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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가 있는 풍경」연화도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뱃길 따라 남쪽으로 24km쯤 연화도를 향해서 50여분을 배는 물살을 가른다. 3,500여 개의 섬이 대부분 남해에 몰려있어 다도해라 불린다. 청정해역인 한려수도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내달린다. 연화도는 통영시 욕지면으로 욕지도 외에 일흔 한 개 크고 작은 섬 중 하나다. 사명대사가 이곳 연화도 토굴서 수도를 하였는데 우연히 비구니인 누이 보은과 처 보월과 애인인 보련을 삼생인연으로 이곳에서 만났다. 그 후 사명대사와 다시 헤어졌지만 그들은 함께 수도하여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많은 공을 세운 자운선사로 불린다. 그들의 발자취는 연화도의 전설로 전해오며 보덕암과 연화사라는 두 개 사찰이 있다.
배는 섬의 초라한 포구에 들어서고 갈매기가 현란하게 휘저으며 반갑게 맞는다. 조용한 섬마을에 우선 옥상마다 푸른 칠을 한 큼직한 통이 눈에 들어온다. 섬의 특성상 식수까지 물을 받아 저장하는데 필요한 용기다. 섬에서 가장 높은 연화봉(212m)은 불과 1.3km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섬사람들은 산을 방패막이로 의지하여 보금자리를 꾸미고 살아가야만 한다. 하지만 사실상 삶의 터전은 산이 아니라 바다라고 할 것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섬은 한 눈에 들어올 만큼 작다. 사방팔방을 휘둘러본다. 또 다른 섬들이 울타리를 치고 있다. 그 속에 이 섬이 들어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연꽃잎을 떠올리게 하여 연화도(蓮花島)라는 이름을 얻어냈다.
섬은 온갖 파도에 씻기면서 대부분 사방이 기암절벽으로 되어있다. 마치 용이 대양을 향해서 헤엄쳐 나가는 형상의 용머리는 통영팔경 중에서 으뜸으로 불리며 맨 앞의 외돌바위에서 이어진 모습은 경탄을 자아낸다. 토굴터를 지나 기슭에 5층으로 지어진 보덕암에 닿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용머리는 가히 절경이라 할 것이다. 그 너머로 소매물도가 있고 시퍼런 바다에 소금쟁이처럼 물살을 가르고 고깃배가 하얀 물길을 남긴다. 눈앞에 납작 엎드린 집은 원주민이 살던 곳인가 보다. 좀은 초라하니 빈 집 같은데 혹시 지금도 그 누가 살고 있을까나 괜스레 궁금하다. 벼랑에 검은 염소들이 보인다. 바위에 나란히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나보다.
비록 자그마한 섬이라고 얕잡아 보지 마세요 연꽃을 닮을 만큼 빼어난 연화도는 소매물도까지 들어오는 청정바다 일찍이 사명대사가 수도하던 토굴이며 용머리해안은 통영에서 으뜸명물 방목된 흑염소가 뛰놀고 그리움 같은 순수가 숨 쉬는 곳 까치 까마귀 갈매기가 뒤섞여 날며 해풍에 짭짜름한 억새는 바다 지킴이 불침번. - 연화도 억새
염소는 뛰쳐나오는 짭짜름한 바닷소리를 들으면서 망중한 여유를 즐기나 보다. 비록 열악한 환경에 방목이란 이름으로 제한된 구역에 놓였지만 나름대로 당당하고 자유분방하게 보란 듯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터다. 큰 나무들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도 잡목이 많은데 해송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에 걸렸나 보다. 외진 섬마을까지 이런 흉측스러운 일이 생겨났을까. 도막난 나무가 특수 포장된 그들만의 무덤이 되었다. 사람이든 나무든 아프지 말고 튼튼하게 살아가야 할 텐데. 참으로 보고 싶지 않은 현장이다. 애써 외면하지 싶지만 그래도 곁에 나무들은 꿋꿋한 자세로 온갖 해풍을 몸으로 받아내며 굳건하게 몸을 단련시키고 있다.
섬의 끝부분인 동두마을로 간다. 왼쪽 기슭에 무덤이 있다. 섬에서 태어나 끝내 섬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곳에 묻혔을 것이다. 끝자락 포구에 민박집이 있고 비록 몇 평에 지나지 않지만 작은 텃밭도 소중하게 일구었다. 까치와 까마귀가 좁은 땅에서 서로 영역다툼이라도 하는지 몹시 짖어댄다. 갈매기는 싸움을 말리는 것인지 붙이는 것인지 한 몫 거든다. 짧은 거리지만 관광객 유치에 투자하여 시멘트 포장으로 가끔 자동차가 질주한다. 닥쳐올 겨울이 걱정되는지 바다는 편히 쉬지를 못하고 연신 출렁거린다. 차가온 기운이 뭍으로 올라오지 싶다. 몇몇 어부들은 조금 남은 가을 햇살에 웅크리고 있지 싶지만 그들은 이겨내고 아마 봄날을 준비할 것이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떠간다. 억새꽃이 하얗게 흘러간다. 가면 어디로 가는가. 내 마음은 왜 싣고 가려는가. 신바람 억새가 어깨를 출렁거린다. 바람아 더 세게 불어보아라. 훨훨 저 하늘에 구름처럼 날아나 보자구나. 아니야, 마음만 뒤숭숭하면 어쩔 거냐. 땡볕에 가뭄에 쩔쩔 매던 때가 언제였던가. 날마다 비가 온다고 파란 하늘 보고 싶어 얼마나 안달을 하였던가. 태풍에 넘어질듯 일어서 그냥 놓아주면 아무 욕심 없다 하였지. 벌써 잊어버렸나. 제 분수를 알아야지. 척박한 흙에 뿌리를 두었으면 그에 걸맞게 살아가야지. 그냥 오가는 길손에게 날아가는 새들에게 또 바다에게 손을 흔들고 바람과 어우러지면서도 아주 실속 있게 삶을 챙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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