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메의 산
삼척 세덕산(1,056m)
대마밭이 있던 산, 지금은 배추밭이 있는 산
별쫑난 산이름도 다 있다. 삼(대마) 갈던 큰 삼밭이 있는 산이라고 하여, 삼 갈 '세' 자와 큰 '덕' 자를 써서 세덕산(1,056m)이다.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은 삼을 많이 재배하던 고장으로 유명했었다. 삼은 일손이 많이 가는 농사다. 밤을 새워 물레를 돌려 길쌈을 하여도 항상 가난을 면치 못했었다. 근래에는 삼을 심던 땅에다 고랭지 여름배추를 심어 짭짤한 수입으로 잘 사는 농촌이 되었다. 이제는 세덕산 이름을 배추산으로 바꿔야 할까...
세덕산은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지형도에 이름이 없는 산이다. 위치는 하장면 장전리와 추동리 사이에 솟아있다. 백두대간 상의 금대봉 검용소에서 발원한 원류 대박산천(일명 창죽천)과 청옥,두타산 물이 합친 죽현천이 광동호에 집결, 이후부터는 고계천(지형도에 표시된 골지천 이름은 일제가 개명)이 된다. 고계천이 35번 국도와 나란히 하장을 지난 2km쯤에 수촌이라는 아름다운 숲안마을이 있다. 장전리 1반 세미밭굼(큰골)이 세덕산행 들머리다. 세미밭굼이란 가늘고 긴 삼밭골이란 뜻이다.
태백여성산악회 권영희 회장, 안순란 총무와 장전리 표석을 보며 세미밭골로 들자 농가 두어채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골에서 내려 부는 바람이 차다. 토종닭을 키우는 닭장을 지나 2층 농가 건물 옆으로 난 경운기 길에 차량 차단막이 설치돼 있다. 긴 밭을 끼고 걷는다. 이러한 세미밭이 많아 장전리란 이름을 얻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 상기 아니 일어나니
재넘어 사래긴밭을 언제 갈려하느냐."
꼭 장전리에 걸맞는 시조인 듯하다. 조용히 얼어붙은 계곡도 보며 들머리에서 20분 소요에 피나무 있는 우묵골, 피나무골, 선동골과 만나는 합수점 사거리 공터다. 왼편에는 숲뒤산, 앞에는 장병산, 오른편에는 세덕산이 솟아있다. 임진왜란 때 왜병에게 노획한 병기들을 이 산 어딘가에 숨겨 놓았다 한다. 아직도 칼과 창을 찾으려 이곳을 뒤지는 이들이 있다 하는데, 혹시 병기를 가져간 사람들은 모두 화를 당했다는 이야기와 이곳 공터 사거리 있던 성황당을 헐어 버린 사람은 급살을 맞았다는 일화도 있다.
오른쪽으로 90도 꺾어 개울을 건너자 곧바로 피나무굼과 우묵골이 갈린다. 오른편 오목하게 생긴 우묵골로 들자 사태를 만나 돌들이 뒤집어져 있는 계곡이다. 옛집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권영희 회장이 비타민씨로 건강을 찾는 이야기를 하며 비타민씨 한통을 건넨다.
계곡을 따라 오른다. 돌이 울퉁불퉁하다. 옛날에는 계곡 오른편으로 길이 있었으나, 간벌한 나무들 때문에 힘들더라도 계곡을 따르는 게 더 나은 편이다. 계곡은 점점 경사를 더한다. 이제는 아예 간벌한 일본잎갈나무들이 길게 드러누워 오도가도 못하게 한다. 팔진법에 갇힌 꼴이다. 덩굴식물들도 합세를하고 엉크런 가시 발톱을 세운 음나무도 한술 더 뜬다. 참으로 애를 먹인다.
이런 곳에서 성질급한 님은 스트레스 받기 십상이다. 고무질빵 같은 느긋하게 천천히, 1km도 못미치는 거리를 1시간15분이나 걸려 잡목투성이의 능선에 겨우 올라설 수 있었다. 신갈나무들 사이의 사람 족적이 끊긴 오른쪽 능선을 타고 10분쯤 올라서니 신갈나무를 베어버린 아무런 표식도 없는 세덕산 정상이다.
