겉에서 드러나 보이니, 일컫는 바 浮라 하고,
陽脈은 항상 안에 갈무리 되니, 일컫는 바 沈이라 한다.
見은 '나타날 현'으로 읽음
大抵地理家察脈 , 與醫家察脈無異
譯:
대저 地理家가 맥을 살핌은 醫家와 더불어 맥을 살피는 것과 다름(差異)이 없다.
善醫者, 察脈之陰陽而用藥.
:譯:
좋은 醫者는, 맥을 살펴서 陰陽으로 약을 쓴다.
善地理者, 察脈之浮沈而立穴
譯:
좋은 地理 者는, 맥을 살펴서 浮沈으로 穴을 세운다.
其理一也, 夫三陰從天生, 以其陰根于陽也.
譯:
그 이치는 하나이다. 무릇 三陰은 하늘을 따라 생하고, 이로써 그 陰은 양에
뿌리를 둔다.
故 陰脈必上小而下大, 其出口也必尖.
譯:
그러므로 陰脈은 반드시 위는 작고 이에 아래가 크니, 그 출구는 반드시 뾰족하다.
三陽從地出, 以其陽根于陰也.
譯:
三陽은 땅을 따라 出하니, 이로써 그 陽은 음에 뿌리를 둔다.
故 陽脈必上大而下小, 其出口也必圓.
譯:
그러므로 陽脈은 반드시 위는 크고 아래는 작으며, 그 출구는 반드시 둥글다.
後之觀脈者, 不必問其何如.
譯:
훗날(후세에) 맥을 보는 자는, 반드시 그 것이 어떠한가를 질문을 할 필요는 없다.
但口尖者, 皆陰⊙其 浮於表, 口圓者, 皆陽◎其脈于裏.
譯:
다만 입구가 뾰족한 것은, 모두 음이고 그 맥이 드러나니 浮이고, 입구가 둥근 것은, 모두 양이니 그 맥이 들어가 沈이다.
此一定不易之法.
譯:
이것은 일정하여 바꿀 수 없는 법이다.
若又推而廣之.
譯:
또한 만약 넓게 추정하면,
則凸者脈浮, 凹者脈沈 .
譯:
곧 凸이라는 것은 맥이 뜬것이고, 凹라는 것은 맥이 잠긴 것이다.
微細者脈浮, 粗重者脈沈 , 衆高一低者脈浮, 衆低一高者脈沈.
譯:
미세한 것은 浮脈이고, 거칠게 거듭된 것은 沈脈이며, 높은 무리에 한번 낮은 것은 浮脈이고, 낮은 무리에 한번 높은 것은 沈脈이다.
以此相乘除, 則陰陽之理得矣.
譯:
이로 인해 서로 승하는 길이고, 곧 음양의 이치를 얻는 것이다.
淺深篇
其次又當定淺深.
譯:
그 다음은 또한 당연히 깊고 얇음을 정한다.
淺深者, 言乎其準的也.
譯:
淺深이라는 것은, 그 기준에 맞춤을 말한다.
夫 淺深得乘風水自成.
譯:
무릇 깊고 얇음의 승함을 얻으면 風水는 저절로 이루어진다.({葬經}[氣感篇])
故 卜地者, 必以淺深爲準的.
譯: 그러므로 卜地하는 것은, 반드시 淺深으로써 기준에 맞춰야 한다.
宜淺而深則氣從上過, 宜深而淺則氣從下過.]
譯:
마땅히 淺해야 하는데 深이면, 곧 氣가 위로 지나가고 (葬事의 깊이를 기준),
마땅히 深해야 하는데 淺하면, 곧 氣가 아래로 지나간다.
雖得吉地而效不應者, 爲此故也.
譯:
비록 吉地를 얻었더라도, 효험에 응함이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이다.
大槪 先觀來脈之陰陽, 次省四山之從佐.]
譯:
대개 먼저 來脈의 陰陽을 관하고, 다음으로 四山(四神砂)의 따름과 도움을 살핀다.
且 如脈入首强, 作穴凹, 出口圓, 此皆脈浮而穴陽, 宜淺.]
