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상수 감독, <생활의 발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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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통감각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을 보러 왔던 사람들은 제가 보기엔 어떤 "공통감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 평범한 인물들의 대사와 연기와 마주쳐 웃을 수 있는 준비를 갖춘 다음 웃는 것 같은. 그것은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TV나 각종 잡지에서 미리 전해준 광고효과와 각종 인터넷 정보 덕인지도 모르죠. 우리나라에서 일정한 수준의 영화에 대한 비평적 담론은 수준도
일정하고 문학이나 기타 문화비평에 비해 훨씬 대중적입니다. 그것조차도
광고효과 중의 일부겠지만. 예를 들면 그런 것들과 함께 사람들은 홍상수라는 독특한 영화적 코드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이 홍상수 영화의 코드에 접속할 수 있는 공통의 아이디, 감각, 그것은 이번의 <생활의 발견>에서는 웃을 수 있는 준비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저는 아주 많이 웃지는 않았지만,
저와 함께 영화를 본 관객들은 거의 모든 장면과 대사마다 웃음을 터뜨렸죠.
2. 소격효과, 불쾌함과 웃음
그런데, 왜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을 보며 우리는 웃을까요? 세부장면들을
많이 놓쳐서 아쉬워했고, 또 나오면서도 단편적인 장면들을 연결하느라 골머리를 앓으며 전 극장을 나와 함께 영화를 함께 본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혹 내가 어떤 사람과 나누는 대화조차도 누군가에겐 아주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해보았답니다. 그러고 나니 정말 이상해지더군요. 그는 홍상수 영화의 특징으로 "소격 효과"를 말했는데, 그것을 바꿔 말하면 홍상수 영화는 너무 친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서 그걸 보는 사람이 도리어 불편해져 자신이 혹 영화속의 저 사람들처럼 각자의 환상과 그만큼 비례하는 비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감각을 준다는 것이지요(저는 홍상수가 사악하고도 장난기스런
초자아=신의 냉소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관점에서 우리를 정면으로 "응시(gaze)"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했죠). 그는 일차적으로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곳은 우리가 다들 한 번씩 가봤던 곳이 아닌가요, 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느정도 정곡을 찌른 얘기였죠. <생활의 발견>에서는 춘천과 경주,
소양호와 청평사가 그렇고, <오!수정>에서 인사동 고갈비 막걸리집이 그렇죠. 그밖의 다른 영화의 장소들도 마찬가지죠. 사실 "다들 한 번씩 가봤던
곳"이라는 표현은 아마 홍상수 영화의 코드에 친숙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감각, 그렇지만 어떤 공통된 소외감각이기도 하겠지요. 그런 소외감각이 그 장소안에서 인물들의 연기와 섞여 들어가며 갑자기 돌출했을 때, 영화는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고, 웃기게도 하지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강원도의 힘>을 볼 때 다가오는 (불)유쾌함, <오!수정>이나 <생활의 발견>을 볼 때의 (비)웃음. 홍상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제가 보기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영화를 싫어하고 혹평하면서도 전부 다 보는 사람 그리고 그의 영화를 그 자체로 즐기는 사람.
그것은 홍상수 자신에게는 일관된 어떤 효과의 창출일 겁니다(너희들, 다
비슷해!).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작가주의적 감독입니다.
3.무거움과 가벼움, 그리고 반복과 모방
오랫동안 경수(김상경)를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한 춘천 여자 명숙(예지원)의
당돌함은 그 자체로는 무겁지만, 그것이 경수에겐 너무도 가볍기만 하죠(명숙이 진지하게 "나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을거죠"하니까, 경수 무심히 말하길, "네", 그리고 핸드폰을 끊고 나서 "이런 미친년"이라고 내뱉는 한마디).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찻간에서 만난 경주의 유부녀 선영(추상미)에게
진지하게 반한 경수는 선영이 경수를 어렸을 적부터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선영 덕택에 겨우 기억해내죠. 선영을 대하는 경수는 무겁지만, 그런
경수를 대하는 선영은 깃털 날듯 가볍죠. 선영이 유부녀라는 설정(자신의
13년 연상인 남편과 그것이 속한 세계를 버릴 수도 없으면서 경수에 대한
감정엔 충실한)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요. 선영이 집에 들어가 돈을 가지고 올테니 기다려라고 말한 후, 다시 나오지 않고 경수는 폭우가 쏟아지는
선영의 집앞에서 마냥 기다리다가 말죠. 영화는 거기에서 끝나지만, 사실은
그 다음에 선영을 만나든 만나지 않든 영화는 어디에서든 끝을 맺어야 했을
겁니다(그래서 영화가 갑자기! 막을 내리자 극장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한동안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죠). 영화에는 그 자체로 심사숙고해야 할 관계들이나 기표들이 많습니다. 1)명숙(무거움)-경수(가벼움), 그리고 경수(무거움)-선영(가벼움)의 관계. 2)그리고 그 사이를 떠도는 "내 속의 당신,
당신 속의 나"라는 두 여자들이 모두 경수에게 남긴 반복의 기표. 3)연극배우인 경수의 모방적인 행동("우리 사람은 되지 못할지언정 괴물은 되지 말자"라는 표현을 선배에게 듣고 명숙에게 반복하는 경수)과 그런 반복적인
행위에서 왜소해지기만 하는 자아. 4)이것은 부정하면서도 이것과 비슷한
그것은 긍정하는("나는 잘 알아, 하지만...") 물신과 부정의 논리. 명숙을
부정하면서도 선영을 긍정하는 경수의 행동에 나타난 어떤 분열증. 점집에서 점보기를 통해 나약한 자아를 보상받으려는 행위.
4. 영화 속의 남녀와 영화 밖의 남녀
저는 이 영화를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려면 한 며칠이 걸릴 것 같다,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며칠동안 그래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하나 재미있는 점. 영화 속 남녀배우 간의 관계에 대한 영화 밖 관객 간의
상이한 반응. 처음, 저는 명숙은 이해가 가는데, 선영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고, 그는 선영의 행동, 충분히 이해가 가지 않나요, 라고 말했으며
그 밖의 남녀 관계에 대해서도 상이한 반응과 해석들이 나왔습니다. 이 점에 관해 얘기를 끌어 나가면 꽤 재미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