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은 성전입니다.(고전3:16) 성전인 나는, 그래서 내 소유가 아닙니다. 성전 등기는 하나님 앞으로 되어 있으니까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7:19~20) 나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어서, 하나님의 필요에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보이는 세상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소망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전은 어떤 권력도 침범할 수 없는 치외법권(治外法權) 지대이며, 셈할 수 없는 돈(億)이라도 동전 두 개만 못한 곳입니다.(눅21:1~3) 하나님 외에 성전인 나를 주관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권력자의 부름도 내게는 중요하지 않고,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나를 부릴 수 없습니다. 나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권력도 아무리 많은 돈도 나를 주관할 수 없는데, 유일한 예외가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성전인 나를 주관할 수 있는데, 하나님처럼 나를 주관할 수 있는 꼭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배우자입니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7:4) 아내가 남편을 주관할 수 있고, 남편이 아내를 주관할 수 있습니다. 남편의 하나님은 아내요, 아내의 하나님은 남편입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듯, 부부는 피차 복종해야 합니다.(엡5:21)
하나님은 배우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아내의 뜻이 남편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남편의 뜻이 아내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배우자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남편의 우격다짐도, 아내의 바가지도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우격다짐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남편을 변화시킵니다. 바가지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아내를 변화시킵니다. 우격다짐과 바가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위해 창조를 행하십니다. 우격다짐에 순종하는 아내를 위해 하나님은 남편을 다시 창조하시고, 바가지에 순종하는 남편을 위해 하나님은 아내를 다시 창조하십니다. 피차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줄기요, 우리는 가지입니다.(요15:4~5) 배우자가 하나님같은 존재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배우자는 나의 줄기입니다. 줄기에서 공급되는 수액으로 가지가 열매를 맺듯, 배우자를 통해 공급되는 수액이 있어, 나는 싱싱한 가지입니다. 줄기가 뿌리내린 땅이 시궁창일지라도, 가지는 줄기를 통해 수액을 공급받아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남편의 우격다짐과 아내의 바가지가 시궁창 같은 죄에 뿌리를 둔 것이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우격다짐과 바가지를 감히 판단하는 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진흙 시궁창에서 연꽃이 핍니다.
혼자 사는 이도 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에겐 하나님께서 직접 돕는 배필이 되십니다.(창2:18) 하나님께선 혼자 사는 이에게 우격다짐과 바가지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까닭에, 혼자 사는 이에겐 하나님의 친밀한 속삭임이 있을 것입니다.(고전7:32~34)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합니다.(고전7:7) 배우자가 있거나 없거나, 내 몸은 성전입니다. 배우자가 있으면 그니가 하나님이요, 배우자가 없으면 하나님이 배우자 되십니다. 어떤 권력보다 큰 권세가 배우자에게 있고, 어느 재벌보다 부유하신 배우자가 하나님이십니다.(왕상17:9~16)
배우자가 있어 그니가 하나님 되심을 믿는 성전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배우자가 없어 하나님이 배우자 되심을 믿는 성전은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습니다.(고전15:53)
내 몸은 성전입니다. 이러하든 저러하든,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첫댓글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내몸이 내것이 아닌것은 맞고요, 근데 아내것이라요, 성경에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하듯 하라고 햐셨고요, 남편에게는 주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신것 처럼 사랑하라 하셨는데 이것은 다른것 아닌가요....
1.맞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하셨고, 5장 25절이 장로님 짚어주신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하셨습니다.
2.그런데 그보다 앞서, 아내와 남편 각각에게 말씀하시기 전에, 부부 관계의 대전제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서5장 21절입니다. 22절과 25절보다 앞에 나오는 말씀이지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부부에게 "피차 복종"하라 하십니다.
3. 그리고 고린도전서 7장 4절에서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 하셨지요. 이것은 문자적으로 부부의 성관계에 대한 것이긴 합니다. 그런데 맥락상 고전7장19절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뒤이어 나오는 것이어서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부부의 성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남편은 아내의 것이요, 아내는 남편의 것입니다.
4.사람과 예수님 사이에서 보자면, 사람은 철저히 예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맞지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맞습니다. 예수님은 지존자이시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머슴이 되셨지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입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던 방식으로 아내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듯 사랑하는 것은 복종하는 것입니다.
5.바울이 가정의 아내와 교회의 여성들에게 복종과 침묵을 강조했던 것은, 그 당시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있고, 신비한 은사도 받았는데 성경을 읽을 수 없었던 여성들이 가정과 교회에서 리더가 되는 것을 대단히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보았던 것이지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지금과 그때를 비교해보아야 합니다. 바울 시절에는 여성들에게 교육 기회가 거의 없었고, 지금은 남자와 여자에게 고루 교육을 받는다는 점에서, 바울이 말하는 여성관은 창조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겠습니다.
6. 물론 아내의 잔소리, 지청구, 바가지가 곧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따지고보면 인간의 모든 언어가 그렇습니다. 설교자의 말 또한 엄밀하게 하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리하는 여성은 부정하고, 돼지고기를 먹으면 안된다는 구약 시대의 관습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을 위한 신비입니다. 지청구와 잔소리와 바가지 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섞여있습니다. 그것을 잡아내는 것이 듣는 이의 영성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우격다짐과 아내의 바가지도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표현하였습니다.
7.어제 서점에 갔다가 카페에 관한 책이 있어서 만지작거렸습니다. 세라빈이 생각났었고, 책장을 넘기며 잠시 기도했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나마 자주 뵈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