譯:
또 脈의 입수함이 강하면, 凹穴을 만들고, 출구가 둥그니, 이것은 모두 浮脈으로 陽穴로 마땅히 淺이다.
來脈入首弱, 作穴凸, 出口尖, 此皆脈沈而穴陰, 宜深.
譯:
來脈의 입수함이 약하면, 凸穴을 만들고 출구가 뾰족하니, 이것은 모두 沈脈으로 陰穴로 마땅히 深이다.
故曰, "淺深得乘, 風水自成."
譯:
그러므로 "淺深의 승함을 얻으면, 風水는 절로 이루어진다" 고말한다.
深淺之法多端, 至理莫過於是也.
譯:
심천의 법이 여러 가지이지만, 그 지극한 이치는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
切要辨認入首, 陰陽蝦鬚, 界合明白.
譯:
중요한 것은 입수, 음양, 하鬚을 분별하여 인식함이니, 그럴 경우 계합이 명백해진다.
若當深而淺, 當淺而深, 差於咫尺之間, 反吉爲凶矣.
譯:
만약
당연히 深해야 하는데 淺하고,
당연히 淺해야 하는데 深하면,
지척간의 차이로, 吉이 반대로 凶함을 이룬다.
經曰: "地吉葬凶, 與棄屍同", 正此義也.
譯:
경에 " 땅이 길해도 장함에 흉하면, 시신을 버리는 것과 같다(『葬經』「貴穴篇」)"하였는데, 진실로 바로 이 의미이다.
俗裝卦例, 論九星白法以定寸尺者, 大謬也.
譯:
세속에 괘례(팔괘/ 이기론)에 얽매이고, 九星白法을 논하며 그것으로 寸尺을 정하는 것(재혈을 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趨避篇
其次又當詳趨避.
譯:
그 다음은 또한 당연히 趨避를 자세히 살핀다.({人子須知}, [第12節 趨吉避凶 藏神伏殺 定穴 참조.)
趨避者, 言乎其決擇也.
譯:
趨避라는 것은, 그 판별하고 가리는 것을 말한다.
夫 天下之道, 二吉凶善惡常相半, 不能皆吉也, 而必有凶, 不能皆善也, 而必有惡.
譯:
무릇 천하의 도는, 吉凶·善惡 두 가지가 항상 서로 반반이니, 능히 모두 길할 수 없고, 이에 반드시 흉함이 있고, 능히 모두 선할 수 없으니, 이에 반드시 악함이 있다.
故 人之所遭有不齊也.
譯:
그러므로 사람과 만나는 바 가지런하지 못함이 있다.
旣所遭之不齊, 則必有以處趨吉避凶, 去惡從善是也.
譯:
이미 조우한 바에도 가지런함이 없으니(일정하게 정해져 항상 길하거나 항상 흉하지 않다는 意), 곧 반드시 처함에 있어 길함을 좇고 흉함은 피하게 되니, 惡은 지나치고 善을 따름이 이것이다.
地理亦然.
譯:
지리 또한 그러하다.({葬經} 貴穴篇,「目力之巧, 工力之具, 趨全避闕, 增高益下, 三吉也.」
夫 山川之所鍾不能皆全, 純粹之氣不能無所駁雜.
譯:
무릇 산천이 종형이어도 능히 모두 온전하지 않고, 순수한 기라도 능히 섞이고 혼잡스러움이 없지 않다.
則不能無所駁雜, 則姸 醜好, 紛然前陳, 亦其宜耳.
譯:
곧 능히 섞이고 혼잡스러움이 없지 않은 바는, 곧 곱고 추하며·미워하고 좋아함이, 어지럽고 앞에 늘어놓았으니, 또한 마땅히 들어야 한다.
然而山川之變態不一, 咫尺之移轉頓殊.
譯:
그러나 이에 山川의 형상이 변함은 하나가 아니니, 지척의 변화와 옮겨짐에 깨지고 죽을 수 있다.
或低視而醜, 或高視而好, 或左視而姸, 或右視而 , 或秀氣聚下, 而高則否, 或情意偏右, 而左則虧.
