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봄비가 촉촉이 내렸습니다.
지난주의 추위는 어디가고 주초의 낮은 여름처럼 등줄기로 땀을 쏟게 만들더니만
포근하게 비가 내려 가문 대지를 적셔주었습니다.
오늘 오후에 또 비가 온다네요.
이에 화답하듯,
김연아가 쇼트트랙에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당당하게 세계 무대의 중앙에 우뚝 섬으로써
우리의 메마른 가슴에 단비를 내려주었습니다.
작금의 뉴스 중 가장 속 시원하고 후련한 쾌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원로희극인, 불멸의 코미디언, 한국의 찰리채플린, 슬랩스틱코미디의 원조,...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이 부족한 시대의 풍운아 배삼룡씨가
3년여의 병고 끝에 지난 화요일 타계하셨습니다.
1946년 21세의 나이에 유랑악극단원으로 출발하여
1969년 43세의 나이에 MBC코메디언으로 데뷔한 이후
1960~70년대 한국 방송 코미디의 최고 스타로 큰 인기를 끌었었지요.
특유의 바보 연기, 허약 체질 연기로 ‘비실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장수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등으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코미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사람팔자 시간문제’등 400여편의 드라마와
‘형님 먼저 아우 먼저’등 10여편의 영화에서도 종횡무진 활약했었지요.
배삼룡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스타에 못지 않았으며
그를 데려가기 위해 납치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하늘을 찌르는 인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하지요.
하지만 80년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배삼룡은 시대에 역행하고 사회의 건전한 미풍양속을 해치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연예인 숙정 대상 1호’로 지목되며 방송 출연 정지를 당했습니다.
이 일로 고국을 등지고 미국으로 향해 3년 반 동안 머물던 그는 83년 귀국하지만,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았고 사업에도 실패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90년대 중반부터 흡인성 폐렴을 앓던 배삼룡은
2007년 6월 한 행사장에서 쓰러져 입원하게 됐고
결국 3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운명을 달리 하신겁니다.
빚으로 병원비 2억원을 남겨두고...
당일, 빈소에는 많은 조문 인파가 몰렸습니다만
다음날 오전은 한산한 모습이었다는 후문이고
TV, 신문 등 언론매체를 살펴보면 그런 일도 있었다 정도로 끝나는 것 같더군요.
최진실, 이은주의 자살 때와는 달리 말입니다.
자살이 미화되는 사회는 분명 아닙니다만
자살한 젊은 연예인들에 대한 추억과 애도가 원로 연예인을 압도한다는게
요즘 언론매체를 접한 제 느낌입니다.
최근 자주 얘기되는 선정성 논란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짧은 삶을 억지로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이 처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40년, 60년을 한길에 바친 원로들에 대한 기억이 너무 짧아졌고 무상한데
그런 현상에 언론매체가 당당히(?)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며칠전 이은주 5주기 추모식이 한산했다는,
애석함을 표현하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한평생을 한길 걸어오신 분들에 대해서는
너무 빨리 잊는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작년 작고하신 여운계는 23살에 KBS공채탈렌트로 연예계에 첫발을 디뎌
48년간 연기생활을 불태우다 폐암으로 돌아가시기 한달 전까지도
TV드라마 '장화홍련'에 출연하는 열정을 보이셔 귀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론매체는 며칠 기사를 싣고는 이내 잊었습니다.
최진실, 이은주 등의 자살 때 보였던 한달 이상의 특집, 기사화와는 달리 말입니다.
'삶은 죽음으로 인해 가치를 부여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요즘의 우리 사회에서는 더이상 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가치를 부여받아야 할 안타까운 원로들의 죽음은 하루 이틀 기사로 끝나고
현실을 자의로 도피한-자살을 택한-많은 젊은 연예인들이
1주기, 2주기, 5주기, 15주기가 되어서도 기억되고 추모식에 열심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니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겠지요.
따지고보면 잃은 것 얻은 것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다만 스스로가 알 뿐이고, 자랑하지 않아도
진실은 통할거라는 믿음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연아의 쾌거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배삼룡선생님의 타계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해 주었습니다.
최진실, 김광석의 자살도 충격이었습니다.
그 어느것도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한쪽으로만 지나치게 쏠리는 것을 경계하여야 하리라는 생각은 분명합니다.
이 '경계'란 단어가 오늘부터 제겐 화두입니다.
잃은 것과 얻은 것(모셔온 글)===================
내 이제껏
잃은 것과 얻은 것
놓친 것과 획득한 것
저울질해보니 자랑할 게 없구나.
나는 알고 있다.
긴긴 세월 헛되이 보내고
좋은 의도는 화살처럼
과녁에 못 닿거나 빗나가버린 걸.
그러나 누가 감히
이런 식으로 손익을 가늠하랴.
패배는 승리의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썰물이 나가면 분명 밀물이 오듯이.
-------잃은 것과 얻은 것 <헨리 W. 롱펠로>