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생을 살면서 공식적인 졸업을 여러번 치루었다.-아직도 진행 중-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국민학교를 입학하면서-우리땐 유치원이 흔하지 않았다.-
유아 시절에서 졸업을 하면서 매일 학교를 혼자 혹은 동네 형들과 함께 국민학교를
6년만에 졸업하고,그때 졸업식은 교실에서 쓰던 나무로 된 무거운 의자를 운동장으로
일일이 들고 나와 키순서대로 앉아서 엄숙한 분위기와 조금은 술펐던 기억이 난다.
여린 친구들은 훌쩍이며 울기도 했다. 졸업식이 끝나면 우리의 최대 이벤트는 근처의
중국집으로가서 맛난 자장면을 원없이 먹는것이었다.-이때는 어머님이 곱배기도 시켜주셨다-
상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졸업장과 앨범을 들고, 집으로 왔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는 집에서 더 멀고, 더 무거운 가방과 교복이라는 거추장한 옷을 입고,
작은키에 가방을 어떻게 들고 다녔는지 힘겨운 3년을 뒤로하고,중학교를 졸업했다.
더러운게 고학년이 될 수록 학교는 집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가방은 더욱더 무거워지며
세상살이가 험해지는 느낌이였다. 고등학교는 공항동에 사는 내게 버스를 -당시 128번공항버스-
타고 30~40분정도의 먼 거리인 신길동까지 3년을 눈이오나 비가오나 더우나 추우나
꼬박 열심히 물 건너셔 산 넘어셔 잘 다녔다.
고등학교는 중학때 보단 더 무서웠다.
왠 규율은 그리도 엄하고, 선배님들은 양발이 허였네 회색입네하며 복도로 끌고 가
빧다도 치고, 작은 키에 버스를 타고 다닐랏치면 가방은 무겁고 만원버스여서 메어터지기 일보직전인데
경례를 안했다고 신길동에 내리니 작은 나를 끌고 골목길로 가서 맛난 매를 주시기도 했다.
어찌어찌 난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1년간의 재수생활에 돌입하여,
서대문으로 단과학원을 다니며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고, 담배도 이때 배웠고,
술도 이때 많이도 먹었나보다.
1년간의 재수생활을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고, 2학년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였다.
28개월 15일의 힘겨웠던 군생활도 졸업하고, 학기가 안맞아서 어영부영하다 복학해 남은 학기를
마치고 대학도 무사히 졸업했다.
이때부터가 고생문이 활짝 열린시대였다. 첫직장이라고 난 여행사를 택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고생 드럽게 했다. 돈도 꽤나 벌었지만 구멍가게로 닭장으로
번돈을 거의 날리고 정신이 들어 결혼을 생각하고 만난 내 아내의 투철한 저축으로
혼전에 급여 통장을 미리주어서 단칸방이라도 장만하여, 총각시절을 졸업하고
결혼의 굴레로 아주 행복에 겨워하며 생활하고 있다. 어찌 결혼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아내를 많이 이해하며 사는 나이가 되었다.
지난주 토요일이 큰공주님의 중학교 졸업이였다.
"아빠 오지마!!!" 서운했다.ㅠㅠ
당일엔 "여보 이제 막 시작했는데 안올래"
역쉬 아내 밖에 없읍디다. 아이의 졸업을 보면서 내 졸업이 보이네요.
인생을 졸업하는 그날까지 -최소한100년 후가 되겠지만- 열심히 살아야야 겠습니다.
요즘은 영상시대라서 인지 교실에서 티비로 하네요. 아이들은 제멋대로 입니다.
아흐 주먹이 운다.
딸이 의외로 좋아해서 서운한 맴이 풀리긴했는데 짜식이 눈을 감았네요. 그래도 제겐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녀석이네요.
전 고슴도치 맞습니다.^^
첫댓글 서운해 하지마라~ 그래도 넌 아버지 잖아 큰 맘으로 굿굿하게 견뎌야 한다...그리고 큰딸 졸업 축하한다... 지금보다 결혼시킬때 더욱 맘이 아플거야 그땐 눈물도 날 수 있고, 가슴에 담아야 할 때도 있단다... 우리 미래를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자꾸나~
오케이^^ 준비를 철저히 하잔 니말 동감이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