譯:
혹 낮게 보아 이에 추하고, 혹 높게 보아 이에 좋으며, 혹 左로 보아 곱고, 혹 右로 보아 이에 흉하면, 혹 빼어난 氣가 아래로 모이니, 이에 높으면 곧 안되고, 혹은 情의 뜻이 右로 치우치면, 이에 左가 이지러진다.
裁成篇
其次又當知裁成.
譯:
그 다음으로 또한 당연히 裁成을 알아야 한다.
裁成者, 言乎其人事也.
譯:
裁成이라는 것은, 그 人事를 말한다.
夫 人不天不因, 天不人不成.
譯: 무릇 하늘에 인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니, 하늘이 아니면 사람을 이루지 못한다.
自有宇宙, 卽有山川.
譯:
본래 우주가 있으면, 곧 산천이 있다.
數不加多, 用不加少.
譯:
數는 많아 더하지 않고, 쓰임은 적어 더하지 않는다.
必天生自然而后定, 則天地之造化亦有限矣.
譯:
반드시 하늘이 자연을 生한 이후에 정하니, 곧 천지의 조화는 또한 한계가 있다.
是故山川之融結在天, 而山水之裁成在人.
譯:
이런 고로 하늘이 있어 산천이 融結하고, 이에 사람이 있어 山水가 마르고 성한다.
或過焉, 吾則裁其過, 或不及焉, 吾則益其不及.
譯:
혹 지나침에, 자신은 곧 그 지나감에 마르고, 혹은 이르지 않음에, 자신은 곧 그 이르지 못해 더한다.
使適於中, 截長補短, 損高益下, 莫不有當然之理.
譯:
만일 중에 도달한다면, 긴 것은 끊고 짧은 것은 보호하고, 높은 것은 덜고 낮은 것은 더하니, 마땅히 이치가 있지 않는 경우가 없다.
其始也, 不過目力之巧, 工力之具; 其終也, 奪神功改天命, 而人與天無間矣.
譯:
그 시작은, 안력의 기교에 불과하고, 공력의 갖춤이나, 그 끝은, 神功을 빼앗아 천명을 고치니, 이에 사람과 더불어 하늘에 사이는 없다.( 『葬經』「山勢篇」‘是以君子奪神功 改天命')
故 善者盡其當然, 而不害其爲自然
譯:
그러므로 善한 것은 그 마땅함을 다하고, 이에 해로움이 없어 자연을 이룬다.
不善者泥乎自然, 卒不知其所當然. 所以道不虛行, 存乎其人也.
譯:
不善한 것은 자연을 흐리니, 결국 그 당연한 바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까닭에 도를 행하여 비우지 않음은, 그 사람에게 있다.
참고:
김두규 역해; 호순신의 지리신법(장락 출판사 2001) 에 언급된 발미론 재성편
"天不人不因, 人不天不成之說"
不을 非所로 해석하면 뜻이 통한다, 因은 '의지하다'로 해석
이 문장의 출전은 송나라 때 牧堂 蔡元定(1161-1237)의 저서 [發微論] 裁成篇이며, 원문과 번역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夫天不人不因, 人不天不成之, 自有宇宙卽有山川, 數不加多, 人不加少. 必天生自然而然是, 則天地之造化亦有限矣. 是故, 山川之融結在天而山川之裁成在人. 或過焉, 吾則裁其過使適於中, 或不及焉, 吾則益其不及使適於中, 裁長補短, 損高益下, 莫不有當然之理. 其始也, 不過目力之巧 工力之具. 其終也, 奪神工改天命而人與天無間矣.
(하늘은 사람이 의지하지 않는 않은바 아니요, 사람은 하늘이 만들어 내지 않은 바가 아니다. 우주가 절로 있은 즉 산천이 있는 것이며, 운수가 더 많이 보탤 수도 없고 인간이 적게 보탤 수도 없다. 반드시 하늘이 자연을 낳게 한 뒤 그와 같으니, 천지의 조화 역시 유한한 것이다.
