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흑석동 효사정 언덕 북서쪽 테크에서 처절한 저항시인 심훈(沈薰)을 만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소설가, 시인, 언론인, 영화배우, 영화감독, 각본가로 본명은 심대섭(沈大燮)이다.
경기도 과천군(현 서울특별시 동작구) 출생이며 호는 해풍(海風)이다. 청송 심씨(靑松 沈氏) 안효공파(安孝公派)로 잘 알려져 있다.
심훈은 소설 <상록수>를 지은 소설가로 더 알려져 있다.그가 남긴 몇 편의 저항시는 결코 저버릴 수 없는 고귀하고 귀중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그 날이 오면>은 36년간의 어둠 속에서 쓰여진 이 땅의 저항시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한용운의 깊이 있고 아름다운 일련의 작품과 옥중에서 쓴 한시(漢詩), 김소월의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모습 대일 땅이 있었다면>,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윤동주의 <쉽게 씌여진 시>를 비롯한 작품들, 이육사의 <절정> 등 일련의 작품들이 저항시로 꼽힌다. 그러나 심훈의 작품은 어떤 시인의 것보다도 피끓는 힘의 소리가 넘치고 있다.
그는 영화 <장한몽>에서 이수일의 역할을 열연한 영화배우였다.특히 영화 <먼동이 틀때>는 그의 원작이고 각색이며 그가 감독한
작품이다. 그 영화는 흑백 35밀리로 제작되었다.
그의 대표적인 시(詩) <그날이 오면>을 담은 시비가 효사정 언덕 북서쪽에 있다. 그 시를 한번 음미하려고 한다.
그날이 오면
심훈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꼭 100년 전이다.그는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재학 중이었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 3월 5일의 남대문 앞 시위에
참여했다.그때 왜경에 체포돼 서대문감옥에서 옥살이를 해야 했다. 옥중에서 그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어머님! 어머님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하여 근심치 마십시오. 지금 조선에는 우리 어머님 같으신 어머니가 몇 천 분이요
몇 만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님께서도 이 땅에 이슬을 받고 자라나신 공로 많고 소중한 따님의 한 분이시고,
저는 어머님보다도 더 크신 어머님을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그는 1930년 3.1만세운동 11주년을 기념해서 <그날이 오면>을 짓는다. 이 시는 항일 저항문학의 금자탑으로 꼽힌다.
이 시 <그날이 오면>을 통해 심훈이 얼마나 조선의 독립, 민족의 해방을 절절히 열망했는지 쉽게 느낄 수 있다.
이 시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해방의 그 날에 대한 열망이 직접적으로 표출된 시이다. 해방의 그 날이 오면, 시인 자신의 육체를
환희의 제물로 삼아 머리로 종로의 인경을 두들기고 가죽으로 북을 만들어 치며 행렬의 앞장을서겠다는 단순하고 격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이 시는 격렬한 감정에 휩싸여 시적 균형성을 잃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민족 해방을 향한 강렬한 애국적 열정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어느 시인보다도 뜨겁게 느껴진다.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두개골은 산산조각이 나도'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 만들어 들쳐 메고는'
심훈이 그 시 <그날이 오면>에서 골라서 쓴 시어는 지나치게 거칠고 과격하다는 비평이다.
격정을 넘어 과격한 표현을 들어 국내에서는 제대로 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인사도 없지 않았다.
“일본의 한국 통치는 가혹했으나, 민족의 시는 죽이지 못했다.”
영국의 비평가이며 옥스퍼드대학 부총장이었던 C.M 바우러(Bowra) 박사는 그의 <시와 정치>에서 이 시를 세계 저항시의
한 본보기로 들었다.이 시는 민족 해방에 대한 강렬한 공상이 ‘감상적 착오’에 쾌적한 변형을 가져옴으로써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시가 “설령 가까이 있을 것 같지 않더라도, 감격적인 미래가 환기하는 격렬하고도 숭엄한 정서”를 잘 그려내고 있다고
했다. 비록 언어적 세련성의 척도에서 볼 때 거칠고 투박하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지만, 식민지시대의 민족적 저항의지를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간과할 수 없는 작품 바로 '그날이 오면'이다.
심훈은 조국의 광복에 불퇴전의 애국 사상과 불굴의 의지를 지닌 작가였던 것이다. 이 시에서도 조국 광복만 된다면
자신은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좋다는 굳건한 저항을 보인 것이다.
그는 소설 <상록수>의 출간 작업을 위해 당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가 갑작스럽게
장티푸스에 걸려 9월 16일(1936년) 아침에 요절한다. 당시 36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의 남아여!
-伯林마라톤에 우승한 孫, 南 양군에게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 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 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 아래서 그대들의 심장 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2천 3백만의 한 사람인 내 혈관 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 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닥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늘 밤 그대들은 꿈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 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의 병사를 만나 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精靈)이 가호하였음에
두 용사 서로 껴안고 느껴 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 세계의 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당시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이었던 여운형은 심훈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읽으면서
이 시를 낭송하였고, 심훈의 관을 안으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