북으로의 조망은 나무들 사이로 장전리와 날머리로 택한 내장전 마을이 내려다뵈고 멍애산, 중봉산 뒤로는 백두대간의 고적대, 청옥산, 두타산들은 망지봉, 둥둥산과 우어러졌다. 동쪽은 숲뒤산이 시야를 가렸고 남쪽도 해당봉과 장병산이 병풍을 쳤다. 서쪽으로 아름드리 신갈나무에 가려 추동리가 어림될 뿐이다.
능선의 칼바람을 피해 양지켠에 가랑잎을 깔고 앉아 느긋한 중식을 즐기고는 북쪽 능선으로 하산한다. 북쪽 능선은 갑자기 고도를 낮추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서쪽 능선을 따라 하산하기 쉽게 생겼다. 볼슬레이 하듯 급경사를 내려서 계속 15분쯤 능선을 따르다 오른편 내장천리 마을을 내려다보며 일본잎갈나무들이 하늘을 찌르고 솟은 사이로 길을 트며 내려가는데 간벌한 나무들이 또 길을 막아 진땀을 빼게 한다.
사면에는 겨울잠을 청한 더덕도 가끔씩 보인다. 아직도 해거름은 멀었는데 사방이 어둑하다. 여기서도 고무질빵 흉내를 낸다. 길을 트며 40여분을 내려서니 이름대로 넓은 밭이 나타나는 내장전 마을이다.
밭에는 출하를 끝낸 여름 배추들이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 저절로 작은 배추들이 핀 '움돋이 배추'들이 파랗게 깔렸다. 이 배추들은 농약과 거리가 멀어 그냥 먹어도 고소하고 특이한 향이 나는 최고의 웰빙 먹거리다. 널렸다. 아줌마들 배낭으로 한가득 담는다. 길고 넓은 밭을 내려 농가를 지나 그림 같은 소나무가 있는 작은 언덕을 넘으니, 35번 국도와 고계천 건너 따스한 햇볕을 듬뿍 받고 있는 양지촌이 반긴다.
*산행길잡이
장전리 표석-(20분)-사거리-(1시간15분)-우묵골 안부-(10분)-정상-(15분)- 북릉안부-(40분)-내장전-(20분)-장전리 표석
강원도 삼척은 산불 피해를 많이 입은 고장이라 특히 신경을 써 산불조심을 해야 한다. 세덕산 정상에서 하산할 땐, 독도에 각별히 주의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서쪽과 북쪽 능선이 있는데, 서쪽 완만한 능선길이 유혹하여도 급경사 북쪽 능선을 찾아 내려서야 한다. 아침 일찍 세덕산에서 가까운 백두대간의 댓재에서 일출을 보고 산행하는 것도 좋겠다.
*교통
하장면으로 드는 교통은 태백, 삼척, 임계에서 버스가 있다. 태백시외버스터미널(033-552-3100)에서 1일 6회(08:25, 09:00, 11:05, 12:50, 14:40, 17:40) 운행하는 하장, 임계, 판문 방면 버스를 이용한다. 하장버스터미널(552-0553)에서 임계-강릉간 버스가 1일 4회(08:40, 10:30, 15:25, 19:40) 운행한다. 하장에서 정선과 추동행 버스는 1일 2회(13:00, 17:45) 운행하며, 하장에서 삼척행은 1일 3회(08:30, 14:50, 18:00), 하장에서 태백행은 1일 6회(08:25, 09:00, 11:05, 12:50, 17:40) 운행한다.
*잘 데와 먹을 데
하장과 장전삼거리의 김목식당민박(553-2033), 소나무가든(552-3758), 송죽가든(552-6747), 우리식당(553-5215), 하장민박(553-2230), 멕시칸치킨(552-0077), 삼거리쉼터(552-0213), 광산민박(552-0194).
*볼거리
광동호수와 댓재의 일출, 귀네미골의 일출, 한강발원지검용소, 정선화암팔경,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임계의 송계산성과 봉산리 고가 등의 볼거리가 있다.
글쓴이:김부래 태백주재기자
참고:월간<사람과산> 2008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