산천의 융결은 하늘에 있고, 산천의 재성(재량하여 성취함)은 사람에 있다. 경우에 따라 그것에 지나침이 있으면, 그 지나침을 마름질하여 그 적절함(中)에 맞추고, 경우에 따라 미치지 못함이 있으면, 그 부족함에 덧보태 그 적절함에 맞춘다. 긴 것을 자르고, 짧은 것을 보완하고, 높은 것은 덜고, 낮은 것은 덧보태니 당연한 이치가 없을 수 없다. 그 출발점은 눈으로 잘 살피고(目力之巧), 인공의 방법으로 (터를) 잘 갖춤에 지나지 않지만, 그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하늘의 하는 바(神工)를 빼앗아 천명을 바꿈에 있게 되어, 사람과 하늘의 (하는 바가) 차이가 없게된다."
출전: 김두규 역해; 호순신의 지리신법(장락 출판사 2001)
感應篇
其次又當原感應.
譯:
그 다음은 또한 당연히 感應의 근원을 살핀다.
感應者, 言乎其天道也.
譯:
感應이라는 것은, 그 天道를 말한다.
夫 天道不言而響應, 福, 善, 禍, 淫皆是物也.
譯:
무릇 天道는 말하지 않고 이에 響應하니, 福, 善, 禍, 淫이 모두 이런 종류이다.
諺云, "陰地好, 不如心地好", 此善言感應地理也.
譯:
諺(속담)에 말하길, "陰地를 좋아함은 차라리 마음으로 땅을 좋아하는 것만 못한다."하였으니, 이것은 感應의 地理를 잘 말한 것이다.
是故求地者, 必以積德爲本.
譯:
이런 고로 땅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積德함으로서 근본을 이루어야 한다.
若其德果厚, 天必以吉地應之, 是所以福其子孫者, 心也, 而地之吉亦將以符之也.
譯:
만약 그 德을 두터이 이루면, 하늘은 반드시 吉地로서 응하니, 이런 까닭으로 福이 자손에 미친다. 마음(德心, 善心)이면, 이에 땅의 길함 또한 장차 이로써 부합된다.
其惡果盈, 天必以凶地應之, 是所以禍其子孫者, 亦本於心也, 以地之凶亦將以符之也.
譯:
그 악함을 가득 이루면, 하늘은 반드시 凶地로서 응하니, 이런 까닭으로 禍가 자손에 미치니, 또한 마음이 근본이고, 이로서 땅의 흉함 또한 장차 이로써 부합된다.
盖 心者, 氣之主; 氣者, 德之符.
譯:
대저 마음이라는 것은, 기의 주가 되니, 氣라는 것은, 德에 부합된다.
天未有心於人, 而人之一心一氣, 感應自相符合耳.
譯:
하늘은 사람에게 마음이 없으니({道德經}[第5章] '天地不仁'과 同意), 이에 사람의 一心과 一氣가, 스스로 感應하여 부합된다고 들었다.
郭氏云, "吉凶感應, 鬼神及人"(『葬經』「氣感篇」‘氣感而應鬼, 福及人’), 人於先骸, 固不可不擇其所而安 之.
譯:
곽씨가 말하길, "길흉이 감응하면, 鬼(凶)와 神(福)이 사람에게 미친다."하였으니, 사람의 先骸(祖上 또는 先親의 뼈)는 잠시라도 가히 가리지 않으면 안되니 그 편안 곳에 두어야 하는 바이다.
然不修其本, 惟末是圖, 則不累祖宗者寡矣, 欲有以福其子孫哉.
譯:
그리하여 그 근본을 닦지 않고, 오직 끝(功巧, 技巧)을 꾀하면, 곧 祖宗에 누를 끼침이 적지 않다. 하물며 복이 그 자손에 있어서랴!
地理之微, 吾旣發明之, 故述此於篇末, 以明天道之不可誣, 人心之所當謹.
譯:
지리의 미세함은, 내가 이미 밝혔으니, 그러므로 이 편의 끝에 글로 지어, 이로서 천도를 밝히고 가히 업신여기지 않고, 사람 마음이 당연히 삼가는 바이다.
噫, 觀是書者, 其之所戒哉.
譯;
아, 이 書를 보는 자여, 그 경계할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